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2

이진규 | 2024.12.07 13:36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전래동화가 시사하는 교훈은 다음과 같은 면도 함유돼 있다. 이야기 재미로만 끝나면 그속에 숨겨진 보화를 놓치는 격이다. 발견과 보는 시각에 따라서 그 교훈적 보화 크기나 가치가 조금씩은 달라 질수도 있겠지만,우선 이야기 속에서 제눈에 발견되는 가치 교훈을 이어가보고자 한다.

3.상처가 낳는 부작용

지도자에게 외관에서 당나귀 귀는 치명적인 결점이다. 더군다나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전제시대 최고 권력자 임금님께, 그 나라 국민들과 다른 이상한 당나귀 귀를 가졌다니. 그것은 노출하고 싶지않고 숨기고 싶은 비빌스러운 결점이었다. 그게 밖으로 노출될 경우 지가 통치리더쉽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수 있다고도 스스로 여겼을 것이라.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 임금님이지만, 그 약점 때문에 그게 외부로 유출될까봐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의 힘으로 그런 약점을 감히 외부세계로 유출시키지 못하게 함구하게 했다. 그것 때문에 임금님 자신은 보통사람과 다른 당나귀를 지니고 태어난게 얼마나 수치고 마음의 상처가 됐을꺼 싶다. 평민이 이발사를 통해서 결국에는 그 비밀이 탄로돼 온 백성들이 알게 됐으니 이 노릇을 어찌 할까 말이다. 또 그로 인해 분노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며 그 상처난 마음을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을까?!

이발사는 말못해서 난 마음의 병이라 그말을 입으로 토해내니 자연스럽게 치유가 일어난다. 하지만 임금님 경우는 달랐다.

상처가 주는 악형향이 정치 리더들에게 작용할 때 그를 폭군으로 만든단다. )히틀러 ..어렸을 때 받은 상처 .히틀러는 그의 아버지 알로히스라는 유대인 지주의 사생아였으며, 그는 아버지로부터 상습적 학대를 당하며 성장했는데, 그런 학대를 통해 어린 히틀러는 인간성을 파괴시켰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한다. 그는 유대인들을 증오했으며 인구청소를 감행하는 끔찍한 일도 서슴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Ref, 인터넷지식) .

4,치유로나가는 길.. 자기직면과 용서 용납,용기

내면 상처로부터 치유가 일어나게 하는 과정 속에거 중요한 단계가 있는데 그게 자기직면이다. 그러니까 성장과정에서 형언못하고 엄청난 상처받을 일을 당했을 때, 그 불행을 야기한 원인 대상에 맺힌 한과 분노가 응어리져있는데, 그것은 내 인생에 나쁜 운전수가 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한 쪽으로 내 삶을 내몰고 가는데,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준 자를 직면해서 구속자 예수님을 통해서 용서가 이뤄지게 해야 한다. 예수님만 만나면 치유복음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것을 방해하는게 내면 속 자리잡은 상처덩어리란다. 내면치유에 전문가이신 주서택 목사께서도 대학생들을 상대로 평소에 뜨겁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 복음을 받을 때 누구는 은혜받고 변화되는데, 누구는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변화가 잘 안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깊은 고민에 빠졌는데, 그 원인자가 내면 상처라고 파악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음의 혜택을 입기위해서는 마음속에 깊은 곳에 경고한 진을 진채 쓴 뿌리로 작용하는 상처 덩어리를 제거해야만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에 이르고 자유함 받는데,그 내면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하게 해야하겠다 해서 사명감을 느끼고 설립하고 시작한게 치유상담사역이다.

치유자되신 예수님을 만나 고침받으려 하면 방해거리인 그 내면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쓴뿌리로 작용하는 상처덩어리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리 하려면 그때 그 상황속으로 시공을 초원해 연상속에서 직면해야 한다. 힘들어한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기를 본능적으로 꺼려하기 때문에 치유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한다. 그럴 때 옆에서 리더가 또는 동료들이 도와준다. )치유상담 사례 생략...

