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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에 대한 비판적 고찰

크리스찬북뉴스 | 2016.06.14 12:08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박영돈/IVP/문양호 편집위원

네가 말 돌리고 내가 말 돌리면 서로 딴 이야기가 되잖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대학교 때 친한 친구랑 서로 말하기가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말 돌리다가 친구가 답답해서 한 이야기였다.


그런 것 같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아프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대화가 된다. 서로 안다는 이름하에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사가 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갑상선 암이든, 위암이든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하고,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할 때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불편한 내용을 말하는 것을 거북해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그런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에 대한 지적은 되지만, 종종 그로 인한 아픔으로 말한 이에게 거북함과 불편함을 쏟아 붓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크게 넘어져 상처난 이를 소독하기 위해 약을 바르면 찢어질 듯한 비명과 날선 손톱이 치료자의 얼굴에 박힐 수도 있다. 비판이란 그런 것이다.


또한 그런 직설적인 비판은 상대의 자기방어적 태도나 일부 부정확한 비판으로 인해 역공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확하고 사실적인 비판이 필요한 것은 비록 일부가 부정확하더라도 그 칼날이 예리할수록 반론이나 토론도 예리해지고 그 과정을 통해 정확한 문제 규명과 해결을 위한 발걸음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비판은 문제를 지닌 이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비판은 비판이 아닌 비난이 되고 치유가 아니라 죽이거나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와 교계 내외의 비판은 지금 상당하다. 실제로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교회에 날선 비판을 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판이 상처에 양잿물을 붓는 듯하고, 교회개혁을 한다고는 하지만, 모호한 표현으로 아무나 맞아도 된다는 식의 추상적 비난을 하는 이들이 있을 때가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어느 정도 그들의 이야기가 옳긴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확한 진단보다는 그저 싫음과 혐오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진정한 애정은 상처의 진물과 피고름에 직접 손을 대고 닦아내고 씻어주는 것이다. 그럴 때 비판할 자격이 있고, 비록 아프지만, 그러한 고마운 이들을 통해 치유가 이루어진다.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을 쓴 저자도 교회의 아픈 이슈나 남들이 다루기 거북한 이슈들에 돌이 아닌 칼을 들이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분이다. 최근 몇 년간 그가 쓴 몇 권의 책들이 그러하다. 그는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시도했다. 단순히 성령운동을 비판했다면 그리 신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논쟁의 중심에 있는 손기철 장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분석함을 통해 아주 예민한 부분에 손을 대었다. 가장 최근에 나왔던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읽기도 젊은 층에 아주 뜨겁고 인기가 있어서 웬만한 신학자라도 공개적으로 손대기를 피하는 문제를 과감히 비판하기도 했다.


저자의 이 책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은 한국교회의 가장 예민하고도 아픈 부분에 대해 실명을 거론하며 분석하고 비판한다. 사실 이런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해 손쉬운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손쉬운 비판이라 함은 비판을 하더라도 이미 사람들에게 돌을 맞을 대로 맞았거나 아직도 맞고 있는 이들을 향한 비판이다. 이런 경우는 이미 공공연한 비판이기에 별반 색다를 것도 없고 문제되지도 않는다. 손해볼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에 나름 본을 보이고 있는 분들이나 교회들에 화살을 돌리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은 엄청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것을 의식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진단하고 있다. 만일 저자가 단순한 비판과 비난을 하였다면 그의 비판은 무의미하거나 교회를 죽이고자 하는 공격밖에는 안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문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분석을 내놓으면서 나름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떤 의사가 진단을 정확하게 내리지만 정작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기를 거부한다면 그 의사는 결코 나의 문제에 도움이 될 수는 없다. 진정 상대를 사랑하는 이는 어떻게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함께 하는 자여야 한다. 비록 그 해결책이 온전할 수는 없어도 원론적이고 피상적인 해결책을 넘어 구체적으로 제시하려 노력할 때 조금씩이라도 회생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비판은 날카로워도 해결책은 정통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교회갱신과 부흥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이 교회에 대한 진단을 그럴듯하게 제시하다가도 정작 그 해결책은 어떤 프로그램이나 겉의 틀만 손대는 제안을 하곤 한다. 마치 차 엔진이 망가졌는데 차 외관을 도색하고 에어컨을 교체하는 어리석은 이들과 같다. 그러나 저자는 보다 본질적으로 다가가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이미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에서도 나타났지만 성령의 주관하심을 강하게 이야기하고 말씀과 기도 및 성도의 깊은 교제를 이야기한다. 너무 단순해 보이면서도 정답을 이야기한다.


