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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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의 시조 클로비스(Clovis, 465-511)

채천석 | 2024.11.30 15:07

클로비스는 프랑크 왕국의 시조로서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고, 그가 세운 프랑크 왕국은 중세 초기에 서유럽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했다. 프랑크 족들은 제국을 침입한 야만족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부족으로서 이들의 개종은 중세의 교회국가 체제의 효시가 되었다.


클로비스는 로마인이 아닌 이방인 왕으로서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교도가 되었다. 그렇게 된 데는 부르군디 족의 공주인 클로틸다와 결혼한 원인이 컸다. 클로틸다는 신앙이 돈독한 여인으로서 왕의 개종에 기여하였다. 그녀는 자녀들을 먼저 세례 받게 했고, 나아가서 왕의 개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적군과의 싸움에서 패배에 직면하였을 때, 그는 자신이 믿는 신들을 불렀으나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아내가 날마다 불렀던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만약 나에게 승리를 주신다면 그 하나님을 믿으리라고 맹세하면서 말이다. 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의 군대가 적군을 무찌르며 진격하고 있었다. 그는 곧 적군의 왕의 목을 벨 수 있었고, 이를 본 적군들은 클로비스 왕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였다.


돌아온 왕은 신하 3,000명과 함께 라임스의 주교인 라미구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흔히 그렇듯이 왕의 회심은 온 백성들의 개종을 가져왔다. 한 군주의 회심은 프랑크 족 백성들이 모두 정통 기독교를 믿는 결과를 낳았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면, 이는 왕에게 검을 받는 것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클로비스 왕이 회심한 데는 기도한 대로 전쟁에서의 승리가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하지만 왕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다른 게르만 민족들이 아리우스파를 받아들임으로써 로마 가톨릭과 적대관계를 형성한 반면에 클로비스 왕은 아타나시우스파를 받아들임으로써 정통 기독교와 관계를 공고히 하였다.


종교와 정치를 조화시킨 클로비스 왕의 기독교는 힘을 발휘하였다. 여타 게르만 부족들이 오래 가지 못하고 멸망하였지만, 클로비스가 이끈 프랑크 왕국은 유럽을 제패하였다.


클로비스가 이룬 업적은 참으로 크다. 그는 유럽의 기독교를 대표하여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고, 이슬람이 유럽에 몰려오지 못하도록 방어했다. 정치적으로는 스와송(Soisson) 왕조를 정복하고, 중서부 프랑스의 서고트 족을 격파하였으며, 멀리는 프로방스와 피레네를 점령하여 영토를 넓혔다. 말년에 그는 오를레앙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하고, 프랑크 족의 법률인 살리카 법전도 공포하였다. 그는 특히 법률에 관심이 높았다.


클로비스는 511년에 45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마쳤다. 그는 자신이 지은 사도 교회에 묻혔지만, 후대인들은 그가 묻힌 무덤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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