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빈 들녘 논흙의 마음은?

이진규 | 2024.12.09 09:20

#빈들녁 논흙의 마음은?#

어제 오후4시경 걷기운동을 나홀로 나섰다. 내가 톡방에서 고백했듯이, 걷기운동 나가는 시간 때는 건강을 위한 운동 뿐아니라, 스쳐지나가고 오는 분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택적으로 접근해서 전도를 시도한다. 도심을 벗어나 들녘 논길을 걸을 때, 벼다 벤 논이 웬지 내 마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텅빈 들녘 논을 바라보노라니 나로 하여금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

1.논흙의 헌신과 상처

얼마 전까지도 들녘 드넓은 논들에는 황금빛 벼들로 꽉 찼었다. 논바박 흑은 그 벼들을 어리시절부터 무르익기까지 키워내느라고 힘들게 고생했다. 그래도 부모가 어린 자녀 양육할 때 힘들지만,양육의 수고를 기꺼이 헌신하듯이, 논흙도 어린 벼들을 키워내는데 보람을 가지고 수고의 인내를 감수했다. 흙은 어느덧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다 자란 벼들과 그위에서 맺히는 이삭무게을 지탱하느라고 여간 힘들었지만..그들이 내 것이라고 여겨 든든한 마음 이었지,어미가 자식들의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든든해하는 부자의 마음이랄까, 내 수고를 기억하고 알아줄 것 것만 같은 기대로 힘들어도 이겨냈어. 그러다가 토양양분까지 다 빼내 베풀면서 영향실조로 골병도 들었다고...그렇게 땅속에 영양분도 빼앗기며 힘이 소진될뿐아니라, 가물어 땅이 쩍쩍 갈리지는 고통속서도 벼들의 생명을 절대 포기못하고 지켜내주었지. 그런 자기 희생에 못견디고 죽을 것 같았지만, 그게 보람을 느끼는 희생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지...그린데 지금은 저렇게 텅텅빈 논들이다. 어찌 바라보기에 좀 허전한 들판이다.

훍은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내던 벼들을 볏집은 볏집대로, 알곡은 알곡대로, 다 자기 곁을 떠나보낸 채 흘로 남은 텅빈 들녘, 그 토양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생긱일까?!...

며칠전 지인께서 보내준 동영상 내용을 들어다 보니, 자녀를 힘들게 키워내고 결혼시켜 독립시키고, 남편은 먼저 떠나간 채 세월의 무게를 못버텨 내고 몸은 늙어가며, 예전같지 않아 자녀들에게 좀 의지하려 했으나, 서로가 바쁘다고 모실 형펀이 안된다고,변명 일삼고 등떠밀어내는자녀들 모습에... 그만 상처를 입은 어머니가 깊은 병에 들어 얼마 못산다하니,

자녀들은 벌써부터 엄마의 건강에는 안중에 없고 재산분할에 눈돌아 가더린다.

그런 모습에 두번 상처를 받은 엄마는, 그 남은 재산을 기부하기로 유언을 남겼다는뎨...

혹 지금 논바닥 흙은 그렇게 자식들을 뼈아프게 희생해 길러냈지만, 이젠,다 곁을 독립해 떠나가고 찾아 오기를 부담스러워 하고, 꺼려하며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 다 떠나가 잃고 텅빈 허전한 마음일까?!...

모친 노후문제를 서로 돌아가면서, 첫째는 이런 사정 때문에 둘째는 저런 사정 때문에 집에 못모신다고...맏 형이 그러면 요양병원에 모시면 어떨까 의견을 내니 ..“,요양병원도 한달비용이 얼만데?! 그 비용 어떻게 감당해 비싸..” 그런 자녀들의 말을 건네듣게 된 어머니는 충격을 견디지못한채 집을 나가서 보이지 않자...

