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가에게 듣는 레위기 이야기
“레위기는 어려운 책이다. 내가 레위기를 읽는다고 해도 ‘레위기를 읽었다는 것’ 이외의 어떤 유익도 누릴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가장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본문도, 읽고 난 후에 그 내용을 정리하여 적용하기가 어려웠던 책도 레위기를 꼽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레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성도 몇몇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반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목회자들 가운데도 레위기 본문을 가르치고 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구약의 제사법, 제사장의 위임식, 정결과 부정의 규례들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내용들... 그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이고, 일상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개념들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설교를 묵상 본문으로 연속으로 전하는 지역교회 목사로서 새롭게 시작되는 본문이 레위기인 것을 봤을 때 느꼈던 나의 답답함도 그런 일반적인 이해 이상의 것을 갖지 못한 탓이었을 것 같다. 그때 BST시리즈에서 ‘레위기 강해’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구약 전체의 책임 편집자인 데렉 티드볼이 직접 레위기편을 저술했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일단 최근에 나온 여러 레위기 주석과 해석서들과 이 ‘레위기 강해’의 차이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용면에서 보면 저자는, 레위기 전체를 ‘거룩’이라는 주제로 묶고 있다. 레위기 전체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거룩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진술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는 명령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고 하는 약속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레위기는 ‘거룩한 삶을 위해 해방된 백성’들에게 준 하나님의 책이라는 것이다.
구성의 특별함은, BST시리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해석서나 주석이 아니라 ‘강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시리즈가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본문에 대한 탄탄한 해석은 기본적으로 담겨 있다.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부분들도 있고, 신학적 논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한 약술도 있다. 그러나 많은 해석서들이 멈추는 그 자리에서 이 책은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지금 강해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각 장에 대한 글을 쓰며 기승전결 구조를 갖고 있는 한 편의 메시지를 전한다. 구약학자로서의 성경해석을 넘어 목회적 적용들로 풍성하다. 저자는 본문을 넘어 레위기의 성취에 해당하는 신약의 그리스도를 연결시키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고 있고, 때로는 구약의 레위기에서 곧바로 신약을 살고 있는 성도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을 조언한다. 저자는 많은 부분에서 예표적 해석을 활용하는데 단순한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창의적 설교자로서 레위기 본문을 어떻게 풀어서 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저자의 수고와 관련해서 책의 내용 속에서 두 부분만 살펴보고 싶다. 하나는 4장의 속죄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9장의 성막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된 부분이다. 먼저 저자는 속죄제와 관련된 4장을 설명하면서, 히브리서 13장과 연결하여 그리스도의 사역과 속죄제를 연결한다. 영문 밖으로 끌려나가는 짐승과 성문 밖으로 끌려나가신 예수님과 연결하며 동시에 초대교회의 실제적인 핍박 속에서 끌려나가는 성도들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핍박받는 삶과의 연결은, 18세기에 작곡된 찬송가 가사로 이어져, 오늘 날 교회에서 불려지는 찬송가 가사가 되어 울리는 것으로 고백되어진다. “그가 우리를 속량하시며 병을 고치시고 회복시키고 용서하셨으니 우리가 그를 송축함이 마땅하지 않은가?”(내 영혼아 찬양하라, 새찬송가 65장).
다른 하나는 9장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 사건이다. 새롭게 세워진 제사장에 의한 첫 예배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하게 임했다. 저자는 이것을 출애굽한 시내산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영광의 재현사건이라 말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이러한 영광의 부제가 현대 교회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으로 적용을 한다. 본문 그대로를 인용해본다.
“현대 교회의 병폐들은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데이비드 웰즈는 타당한 이유를 들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견지하는 하나님 이해에 대해 예언자적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그것이 ‘가벼움’이라고 말한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우리가 복종하고 ‘그 앞에서 우리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에 우리를 섬기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 모든 변덕을 맞춰 주는 하나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나님에게서 영광이 없어지고, 위엄이 박탈되고, 권위도 사라졌다.”(p153).
이 레위기 강해를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이 있다. 딱딱한 해석서가 아니라 저자가 자신과 함께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고 느껴서 였을 것이다. 레위기가 이렇게 풍성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도, 또 이렇게 따뜻한 메시지들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한편의 해석서를 읽은 느낌이 아닌, 본문을 깊이 읽는 대가 앞에 앉아 그와 친밀한 관계 속에서 구약 레위기 설교를 듣는 느낌이었다. 이 레위기 강해라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고, 누구라도 유익을 누릴 거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