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침묵, 말을 향한 여행

서중한 | 2004.02.03 18:44
쉽게 던져버리고는 잊어버리는 말, 통찰 없이 가볍게 전해들은 말, 고통을 상실한 말들로 휘청대는 현대는 더 이상 '진리'니 '인간'이니 하는 말들로 심각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현대가 침묵을 상실한 결과입니다. 말을 찾아 길을 떠나지 않습니다. 적당하게 짜여진 말, 살아가는데 그리 불편하지 않는 말속에 안주하고 삽니다. 침묵은 때론 말에 대한 항거이자  말의 뼈아픈 자기 성찰입니다. 우리는 내게 익숙한 이 말들이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내던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낯선 것들을 끌어 올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적당하게 지성인이고 적당하게 도시인이며 적당하게 신앙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적당하게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혹시 침묵 하다가 내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내 말이  조악한 것이라고 여겨진다면  내가 지금까지 쌓았던 인생의 건물이 거짓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침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가르치는 교회'이기 전에 '듣는 교회'가 되어야 하듯 우리의 삶도 그저 진리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말이 침묵 속에서 살아나고 침묵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조직적인 활동을 지도함에 있어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을 분주하게 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어떻게 분주하지 않게 하느냐는 것" 입니다. 나무 결과 같이 말의 '결'을 생각하는 사람은 '말'에 묶이지 않습니다. '말의 '결'을 타고 들어가서 그 사람의 생각과 심정을 헤아립니다. 단지 기호적 언어에 매달리지 않는 침묵이 우리에게 주는 힘입니다.

  약관[弱冠]의 나이에『기독교 강요』초판[1536]을 기록한 요한 칼빈의 폭넓은 신학적 지식과 영성에 빠져들 사이도 없이 우리는 '칼빈주의'[Calvinism]를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R. T. 켄달이 주장하듯 '칼빈'과 '칼빈주의'에 불연속성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칼빈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말'이 살아오는 것을 경험하지도 못한 채 主義[Ism]를 먼저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도식화'된 사고 속에서 '말'들을 거침없이 재단하는 것을 배웁니다. 더 이상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침묵 속에서 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Ism'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입하여서 글자 하나 하나가 살아오는 것을 차단할 때가 있습니다. '主義'가 불필요하다는 말도 아니고, 그것의 '無用論'을 주장하는 바도 아닙니다. 그것들 너머에 있는 말의 진실을 침묵으로 읽어 내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침묵이 있는 곳에서 천박하지 않은 '보수신앙'과 깊이 있는 신학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것이 '싸움꾼의 말'을 종식시키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서로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전통'이란 참된 말의 세월 속에서 나이를 먹습니다. 언제나 나를 결단하게 하고 곤두세우는 '마지막 말'들로 세월의 층을 쌓아 갑니다. 기도와 찬송소리는 뜨거운데 마음에 담긴 말들은 선을 긋는 말, 편 나누는 말, 상처의 말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말'을 찾아 떠나는 여행, 우리의 침묵이 이제는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된 말들이 밝혀지고 진실된 말들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때 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시선에 온기를 느끼게 됩니다. 그 온기 속에서 새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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