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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몸을 통해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도
몸으로 드리는 기도/실레스터 스노우버/허성식/IVP/[북뉴스]
이 책은 우리의 몸을 통해 영혼을 흔들어 깨워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기도, 곧 몸을 통해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도를 경험하도록 초청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창조주께 드리는 기도의 언어를 확장시키고 싶어하는 모든 이, 곧 온몸으로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본서에 따르면, 무용수의 눈으로 구약을 읽다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 몸과 마음, 몸과 영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짜여 있는 한 폭의 원단을 만나게 된다. 구약 성경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절하며 엎드리는 사람들, 애통으로 몸을 움츠리면서 떼굴떼굴 구르는 사람들, 축제의 찬미를 부르며 춤추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춤추는 백성, 움직이는 백성이었다. 그들은 모든 영광과 모든 약점을 몸을 통해 표현했다.
무용사가인 커트 작스(Curt Sachs)는 "춤이 없는 민족은 거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춤은 대부분의 문화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며 어떤 경우는 다른 요소들보다 더욱 필수적이다. 만일 '춤추는 백성' 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민족이 있다면 구약 성경에 나오는 백성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몸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아주 많다. 자세, 몸짓, 춤, 그리고 극적인 표현들이 본문 속에 조밀하게 짜여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런 몸짓이 다양한 색채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태피스트리 같은 본문이다. 본문에는 파란색 같은 자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 흰색 그리고 보라색 같은 자세도 있다. 여기에는 몸- 영 혼합체(body-soul)의 완전한 차원을 표현할 공간이 주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과 기쁨, 겸손과 분노, 경외와 환희를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기도는 단지 구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기도는 경배, 자백, 탄원, 찬양 그리고 애통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몸의 표현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영적인 삶과 세상에서의 삶을 함께 자며, 몸과 영을 하나로 만드는 본보기를 보여 준다.
그래서 본서는 다음과 같이 오늘의 예배 현실을 지적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이 교회는 경이심을 표현하는 몸짓 아니면 기쁨을 표현하는 몸짓 가운데 하나만 표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한 전통에서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찾아보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는 무릎 꿇는 것을 장려하는 반면 다른 교회는 탬버린을 치면서 춤을 추는 것만 장려한다. 이 두 가지 자세 모두를 예배하는 삶 속에 통합시키는 교회는 대단히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히브리 전통은 몸으로 표현하는 기도를 실천할 수 있는 좀더 포괄적인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신앙생활은 다차원적이다. 곧 우리의 존재 전체가 변혁 작업에 함께 참여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춤추시고 그들과 함께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저자는 "맨발로 춤추는 것은 현대 무용수들의 특징이다. 고전 발레 무용수들은 발레 슈즈나 포인트 슈즈를 신는 반면, 재즈 무용수는 재즈 슈즈, 탭 무용수들은 탭 슈즈를 신는다. 나는 본래 현대 무용가이다. 그래서 보통은 맨발로 춤을 춘다. 맨발로 춤을 출 때면 나는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었던 모세를 생각하게 된다. 여러 예배당에서 춤을 출 때마다 내가 거룩한 땅에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은 내가 교회라는 물리적인 장소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중심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환희의 춤을 출 때나 애통의 춤을 출 때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나간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무릎을 꿇거나 절하는 자세에만 익숙해져 있다면 그 자세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자세가 너무나 기계적인 것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인다거나. 손가락을 깍지 낀다거나, 몸통을 앞으로 뻗는 등, 몸으로 드리는 기도의 다른 형태들을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영적인 삶을 사는 동안 오직 한 가지 기도 자세만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이런 태도 때문에 우리는 쉽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지니게 된다. 경외심은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환희, 친밀함, 놀람이나 애통에 대한 자세는 상실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예를 들어 , 솔로몬은 성전 헌당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이스라엘 전체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어 펼치며 기도했다. 시편 기자는 찬양과 손을 드는 것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시63:4). 손을 치켜드는 바로 그 행위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열어 올리는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든, 찬양하는 몸짓으로 하는 것이든,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손을 뻗고 내밀 때 우리는 조물주께 손을 뻗는 것이며, 조물주는 허리를 굽히사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신다. 우리가 손을 하나님께 내밀 때 우리는 해방되고 자유케 된다. 이러한 단순한 자세에서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그분의 신비에 굴복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러 나아와서, 은혜로 충만해져 돌아간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쁨의 자세로서의 춤에 대해 본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 성경에서 춤은 예배하는 마음의 응답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히브리인들의 예배는 머리로만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온 몸 마디마디에 영향을 미쳐야 했다. 그래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유명한 명령을 완전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춤은 자발적인 찬양과 경배의 동작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를 특징으로 삼고 있었다. 그 춤은 단계별로 반복 연습된 춤이 오히려 그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통해서 온전한 감사를 올려 드리는 춤이었다."
