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모든 죄인들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댓글에 긴 글을 쓰기 어려워 이곳에 남깁니다.
계속해서 동성애 관련 포스팅에 이견이 있으시고,
그 부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 입장을 정리하는 차원입니다.
저는 동성애자 분들이 어떤 마음과 입장일지 생각해 보기는 했으나 솔직하게 그분들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바, 죄인의 상태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 그 부분을 논하겠습니다.
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을 죄의 노예이며,
철저하게 죄에 얽매여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한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그 시각으로 영적인 측면에서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성도들도 거듭나기 전의 시절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 가능합니다. 죄에 속박된 그 상태를요.
벗어나고자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단 동성애라는 죄악 뿐아니라, 악독, 거짓, 수군댐, 살인,
간음, 교만등의 죄악들도 그 악한 영향력의 측면에서는 동일합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는 같은 죄에 빠지지 말 것을 명하신 것을 생각해 볼때,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만이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사실과 둘째로 그렇게 거듭난 사람은
같은 죄에 계속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동성애자들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자격도 당연히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행위(동성애를 품는 마음과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입니다.
왜 다른 죄와 달리 동성애가 자꾸 이슈의 중심에 있습니까?
다른 죄악들과 다르게 자신들이 죄가 아니며 존중받아야 될 하나의 취향 정도로 변개하려는 거센 반발 때문에 성경을 따르는 성도들이 더욱 거세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죄를 죄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죄가 아니고 존중받아야 될 하나의 취향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계속 그 죄에 거한다면 죄가 아닌데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 자명하고,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지라도 진리를 담고 있는 교회가 생명이 달려있는 이 문제를 어찌 함부로 그리고 임의로 다룰 수 있겠습니까?
예를들어 간음하는 자나 거짓 증거하는 자에게
그들의 마음이 상할까봐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기에 그것을 죄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 죄에서 돌이킬수 있을까요?
성경 진리를 다루는 일에 있어 인간적인 감정을 너무 개입시키거나 추상적이고 낭만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진리를 왜곡하여 적용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이기에
그 측면에서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1:27, 5:1, 9:6).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의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라는 죄악에 대해서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더이상 죄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무너뜨리고,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에 대해 진리의 기관인 교회가 어찌 그들과 한 목소리를 낼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조건없는 포용과 사랑을 주장하고 요구하지만,
진리를 떠난 사랑은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동성애 관련 포스팅에 이견이 있으시고,
그 부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 입장을 정리하는 차원입니다.
저는 동성애자 분들이 어떤 마음과 입장일지 생각해 보기는 했으나 솔직하게 그분들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바, 죄인의 상태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 그 부분을 논하겠습니다.
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을 죄의 노예이며,
철저하게 죄에 얽매여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한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그 시각으로 영적인 측면에서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성도들도 거듭나기 전의 시절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 가능합니다. 죄에 속박된 그 상태를요.
벗어나고자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단 동성애라는 죄악 뿐아니라, 악독, 거짓, 수군댐, 살인,
간음, 교만등의 죄악들도 그 악한 영향력의 측면에서는 동일합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는 같은 죄에 빠지지 말 것을 명하신 것을 생각해 볼때,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만이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사실과 둘째로 그렇게 거듭난 사람은
같은 죄에 계속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동성애자들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자격도 당연히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행위(동성애를 품는 마음과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입니다.
왜 다른 죄와 달리 동성애가 자꾸 이슈의 중심에 있습니까?
다른 죄악들과 다르게 자신들이 죄가 아니며 존중받아야 될 하나의 취향 정도로 변개하려는 거센 반발 때문에 성경을 따르는 성도들이 더욱 거세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죄를 죄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죄가 아니고 존중받아야 될 하나의 취향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계속 그 죄에 거한다면 죄가 아닌데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 자명하고,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지라도 진리를 담고 있는 교회가 생명이 달려있는 이 문제를 어찌 함부로 그리고 임의로 다룰 수 있겠습니까?
예를들어 간음하는 자나 거짓 증거하는 자에게
그들의 마음이 상할까봐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기에 그것을 죄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 죄에서 돌이킬수 있을까요?
성경 진리를 다루는 일에 있어 인간적인 감정을 너무 개입시키거나 추상적이고 낭만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진리를 왜곡하여 적용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이기에
그 측면에서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1:27, 5:1, 9:6).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의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라는 죄악에 대해서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더이상 죄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무너뜨리고,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에 대해 진리의 기관인 교회가 어찌 그들과 한 목소리를 낼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조건없는 포용과 사랑을 주장하고 요구하지만,
진리를 떠난 사랑은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댓글 0개
| 엮인글 0개
1,021개(19/52페이지)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 | [김성욱 칼럼] 모든 죄인들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 김성욱 | 2019.12.19 10:54 |
660 | [서상진 칼럼] 누구와 사는 것이 행복할까요? | 서상진 | 2019.12.18 17:46 |
659 | [서중한 칼럼] 니고데모를 묵상함 | 서중한 | 2019.12.18 16:40 |
658 | [서상진 칼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정도는 합니다 | 서상진 | 2019.12.15 09:50 |
657 | [서상진 칼럼] 거짓 종교에 속지 마십시오. | 서상진 | 2019.12.04 17:54 |
656 | [김성욱 칼럼] 오직 진리로 모든 것을 이끌게 하는 것 [1+1] | 김성욱 | 2019.11.29 14:42 |
655 | [채천석 칼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채천석 | 2019.11.22 14:02 |
654 | [김성욱 칼럼] 타협하지 않는 진리의 복음 | 김성욱 | 2019.11.22 13:00 |
653 | [김성욱 칼럼] 인생의 여러 시험들을 지날때. | 김성욱 | 2019.11.17 19:53 |
652 | [서상진 칼럼] 함께함의 능력 | 서상진 | 2019.11.11 06:10 |
651 | [김성욱 칼럼]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 김성욱 | 2019.10.28 23:55 |
650 | [김성욱 칼럼] 목회자를 존중히 여기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 김성욱 | 2019.10.28 23:50 |
649 | [서중한 칼럼] 가을 기도 | 서중한 | 2019.10.17 17:37 |
648 | [이성호 칼럼] 헌금(獻金)과 모금(募金), 그리고 수금(收金) | 이성호 | 2019.10.14 11:19 |
647 | [서상진 칼럼] 선택과 결단 | 서상진 | 2019.10.04 11:36 |
646 | [김성욱 칼럼] 기독교는 단지 도덕을 강조하지 않는다. | 김성욱 | 2019.10.03 10:11 |
645 | [김성욱 칼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삶 | 김성욱 | 2019.10.03 10:10 |
644 | [서상진 칼럼] 마음 속의 결정이 중요합니다 | 서상진 | 2019.10.01 21:54 |
643 | [서상진 칼럼] 무엇이 중요할까? | 서상진 | 2019.09.27 05:17 |
642 | [이성호 칼럼] 한가위 교회이야기 | 이성호 | 2019.09.21 2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