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결코 가해자로, 그리고 방관자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도전
역시 오스 기니스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할 만한 책이었다. 악과 고통에 대한 그의 치열한 사고의 흔적을 따라 가다 보면,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어떤 책을 통해서보다 더 깊이 있는 악과 고통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회의하는 용기’라는 저자의 책을 한 번 읽어 보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책은 저자가 주제에 관련하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을 먼저 던져놓고, 그에 대한 대답을 여러 사상가들의 의견 속에서 찾아본 뒤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내린 결론을 제시해 주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논리적 구조로 쓰여진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 가운데 나에게 가장 먼저 와서 부딪친 것은, 종교의 해악에 대한 사상가들의 비판이 합리적이지 않은 비판이라고 하는 지적이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과 학살을 근거로 종교를 큰 해악적 존재라고 하는 데에 대하여 나 역시도 어느 정도는 동조하고 있는 터였다. 나로서도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 활동을 보면서 극단적인 거부감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인들이 자기들이 믿는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 온 끔찍한 학살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갖게 되는 그런 판단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것이 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 편협한 태도라고 지적한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수많은 학살들이 종교에 의해 저질러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학살들보다 더 많은 학살이 세속주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뚱, 폴 포트 등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은 종교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보다 몇 배의 규모로 저질러진 사건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견해에 동조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악과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쳅터에서 제시한 믿음과 인내와 용기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참으로 도전이 되는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저자의 말을 옮겨 본다. “고통을 당할 때 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인내를 요구하고 인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p.145)... 고통 속에서의 용기는 허장성세나 경솔한 자부심과는 다르다. 용기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려는 필사적인 욕망을 포기한 채 담담히 죽음을 각오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해 준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굳센 의지를 의미한다(p.146)...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 아울러,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p.147).” 결국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에 맞서기 위해서는 신앙으로 말미암는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것이 악과 고통 앞에 놓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저자의 답변이다.
그렇다면, 그런 입장에서 처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악과 고통에 대해 취해야 할 자세로서 저자가 요구하고 있는 것을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항상 기꺼이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르 샹봉 사람들과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동시에, “하지만 나를 통해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솔제니친의 말과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을 지고, 모두 앞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살도록 하자”는 도스도예프스키의 말에 부응하여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저자는 악과 고통에 대해, 그것은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며, 때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상황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는 믿음과 인내와 용기로 맞설 것이며, 그런 상황 앞에 서게 된 사람들을 대하여는 방관자의 입장에 서지 말고 적극적으로 돕는 입장에 설 것이며, 자신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를 좇아오면서 내 마음에 가장 도전이 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르 샹봉 사람들이 나치의 학살을 피해 온 유대인들에게 보여 주었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역사 속의 아름다운 사건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결코 그러한 고통 앞에 선 사람들을 향해 방관자의 입장에 서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고 싶었던 권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러한 권면을 접하고 악과 고통의 피해자들에게 방관자의 입장에 서서 바라만 보고 있는 삶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만큼이라도 최선을 다해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깨달음을 던져 주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악과 고통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지극히 논리적으로 접근하면서도,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도록 만들어 주는 특별한 힘이 숨겨져 있는 좋은 책이었다. 일독을 권한다.
저자
오스기니스
세계적인 기독교 변증가요 강연가다. 허드슨 테일러의 가까운 동역자였던 중국 선교사 하워드 기니스의 손자로,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중국에서 태어나서 문화혁명 당시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추방당하기까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후에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옥스퍼드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을 떠난 이후, 영국과 스위스, 미국 등지에서 살았으며 BBC의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1984년 이후 미국에 체류하면서 현대 기독교 문명과 철학의 흐름을 분석하고 프랜시스 쉐퍼의 사상을 계승한 최고의 문화비평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미국의 주요 내외 정책에 대한 연구.교육. 출판을 목적으로 세워진 브루킹스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과 미국 내 종교의 자유를 주 연구 대상으로 하는 단체인 윌리암스버그 현장 협회의 이사장을 지낸 바 있으며, 1991년에는 트리니티 포럼을 창립하여 2004년까지 고든 맥도날드와 함께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유럽, 미국, 캐나다 등지의 수많은 대학과 전 세계 기업 및 정계 컨퍼런스에서 강연해 왔다. 학문적 지식과 대중적 지식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 강한 열정이 있으며, 특히 신앙과 공공 정책에 관한 학문적 지식을 좀더 많은 청중에게 쉽게 이해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소명」, 「20대 당신을 향한 소명」, 「도전받는 현대 기독교」(이상 IVP), 「진리, 베리타스」(누가), Invitation to the Classics, Time for Truth, Unspeakable, The Case for Civility 등 25권 이상의 책을 저술.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