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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뮤지션의 변신은 무죄
《나는 마커스입니다》와 《청년 설교자의 예수 찾기》/김준영/샘솟는기쁨 /김정완
독특한 이력의 두 주인공. 뮤지션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들이 돌아왔다. 힙합가수이자 작사가인 그들은 객석을 쥐락펴락했다. 또렷한 응시와 하늘로 뻗은 두 손의 행렬이 휘산하는 객석의 열기가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삶이 악기가 되어 화성과 화음이 조화로운 그들의 음악은 다채로왔고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들이 새옷을 갈아입고 무대 전면에 나섰을 때 세간은 떠들썪했다. 한쪽에선 변절했다고 소리를 높였고 다른 한쪽에선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고 비아냥거렸다. 진심이 알려지기까지 사뭇 오랫동안 그들은 연호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고집했다. 마침내 진심이 통했다. 관객들이 열기로 답하기 시작한 게 그 표징이었다. 이 글은 그들이 이어가는 음악 이야기다.
그들이 새옷을 갈아입고 무대 전면에 나섰을 때 세간은 떠들썪했다. 한쪽에선 변절했다고 소리를 높였고 다른 한쪽에선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고 비아냥거렸다. 진심이 알려지기까지 사뭇 오랫동안 그들은 연호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고집했다. 마침내 진심이 통했다. 관객들이 열기로 답하기 시작한 게 그 표징이었다. 이 글은 그들이 이어가는 음악 이야기다.
《나는 마커스입니다》의 저자 김준영은 '마커스 미니스트리'의 설립자로 예배와 찬양, 연합을 위한 공동체를 꿈꾸며 사역을 이끌고 있다. 그가 이름 지은 마커스는 그에게 신앙고백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주님의 흔적을 새기는 자'라는 의미의 마커스는 그 자신이자 그가 일궈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다. <부르신 곳에서>라는 굵직한 CCM의 작사에서부터 <하루>에 이르기까지 30여 곡을 썼다. 이쯤되면 모태신앙에 엘리트코스를 두루 밟았을 것 같다. 사실은 그것과 다르다.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 또한 인생 굴곡을 비켜가지 못 했다. 세찬 바람이 이는 폭우 속을 걸으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은 애써 밀쳐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렀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기어코 돌아온 고향. 영적 고향은 그가 잊고 지냈던 어제였으며, 다시 시작할 미래였다. 본향은 새힘의 원천이기도 하고 목적의식을 북돋는 터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는 그곳에서 값진 보석과도 같은 부르심을 기억했다. 그때부터 음악의 질료가 바뀌었다.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도 중단된 적 없는 감동,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울컥 올라오던 감동, 온 존재를 휘감은 '감동'이 그것을 대체했다. 감동의 원천은 '말씀'이었다.
《청년 설교자의 예수 찾기》의 주인공 서종현은 더 튄다. 바짝 밀어올린 머리 모양은 물론이고 광대뼈가 자아내는 강렬한 인상과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옷차림 모두 예사가 아니다. 힙합 뮤지션 출신다운 자태다. 그래서일까? 그가 전도에 뜻을 두자 평범하지 않은 외모와 날선 말주변으로 누굴 전도하겠느냐고 주변 사람부터 말리고 나섰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었던 터라 사람만 보면 앞뒤 재지않고 덤볐던 모양이다.
간증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분위기였단다. 일사천리로 자기 말만 쏟아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애정을 섞어 한 말이었지만 어른 입장에서 하나하나 가르치려 하다보니 실수가 많았다. 청소년들의 아픔과 꿈을 품을 수 있게 되면서 그가 가진 열정은 점차 신앙으로 바뀌어갔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다. <부르신 곳에서>라는 굵직한 CCM의 작사에서부터 <하루>에 이르기까지 30여 곡을 썼다. 이쯤되면 모태신앙에 엘리트코스를 두루 밟았을 것 같다. 사실은 그것과 다르다.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 또한 인생 굴곡을 비켜가지 못 했다. 세찬 바람이 이는 폭우 속을 걸으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은 애써 밀쳐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렀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기어코 돌아온 고향. 영적 고향은 그가 잊고 지냈던 어제였으며, 다시 시작할 미래였다. 본향은 새힘의 원천이기도 하고 목적의식을 북돋는 터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는 그곳에서 값진 보석과도 같은 부르심을 기억했다. 그때부터 음악의 질료가 바뀌었다.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도 중단된 적 없는 감동,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울컥 올라오던 감동, 온 존재를 휘감은 '감동'이 그것을 대체했다. 감동의 원천은 '말씀'이었다.
