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화하고 참여하는 교리를 위하여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갈 때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다. 교회는 세상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교회의 언어는 세상과는 동떨어져있는 듯 보인다. 교회의 언어는 교회 안에서만 머문다. 교회의 언어는 세상의 언어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
헬머(Christine Helmer)의 『교리의 종말』은 역설적이다. 교리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교리의 진정한 '목적'에 이르기 위해, 기존의 관점을 과감하게 바꿀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닫혀 있고, 대화할 수 없는 교리는 생명력을 잃었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교리는 고정되어 있어, 외부와 소통할 수 없다. 기존의 세계관 안에서 견고하게 자신의 교리만 반복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교리는 의미와 영향력이 없다. 그렇기에 신학의 과업은 하나님의 현실을 포착하며, 말씀이신 하나님의 현실을 언급하는 것이다. 생동감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신학은 비상 신호를 곤두 세우고 신적 현실을 증언하는 학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언어와 개념이라는 렌즈를 통해 자신과 세계와 하나님을 바라본다(231)."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교리의 종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지 린드벡(George Arthur Lindbeck, 1923 ~ 2018)의 『교리의 본성』(The Nature of Doctrine)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린드벡의 『교리의 본성』은 20세기 후반의 조직신학서 중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친 책 중 하나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교리의 본성』의 내용은 『교리의 종말』에 곳곳에 흩어져있어 있다. 따라서 명확하게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교리의 종말』의 말미에 삽입된 김진혁 교수의 해설은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린드벡의 『교리의 본성』에서 핵심 되는 종교와 교리의 이해 방식을 정리한다. 또한 린드벡의 제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킨 교리도 자세하게 소개한다.
더불어 『교리의 종말』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재배치하고 설명함으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렇기에 책의 뒤편에 있는 해설을 먼저 읽고 책 전체를 읽는 것도 효율적인 독서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겠다.
헬머는 린드벡의 슐라이어마허 읽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가 새롭게 읽는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의 언어를 종교적 경험으로 대체한 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은 사회와 상호작용하기 위한 주요한 도구다.
헬머는 마르틴 루터와 슐라이어마허를 거쳐, 칼 바르트를 관통하며 교리와 초월성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그리하여 교리는 사회문화적인 변화 앞에 능동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화함을 주장한다.
저자의 놀라운 작업은 앞으로의 신학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신학은 교회를 섬기면서도,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 학문이다. 이는 신학이 개방적이며, 우리의 언어가 소통 가능해야 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