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절대평가 그리고 상대평가

서상진 | 2021.01.11 15:44
절대평가가 있고, 상대평가가 있다. 절대평가는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서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상대평가는 개인의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과 비교하여 집단 내에서 학업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평가에서 70점은 C학점을 받을 수 있지만, 상대평가에서 70점은 A학점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절대평가에서 90점은 언제나 A이지만, 상대평가에서 90점은 어떤 경우에 따라서 B학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평가는 내가 속한 그룹에 속한 학생들의 수준이 높을 수록 내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는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고 할수 있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 안에서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서로 공존하며 존재한다.
그러면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절대평가일까? 상대평가일까?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절대평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10계명을 허락하셨고, 10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임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삶의 기준에 의해서 우리가 평가를 받고, 내가 살아가는 것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이방의 신을 믿는 다른 민족의 삶을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 이것은 절대평가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을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신 이유는 애굽에서 찌들린 종으로서의 생각들과 정신들을 없애기 위함이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온전한 삶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의 기준을 이방민족의 삶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방민족의 삶이 어찌되었든,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의 기준을 잡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리가 예배당에서 모든 성도가 한 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송출되는 영상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일에 대한 불만들이 속출하고 있다. 얼마 전에 부산의 한 교회의 광장에 모여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 시위의 현장에서 말하는 일부 목사님들의 주장을 유튜브를 통해서 들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목숨을 걸고 예배를 지켜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논리가 너무 저급했다. 백화점은 되는 데, 교회는 왜 안되냐고 한다. 지하철은 되는데 교회는 왜 안되냐고 한다. 나는 일부 목사님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보면서 왜 교회의 권위를 하향평준화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인터콥도 교회고, 신천지도 교회다. 그들의 신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그들의 주장이 어떤 오류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건물에 십자가가 달려 있으면 다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떠나서라도, 내가 속해있는 교단 내의 교회에서 많은 확진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동부구치소와 일부 요양병원을 제외하면 결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확진자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정부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책이다. 방역을 잘하고 있는 교회도 물론있다. 그러나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는 우주적인 교회이고, 한몸을 이룬 교회이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교회이다. 그렇다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한다고, 상대적인 논리를 써서 비방하고,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지켜내자고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확진으로 어렵고 힘들어하고, 사회에서 비방과 비판을 받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를 위로해주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함께 해 주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 교회에서 150여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 교회에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한다. 그 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다. 은행의 대출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 교회가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 그러다 은행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런 교회들을 사드리는 것은 이단들이다. 선동하고, 비판하고, 불만을 토로해서 우리의 이기심만을 지키기 보다는, 어렵고 힘든 교회를 더 돌아보고, 우리 이웃의 아픔을 더 돌아보고, 코로나-19 이후의 교회가 어떻게 될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주일을 앞두고, 이런 생각들이 더욱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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