오늘날도 주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다만 사람에 따라 은사에도 다르고 치유방식도 차이를 갖겠지만, 중요한 것은 말씀을 전할 때 치유역사가 영육간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참여하는 예배자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 임금님도 자기 귀가 당나나 귀인 것을 얼마나 창피스럽고 드러내기 어려운 부담이었을것이지만, 그래서 자기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이발사를 말못하도록 겁박한 것이었는데, 결국 이발사를 거쳐간 말로 인해 온 나라 백성들에게 다 소문나 버렸으니...그런 사실을 알게 된 임금님 권력자는 그에 대해서 어떤 반응를 일이킬지가 문제관건이다.,권력을 사용해 누설자를 처단하는 피바람을 일게하 수도 있었음이다.

 

하지만,이갸기 속에서 임금님은 다행히도 자기 현실을 직면하고 용납하고 받아들이수 있었다. 쉽지않은 결단이다. 용기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때까지 자기를 짓눌렀던 비밀 당나귀 귀 사실을 백성들이 이미 다 알아버렸으니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을 수용하며 백성들이 알아도 된다하며 마음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세상에 그리 자유로움이 있을까 치유가 일어나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임금님도 수치로 여기는 그 비밀 누설한 자를 추적해 몰살시키는 폭정을 서슴치 않았을 것인데,...

내게 숨겨진 상처나 비밀스런 허물과 말못할 사정의 문제가 무엇일까?! 내게 아직까지 드러내지 못하고 끙끙앓는 비밀스런 고통이 무엇일까? 꺼내놓으라 자기직면을 통해서 그리도 예수님 앞에 내려 놓으라. 그리스도 앞에 고백하며 인정하며 있는 사실 그대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놀라운 자유함과 치유함이 일어나리라. 사실 내려놓으면 별거 아닌데,남들은 그 문제에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마음도 신경도 안쓰는데, 나 홀로 비약해서 드러내서는 안될 엄청난 비밀처럼 스스로 크게 여기며 못내려 놓을 때 엄청난 내면의 아픔과 고통이 되는 것이다.

)난 잇몸이 안좋아서 일찍부터 이를 하나 하나 잃어 가는 아픔을 겪었다. 어쩔수 없이 부분 틀니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노출하기 꺼려해서 기도원도 피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그로인해 내 치부가 들어날까봐 싫었다. 기도원에 갔을 때는 식사를 하되 틀니를 빼지않고 집회 내내 내내 참았다. 그러다가 충치가 발생해 멀쩡한 이 또 하나를 잃는 아픔도 겪는다. 꼭 가야 했을 때는 아내를 동반해서 식사 후에 우리 차 뒤편에서 가리워 서서 준비해간 물로 틀니를 씻어 부끄러움을 가려야만 했다. 그때 나는 타인들에게 젊은 놈이 뭐 발써부터 틀니를 하고 다녀?!..”라고 놀림감 되는게 죽기보다 싫은 상처난 자존심이 었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정확히 그 게기가 생각 안나는데 깨달음이 왔다. “틀리낀게 무슨 큰 죄라구?! 내가 이리 찔찔매노 좀 자유해지자 있는 나 존재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때?! ...” 그때부터 틀니 때문에 사람들을 벌벌 피하는 자기를 직면하고, 그동안 나를 짓눌러왔던 무겁고 수고하는 짐을 예수님 앞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유함을 얻었다. 그런 후부터 난 세상에 공동화장실에서도 당당하게 틀니를 빼내어 물로 씻는다. 여려분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를 우리를 지금도 내면 속에서 짓누르며 고통스럽게 못살게 구는 숨겨진 아픔 상처 그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사 직면하고 이해하고 용납하여 용서하며 무거운 짐이 재발견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한다. 그렇게 자기 작면하고 깨닫고 나면 그게 은혜이지만, 별것도 아닌데. 그러기 전에는 죽기보다 싫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창파하고 무거운 짐이었다. 그 무거운 짐이 아직까지도 숨겨진 비밀로 아픔과 고통을 받는다면, 이 시간 이후부터 내려놓을 수 있는 자기직면과 용납과 이해와 용기가 예수 이름으로 주어져 치유받고 자유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4.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교훈