춤은 히브리 문화에서 아주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성경에는 춤을 의미하는 단어가 대단히 많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어 성경은 이런 단어들을 전부 춤(dance)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춤을 의미하는 이런 여러 가지 단어가 지니는 미묘한 의미 차이를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춤의 종류를 우리에게 예시해 준다. 뛰다, 회전하다, 빙빙 돌다, 도약하다, 재미나게 춤추다, 원형으로 춤추다와 같은 어휘들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이 법궤 앞에 서서 행렬 가운데서 춤추는 놀라운 장면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살펴보면, 다윗의 춤을 묘사하기 위해서 다섯 가지 히브리어 어휘가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당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의 앞에서 뛰놀리라"(삼하 6;14-16, 21).
저자에 의하면, 춤추다(dance)를 의미하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 동사들은 문자 그대로 다윗이 뛰놀고(skipped), 일반적인 의미대로 춤추고(dance),유쾌하게(playfully)춤추고, 온 힘을 다해 회전하고(rotated),계속 빙빙 돌았다(whirled)는 것을 말해 준다. 저자는 "다윗이 춤춘 여러 방식 사이에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를 살펴볼 때 즐겁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윗의 춤에 나타난 영적인 요소들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영어 번역본에는 왠지 빠져 있는 것 같은, 경배에 대한 다윗의 열정과 자신을 포기하는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춤 추다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사용되는 히브리 단어들의 다양성은 춤이 이스라엘 민족의 문화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알려 준다. 춤은 너무도 필수적인 예배 요소였기 때문에 한 가지 단어만으로는 여러 가지 미묘한 의미를 충분히 묘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춤의 특징은 예배 중에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에 있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춤은 감사의 응답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안전을 보장하시는 장면에서 여인들을 이끌고 탬버린과 춤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송축하는 미리암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행동인가! 그런 엄청난 기적을 대면했을 때는 당연히 노래와 음악, 춤이 동반된 전폭적인 응답이 나와야 마땅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승리를 가져다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응답으로 백성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분을 송축하고 있는 것이다."
떼제(Taize)공동체의 로버트(Robert)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춤이란 사람의 마음속 깊은 심연으로부터 부풀어 올라오는 영적 활기를 표현해 주는 방법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상적인 의식, 탄원, 자백, 찬양, 예배, 축제와 애도의 시간에 기도하는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다윗이 춤을 추며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공연이 아니라 하나님께 '몸을 가지고 있는 영혼'(bodily soul)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제물이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들의 방법을 통해 우리는 경외심과 경이로움, 기쁨과 놀라움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배운다. 그것은 삶의 꾸밈없고 유쾌한 차원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루시 쇼(「물댄동산 같은 내 영혼」의 저자)는 "이 책은 어떻게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인격을 통합하고 치유하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한다. 현 시대의 교회에게 주신 참된 선물이다 "라고 말했다.
박영애 교수(한성대 무용학과, 한국기독교무용연합회 대표)는 "이 책은 깊이 있는 영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춤이 인간의 삶과 영적 성숙 그리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에 얼마나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제시해 준다"라고 본서를 추천했다.
