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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실재하시는 성령님
고맙습니다, 성령님/손기철/규장/[북뉴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때마다 전전긍긍하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까닭 없는 불안이 신앙과 양립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의문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는 분명한 말씀 앞에 불안한 감정이야 복잡한 세상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불가피한 감정이 아니겠느냐는 항변이 사실은 근거가 박약한 자기 암시나 어설픈 위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각에서 비롯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크게 증폭된 건 지난 해 말입니다. 그해 7월, 오랄 로버츠의 『내 안에 역동적으로 역사 하시는 성령님』을 시작으로 연말에 신디 제이콥스의 『초자연적 삶을 살라』, 라인 하르트 본케의 『부흥, 성령의 역사』, 백복님 사모의 『내게 불같이 임한 성령님』, 조이 도우슨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불』, 김우현 감독의 『부흥의 여정』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베니 힌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연이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들 책들은 하나같이 영적 통찰력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지지 않던 허전함이 이 책, 『고맙습니다, 성령님』을 만나고서야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평신도로 치유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손기철 장로가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가 만난 성령님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그렇습니다, 전후 과정이 가감 없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 패러그래프의 시작과 끝에 삽입된 성경말씀이 교계에 떠도는 성령님에 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아 주고 있습니다. 통념은 통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통념은 성경 속에 분명히 기록된 성령님을 제한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삼위일체의 한 격이신 성령님을 마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아래에 있는 분으로 오해하는 것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배웠습니다만, 복음주의 교단에 속한 신자의 경우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성령체험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 중 하나인 방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골이 깊어지면 은연 중에 그것을 하찮은 것, 또는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단정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언이 주는 유익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렇게 치부할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시간을 넘겨 기도를 해도 언제 그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간다고 합니다. 저도 아직 그 맛을 몰라 남의 말하듯 하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과 달리 방언에 대한 소원이 강하게 생긴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형태로든 잘못된 시각은 교정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실제적이라고 믿는 우리가 어느 기록은 일회적인 것, 또는 단순히 배우는 선에서 그치는 과거사로 단정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하늘의 일을 송두리째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저자의 삶에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가까이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경말씀, 특히 성령님에 관한 구절이 불현듯 뒷덜미를 채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힌 결과일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성령님에 관한 내용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합없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보지 못했다니 신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보내신 분입니다. 그가 하시는 일은 우리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생각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 상에서 하늘로 올라갈 때는 제자들이 따라 갈 수 없었지만 보혜사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신해 우리 가운데 오신 후로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이런 코너가 있습니다. 그 코너는 한 선생님과 세 학생의 대화가 주요 테마를 이루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한 학생을 유독 험하게 다루는 장면에서 한 학생이 불쑥 끼여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순간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가 없기라도 하듯 버젓이 다음 대사를 이어갑니다. 우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학생의 고통스런 심중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의 행위가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안팎에 계신 성령님을 우리가 그렇게 무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그가 지난해에 펴낸 『치유와 권능』의 후속작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치유와 권능』은 『고맙습니다, 성령님』에 비하면 다분히 학술적입니다. 과연 이런 책이 전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성령님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느 책을 먼저 읽든 상관이야 없겠지만 개인적으론 『치유와 권능』을 통해 성령님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확실히 하고 『고맙습니다, 성령님』을 읽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을 깊이 만나고자 열망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초청하지 않으면 오시지 않습니다. 동행을 원하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저자는 성령님을 애인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관계를 친밀하게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런 친밀감에서 오는 진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성령님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분인지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 김정완
저자 손기철
