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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크리스찬북뉴스

구굿닷컴(7.4)추천도서

북뉴스 | 2005.07.05 21:11
삐딱이의 유쾌한 관심  

통쾌한 희망사전/ 프레드릭 뷰크너/ 복있는 사람

이 책의 제목을 꾸며주는 말은 다음과 같다.
“삐딱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삐딱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비스듬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양을 뜻한다고 풀이되어 있다. 그렇다. 삐딱이들은 통념과 사회적 기준이라는 선(線)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 삐딱한 시선은 자유의 산물이요 기발한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 기발함은 대개 대상의 본질에 더 가깝다. 기성의 통념과 기준은 그 처음의 신선함,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지 벌써 오래다.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 역사 20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이미 그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그 진부함과 본질을 상실한 통념의 답습에 질려버린 삐딱이들은 벌써 몇 번의 충격적인 행동들을 해왔으나, 변화를 싫어하고 자기에 집착하는 인간 본성의 맹종자들이 그어놓은 그 직선의 무지막지한 폭압아래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해왔다. (설령, 잠시 승리하는 듯 하다가도 이내 본성에 굴복하여 또 다른 직선들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안일하게 주저 앉고 말았다.)

그러는 중에 기독교는 생명력 가득한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 본래의 직무를 다하기는커녕 이 하나님을 오히려 박제된 물체쯤으로 끌어내렸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품고 있는 적개심과 혐오감을 보라! 그들은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이를 간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질려버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기독교와 기독교의 용어들은 통념에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삐딱이들은 그러한 기독교의 언저리에서, 말 그대로 그저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낀 채 한 쪽 다리를 떨며 냉소하는 이들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정색을 하고 자리에 앉아 자신들 앞에 그어져 있는 반듯한 선들을 바라보며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도대체 이 올곧은 직선들-사실, 올곧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미덕인가?-에게서 풍겨지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답답함, 심지어 억압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묻는 이들이다. 그리고 온 마음과 지성을 다해 이 질문에 대해 정직하게 대답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그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구도자(seeker)이다.

프레디는 이 책이 의심자들에게 제 격일 것이라 했다. 의심자들은 삐딱이다. 진실한 의미로서 의심자들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얼마나 예리한 눈빛을 가졌는가? 그들의 지성은 얼마나 활발한가? 그들은 얼마나 진지하고 그러면서 또 자유로운가? 그들의 표정은 얼마나 생기있고 진실한가?

사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의 위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당시에 모두 의심자들이요 삐딱이들이었다. 그리고 삐딱이 중의 삐딱이는 단연 예수님이다. 그는 진실로 삐딱이들의 기준점이 되는 삐딱이셨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어놓은 그 모든 선들을 뛰어넘으셨다. 그 선들을 엉클어놓았다.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선 안에 가두어 두려했던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애통히 여기시며, 그 선들을 싹둑 자르셨다. 선들을 얼기설기 매듭지어 만들었던 그 성전의 휘장 -휘장 앞에 선 사람들은 그 가공할 위압감 앞에 어찌했을까!-을 위에서 아래로 통쾌하게 찢어내셨다.

삐딱이인 그분을 만나 그 자신도 삐딱이가 된 저자가 쓴 책이다. 삐딱한 의심자들에게 제격이다. 때때로 좀 삐딱해지라고 넌지시 건네기도 한다. 그의 권유는 경쾌하면서도 진실을 담고 있다. 그의 삐딱한 시선은 원래 존재했으나 얼어붙어 있었던 것들에게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사랑의 눈길이다. 그것은 일상 너머의 신비를 보려는 천리안이 아니라, 일상 속의 신비를 발견하는 현미경이다. 조금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다. 그분은 그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관심자이시니 그의 시선에는 그분의 눈길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래서 거기에는 사랑이 배어있고 웃음이 배어있다.

그것은 모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의미 강박증”과는 완전히 다르다. 의미들은 그렇게 덤벼드는 이에게는 신기하게도 도대체 발견되지 않는다. 어디로 숨어버린다. 그러다보면 조바심이 나고 답답해진다. 그러다 급기야는 자신들이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렇게 제조된 의미는 사실 전혀 무의미하다. 마치 "산삼 몇 뿌리만 캐면 팔자를 고친다 하기에 산에 갈 때마다 산삼을 찾다보니, 산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격이다. 달빛같은 사람이 보고 싶어 인간의 거리로 나서니, 사람다운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된 격이다."

의미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강박증으로 말미암는 억지와 조바심 아래에서는 숨을 죽인다. 두려워한다. 자신을 숨긴다. 그러나 그 모든 선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영혼, 곧 참으로 자유롭고 진실한 삐딱이들 앞에서 의미는 안도한다. 소리내서 웃는다. 마음껏 자신을 뽐낸다.

이제 삐딱이 프레디가 발견해내고 프레디 안에서 발생한 의미들을 만나보자. 그것들의 환한 웃음과 생기 발랄함을 기대하며 마음을 활짝 열라. 그러면 그것들 가운데에서 통쾌하면서도 유쾌하게 웃으시는 그분을 얼핏 보게 될 것이다. “얼핏”이라고!!?? 삐딱이들에게는 “얼핏”도 충분하다.

저자 프레드릭 뷰크너 (Frederick Buechner)

목사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필립 얀시가 꼽은 13인의 영적 멘토 중 한 사람이다. 소설 <긴 하루의 죽음>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지은 책으로 <고드릭>, <사자의 나라>, <은혜의 알파벳>, <진실을 말하다> 등이 있다.  

크리스찬북뉴스 나상엽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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