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여 적에게 큰 피해와 함께 공포를 불러일으킨 특공대가 있으니 가미가제(신풍神風) 특공대이다. 그 이름답게 그 옛날 신풍이 불어서 일본을 보호해 주었듯이 일본을 보호하고 지키는 인간무기가 되어라는 신적인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이 전쟁 막바지에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비열한 방법이고 실제 이것으로 꽃다운 나이에 젊은 청년들이 적함을 향해 폭탄으로 날아갔다.
가미가제는 성지황순(誠至皇殉)이라 하여 천황이 원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바쳐 이루리라는 마음으로 정종 한 잔을 마신 후 충성을 다짐하고 출격한다. 그리고 이 죽음을 국가와 민족과 황제와 세계평화를 위하는 아주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죽음이라 여겼다. 일본에는 아직도 이 가미가제 특공대 박물관이 있어서 잘못된 전쟁을 거룩한 전쟁으로 포장하고 있고 이들의 죽음 또한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모두가 따라야할 영웅적 죽음으로 위장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듯 국가라는 종교에 희생물이 되는 가미가제를 포함한 전사자들의 실체를 파헤치는 역작이다. 민족주의라는 시민종교가 어떻게 발동하여 신화를 이루어내는지 전쟁을 통해 그 본질과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전쟁은 시민에게 있어서 공포와 두려움이고 비극이다. 그러나 국가에게 전쟁은 영광이고 도전이고 확장이다. 이 양극단 사이에서 국가는 전사자들을 이상화하여 롤모델로 삼아 주술화를 시도하고 있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이 되는데 1부 “토대”에서는 의용병과 신화제작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의용병”은 징집병과는 달리 혁명의 이념과 제도에 호의적이여서 국가를 위해 싸우는 모범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전쟁이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보람을 찾게 한다는 시와 노래 등으로 전쟁미화를 하게 된다. 또한 전쟁신화의 기원과 제작을 주도했던 의용병의 역할을 고대 그리스 및 근대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서술해 간다.
“신화제작”에서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전쟁을 은폐하고 죽음을 국유화하여 모든 죽음을 국가와 혁명에 흡수시킨다. 국가마다 묘지를 만드는 특징도 나오는데 전쟁경험의 신화적 중심지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여 민족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킨다. 2부 “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청년과 전쟁경험, 전사자숭배, 자연의 전용 그리고 전쟁경험의 사소화를 다룬다.
“청년과 전쟁경험”에서는 국가가 청년들에게 전쟁이 꿈을 이루어 줄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그들에게 국가를 건설할 사명까지 부여한다. 그리하여 전쟁이란 전선에서 벌이는 청년운동이라 특징되어진다. 또한 전사한 청년은 가장 훌륭한 남자라고 상징되어 전사자 숭배로 포섭된다. "전사자숭배"에서는 강한 나라를 위해 죽은 청년들을 불러내어 영웅화시킨다. 또한 나라마다 묘지와 자연과 전쟁기념을 이용하고 심지어 기독교까지 이용해 전쟁경험의 신화를 계속 불타오르게 하였다.
“자연의 전용”에서는 땅과 바다와 산을 포함한 자연의 순수함과 불멸성을 병사와 자연이 공유할 수 있는 특성으로 전시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있다. “전쟁경험의 사소화”에서는 전쟁을 미화하고 신화하는 위로부터의 정치종교적 시도와 더불어 미술품, 장남감과 놀이, 전투현장 관광, 연극, 영화, 주방용품과 그림과 우편 등 일상 용품들을 통해 전쟁이 생활에 침투하여 전쟁이 익숙한 것으로 다가오게 하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전쟁의 거부감을 없애고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제 3부 “전후시대”에서는 독일정치의 야만화와 신화의 증축, 2차 세계대전과 신화 그리고 전후세대를 다루고 있다. “독일정치의 야만화”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반대하는 자에게 해충박멸이라는 인간의 처형이 허락되고 국가의 안정이라는 목표로 내외부의 적을 척결해 나간다. “신화의 증축”에서는 새로운 인간의 영웅성을 강조하여 전쟁신화를 세우는 각국의 노력과 주술화를 다루고 있다.
“2차 대전, 신화 그리고 전후세대”에서는 2차대전이 1차대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전쟁이었다고 정의한다. 아울러 독일을 중심으로 전쟁경험 신화의 쇠퇴를 보여주고 있으며 독일병사가 더 이상 영웅적이지 않고 전우애 또한 개인적인 것으로서 공격적인 함의를 잃어버린다. 전사자를 기리는 방법에서도 숭배적이기보다 실용적으로 바뀌게 되고 전쟁기념물도 집단보다는 개인으로 기념하는 변화를 다루고 있다.
책의 특징은 전사자숭배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주술적으로 다루어졌는지 여러 자료와 사실을 통해 광범위하고 자세하고 다루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와 신앙심이 결합되어 국가발전에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도 다루고 있다. 국가가 이상과 비전을 제시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간다고 하지만 그 일을 위해서 얼마나 비열한 방법이 동원되고 억울한 죽음이 따르게 되는지 그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특별히 이 책은 독일의 정치와 나치를 다루는데 저자가 독일계 미국인이라 그런지 더 관심 갖고 그 병폐를 서술한다. 또한 전쟁을 미화시키는 것에 있어서 ‘전쟁의 사소화’를 아주 구체적으로 다루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저자의 강점으로 보였다. 거대한 사상으로만 전쟁을 미화시키는 게 아니라 일상에 모든 소품들이 동원되어 전쟁이 생활 속으로 들어와 아주 친숙하게 그려지는 원리와 작동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끝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란 일찍이 많은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보호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이용할 수 있고 재산을 착취할 수도 있고 안전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전사자숭배가 민족주의의 주술적 힘의 원천이 된 것처럼 비록 전시는 아니지만 자본이 어떻게 이 시대에 민족주의가 되어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국가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보다 앞세워 국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내셔널리즘이 지배적이라면 그게 국가라 할 수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로 기백 명이 죽어가도 기업의 윤리적인 책임을 묻지 못하고 합당한 법적 보상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정부가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일제 시대에 소녀의 몸으로 온갖 고통을 당한 할머니들을 향해 제대로 된 사과하나 받아내지 못하고 도리어 반대의 소리를 듣는 정부가 국가일까?
그러고 보면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물이 많은 것 같다.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미화시켜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을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서 부패한 제도를 지켜가는 일들이 눈에 보인다. 체제와 개인 사이에 바른 기준이 무엇이고 어떤 가치가 우선이 되어야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도 민족주의라는 우상의 희생양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