실종신고도 하고 어머니를 찾으려하고 전단지도 작성하고 찾는 척 노력도 해보지만, 실제 속 마음은 집나간 어머니를 진짜 찾으려하는 효심 때문이 아니고, 그런 조치를 해놔야 법적으로 부모 재산 상속에 지장없다 하는, 콩밭에만 가 있는 꿩의 마음들이니 ..

정말 이런 사례가 모든 자식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닐테지만,옛날 같지않게 부모향해 퇴색돼가 삭막해진 현실 시대상을 풍자하는 것 같아서, 먼 나라 이야기처럼만 여겨지지 않아서요.

어쩌면 저 허전하고 황량한 들녘 텅빈 논바닥 흙들의 마음이 또한 은퇴한 목사들의 마음은 아닐지요?

제가 현직에 있을 때에, 배우며 섬기던 당회장 목사님 교회 출신 부교역자들이 명절날에 함께 모여 인사차 들렸을 때, 교제 나누면서 어록같은 말씀들을 들려주시곤 하셨는데,

그중의 오늘 생각난 말씀은, 은퇴 후 원로목사들의 교회 대우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 하시는 말씀이, 나는 지금 시무하던 교회에서 그래도 원로목사 대우를 받고 살지만, 그러나 너희들 세대는 원로대접 제대로 받을 생각들 마라고, 너희들 세대는 원로 대접받는 시대가 아닐 것이라고, ...

그래서일까?! 이천에서 개척해서 1500여명 출석교인으로 부흥성장시킨 분이 원로추대를 받는데, 노회 대책위원회에서는 목사님께 권면하기를, 은퇴 위로금과 은퇴 후 생계비 계산해서 후하게 일시로 받고 교회를 떠나는 쪽을 권했지만, 이 목사님께서는 나는 개척해서 교회를 일으켰고, 지금도 교인들은 나를 엄청 따르고 신뢰하며 존경하기에, 나는 본 교회 출석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고집하며, 위로금 얼마 그리고 평소 받던 사례비 80% 받는 쪽을 선택하셨다는데, 1년이 채 못돼서 그 목사님께서 어디론가 떠나 가셨다하는 말이 들려오던데,,,,

왜 그랬을까?! 부모가 자식 키우듯이 말씀과 기도와 눈물로 양육해낸 교우들인데, 그리고 새로 부임해온 청빙목사를 세워주기 위해 얼마나 힘써주고 애써줬는데, 그런 은혜를 벌써 잊는다는 건가?!..점점 교우들은 새로 오신 젊은 목사에게 더 집중하고, 새로 부임해오신 목사는 위임받게 해 줄 때와 다르게, 서로 다른 목회철학 때문에, 원로목사님의 마음어린 조언을 지나친 간섭으로 여기며, 이제는 그분이 자기 곁에 존재 자체를 꺼려하면서,점점 예우가 달라지는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서였을까?!

새로운 목사님께 교인들이 점점 집중되며 자기에게서 권력이 점점 이동현상 속에서 은퇴전 자기를 대하던 교인들의 태도가 빛을 바래가는 것을 느끼면서 배신감과 사운함을 느껴서였을까?!

얼마나 상처가 됐으면 그리 평생 머물겠다던 교회를 1년채 못돼서 떠나가셔야 했을까?!

그때 그 목사님 마음이 꼭 저 들력 황량한 논흙같은 마음이었을까 싶은 것이다.

성경속 엘리야 선지자는 구약시대를 대표할만한 능력의 하나님의 종인데,그가 기도하면 하늘에서 비가 안오게도 하고 다시 내리게도 하고, 갈멜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도합 850명하고 누구의 신이 참신인가 가리자 하는 영적 대결에서, 그가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위 제물을 태우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백성들이 압도 된 경외감속에 불을 내리신 그 분이 참 하나님 되신다고백하게 하는 위대한 승리를 거뒀고,그 거짓 선지자들을 기도론 시냇가에서 처단시켜버린 보기드문 업적을 남기지만, 그의 생명을 끊어 복수를 외치며 혈안이 된 이세벨 왕후가 두려워서 피신 가며, 광야 로뎀나무 아래에서 지쳐 쓰리질 때, “이제 족하오니 내 생명을 걷어가 달라하는 외로운 엘리야의 마음은 어땠을까?1, 주의 종 선지자들을 권력이 다 죽이고 나만 홀로 남았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앨리야 그 때 고독한 심정이 지금 저 들녘 황량한 논홁의 마음갇지 않았을까?!..

