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만남
책과 사람
'나의 갈길 다 가도록'의 저자 김정웅 목사
* 최근에 ‘나의 갈길 다가도록’이란 자서전을 편찬하신 김정웅 목사님을 만나 뵙습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자서전을 집필하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별로 쓸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열거하다보니 제 자신도 놀래서 자서전을 완성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컸고 특히 목회를 통해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글을 쓰면서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런 은혜와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고, 후손들에 대한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하여 자서전을 쓰게 되었습니다.
* 목사님은 계양산 근처에서 자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이 책의 부제를 “계양산 소년의 이야기”로 명명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 책의 부제를 “계양산 소년의 이야기”로 하고나서 저 자신도 감탄했습니다. 계양산은 옛날부터 떠내려 온 산이라고 전해지고 있고, 산의 정상에 올라갈수록 흙 한 점이 없었습니다. 산에는 굴껍질과 조개껍질이 널려 있었고 오래된 고목만이 있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여객기들이 드나드는 국제공항의 중요한 좌표로 쓰임 받는 산이 되었습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꿈 하나 갖고 맨손으로 이 계양산 아래에 자리를 잡으셨고, 개구쟁이 소년이었던 제가 이곳을 배경으로 자라나서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부제를 “계양산 소년의 이야기”로 정한 것입니다.
* 목사님은 농사일을 하시다가 목회자의 길을 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목회자의 길로 나아가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신학을 공부할 때 처음부터 목회의 길을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학을 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훌륭한 장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하고나서 돈을 벌다보니 어느 순간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돈이나 벌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무엇 하다 왔느냐고 물으실 때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명을 고민하다보니 목회로 최종결론이 나게 되었습니다.
사명을 다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목회의 길이 가장 좋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서 저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40년 가까운 목회를 한 뒤에 은퇴할 수 있었습니다.
* 목사님은 한 교회에 정주하지 않으시고, 많은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된 연유를 듣고 싶고, 아울러 한 교회에서 평생을 담임목회를 하는 것과 여러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는 경우의 장단점을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담임하게 된 것은 저의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라 할 수 있겠지요. 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파송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회를 장기 목회와 단기 목회로 나눌 수 있는데, 장기 목회는 안정된 목회라는 장점이 있으나 목회자가 나태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에 단기 목회는 신선하고 새로운 목회로 활력을 일으킬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교회나 목회자에게 희생과 모험이 요구되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목사님이 영주교회에서 건축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보통 새성전을 건축하면 그 교회에서 평생을 몸담는 경우가 많은데, 목사님은 또 다른 교회로 이동하셨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듣고 싶습니다.
나도 사람인데 어찌 머물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또한 사탄의 유혹도 많았지요. 하지만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머물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영주교회에서 성전건축을 하고 다른 교회로 이동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둘로 나누어진 교회가 하나로 화합된 교회였고, 십년이 넘도록 숙원사업인 건축을 하지 못하다가 목회자들이 떠난 교회였으니까요. 제가 이런 교회에 부임해서 은혜롭게 건축을 마쳤으니 사실 교회가 부흥할 일만 남았는데,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로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 목사님은 훌륭한 사모님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또한 사모님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분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회고해주시면 좋겠고, 아울러 목사님이 생각하시기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바람직한 결혼관에 대해서도 한 말씀해주시지요.
아내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은 보통 분들이 아니셨습니다. 아내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신앙으로 사셨는데, 조부께서는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옥고를 치르셨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내의 부친께서는 일제 때 면서기로 일할 것을 요청받았으나 협조를 하지 않으시므로 일제에 의해 평안도로 강제 이주를 당하셨습니다. 이런 아내의 부친께서는 해방 후에 북한에서 청년들을 규합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하시다가 옥고를 치르시던 중에 행방불명이 되셨습니다.
