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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수년 내에 교회를 부흥케 하소서
부흥사상가 조나단 에드워즈/채천석/한국강해설교학교출판부/신명식
"하나님, 이 수년 내에 교회를 부흥케 하소서. 제2의 부흥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게 하소서."
저자가 저자후기를 쓰면서 책의 말미에 도입한 구절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미국의 부흥사상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책을 내 놓은 이유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구절인 것 같다. 그 동안 신학 공부를 하면서 많은 책을 접하여 봤지만 이 책만큼 나에게 깊은 사색을 요구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문체가 쉽고 간결하여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상당히 진지하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오한 문제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특별히 내일의 한국교회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할 우리 신학생들에게는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저자는 300년 전의 한 미국의 부흥사상가를 통하여 오늘의 한국교회의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가 지양해야 할 문제들을 300년 전의 부흥사상가가 바로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침체에 빠진 미국교회에 대 각성 운동을 일으켰듯이 이 땅에도 다시 한번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소원해 보는 것은 비단 저자만의 소원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국교회가 안고있는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저자가 본 문제점은 부흥운동에 대한 신학적 접근이 미약하고 이를 다룬 서적들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흥신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신학과 신앙이 유리된 상태에서 부흥운동이 반지성적 경향을 띠고, 또 신학적 작업은 하지 않은 채 외국의 신학사상의 노예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면서 찾고 있다. 저자는 이 작은 책으로 한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부흥사들에게 그 동안 한국교회가 안고있는 교회성장에 대한 고민과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냥 쉽게 지나쳐버린, 아니면 오늘의 현주소를 그냥 시대적인 문제로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각성과 그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자는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과 목회철학을 재미있게 전개해 나가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한국교회의 문제 앞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고 있다. 에드워즈가 심방보다는 설교와 기도에 치중한 목회를 하였고, 하루에 12시간 성경을 연구하였고, 하루에 두 번 이상 골방에 들어가 기도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목회자들이 지향해야할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설교는 항상 논리 정연했으며, 신학적 배경이 있었고 시대에 타협하지 않은 열정적인 설교를 하였다고 소개하면서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할 설교자들의 자세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더욱 정진하여 '신앙과 정서' '의지의 자유' 등 미국 신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겼다고 소개하면서 목회자들의 연구자세를 독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의 저자는 에드워즈라는 인물을 통하여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주요한 소양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에드워즈는 설교를 통하여 미국의 대각성운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가? 설교는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오히려 죽여버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에드워즈는 설교를 할 때에 가슴에는 열정이 있어야하고 마음에는 빛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음에 비추는 것 즉 마음으로 진리를 인식하는 감정을 거룩한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사람의 마음에 거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의 지성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조명하는 것이 바로 설교라고 정의하였다.
그 당시는 미국의 신앙의 조상인, 청교도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차가운 지성주의로 전락했으며, 교회는 불 신앙, 문화적 혼란, 편의주의의 만연으로 혼탁해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마치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는 것과 같다. 그의 신학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사상과 청교도적 계약사상이 핵심 사상이었고 그의 성경관은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사상의 토대가 그의 부흥사상이다. 지금 이 땅에도 이러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인본주의 신앙과 교권주의 신앙이 이 땅의 그리스도 사상을 오염시키고 있는 이때에 참 복음주의의 개혁가, 신본주의의 개혁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가 평하였듯이 에드워즈는 단순한 감정주의나 지성주의도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성과 탁월성을 아는 지식과 감정이 잘 조화된 사람이다.
에드워즈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가 은혜를 강조한 만큼 실천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렇게 감정과 지성과 실천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확장해 나갔으면 한다. 에드워즈에 관한 작은 이 책이 한국 땅에 떨어진 작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계절이 다시 한번 꽃피웠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에드워즈가 태어난 지 300년이 지났다. 3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의 사상과 열정이 그리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금 한국교회는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부흥운동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윤리적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고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하여 많은 질책과 비판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 나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한번 부흥의 불길이 타올라야한다. 1907년의 평양의 장대현 교회당에서 시작된 대 부흥운동과 1970년대의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대 부흥운동이 다시 한번 이 땅을 뜨겁게 달구어야 한다. 그리하여 죄악으로 죽어 가고 있는 이 땅의 생명들을 소생시켜야한다. 부패하고 타락한 이 땅을 치유해야한다.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한국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새 생명을 얻듯이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했으면 좋겠다.