2,혹독한 겨울추워에 노출돼야하는 흙의 처신

이제 저 논바닥 흙이 그가 겪어내야 할 겨울 눈 추위와 혹독한 추위에 꽁꽁 얼붙어 굳어지는 흙은 그런 추위를 어떻게 견디어내야 할까?!...노년으로 가는 인간의 삶도 겨울을 향해 나가는 흙처럼 춥고 시리고 아프다. 고통스럽다 자녀들에게 의지하지않고 자립해 살아가려하니 때로는 외롭고 힘들어한다 예)반계리.내가 관리하는 한 남자어른은 올해 3월에 아내가 먼저 세상 떠니가고 아들딸 있지만 왕래하지 않는단다...

물론 일이 그 지경이 되기까지에는 부모 아버지의 책임도 없지않고 크기도 하겠지..하지만 아버지는 가장 입장에서 자녀들 책임감에 힘든 생활전선에 뛰어들며 그 아들딸들을 키워내셨잖아?!...그런데 왕래까지 않는디니 도대체 부모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자식들보다 아내 생각에 그립고 외로워 눈물지으며, 삶이란게 너무 자기에게 시리고 아프단다. 힘들다하신다. 그러면서 자살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셨던지..한번은 나한테 대화가운데 자살하는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생각된단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는게 아무나 못할 짓이란다.

그 아버지 마음이 점점 더 추위에 얼어붙는 저 텅빈 들녘의 논바닥 흙의 마음 이닐까 싶은게다. 다윗왕도 자식들을 고생않고 궁궐에서 최고의 교육을 배우게 하고 입혀주고 호강하게 키워주었지만, 게중 압살롬 왕자가 지가 왕아 되고 싶어 아버지를 죽이겠다할 때, 목숨부지위해 남은 식솔들을 데리고 추종자들과 함께 급하고 경황스럽게 궁궐을 나설 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하며 하염없이 슬픈 눈물을 쏟아내는 아비 다윗의 마음이 도대체 어땠을까.싶은 것이다.

목사님들들께서도 지금까지 교회를 일으켜 세우느라고 셍명바쳐 일한다 싶었고 교회도 성장시켰으며, 존경도 받는다 싶을 것인데, 글쎄 원로 추대받을 때 그 이후 삶에 대해 너무 지나친 기대를 않는 것도 예방주사를 맞는 격이 아닐까 싶은 말 한마디 던져본다.

설사 나만큼은 아닐 것이다. 끝까지 교우들이나 후임목사가 나한테는 잘해 줄 것이다는는 환상은 부푼 기대와 달리 일찍 아니 몇 년못가서 깨질 것 같아서 조바심돼 거드는 말이다.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이며 품에 앉고 다 주고 더 못줘 애닳는 사랑으로 눈물로 고생하며 희생했다 해도, 그런 내 마음과는 한참이나 다르게 대하는 자식이나, 교우들이 대해주는 불편한 태도에 항변 못하고 밭아들여야 하는 그 마음은 사랑이지만 시럽다. 아프다. 낙망도 된다. 그래서 그 어르신은 아내 생각에 눈물지며,늘 생각나고 외롭다 말하곤 햐시더라. ...우린 좀 다를 것이겠지만..우리는 그리되지않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실화 이야기를 듣는 세상풍조에서 우리도 안전하지만은 않을거 같아서..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저 들녁의 논바닥 흙의 마음의 아픔과 시림을 맞는 그 길을 우리에게도 닥아올 때 뿌리치고 외면못할 것 같아서 미리 일러 드린다. 다들 내 마음 같지않다는 현실을 인정못하고 상처만 받고 배신감 속에 넘 아파서 울지말고, 그런 현실을 점점 받아들여가는 논바닥 흙마음처럼 받아들여지기를 ...그래서 그 아픔속에 논바닥이 바라볼 곳은 오직 하늘뿐인 것처럼, 우리도 어버이들도 목회자들도 위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분만을 의지히고 조건없이 베풀고 주는 사랑만 배워라. 내가 준반큼 받으려 하지들 말고 ...