《청년 설교자의 예수 찾기》의 주인공 서종현은 더 튄다. 바짝 밀어올린 머리 모양은 물론이고 광대뼈가 자아내는 강렬한 인상과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옷차림 모두 예사가 아니다. 힙합 뮤지션 출신다운 자태다. 그래서일까? 그가 전도에 뜻을 두자 평범하지 않은 외모와 날선 말주변으로 누굴 전도하겠느냐고 주변 사람부터 말리고 나섰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었던 터라 사람만 보면 앞뒤 재지않고 덤볐던 모양이다.
간증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뭐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분위기였단다. 일사천리로 자기 말만 쏟아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애정을 섞어 한 말이었지만 어른 입장에서 하나하나 가르치려 하다보니 실수가 많았다. 청소년들의 아픔과 꿈을 품을 수 있게 되면서 그가 가진 열정은 점차 신앙으로 바뀌어갔다.
지치고 힘든 구석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보는 그에게서 천국 복음에 관한 진정성이 무엇보다 빛난다. 복음전도자로 다듬어져 가는 그를 보면 새삼 달란트의 의미가 지면 위로 오돌토돌 튀어나오는 걸 느낀다. 누구나 즐겨들은 달란트 이야기는 서종현과 김준영에 빗댈 때 선명히 살아난다. 멀리 외국으로 떠나는 주인에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곰곰히 생각했다. 훗날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하자고 할 때 보잘 것 없는 푼돈마저 날리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옷장 속에 잘 감춰둔 돈을 주인 앞에 당당히 내 놓은 그에게 주인은 호통을 쳤다. 은행에 맡기거나 빌려주기라도 했다면 이자라도 받았을 돈을 굴리지 않은 데 분노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튀는 행보를 보였던 저자 둘. 그들은 그 과정에서 음악에 심취하게 된 공통분모와 맞닥뜨리게 된다. 정통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치없는 음악으로, 주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업성과 거리가 먼 음악으로 치부될 그들 안의 재능(달란트)은 일견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버리고 다른 어떤 것, 보다 고상해서 다른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정하는 어떤 것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기지 않았다. 그들이 과부의 두 랩돈을 내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재능을 내놓았을 때 '연약한 것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들을 통해 빚어갈 하나님의 나라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이 땅에 허투로 내지 않았다. 우리에게 각양 쓸모와 재능을 아낌없이 부어주셨다. 다만 우리가 그것들을 찾는 데 한계를 보일 뿐이다. 한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든, 열 달란트든 표시된 양은 나중 문제다. 예화의 핵심은 어떤 재능을 발견했든 찾은 재능으로 무엇을 했느냐에 달려있다. 화폐에는 각각의 값이 있다. 그 값을 가치라 한다. 하지만 참된 가치는 화폐가액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치있는 일에 썼네!" 하고 말할 때의 그 가치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화폐를 써서 나타난 결과가 판가름한다.
사회적으로 볼 때 저자들은 값 낮은 달란트를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달란트의 값이 어떻게 참된 가치로 변모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진 돈마저 빼앗긴 채 내쫒긴 한 달란트의 주인공과 달리 그들은 나날히 지경을 넓히고 있는 데서 '충성스러운 종'이다. 그들이 웅변하고 있는 크리스천의 삶, 그걸 가치를 아는 삶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것 같다.
상식적으로 튀는 행보를 보였던 저자 둘. 그들은 그 과정에서 음악에 심취하게 된 공통분모와 맞닥뜨리게 된다. 정통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치없는 음악으로, 주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업성과 거리가 먼 음악으로 치부될 그들 안의 재능(달란트)은 일견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버리고 다른 어떤 것, 보다 고상해서 다른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정하는 어떤 것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기지 않았다. 그들이 과부의 두 랩돈을 내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재능을 내놓았을 때 '연약한 것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들을 통해 빚어갈 하나님의 나라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이 땅에 허투로 내지 않았다. 우리에게 각양 쓸모와 재능을 아낌없이 부어주셨다. 다만 우리가 그것들을 찾는 데 한계를 보일 뿐이다. 한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든, 열 달란트든 표시된 양은 나중 문제다. 예화의 핵심은 어떤 재능을 발견했든 찾은 재능으로 무엇을 했느냐에 달려있다. 화폐에는 각각의 값이 있다. 그 값을 가치라 한다. 하지만 참된 가치는 화폐가액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치있는 일에 썼네!" 하고 말할 때의 그 가치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화폐를 써서 나타난 결과가 판가름한다.
사회적으로 볼 때 저자들은 값 낮은 달란트를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달란트의 값이 어떻게 참된 가치로 변모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진 돈마저 빼앗긴 채 내쫒긴 한 달란트의 주인공과 달리 그들은 나날히 지경을 넓히고 있는 데서 '충성스러운 종'이다. 그들이 웅변하고 있는 크리스천의 삶, 그걸 가치를 아는 삶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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