글 송광택 발행인
저자 실레스터 스노우버
예배 무용 예술가이며 작가이자 교수이다. Southeastern Massachusetts 대학에서 학사(B.A.)를, Gordon Conwell 대학에서 신학으로 석사(M.A.)를 받았으며, 몸으로 드리는 기도, 춤, 영성 그리고 예술에 관한 분야에 관한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Regent 대학의 학제간 연구와 영성 신학 분야의 교수를 역임하였고, 브리티시컬럼비아 Trinity Western 대학의 예술 학과에서 가르쳤다. 현재 Simon Frazer 대학 교육학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Harmonizing Body and Soul in the Womb of God>, <Creative Nurturing for the Soul> 등이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몸을 통해 영혼을 흔들어 깨워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기도, 곧 몸을 통해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도를 경험하도록 초청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창조주께 드리는 기도의 언어를 확장시키고 싶어하는 모든 이, 곧 온몸으로 기도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본서에 따르면, 무용수의 눈으로 구약을 읽다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 몸과 마음, 몸과 영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짜여 있는 한 폭의 원단을 만나게 된다. 구약 성경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절하며 엎드리는 사람들, 애통으로 몸을 움츠리면서 떼굴떼굴 구르는 사람들, 축제의 찬미를 부르며 춤추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춤추는 백성, 움직이는 백성이었다. 그들은 모든 영광과 모든 약점을 몸을 통해 표현했다.
무용사가인 커트 작스(Curt Sachs)는 "춤이 없는 민족은 거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춤은 대부분의 문화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며 어떤 경우는 다른 요소들보다 더욱 필수적이다. 만일 '춤추는 백성' 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민족이 있다면 구약 성경에 나오는 백성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몸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아주 많다. 자세, 몸짓, 춤, 그리고 극적인 표현들이 본문 속에 조밀하게 짜여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런 몸짓이 다양한 색채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태피스트리 같은 본문이다. 본문에는 파란색 같은 자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 흰색 그리고 보라색 같은 자세도 있다. 여기에는 몸- 영 혼합체(body-soul)의 완전한 차원을 표현할 공간이 주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과 기쁨, 겸손과 분노, 경외와 환희를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기도는 단지 구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기도는 경배, 자백, 탄원, 찬양 그리고 애통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몸의 표현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영적인 삶과 세상에서의 삶을 함께 자며, 몸과 영을 하나로 만드는 본보기를 보여 준다.
그래서 본서는 다음과 같이 오늘의 예배 현실을 지적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이 교회는 경이심을 표현하는 몸짓 아니면 기쁨을 표현하는 몸짓 가운데 하나만 표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한 전통에서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찾아보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는 무릎 꿇는 것을 장려하는 반면 다른 교회는 탬버린을 치면서 춤을 추는 것만 장려한다. 이 두 가지 자세 모두를 예배하는 삶 속에 통합시키는 교회는 대단히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히브리 전통은 몸으로 표현하는 기도를 실천할 수 있는 좀더 포괄적인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신앙생활은 다차원적이다. 곧 우리의 존재 전체가 변혁 작업에 함께 참여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춤추시고 그들과 함께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저자는 "맨발로 춤추는 것은 현대 무용수들의 특징이다. 고전 발레 무용수들은 발레 슈즈나 포인트 슈즈를 신는 반면, 재즈 무용수는 재즈 슈즈, 탭 무용수들은 탭 슈즈를 신는다. 나는 본래 현대 무용가이다. 그래서 보통은 맨발로 춤을 춘다. 맨발로 춤을 출 때면 나는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었던 모세를 생각하게 된다. 여러 예배당에서 춤을 출 때마다 내가 거룩한 땅에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은 내가 교회라는 물리적인 장소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중심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환희의 춤을 출 때나 애통의 춤을 출 때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나간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무릎을 꿇거나 절하는 자세에만 익숙해져 있다면 그 자세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자세가 너무나 기계적인 것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인다거나. 손가락을 깍지 낀다거나, 몸통을 앞으로 뻗는 등, 몸으로 드리는 기도의 다른 형태들을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영적인 삶을 사는 동안 오직 한 가지 기도 자세만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이런 태도 때문에 우리는 쉽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지니게 된다. 경외심은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환희, 친밀함, 놀람이나 애통에 대한 자세는 상실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예를 들어 , 솔로몬은 성전 헌당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이스라엘 전체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어 펼치며 기도했다. 시편 기자는 찬양과 손을 드는 것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시63:4). 손을 치켜드는 바로 그 행위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열어 올리는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든, 찬양하는 몸짓으로 하는 것이든,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손을 뻗고 내밀 때 우리는 조물주께 손을 뻗는 것이며, 조물주는 허리를 굽히사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신다. 우리가 손을 하나님께 내밀 때 우리는 해방되고 자유케 된다. 이러한 단순한 자세에서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그분의 신비에 굴복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러 나아와서, 은혜로 충만해져 돌아간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쁨의 자세로서의 춤에 대해 본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 성경에서 춤은 예배하는 마음의 응답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히브리인들의 예배는 머리로만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온 몸 마디마디에 영향을 미쳐야 했다. 그래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유명한 명령을 완전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춤은 자발적인 찬양과 경배의 동작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를 특징으로 삼고 있었다. 그 춤은 단계별로 반복 연습된 춤이 오히려 그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통해서 온전한 감사를 올려 드리는 춤이었다."