3.낙심이 소망으로

훍은 그렿게 빼앗긴채 홀로 추워가는 계절이 시리게 아프게 찾아올수록 때론 낙심과 절망도 하겠지만...그게 영원하지는 않다. 그렇게 찾아온 고통의 겨울이 인내하기가 어렵다하는 고통을 느낄 때 쯤에는 물러간다. 새로운 생기가 돌고 생명을 잉태하고 품어서 키워내는 생명의 계절변화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

우리는 어떤 소망?!...우리 육체는 어쩔수 없이 세월 속에서 쇠해져가고 결국에는 죽어 한줌의 흙으로 사리질 것이지만, 그 썩은 시체가 디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에수재림 때 영원히 썩지않고 쇠하지않고 시공을 초월하는 신령한 육체로 다시 살아난다.

그 아름다운 부활 소망을 않고 우리 육체는 잠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영혼은 죽음으로가는 고통이 후에 맞이하는 지복 영생의 나라,내세를 소망하고 바라본다.

우리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영혼속에 켜져있는 그 소망의 불빛은, 내 노년 육체의 때의 어둠과 외로움 괴로움도 인내하며 통과하게 만든다.

좁은 길을 통과한 후에 영원한 길로 들어간다. 그때까진 참 힘들겠지. 인간적으로 늙어간다는게 쉬운일은 결코 아닌 것 같아서, 그러나 죽어도 디시 살고 죽으면 내 영혼은 천국의 새 아침에서 눈뜰테니까, 그 소망속에 오늘도 내 노쇠해가는 아픈 육체를 어루만진다.

때로는 힘든 내 내면과 마음까지 보듬어 다독거린다. “조금만 더 참아 견디어내.이제 겨울은 끝나고 봄이 곧 올테니까. 그땐 새로운 세상이 열리잖아?! ...육체는 부활하여 변화체를 입고, 영혼은 그 힘들어하던 고통의 육체에서 빠져나와 천국에 입성해서 그곳에서 영생하며, 이 지상에서 마음고생 힘들어 하면서도 밑음을 지켜내며 눈물 흘리고 잘못이 없음에도 상처도 받고, 억울해 한 것도 주님을 위해 충성한 것도, 사람이 몰라준 것도 주님께서 그날에 다 보상해주실테니까 ...”

그때는 눈물 아픔도 어둠도 질병도 끝나고 ..주님께서 친히 눈물 닦아주신데, 탄식은 사리지고 생명과를 따먹으며 생명수의 강에서 수영하며, 영원한 지복의 나라에서 천사 시중 받으며, 세상고생 상처 아픈 세월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다 깨끗하게 잊을만큼, 복된 영생의 나라라네 ..그 나라가 예비돼 있어. 곧 조금만 참이내자. 지금 많이 아파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니, 잠깐 당하는 이 세상의 고통은 저 세상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다 하는 하나님 말씀이 현실이 될 때, 꿈만 같을 거야.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 세상 것들에 넘 집착하지 말자. 양쪽 발걸트리고 증간에서 머뭇거리지말고 이제는 하나님과 그 나라 영광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로 믿음의 시선을 고정시키자. 그래서 그렇게 노년으로 나가는 힘든 삶을 믿음과 소망 가운데 잘 감내하머 승리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기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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