건국대학교 원예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건국대학교 생명환경과학대학 환경과학과 교수이고, 한국창조과학회 총무, 한국원예치료협회장, 식물·인간·환경학회 부회장, 국제원예학회 원예치료분과 의장, 한국원예학회 편집위원, 온누리 교회 장로 등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원예치료>(공저), <절화·절엽·드라이 플라워의 수확 후 관리 및 활용>, <알기 쉬운 장식원예총론>, <화훼유통과 플라워샵 비즈니스>(공저), <꽃색의 신비>(공저),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 등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때마다 전전긍긍하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까닭 없는 불안이 신앙과 양립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의문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는 분명한 말씀 앞에 불안한 감정이야 복잡한 세상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불가피한 감정이 아니겠느냐는 항변이 사실은 근거가 박약한 자기 암시나 어설픈 위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각에서 비롯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크게 증폭된 건 지난 해 말입니다. 그해 7월, 오랄 로버츠의 『내 안에 역동적으로 역사 하시는 성령님』을 시작으로 연말에 신디 제이콥스의 『초자연적 삶을 살라』, 라인 하르트 본케의 『부흥, 성령의 역사』, 백복님 사모의 『내게 불같이 임한 성령님』, 조이 도우슨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불』, 김우현 감독의 『부흥의 여정』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베니 힌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연이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들 책들은 하나같이 영적 통찰력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지지 않던 허전함이 이 책, 『고맙습니다, 성령님』을 만나고서야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평신도로 치유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손기철 장로가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가 만난 성령님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그렇습니다, 전후 과정이 가감 없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 패러그래프의 시작과 끝에 삽입된 성경말씀이 교계에 떠도는 성령님에 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아 주고 있습니다. 통념은 통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통념은 성경 속에 분명히 기록된 성령님을 제한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삼위일체의 한 격이신 성령님을 마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아래에 있는 분으로 오해하는 것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배웠습니다만, 복음주의 교단에 속한 신자의 경우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성령체험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 중 하나인 방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골이 깊어지면 은연 중에 그것을 하찮은 것, 또는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단정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언이 주는 유익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렇게 치부할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시간을 넘겨 기도를 해도 언제 그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간다고 합니다. 저도 아직 그 맛을 몰라 남의 말하듯 하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과 달리 방언에 대한 소원이 강하게 생긴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형태로든 잘못된 시각은 교정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실제적이라고 믿는 우리가 어느 기록은 일회적인 것, 또는 단순히 배우는 선에서 그치는 과거사로 단정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하늘의 일을 송두리째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저자의 삶에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가까이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경말씀, 특히 성령님에 관한 구절이 불현듯 뒷덜미를 채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힌 결과일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성령님에 관한 내용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합없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보지 못했다니 신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보내신 분입니다. 그가 하시는 일은 우리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생각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 상에서 하늘로 올라갈 때는 제자들이 따라 갈 수 없었지만 보혜사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신해 우리 가운데 오신 후로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이런 코너가 있습니다. 그 코너는 한 선생님과 세 학생의 대화가 주요 테마를 이루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한 학생을 유독 험하게 다루는 장면에서 한 학생이 불쑥 끼여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순간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가 없기라도 하듯 버젓이 다음 대사를 이어갑니다. 우린 그 장면을 보면서 그 학생의 고통스런 심중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의 행위가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안팎에 계신 성령님을 우리가 그렇게 무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그가 지난해에 펴낸 『치유와 권능』의 후속작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치유와 권능』은 『고맙습니다, 성령님』에 비하면 다분히 학술적입니다. 과연 이런 책이 전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성령님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느 책을 먼저 읽든 상관이야 없겠지만 개인적으론 『치유와 권능』을 통해 성령님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확실히 하고 『고맙습니다, 성령님』을 읽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을 깊이 만나고자 열망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초청하지 않으면 오시지 않습니다. 동행을 원하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저자는 성령님을 애인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관계를 친밀하게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런 친밀감에서 오는 진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성령님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분인지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 김정완
저자 손기철
건국대학교 원예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건국대학교 생명환경과학대학 환경과학과 교수이고, 한국창조과학회 총무, 한국원예치료협회장, 식물·인간·환경학회 부회장, 국제원예학회 원예치료분과 의장, 한국원예학회 편집위원, 온누리 교회 장로 등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원예치료>(공저), <절화·절엽·드라이 플라워의 수확 후 관리 및 활용>, <알기 쉬운 장식원예총론>, <화훼유통과 플라워샵 비즈니스>(공저), <꽃색의 신비>(공저),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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