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섬김, 디아코니아

서중한 | 2005.01.20 15:08
봉사나 섬김 혹은 사역을 뜻하는 헬라 말은 ‘디아코니아diakonia’이다. ‘디아’는 ‘···을 통하여’란 말이고 ‘코니아’는 ‘먼지’를 뜻한다. 결국 ‘···을 통하여’란 말과 ‘먼지’란 말의 합성어인 셈이다. ‘먼지를 통하여’란 디아코니아가 섬김이나 봉사 혹은 사역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단어의 의미를 정리해 본다. ‘먼지 나도록 뛰어 다닌다’는 우리말과 이 의미가 통하지 않을까. 아니면 섬김은 먼지 같은 부족한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란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자신을 먼지로 생각하는 사람, 그렇게 자신들을 작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이들을 통해 섬김이 이루어진다. 이런 생각을 가능케 하는 것은 diakonia와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는 diakonos란 말이 있는데 후에 ‘집사’를 뜻하는 말이 되었지만(여기서 집사deacon 란 말이 나왔다) ,원래 헬라사회에서는 식사와 관련해 웨이터waiter를 뜻하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식사 때만큼 주인과 종의 구별이 뚜렷이 나타나는 때가 없었다. 상전은 긴 옷을 차려입고 식탁에 기대어 있고, 하인은 띠를 두르고 시중을 들어야 했다. 식사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이 diakonos였고 감독(장로)은 ‘반장 웨이터head-waiter' 쯤 되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속에서 누가복음 22,26-27을 읽어보자. 쉬운 번역을 따라 읽어본다.
“여러분 가운데 제일 큰 사람은 제일 어린 사람처럼 되고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합니다. 사실 상 받고 앉은 사람과 섬기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높겠습니까? 상 받고 앉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여러분 가운데 섬기는 사람으로 처신합니다.”

이 말씀을 따르면 우리는 웨이터로 서계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 섬김과 봉사, 사역이란게 무언가. 군대를 제대한 후에 6개월 정도 아파트 공사판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나같이 잡부를 공사판 용어로 ‘대모도’라고 불렀던 것 같다. 물론 일본말이겠지만. 여하튼 공사판에서 누가 누군가를 부를 때 이름을 정확히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그저 ‘서씨~’, ‘이씨~’, ‘김씨~’ 면 족하다. 특히 나 같은 잡부들은 기술자들이 ‘에이 서씨~’하고 부르면 총알같이 달려가야 했다. 그 뒤로 시간이 지나서 나는 문득 그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서씨 목사’ 혹 ‘서씨 목회’를 꿈꾼다. 그 누가 내 이름 불러 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을 먼지 같은 나를 보지 않고서는 섬김의 삶을 산다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섬기라고 말씀하실 때는 “식사시중을 들어라. 혹은 찬양대로 주일학교로 봉사해라.” 등의 특정한 행위 자체를 요구하는 것 이상의 뜻이 담겨있다. 우리 존재 자체가 ‘남을 위한 존재’가 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은 권력이나 지식이나 위엄이 아니라 섬김(디아코니아)이다. 섬김과 봉사는 단순히 교회에서 지켜야 할 미덕 정도가 아니다. 섬김은 우리가 정말 예수를 따르는 사람인가를 분별해내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주일날 이면 한번 씩 팔을 걷는 겸양 같은 것을 섬김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섬김은 살아도 죽어도 우리가 섬기는 사람, 즉 남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함을 말한다. 예수님의 근본 관심은 여기에 있다. 주일날 한번 찬양대에 앉고, 교사 일을 하고, 주차관리를 하고, 식당에서 봉사한다고, 마치 그 몇 가지 항목을 실천한다고 섬김과 봉사를 이룬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남을 위한 존재인가’ ‘내가 정말 섬기는 사람인가’를 스스로 진지하게 물음 해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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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답글 [서중한 칼럼] 감사합니다. 서중한 2005.05.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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