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펜데믹과 교회의 자정능력

서상진 | 2020.12.27 10:08
2020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해 마지막 주일은 온라인 예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성탄절 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렸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배에 필요한 인원(5명)만 찾아온 예배당에서 성탄 예배를 드렸습니다. 항상 성탄 예배는 시끌벅적함과 분주함과 설레임이 가득했는데, 올해 성탄 예배는 정반대의 성탄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탄 분위기는 오늘 2020년 마지막 예배에도 동일하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도 마찬가지겠지요.
요즘들어 한참을 생각해 봅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예배당에 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이런 시기를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데, 이런 경험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한국 교회는 참 급속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들었고,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시 되는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인 사람들 안에 기득권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이 그저 '형제,자매'라는 호칭들이 통용이 되었는데, 그것은 희미안 안개와 같이 형식적이 되어버렸고, 권력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로마 정부는 종교지도자들을 자신이 세상을 통치하는 수단을 이용을 했고, 그 수단으로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권력에 맛을 본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을 내려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거다, 위험을 느끼게 되면 가차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요한복음 11장 48-50절에 나오는 대제사장이 공회에서 한 연설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공회를 열었고, 대제사장은 예수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게 되면 로마 정부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명분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내면은 한 사람을 죽임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종교에 권력이 들어가면 이런 결과를 낳게 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권력의 맛을 본 교회는 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런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교회, 소위 말하는 메가처치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내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명예가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목사후보생들도 메가처치를 비난하면서도 그런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메가처치의 담임목사가 되면 그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상상을 초월하며, 대통령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무소불이의 권력이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마치 복음은 땅끝까지 전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큰 부흥이 일어나자, 땅끝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러 있던 교회를 스데반을 죽임으로 흩으신 것처럼, 하나님이 교회를 흩으시는 작업을 하시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의 자정능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낮아지고, 비우고, 죽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지만, 우리 교회는 높아지고, 채워지고, 살려고 몸부림쳤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기도를 해 왔습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런 현실 속에서 다시금 교회의 본질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의 이런 현상은 교회 말살이 아니라, 교회가 자정능력을 회복하고, 회개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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