춤은 히브리 문화에서 아주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성경에는 춤을 의미하는 단어가 대단히 많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어 성경은 이런 단어들을 전부 춤(dance)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춤을 의미하는 이런 여러 가지 단어가 지니는 미묘한 의미 차이를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춤의 종류를 우리에게 예시해 준다. 뛰다, 회전하다, 빙빙 돌다, 도약하다, 재미나게 춤추다, 원형으로 춤추다와 같은 어휘들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이 법궤 앞에 서서 행렬 가운데서 춤추는 놀라운 장면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살펴보면, 다윗의 춤을 묘사하기 위해서 다섯 가지 히브리어 어휘가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당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의 앞에서 뛰놀리라"(삼하 6;14-16, 21).
저자에 의하면, 춤추다(dance)를 의미하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 동사들은 문자 그대로 다윗이 뛰놀고(skipped), 일반적인 의미대로 춤추고(dance),유쾌하게(playfully)춤추고, 온 힘을 다해 회전하고(rotated),계속 빙빙 돌았다(whirled)는 것을 말해 준다. 저자는 "다윗이 춤춘 여러 방식 사이에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를 살펴볼 때 즐겁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윗의 춤에 나타난 영적인 요소들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영어 번역본에는 왠지 빠져 있는 것 같은, 경배에 대한 다윗의 열정과 자신을 포기하는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춤 추다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사용되는 히브리 단어들의 다양성은 춤이 이스라엘 민족의 문화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알려 준다. 춤은 너무도 필수적인 예배 요소였기 때문에 한 가지 단어만으로는 여러 가지 미묘한 의미를 충분히 묘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춤의 특징은 예배 중에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에 있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춤은 감사의 응답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안전을 보장하시는 장면에서 여인들을 이끌고 탬버린과 춤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송축하는 미리암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행동인가! 그런 엄청난 기적을 대면했을 때는 당연히 노래와 음악, 춤이 동반된 전폭적인 응답이 나와야 마땅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승리를 가져다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응답으로 백성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분을 송축하고 있는 것이다."
떼제(Taize)공동체의 로버트(Robert)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춤이란 사람의 마음속 깊은 심연으로부터 부풀어 올라오는 영적 활기를 표현해 주는 방법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상적인 의식, 탄원, 자백, 찬양, 예배, 축제와 애도의 시간에 기도하는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다윗이 춤을 추며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공연이 아니라 하나님께 '몸을 가지고 있는 영혼'(bodily soul)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제물이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들의 방법을 통해 우리는 경외심과 경이로움, 기쁨과 놀라움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배운다. 그것은 삶의 꾸밈없고 유쾌한 차원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루시 쇼(「물댄동산 같은 내 영혼」의 저자)는 "이 책은 어떻게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인격을 통합하고 치유하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한다. 현 시대의 교회에게 주신 참된 선물이다 "라고 말했다.
박영애 교수(한성대 무용학과, 한국기독교무용연합회 대표)는 "이 책은 깊이 있는 영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춤이 인간의 삶과 영적 성숙 그리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에 얼마나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제시해 준다"라고 본서를 추천했다.
글 송광택 발행인
저자 실레스터 스노우버
예배 무용 예술가이며 작가이자 교수이다. Southeastern Massachusetts 대학에서 학사(B.A.)를, Gordon Conwell 대학에서 신학으로 석사(M.A.)를 받았으며, 몸으로 드리는 기도, 춤, 영성 그리고 예술에 관한 분야에 관한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Regent 대학의 학제간 연구와 영성 신학 분야의 교수를 역임하였고, 브리티시컬럼비아 Trinity Western 대학의 예술 학과에서 가르쳤다. 현재 Simon Frazer 대학 교육학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Harmonizing Body and Soul in the Womb of God>, <Creative Nurturing for the Soul>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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