"하나님, 이 수년 내에 교회를 부흥케 하소서. 제2의 부흥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게 하소서."
"하나님, 이 수년 내에 교회를 부흥케 하소서. 제2의 부흥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게 하소서."
저자가 저자후기를 쓰면서 책의 말미에 도입한 구절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미국의 부흥사상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책을 내 놓은 이유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구절인 것 같다. 그 동안 신학 공부를 하면서 많은 책을 접하여 봤지만 이 책만큼 나에게 깊은 사색을 요구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문체가 쉽고 간결하여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상당히 진지하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오한 문제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특별히 내일의 한국교회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할 우리 신학생들에게는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저자는 300년 전의 한 미국의 부흥사상가를 통하여 오늘의 한국교회의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가 지양해야 할 문제들을 300년 전의 부흥사상가가 바로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침체에 빠진 미국교회에 대 각성 운동을 일으켰듯이 이 땅에도 다시 한번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소원해 보는 것은 비단 저자만의 소원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국교회가 안고있는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저자가 본 문제점은 부흥운동에 대한 신학적 접근이 미약하고 이를 다룬 서적들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흥신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신학과 신앙이 유리된 상태에서 부흥운동이 반지성적 경향을 띠고, 또 신학적 작업은 하지 않은 채 외국의 신학사상의 노예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면서 찾고 있다. 저자는 이 작은 책으로 한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부흥사들에게 그 동안 한국교회가 안고있는 교회성장에 대한 고민과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냥 쉽게 지나쳐버린, 아니면 오늘의 현주소를 그냥 시대적인 문제로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각성과 그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자는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과 목회철학을 재미있게 전개해 나가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한국교회의 문제 앞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고 있다. 에드워즈가 심방보다는 설교와 기도에 치중한 목회를 하였고, 하루에 12시간 성경을 연구하였고, 하루에 두 번 이상 골방에 들어가 기도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목회자들이 지향해야할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설교는 항상 논리 정연했으며, 신학적 배경이 있었고 시대에 타협하지 않은 열정적인 설교를 하였다고 소개하면서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할 설교자들의 자세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더욱 정진하여 '신앙과 정서' '의지의 자유' 등 미국 신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겼다고 소개하면서 목회자들의 연구자세를 독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의 저자는 에드워즈라는 인물을 통하여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주요한 소양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에드워즈는 설교를 통하여 미국의 대각성운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가? 설교는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오히려 죽여버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에드워즈는 설교를 할 때에 가슴에는 열정이 있어야하고 마음에는 빛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음에 비추는 것 즉 마음으로 진리를 인식하는 감정을 거룩한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사람의 마음에 거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의 지성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조명하는 것이 바로 설교라고 정의하였다.
그 당시는 미국의 신앙의 조상인, 청교도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차가운 지성주의로 전락했으며, 교회는 불 신앙, 문화적 혼란, 편의주의의 만연으로 혼탁해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마치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는 것과 같다. 그의 신학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사상과 청교도적 계약사상이 핵심 사상이었고 그의 성경관은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사상의 토대가 그의 부흥사상이다. 지금 이 땅에도 이러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인본주의 신앙과 교권주의 신앙이 이 땅의 그리스도 사상을 오염시키고 있는 이때에 참 복음주의의 개혁가, 신본주의의 개혁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가 평하였듯이 에드워즈는 단순한 감정주의나 지성주의도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성과 탁월성을 아는 지식과 감정이 잘 조화된 사람이다.
에드워즈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가 은혜를 강조한 만큼 실천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렇게 감정과 지성과 실천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확장해 나갔으면 한다. 에드워즈에 관한 작은 이 책이 한국 땅에 떨어진 작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계절이 다시 한번 꽃피웠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에드워즈가 태어난 지 300년이 지났다. 3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의 사상과 열정이 그리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금 한국교회는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부흥운동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윤리적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고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하여 많은 질책과 비판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 나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한번 부흥의 불길이 타올라야한다. 1907년의 평양의 장대현 교회당에서 시작된 대 부흥운동과 1970년대의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대 부흥운동이 다시 한번 이 땅을 뜨겁게 달구어야 한다. 그리하여 죄악으로 죽어 가고 있는 이 땅의 생명들을 소생시켜야한다. 부패하고 타락한 이 땅을 치유해야한다.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한국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새 생명을 얻듯이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했으면 좋겠다.
"하나님, 이 수년 내에 교회를 부흥케 하소서. 제2의 부흥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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