임금님이 어떻게 당나귀 귀 비밀스러운 고통에서 해방받게 됐는가?! 그것은 이발사가 비밀을 털어놓기까지, 그 이전에 자기문제를 꼭꼭 숨겨야 할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자신모습을 바라 보아서 거기에 얽매여 고통받았는데, 아제는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로 바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백성들 또한 그렇게 임금님께서 당나귀 귀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임금님의 당당하고 긍정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당나귀 귀이면 뭐 어때 우리 임금님은 우리 잘 살게 편안하게 잘 해주고 저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시는 그릇이 크신 분이신데 존경해야지..감사해야지..” 이런 반응을 나나냈으리라 본다.,

정치가 변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따라 배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윗물이다. 엣말에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은 저절로 맑아진다 했다. 정치인들이 자꾸 법만 아렵게 만들어 자기들만 피해가려 하니까 나라가 요란해진다. 정치인들이 법없이도 살만큼 그들이 매사에 솔선수범해준다면, 백성들이 그런 지도자를 존경하며 저절로 따라가서 나라가 의로워질 것이다. 의로운 통치자들로 가듭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살다보면 온갖 말을 듣고 살지만, 때론 듣기좋은 말보다 바판하는 말을 들을 때 분노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지혜로운 자는 그런 부정적인 말이나 비판하는 말을 상대로부터 들을 때 분노만 하지만 말고, 그 자가 근본적으로 누구인가 아떤 자 인가를 먼저 파악해서, 그자가 내게 해꼬지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꼭 필요한 양약같은 말을 해주는 것이라고 분별하며 받아들이는 혜안이 있다면, 지적하는 충언을 들을 줄 아는 마인드가 있으면 큰 그릇이 된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에게 유익하고 이롭고 듣기기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을 선호하기 슄다. 특히 고위공직자 일수록, 권력을 손에 쥐고 행사하는 자들일수록 그런 자들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듫끓는데 ,권력자는 그런 아첨하는 말에만 귀 기울이지 말고, 그러면 그 권력은 타락하고 망하는 길로 함께 추락한다. 그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반대목소리도 분별해 들을 수 있는 들을 귀가 있어야 함이다. 그래서 옛말 고사성어에 이런 말이 있다. 道吾過者是吾師(오도과자시오사), 談吾美者是吾賊(담오미자시오적) 나의 잘못을 가르치는 자는 나의 스승이고, 나의 장점만을 말하는 자는 나의 적이다

옳바른 지도자는 자기를 향해 쓴 소리도 들을 줄 아는 리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긍정으로 뒤집어 볼 줄 아는 리더가 되라는 조언이다. 참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할 때까지 성화의 상장을 멈추지 말아야 듯이, 이런 인격의 성장과 변화에서도 성숙해져갈 수 있어, 마음의 그릇이 커져가서, 내 교우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을 한 마음에 품어낼 수 있는, 에수님 닮은 마음의 크기가 돼주길 함께 기도하며 노력해 나갈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런 마인드가 지금 한국 교계에서 정치상황에서 꼭 리더들에게 필요해 보인다. 제발 하나 되고 얀합해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로 예비한 것을 받아 누릴수 있는 한국교회와 정치와 내 자신 하나하나가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치유와 회합이 정치에서도,각자 내 개인 삶에 영역에서도, 동기관계에서도, 교우관계 속에서도 더 폭넒게 일어나서, 더 상호관계가 원활해지고 복된 기름이 흘려 넘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함께 기도하며 노력하며 일궈내는 일이 주님의 은혜스러운 도우심 안에서 가능해지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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