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독인의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하다
"기독인이라면 정치를 멀리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기독인에게 좋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회피할 수 없는 소명이다."
'기독인을 위한 정치학' 박상훈 학교장의 말을 풀어 쓴 것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기독인의 소명이라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먼저 정치를 논하기 위한 기본 요건을 살펴봐야 하겠다. 정치에는 모름지기 상상력이 필요하다. 어떤 사회를 구성하고,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그림이 있어야 정책을 설정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 신앙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인의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 있다. 기독교 평화주의 운동가로 알려진 셰인 클레어본과 크리스 호가 쓴 <대통령 예수>(죠이북스)다.
두 저자는 '정치'를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일"로 정의한다. 이런 전제하에 예수를 대통령, 하나님의 백성을 내각 각료, 기독인이 꿈꾸어야 할 미래를 '하나님나라'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실천을 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제국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
서문에서 밝히는 것처럼 <대통령 예수>(죠이북스)는 학술적이거나 새로운 정치 학설을 주장하는 책은 아니다. 성경과 두 저자의 사례, 하나님나라를 위해 체제와 맞서 싸운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독인이 꿈꾸고 추구해야 할 '정치'가 무엇인지 밝힌다. 성경에 나온 사례 몇 가지만 들면,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던 내용을 제시할 수 있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39-42)
두 저자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한 실제 사례를 책 전반에 걸쳐 소개한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내용도 있다. 두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필라델피아에서 노숙인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공원에서 자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을 통과시키자 공원에 모여 성찬식을 시행했던 일, 공중화장실이 없는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노상 방뇨를 이유로 노숙자를 체포하자, '존엄성 지키며 무료로 오줌 누기'라는 시위를 조직, 시청까지 행진하며 공중화장실을 요구했던 일 등이다.
두 저자는 예수께서 적극적인 무저항과 인내와 소망으로 악을 다루었다며, 하나님나라를 '비폭력 왕국'이라 규정한다. 그러면서 이런 비전을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예수의 방법을 소개한다.
예수는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 제국의 체제 속에서 왕이 되는 길이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을 선택했다. 기독인은 예수의 길을 따라 제국의 무력에 맞서고, 자본의 올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역사를 돌아보면, 십자가의 길이 아닌 제국의 길을 택해 '부패한 체제'가 되어 버린 대표적인 케이스를 만날 수 있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로 1,000년 넘게 서구 세계의 정치와 종교는 끈끈하게 묶여 있었다. 당대 교회는 부패의 온상이었다. 두 저자는 미국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종교의 이름을 내세운 정착민들은 혁명적이면서 복종적인 예수의 특별한 사회를 구현하려 하지 않고 권력과 폭력의 세상 질서 위에 존재하는 경쟁력 있는 국가를 수립하면서 혁명적이려고 했다. 이들은 경건의 모양은 취하면서 겨자씨와 같은 하나님나라의 전복적 정치는 버렸다." (148쪽)
또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교회가 국가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럼으로써 교회의 상상력을 마비시키고"(8쪽)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대표적인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이 '팍스 로마나'를 자처했듯이, 미국이 제국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구적인 팍스 아메리카나를 추구한다. 실례로 한 문서가 거론된다. 조지 W. 부시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과 관계된 'PNAC'(새로운 미국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문서다. 두 저자는 이것이 미국 대규모 사업 뒤에 어떤 생각이 깔려 있는지를 보여 주는 예라고 지적한다. 아래는 문서 내용 중 일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도전에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준비된 군사력과 미국적 원리들을 해외에서 용감하고 의도적으로 확장해 나갈 외교 정책, 그리고 전 세계를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국가적 리더십이다. (중략) 지난 세기의 역사를 통해 미국의 지도력이라는 명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156쪽)
가장 큰 죄악은 희망을 버리는 것
세간에서 권력 친화적이라고 비판받는 한국교회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단 정치는 부패로 얼룩져 있으며, 교회 재판과 치리조차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배반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런 상황에 절망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버리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라 지적한다.
"정치적 상상력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큰 죄악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추잡하고 부패한 체제 이외에는 어떤 다른 길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30쪽)
정교일치뿐 아니라 정경일치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함께 짚으면서, 경제 영역에서 기독인이 추구해야 할 점도 이야기한다. 두 저자에 따르면,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반제국적인 대안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헌금을 모아 그때그때 성도들에게 필요한 의료비를 감당했던 교회를 소개한다. 수입 10퍼센트를 공동 기금으로 모아 경제 전문가부터 노숙인까지의 경제적 장벽을 허무는 이야기, 저자가 실제로 사람들을 모아 실험 삼아 물물교환으로 경제활동을 시도해 성공했던 사례도 제시한다.
이 책은 미적지근하게 문명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성경적인 정치 참여야말로 기독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선이라고 강조한다. 성경에서 맘몬을 가장 경계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적당주의로 물질문명과 제국의 논리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우리에게는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십자가와 하나님나라의 정치에 못 미치는 것에는 절대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두 악 중에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보다 못한 것에 우리 믿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301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