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오래 전 불렀던 찬송의 기억

서상진 | 2019.02.10 10:06

나의 시계를 30년 전의 기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부르시던 찬송의 곡조가 생각이 납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홀로 남아 있었고, 아버지는 멀리 의성군 안계면이라고 하는 낯선 곳으로 목회지를 따라 온 가족이 이사를 갔습니다. 방학을 맞이해서 처음 가 본 낡은 초가집의 구조와 벽지 무늬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초가집의 현관을 열면 왼쪽에 부엌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안방이 있었고, 가운데에는 80순이 넘으신 할머니가 계신 자그마한 방이 있었습니다. 현관 오른편에는 나와 내 동생을 위한 방 하나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아파트와 시멘트 향에 익숙한 나에게, 코를 찌르는 듯한 텁텁한 시골 냄새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대학교 시절 어느 겨울 방학. 차가운 바람이 창문 틈으로 밀려오는 방 안에 있노라면, 아련하게 교회로부터 들려오는 찬송 소리가 있습니다. 강대상 옆에 앉아 북을 치고, 숨을 헐떡거리며 찬송을 부르시는 어느 연세 많은 집사님의 찬송 소리. 강단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이시어 찬송을 인도하시는 부흥사 목사님의 목쉰 찬송 소리. 설거지를 하며 찬송을 부르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안방에서 매일같이 새어 나오던 아버지의 반주 없는 찬송의 흥얼거림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어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천국에 계신 할머니가 쓰시던 곡조 없는 세로 글씨의 옛날 찬송가와 성경책, 농촌 교회에서 유일하게 찬양팀이 있어서, 방 안에서 홀로 누워있으면 들려오는 어설픈 드럼과 신디사이저의 곡조, 스피커의 찢어질 듯한 소리로 들려오는 찬양팀의 찬양 소리는 방에 있는 나로 하여금 함께 흥얼거리며 찬양을 하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 나이도 오십이 되어 버린 지금, 요즘 들어 더욱 정이 가는 것은 오래된 찬송가의 곡조입니다. 오랜 세월의 강을 넘고, 시간의 문을 통과하며, 믿음의 길을 걷고 또 걸어 우리가 간증하는 신앙고백의 능력이 되어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오래된 찬송가.

지난 주일 예배 시간에 불렀던 찬송은 나의 가슴 속에서 깊은 감동이 되어 지고, 찬송 한 구절, 한 구절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증거와도 같은 은혜가 내 마음 속에 밀려옵니다. 성경 말씀이 하늘로부터 내려진 은혜라고 한다면, 찬양은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솟아 오르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이며, 축복입니다.


시골에서 잠간 보냈던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의 삶과 기억들 속에는 언제나 찬송을 부르시던 지금 내 나이 쯤 되었을 부모님의 흥얼거리는 찬송가의 곡조가 마치 어제 일처럼 분명해 집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나는 오래된 찬송을 다시금 불러 봅니다.  그리고 지금은 몇 년 전에 천국으로 가신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며, 아버지의 신앙고백과 다름이 없는 찬송의 곡조는 언제 불러도 가슴 뭉클한 고백으로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찬송가를 펼쳐 들고 찬송을 불러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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