저는 혈통을 중요시했는데,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사과나무에서 사과나무가 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추나무에 거름을 주고 아무리 정성스럽게 관리를 해도 사과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혈통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아내가 두뇌의 혈통을 가진 집안의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아내는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었다고 믿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40여년이란 목회 인생을 큰 과오 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아내에게 평생 저를 잘 내조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바람직한 결혼관에 대해서 한 마디 해줄 것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외모와 능력도 좋지만 젊은이들이 신앙을 가장 우선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믿지 않으시는 분들과도 서슴없이 결혼하는 분들이 있는데, 결혼 후에 배우자가 예수님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앙 없는 배우자와의 결혼이 평생 멍에가 되어 가정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고, 잘못하다가는 결혼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빚을 수 있습니다. 이 점 명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목사님은 필리핀 선교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고, 직접 장모님의 기념교회인 GMA 교회를 필리핀 마닐라 지역에 세우셨습니다. GMA 교회와 관련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기념교회를 세우시게 된 동기와 설립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아울러 그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했으면 하는 소원을 갖고 고민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음뿐이지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재능이나 물질이 있어야 하는데 준비된 것이 별로 없었으니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선교인데 아프리카나 북방은 너무 멀고 동남아 지역은 잘 모르는데다가 선교비가 많이 들어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가 감리사였을 때 필리핀 코람필 신학교 채플을 건축한 인연으로 백현순 선교사를 통해 GMA 교회 건축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동서인 지광운 목사가 협력하여 GMA 교회를 장모님 기념 교회로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고생과 수고를 다하신 어머님의 고귀한 이름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마침내 코람필 신학교 이사장의 명의로 된 대지 위에 건축을 하고 우리 부부와 동서 부부가 새성전 봉헌식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목사님은 자서전에서 많은 동역자들과 기억에 남는 분들을 회고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김점용 목사님의 스토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김점용 목사님에 관한 얘기를 다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점용 목사님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교회와 마을을 섬기는 일에 앞장서셨던 하나님의 일꾼이십니다. 동네 이장을 비롯하여 유지되시는 분들이 김목사님의 봉사에 감명을 받고 교회 일을 적극적으로 협력할 정도로 그분은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전봇대에 전기 합선으로 전기가 나가서 마을 전체가 암흑으로 어둡게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냉장고 안에 있는 식품이 상하게 되고, 에어컨 작동이 멈추는 사태가 벌어져서 이것을 참다못한 김목사님이 4만 볼트 고압선을 수리하다 감전되어 전기줄에 매달리셨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동네 아낙네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부르짖던 중에 남자들이 전선에 매달린 김목사님을 장대로 구하려다 장대 잡은 사람까지 감전되어 땅에 나뒹굴게 되었습니다. 70년대라 전화도 잘 안되어 한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한전에 가서 전기를 내렸으나 김목사님은 온몸에 화상과 상처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결국 담당의사로부터 김목사님이 산다는 것은 1퍼센트에 해당한다는 절망적인 선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김점용 목사님이 살기만을 바라고, 교회 성도들이 통곡을 하며 밤새워 간절히 기도했는데, 5일째 되던 날 새벽에 김목사님이 “물, 물” 하시면서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이렇게 김목사님은 사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건강이 회복되시기는 하셨지만, 처음 전선에 붙은 오른 팔이 워낙 심하게 화상을 입어 절단하고 의수를 하였고, 다른 불편한 부분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김목사님은 이에 굴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목회활동을 하시다가 현재는 정년이 되어 은퇴하시고 농촌에서 양봉일을 하면서 말년을 지내시고 있습니다. 김점용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한권의 책을 내도 될 정도로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목회를 위해 여러 교회를 옮겨다니시다보니 자녀들의 교육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두 자녀분들이 공부를 무척 잘하셨습니다. 특히 큰 아드님은 서울대를 두 번이나 합격하였습니다. 그 어려운 교육 여건 가운데서도 큰아들을 서울공대에 보내셔서 큰 자부심이 드실 것으로 생각하는데, 목사님의 자녀 교육에 대한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교육이란 일시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사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나라 없이 쫓겨 다니면서도 유태인들이 20% 넘게 노벨상 수상자가 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주 전학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성격이나 노력 그리고 신앙까지 모두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주일에는 전적으로 교회 출석과 봉사만 하게 했습니다. 설사 다음날 시험이 있더라도 이 규칙을 지키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간 것은 신앙 중심의 부모 뜻을 따라 순종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진부할 수 있겠지만, 저의 교육 비결은 언제든지 신앙을 가장 우선 두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목사님이 이 책의 말미에 자녀들에 대한 유언도 남겨주셨습니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목사님이 자녀들에 대한 부탁이 심금을 울립니다. 아울러 자녀들에 대한 유언에서 목사님이 얼마나 소박한 인생을 살아오셨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목회하셨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아무래도 목사님이 유언을 공개적으로 자녀들에게 남겨두셨으니, 자녀들이 부담을 갖고 꼭 목사님의 유언을 받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혹 그 유언이 이 책에 포함되는 것을 자녀들이 반대하시지는 않았는지요? 이 자서전을 내게 된 것에 대해서 자녀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옳습니다. 유언은 부모가 소천한 후에 자녀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언을 책에 포함시킨 것은 이 자서전을 읽는 분들에게도 교육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공개한 것입니다.
자서전을 통해 유언이 공개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그들이 그 일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들에게 자서전에서 삭제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하나가 있다고 하여 삭제한 일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어서 찬반이 분분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외는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이들이 순하고 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들에게 책이 출간되어 자서전에 대한 평을 해보라고 했더니 잘 만들어져서 만족하고, 후손들을 위한 귀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고 좋아하더군요. 감사한 일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목사님은 올해로 80세이십니다. 책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을 기다리며 기쁨으로 사신다고 했는데, 자녀들에 대한 유언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게 될 분들에게도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일이 내 노력과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본서에서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셨음을 간증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이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담: 크리스찬북뉴스 대표 채천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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