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칼럼]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종수 | 2004.11.02 11:19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부제: 경건한 집회를 위한 우리의 합당한 태도와 자세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은혜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그 날,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 살며 섬깁니다.

모든 가정마다 법도가 있듯이, 하나님의 집에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경영하시는 법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성령님을 통해 배우고 알게 될 때, 하나님의 교회는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또는 경히 여길 때, 하나님의 집은 무질서의 온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복음의 능력을 훼방하는 행동이며, 성령님을 소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처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올 때, 바른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그릇된 태도와 자세는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하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는 황폐한 곳으로 전락시킬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의 삶으로 일관했을 때,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을 떠나심으로 예루살렘 성이 황폐화되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자신을 삼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의 마음 가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올 때,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에클레시아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사모하며 나아와야 합니다.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나아올 때, 우리는 이미 예배자로서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도, 말라기 시대 유대인들이 드렸던 헛된 예배로 끝날 것이 분명합니다(말 1:6-10 참조).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며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헛된 예배를 결코 열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을 갖춘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2. 우리의 태도와 자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태도와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집회 시간에 늦는 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자가 그 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늦거나, 습관적으로 늦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누가복음 1장 8절-10절을 보면, 경건한 사람들은 시간에 맞추어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던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경건한 주의 사람들은 시간을 잘 지킨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성도로서, 서로에 대한 합당한 예절을 갖추어야 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코 홀로서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혹시 빠질지 모르는 신앙의 이기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이 혹시 다른 성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엡 2:21-22 참조).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독단적인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가끔 집회에 늦게 온 분들이 의자를 자기 임의로 가져다가 앉는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할 때는 의례히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고, 의자를 끄는 소리를 내는 등 집회를 소란케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솔한 행동은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에 어긋납니다. 혹시 집회에 늦었을 때에는 다소곳한 마음으로 와서 착석해야 합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성도의 합당의 태도와 자세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집회의 안내를 맡은 분들의 안내를 따라야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임의로 행동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안내를 맡은 분들이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주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누가 그들의 안내를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안내자를 세우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내자를 존중할 때, 이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참조)

3. 우리의 복장
우리의 복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출애굽기 39장 22-29절을 보면,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의 옷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지어야 했습니다. 또 41절에도 보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옷을 가리켜 정교한 옷, 또는 거룩한 옷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정교한 옷과 거룩한 옷을 입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구약시대에 살고 있진 않습니다. 또한 모세의 율법에서 정한 대로 옷을 입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신약의)을 행하고자 할 때에는, 우리가 가진 가장 최상의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예에도 합한 것입니다. 우리가 귀한 사람이나, 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옷을 함부로 입지 않습니다. 또는 남녀를 막론하고 노출이 심한 옷도 입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높으신 분, 곧 하나님을 뵙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안내자, 사회자, 설교자, 반주자, 만찬봉사위원 그리고 특송하시는 분들은 복장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복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분들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사람보다 낮추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최상의 복장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4. 휴식 시간 사용
가끔 보면 집회 중간 휴식 시간이 성도 개인들의 소규모 집회 시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휴식 시간을 갖는 목적은 집회 중간에 우리의 육체의 피로와 피곤을 풀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을 합당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마냥 풀어놓아서는 안됩니다. 성도들과 간단히 인사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집회를 위해 미리 와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며, 이 집회를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복이 모든 성도들 가운데 고루 임하게 됩니다.
때때로 이미 찬송과 말씀이 시작되었음에도 개인적인 교제(?)를 그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아니면 아예 공적인 집회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또는 집회 시간 중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나 냉온수기를 사용하는 일도 있습니다. 사실 집회 시간 중에는 이러한 행동을 자제하는 일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없이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집회에 임할 때에는 집회 중에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축복에서 제외되는 일이 많을 찐대, 어찌 좋은 열매 맺기를 바랄수가 있겠습니까?

5. 우리의 은사와 직분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각자가 섬길 부분과 맡은 직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는 또한 은사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서로 유익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고전 12:7-11 참조).
따라서 우리가 받은 은사를 따라 모든 성도가 다 최선을 다해 섬길 때, 하나님의 집에는 부족한 것이 없게 됩니다. 교회에 영적인 실업자들이 늘어만 갈 때,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집의 궁핍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이 은사를 따라 섬겨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은사를 모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일부터 섬기는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일에 참예하여, 충성스럽게 섬기십시오. 그러할 때, 나의 은사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일을 통해 우리의 삶은 행복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집회와 예배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처럼 항상 이러했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초기에 모임은 하나님의 아드님을 예배하는 열정에 있어서 필적할만한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모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플리머스 브레들린으로 알려진 분들로, 그들의 집회는 거룩함과 경외심으로 아우른 그야말로 교회가 하나님의 집으로 드러나는 영광의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잠시 소개를 해보면,

제가 청년이었을 때, 저는 종종 ‘플리머스 브레들린’으로 알려진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그냥 성경구절들이 기록된 간판들이 걸려 있던 집회소에서 가졌던 예배는 제가 지금까지 참석한 중 가장 경배의 영으로 충만한 예배였습니다. 오르간 연주자의 아름다운 선율도 없고, 연주곡에 맞추어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인사하는 소리,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 그리고 기침하는 소리 등은 모두가 ‘기적적인 약’인 경외감에 의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를 숙이고 있거나 자기 성경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앉고자 하는 자리로 갈 때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갔습니다. 모인 사람들 각자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민감한 움직이심에 따라 찬송을 선택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또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깊은 경외심을 느끼는 순간들로 이어졌기 때문에, 많은 개혁주의 교회의 예배의 왁자지껄하는 분위기와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열린문 2004년 1-2월호 [경외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참조”

이분들의 집회와 우리의 집회를 비교해 볼 때, 저는 상당히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무엇이 과연 이분들로 하여금 이토록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집회를 갖도록 했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분들은 바로 하나님을 친히 뵙는 가운데 그 마음이 경외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뵙는 신령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직접 뵙고 그분을 예배하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제 영광 중에 계신 주님, 곧 교회의 머리되신 주권자를 뵙고, 그분을 경배하고자 하는 열망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합당한 자리를 내어드리도록 합시다. 일주일 가운데 6일이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가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주일에는 함께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를 예배합시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예배를 흠향하시고,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이 열납하시며, 또한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이러한 예배와 경배를 드리는 중에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소박한 소망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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