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교회밖 카페에서 신앙고민 풀어가기
평신도 때는 물론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또 지금처럼 다른 목회자들과는 조금 다르게 울타리밖에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나는 사역을 하면서 개인적인 성격상 성경공부를 인도하거나 상담, 복음제시하는 장소가 꼭 교회가 되지는 않았다. 평신도 때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교회에서 모이면서도 2월에 난방도 안 되는 장소에서 하거나 교회 벤치에서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카페나 페스트푸드점에서 오랫동안 모임을 가질 때도 있었다. 부교역자 때도 복음제시를 새신자를 놓고 홍대 인도 전문음식점에서도 했었던 적도 있었다. 최근에도 일대일 상담 및 성경공부를 반년 이상 카페에서 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만남이 커피전문점인 경우가 꽤 있다. 카페가 시끄럽고 집중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 대상자가 교회에서는 오픈하기 힘든 부분들을 오히려 카페에서는 쉽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게 되는 심리적 요소도 있었다. 일종의 경계심이 해제된다고나 할까?
카페의 역할이 그런 것 같다. 카페란 일종의 자유로운 이야기가 오가며 격식을 깨고 자유로운 대화를 주고받는 장소란 측면이 있다.
처음 저자의 이 책을 대했을 때 ‘카페에서 하나님을 묻다’-원제는 ‘When God goes to Starbucks’이다-란 제목을 보고는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 책들 치고는 다른 책에 비해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부제도 ‘기독교를 둘러싼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들’이라 해서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부제의 앞부분에서 언급하듯 이 책에서 제기하는 주제들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것이 없다. 과연 이런 주제를 카페에서 특히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카페는 미국의 스타벅스의 가벼움보다는 프랑스의 카페의 진지함이 느껴진다. 특히 전반부의 주제는 약간 모호하고 사변적이어서 더군다나 스타벅스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 않을까 제목에 대한 트집잡이 같은 생각도 들었다. 굳이 이 문제를 여기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후반에 가서 그러한 의구심을 덜어낸다.
1부와 2부 전반에서 다루는 주제가 좀 모호하고 사변적인 것에 반해 2부 후반과 3부에서 언급하는 주제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며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더 현실적이다.
앞서 전반부는 기독교에 대해 약간 관심 있거나 네거티브한 이들에게 변증적인 복음제시와 반론을 하는 데에 치중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논의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긴 하겠지만 상대방이 비 기독교인이라면 과연 동일한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저자의 논쟁이 불완전하고 허점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변증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즉 기독교는 진리이고 그 진리는 명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리의 설득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논쟁으로 전도를 해서 영접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학생 때 청년 때 복음전하다가 논쟁을 해서 진 기억은 없지만 그런 논쟁으로 상대방이 영접한 적은 없다. 복음은 논리를 넘어 그 마음이 열려야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반부의 저자의 변증과 논리는 날카롭고 설득력은 있지만 잘못하면 ‘우리만의 논리’로 그쳐버릴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좀더 솔직하고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전반부에서 한 주제를 한 챕터별로 다루었다면 후반에 가서는 한 가지 주제나 연관된 문제를 두세 챕터에 걸쳐서 다루는 불균형을 보인다. 저자 자신도 이 주제들은 간단히 다룰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동성애 관련 문제나 성경의 전쟁과 이슬람의 지하드 이슈 등은 예민하지만 반드시 짚어볼 만한 주제들이다. 미국에 있어서도 이 문제는 민감한 문제겠지만 한국 기독교 속에서 이 두 가지 주제는 아주 예민하고 쉽게 다룰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어떤 점에서 이 책은 이 두 가지 주제 부분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호모포비아란 말과 할랄 문제로 인한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교회 내에서는 쉽게 털어놓기 힘든 젊은 세대의 고민을 위해서도 이 부분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 주제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나 세대간의 갭만큼이나 깊고 단순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내 자신도 상담하다보면 비기독인은 제쳐놓고라도 나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이들 중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깊은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이 많고 쉽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
특히 동성애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최근 동성애를 한센병과 같은 동급으로 간단하게 치부해버리는 어느 교계지도자의 주장 속에는 젊은 기독청년들의 고민을 담아낼 공간은 없다. 교회에서 자기의 의문이나 고민을 드러내면 바로 정죄시 해버리는 사역자들이나 교회어른들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와 의문을 이야기할 수 없다.
또 SNS나 진보사회에서도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는 취지의 말하는 것만으로도 호모포비아라고 규정해버리곤 빗장을 지르는 속에서 대화를 나눌 토론의 장은 없고 역시 그런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문화가 점점 심해져가는 학교 속에서 살고 있는 기독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신앙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낼 용기는 쉽게 자리하기 힘들다. 저자는 이러한 난점을 잘 알고 접근한다. 동성애에 대한 약간의 다른 주제로써 세 챕터를 읽다보면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인 기본적인 이해 및 동성애에 대한 연구에 대한 정보-예컨대 킨제이 연구와 쌍둥이에 대한 연구 등에 대한 오해-등도 비기독인들과 이야기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강한 반대는 해도 실제로 교회 내에 있는 동성애적 성향으로 고민하거나 이미 그 선을 넘은 이들에 대해, 또 동성애자이지만 교회로 나아오기 위한 이들에 대해 교회가 정죄하여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고 품어야 할지에 대한 이해와 태도에 대한 도움되는 일부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듯싶다. 개인적으로 차라리 이 동성애 주제만으로 책을 한권 기술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두 번째 큰 주제인 이슬람의 지하드 건은 지금 한국의 일부 교계를 민감하게 만드는 할랄 문제는 아니지만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 특히 9.11테러를 경험했고 그로 인해 이라크 침공과 IS문제를 겪는 미국의 입장 속에서 이 문제는 더 예민할 수밖에 없고 이슬람의 지하드가 언급이 되면 당연시 이어져 나오는 성경속의 전쟁과 십자군 전쟁의 문제는 기독교인으로서는 당연히 고민해야 될 문제라는 점에서 저자의 논증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물론 이 주제가 지하드에만 국한 되다보니까 이슬람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비교에는 한계가 있어 아쉽다.
오히려 이 주제도 오히려 책 한권의 주제로 따로 떼어 논의하거나 좀더 분량을 늘려 다루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저자의 문제라기보다는 독자로서 느끼는 일종의 갈증이다.
p.s. 저자는 마지막 챕터에 다양한 교단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이 부분도 분량은 짧지만 교단의 분화의 필요성과 또 단점 등을 잘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