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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바울신학의 옹호
바울신학과 새관점/김세윤/두란노/신동수
미국 파사데나의 풀러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있는 김세윤 박사의 바울신학에 관한 새 책이다.
그의 책 [바울 복음의 기원](1994)에 몇 가지 논쟁적인 주제들을 덧붙여 제시한 일종의 '중보판' 이다.
● 저자 김세윤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국 Manchester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Tubingen 대학 Humboldt. 연구교수. 미국 칼빈대학교 및 신학대학원 신학교수 및 동 대학원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신약신학교수로 있다.
● 서평
미국 파사데나의 풀러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있는 김세윤 박사의 바울신학에 관한 새 책이다. 그의 책 [바울 복음의 기원](1994)에 몇 가지 논쟁적인 주제들을 덧붙여 제시한 일종의 '중보판' 이다.
김세윤 박사는 바울신학에 관한 전통적 개혁자들의 관점을 충실히 따르며 변호하는 신약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는 E. P. Sanders 에 의해 제기된 소위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 관점의 강력한 반대자요, 전통적 바울신학의 옹호자로 크게 대두되었다.
언약적 신율주의란, 유대인들이 믿고 따르던 율법과 유대교는 행위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적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속에서 이미 얻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을 준수하던 종교였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대와 사도시대의 현존하는 문헌들을 연구해 본 결과, 유대교는 율법주의적 행위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로운 선택 속에서 속죄의 길이 예비된 상태에서 언약 백성으로 유지되기 위해 율법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 관점" 은 전통적 종교개혁적 율법과 유대교 이해를 크게 뒤 바꾸는 이론일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유대교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에 이르게 되었다.(샌더스, 레이제넨) 신약학계는 대부분 이 새 관점을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 바울의 서신들을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샌더스와 레이제넨과 같이 사도바울의 율법과 유대교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급진적 학자들과 제임스 던(James Dunn)과 같이 바울이 이해한 율법과 유대교를 언약적 신율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결국 이 새 관점 학자들은 전통적 바울신학이 율법과 유대교를 오해했고 왜곡이 있었으므로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윤 박사는 특별히 샌더스와의 논쟁을 중심으로 이 "새 관점" 이 성경과 신학적으로 어떤 논리적 모순이 있는가를 제시한다. 매우 자세한 논쟁들은 때로 너무 현학적이고 중복되고 지루하므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평신도들에게는 유익하지 않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새 관점" 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저자의 논점은 새겨서 이해할 만 하다.
첫째로, 만약 예수님과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언약적 신율주의였다면, 예수님과 바울이 구지 거부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본래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언약 속에서 주어진 언약적 율법이었음을 인정한다해도, 신약의 증거들은 분명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이 율법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고, 자기의를 세워 구원에 이르고자 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유대교가 행위구원적 종교가 아니었다면, 예수님과 바울이 틀렸다는 말이 된다. 새관점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예수님 당대의 고대근동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 주는 성경의 증거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다.
둘째로, 언약적 신율주의 자체에 이미 율법주의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의해 언약 백성이 되었더라도 계속 언약 백성으로 남아있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 비록 율법을 범할 때, 속죄의 규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율법에 대한 준수 요구는 갈수록(특별히 예수님 당대에 이르면) 강렬해졌음을 부인키 어려운 것이다. 결국 언약적 신율주의 안에 이미 행위 구원으로 가는 가능성이 내재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 때문에 김세윤 박사는 예수님 당대의 유대교를 "신인협력적 신율주의"(Synergistic Nomism) 로 묘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한다. 유대교 내에는 선택의 교리와 함께 행위의 교리도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개혁적 전통의 바울과 율법 해석처럼, 예수님과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열심을 가졌으나, 아무도 율법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계시와 비밀을 깨달은 바울에 의해 거부되고,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는 "이신칭의"(오직 믿음으로만) 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재확인 되는 것이다.
