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미개한 원주민들에겐 쉽게 작동되는 용서

신성욱 | 2021.09.26 19:08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친구나 연인 가족 또는 직장 동료 등에게 상처받은 경험을 다 가지고 있다. 상처의 깊이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용서보다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상처를 받은 만큼 돌려주길 원한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을 한 누군가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어려운 일이다.

브라질 아마존 바나와 인디오 부족들에게 용서누군가의 잘못을 더 기억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성경 번역을 위해 이들과 20년간 함께 살아온 강명관 선교사는 이들에게 용서는 너의 잘못을 잊어 줄게너의 잘못을 더 기억하지 않을게란 뜻이라고 설명한다. 강 선교사는 진정한 용서란 우리의 죄를 더 기억하지 않겠다는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의 의미를 바나와 인디오 부족들에게 배웠다상대의 잘못을 여러 번 기억하며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기억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용서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마토보라는 부족의 얘기도 소개해보자. 이 부족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 잡히면 부족장의 명령으로 그를 깊은 강물에 빠뜨린다. 만약 살인범이 강물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다시 밀어 넣는다. 그런데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살인범을 평생 원수로 여길 피해자의 가족 중 누군가가 물에 뛰어들어 죽어가는 살인범을 구한다면 부족장은 그가 죽는 것을 면케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할까? 당연히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놀라지 말라. 특이한 것은, 그 부족 대부분의 피해자 가족이 죽어가는 살인범을 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한국적인 상황에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살인범들이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유족들의 욕설과 저주가 난무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수없이 지켜본 우리로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마토보 부족들은 어째서 자신의 가족들을 해친 살인범들을 용서하는 쪽을 대부분 택하는 것일까?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용서하는 마음만이 평생 치유 못할 상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처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부족 사람들은 살인범을 수장시키는 그 강을 '용서의 강'이라 부른다.

우리보다 미개하고 덜 배운 이들이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는 이들보다 더 지혜로움을 본다.

 

남을 미워하면 그게 그 사람에게 가질 않고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상하게 하는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산다. 심리학자들은 평생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죽이고 싶은 복수심을 품고 살아갈 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분노는 내면을 병들게 하고 육체적인 질병의 큰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용서는 상대방에 대한 생각 이전에 우리 자신을 위한 배려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마크 트웨인은 용서란 제비꽃이 자기를 밟고 지나가는 발뒤꿈치에다 향기를 남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토보 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짓밟아 버린 살인범을 죽음의 강에서 구해주고 그의 발뒤꿈치에다 향기를 남긴다.

오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수들이 있는가? 내 가족을 해치고 상처 입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대상이 있는가?

 

그런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려 죄 값을 대신 치르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역시 용서받은 죄인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평생 미움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입어야 할 상처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용서함이 필요함을 기억하고 무조건 사랑함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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