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복음의 영광

김성욱 | 2021.02.08 10:52
성경이 명백하게 증거하는바 모든 인간은 타락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즉 죄로 죽었으며, 사탄의 노예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죄의 결과로서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도 거의 없지만,
선을 행하는 것에 전적으로 무능 합니다.
죄로 죽은 시체의 상태입니다.

세상의 가르침(종교를 포함)은 인간이 내놓는 죄를 바라보며
불완전한 상태 또는 병든 상태로 바라봅니다.

그것은 선을 행하기에 온전치 않지만 교육이나 결단,
여러 노력(수행)들을 통해 개선이 될 수 있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아니고,
단지 결핍이 있고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고 주장하며,
그렇기에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다른 모든 종교, 모든 체계와 다르게 인간은
영적으로 죽었기에 인간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외부에서 개입이 있어야만 한다고 가르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죽었다면
영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이 없는 시체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죽은 사람에게 무언가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내에서 이 복음이 거의 선포되지 않고,
순서를 바꾸어 생명이 없는 이들에게 행위를 강조하고
선과 도덕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이 살아있지만, 결함이 있는 불완전한 상태가 아닌 전적으로 죽었다고 선포합니다.

모든 인류가 예외 없이 죄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며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생명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로 죽었고, 사탄의 종으로 어둠 가운데 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에서 속량하시고, 생명을 주심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으니
이 복음을 맛보고, 생명을 얻은 자들은 새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자발적인 순종과 헌신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은혜인지요!

이것이 복음의 영광입니다!

죽은 자를 큰 값을 주고 살리시고, 자녀삼아 주시고
영원히 살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마음이 메마르고 여전히 드러나는 죄악으로 침체를 겪을때, 주님께서 내 죄를 사하시고 값을 지불하여 사신 은혜가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묵상) 다시금 용서의 은혜를 맛보고
회복되며 주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것이 성도의 특권이자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아시고 사랑하시여, 성도 역시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복된 관계입니다.

성도는 다시 태어난 자이고, 죄로부터 구원 받았으며
본래의 창조목적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자리에 서 있는 자입니다.

또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기쁨으로 전하는 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행위가 먼저가 아니라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경험하고, 그분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서 그분을 깊이 사랑하는 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72개(1/4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 모바일 [김성욱 칼럼] 복음의 영광 김성욱 2021.02.08 10:52
71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모든 것의 기준, 성경 김성욱 2021.01.31 20:23
70 모바일 [김성욱 칼럼] 연합을 회복하라 김성욱 2021.01.02 17:47
69 모바일 [김성욱 칼럼]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김성욱 2020.12.31 21:34
68 모바일 [김성욱 칼럼] 현 시대의 잃어버린 보물, 자기 점검 교리 김성욱 2020.12.28 09:40
67 모바일 [김성욱 칼럼] 자아, 존중의 시대에 왕좌에 등극하다 김성욱 2020.12.11 09:44
66 모바일 [김성욱 칼럼] 구원을 전제하는 교회 김성욱 2020.11.07 08:32
65 모바일 [김성욱 칼럼] 누가 생명을 보호 할 수 있는가? 김성욱 2020.10.08 21:03
64 모바일 [김성욱 칼럼] 삶의 체계로서의 기독교 진리와 통일성 김성욱 2020.09.11 11:08
63 모바일 [김성욱 칼럼] 성도의 의무를 기억하는 일 김성욱 2020.09.10 21:22
62 모바일 [김성욱 칼럼] 왜 침묵하는가? 김성욱 2020.08.30 21:52
61 모바일 [김성욱 칼럼] 불평등에 관하여 김성욱 2020.08.22 22:32
60 모바일 [김성욱 칼럼] 세례요한의 외침 김성욱 2020.08.07 20:03
59 모바일 [김성욱 칼럼] 꿈속의 대화 김성욱 2020.07.09 14:21
58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시도 김성욱 2020.07.07 20:37
57 모바일 [김성욱 칼럼] 원론과 각론 사이에서 김성욱 2020.06.04 00:22
56 모바일 [김성욱 칼럼] 신뢰할만한 인도자 김성욱 2020.06.04 00:21
55 모바일 [김성욱 칼럼] < 기준의 상실, 가치관의 상실 > 김성욱 2020.05.25 22:29
54 모바일 [김성욱 칼럼]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진리를 가르치라! 김성욱 2020.05.11 09:18
53 모바일 [김성욱 칼럼]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김성욱 2020.05.08 20:2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