새 관점의 매력은 여전히 신약 학계에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저자와 같은 학자들이 전통적 바울해석에 기초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며 좀더 성경적인 결론점을 찾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미국 파사데나의 풀러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있는 김세윤 박사의 바울신학에 관한 새 책이다.
그의 책 [바울 복음의 기원](1994)에 몇 가지 논쟁적인 주제들을 덧붙여 제시한 일종의 '중보판' 이다.
● 저자 김세윤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국 Manchester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Tubingen 대학 Humboldt. 연구교수. 미국 칼빈대학교 및 신학대학원 신학교수 및 동 대학원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신약신학교수로 있다.
● 서평
미국 파사데나의 풀러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있는 김세윤 박사의 바울신학에 관한 새 책이다. 그의 책 [바울 복음의 기원](1994)에 몇 가지 논쟁적인 주제들을 덧붙여 제시한 일종의 '중보판' 이다.
김세윤 박사는 바울신학에 관한 전통적 개혁자들의 관점을 충실히 따르며 변호하는 신약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는 E. P. Sanders 에 의해 제기된 소위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 관점의 강력한 반대자요, 전통적 바울신학의 옹호자로 크게 대두되었다.
언약적 신율주의란, 유대인들이 믿고 따르던 율법과 유대교는 행위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적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속에서 이미 얻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을 준수하던 종교였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대와 사도시대의 현존하는 문헌들을 연구해 본 결과, 유대교는 율법주의적 행위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로운 선택 속에서 속죄의 길이 예비된 상태에서 언약 백성으로 유지되기 위해 율법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 관점" 은 전통적 종교개혁적 율법과 유대교 이해를 크게 뒤 바꾸는 이론일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유대교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에 이르게 되었다.(샌더스, 레이제넨) 신약학계는 대부분 이 새 관점을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 바울의 서신들을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샌더스와 레이제넨과 같이 사도바울의 율법과 유대교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급진적 학자들과 제임스 던(James Dunn)과 같이 바울이 이해한 율법과 유대교를 언약적 신율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결국 이 새 관점 학자들은 전통적 바울신학이 율법과 유대교를 오해했고 왜곡이 있었으므로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윤 박사는 특별히 샌더스와의 논쟁을 중심으로 이 "새 관점" 이 성경과 신학적으로 어떤 논리적 모순이 있는가를 제시한다. 매우 자세한 논쟁들은 때로 너무 현학적이고 중복되고 지루하므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평신도들에게는 유익하지 않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새 관점" 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저자의 논점은 새겨서 이해할 만 하다.
첫째로, 만약 예수님과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언약적 신율주의였다면, 예수님과 바울이 구지 거부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본래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언약 속에서 주어진 언약적 율법이었음을 인정한다해도, 신약의 증거들은 분명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이 율법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고, 자기의를 세워 구원에 이르고자 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유대교가 행위구원적 종교가 아니었다면, 예수님과 바울이 틀렸다는 말이 된다. 새관점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예수님 당대의 고대근동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 주는 성경의 증거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다.
둘째로, 언약적 신율주의 자체에 이미 율법주의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의해 언약 백성이 되었더라도 계속 언약 백성으로 남아있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 비록 율법을 범할 때, 속죄의 규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율법에 대한 준수 요구는 갈수록(특별히 예수님 당대에 이르면) 강렬해졌음을 부인키 어려운 것이다. 결국 언약적 신율주의 안에 이미 행위 구원으로 가는 가능성이 내재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 때문에 김세윤 박사는 예수님 당대의 유대교를 "신인협력적 신율주의"(Synergistic Nomism) 로 묘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한다. 유대교 내에는 선택의 교리와 함께 행위의 교리도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개혁적 전통의 바울과 율법 해석처럼, 예수님과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열심을 가졌으나, 아무도 율법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계시와 비밀을 깨달은 바울에 의해 거부되고,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는 "이신칭의"(오직 믿음으로만) 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재확인 되는 것이다.
새 관점의 매력은 여전히 신약 학계에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저자와 같은 학자들이 전통적 바울해석에 기초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며 좀더 성경적인 결론점을 찾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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