또한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회자를 제대로 길러낼 수 있도록 목회자의 소명과 신학교 등에 대한 비판과 해결책도 이야기한다. 더불어 저자는 거의 절반이 넘는 분량을 목회자의 설교분석에 집중한다. 물론 교회 갱신을 위해 목회자의 설교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방법론을 정용섭 목사의 책들만을 중심으로만 분석한 것은 아쉽고 불균형적으로 보인다. 그가 정용섭 목사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도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책만을 대상으로 설교를 분석하는 것은 설교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는 아닌 듯싶다. 물론 정용섭 목사만큼 최근 설교자들을 연속적으로 분석해낸 이도 드물뿐더러 일부 분석한 저자들도 비판보다는 대부분 칭찬과 장점에 치중해있으며 비판하더라도 약간의 장식용 같은 비판은 비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의 저자에만 의지하여 그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저자 자신이 지적하듯 정용섭 목사의 신학적 잣대를 지적한 것은 저자의 정용섭의 설교비평에 대한 중요하고 뛰어난 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저자의 이 책은 한국교회를 반성하는 데에 가장 모범적인 진단은 아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진단과 짚고 넘어가야 할 많은 이슈들을 제시하고 또 적절한 처방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저자에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도 부분적으로 지적하였고 또 지엽적일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불편한 문제들이 있다. 사실 이제 지적하고자하는 것은, 필자 자신도 껄끄럽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집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거론해 본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두루뭉술한 비판은 두루뭉술한 반론을 낳거나 반론 자체가 애매할 수 있다. 예리한 비판이 있을 때에 예리한 반론이 나올 수 있고 예리한 반론은 예리한 비판을 한 이도 아프게 할 수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러한 비판을 한 이도 그것이 비난이 아니라면 받아야 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필자도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한 가지 반론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은 저자가 예로 든 것이고 이 책의 본질은 아닐 수도 있지만 결국 제대로 된 분석을 위해서는 사실관계나 비판은 좀 더 적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거론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4인방에 대한 비판은 상당수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틀린 점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교회 상황에서 그들이 행한 것을 지금의 교회갱신의 잣대로 일률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제국의 초가집은 70년대의 눈으로 보면 새마을 운동의 대상인 집이 되지만, 이렇게 개선된 70년대의 집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낡고 추례한 집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분들은 50~60년대의 한국교회의 상당한 문제들에 도전했고 비판을 넘어 그들 스스로 변화를 이루어낸 분들이다. 그렇다면 그 공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이찬수 목사님이 과연 옥한흠 목사님이 없었다면 태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또 지금의 사랑의 교회 문제는 제자훈련의 실패라기보다는제자훈련이 온전했다는 것이 아니라- 후임목사 선정의 실패이고, 이후 그 상황에서 지금까지 이루어져왔던 제자훈련의 토대가 십여년 동안 천천히 붕괴되어지고 왜곡된 상황 속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사랑의 교회가 대형화되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사랑의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달리 각 소그룹을 통해 상당히 깊은 교제가 이루어져왔고 성도들의 은사를 활용하기 위해 애써왔던 것도 사실이다. 사랑의 교회가 예배출석 인원에 비해 등록과 소그룹 출석이 저조했던 것은 그 제자의 기준을 높게 잡음으로 오는 문제도 컸다고 본다. 물론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월요일 아침의 강단이나 일상의 영성이란 표현으로 지적하듯이, 삶속에서의 신앙이 지금의 기준에서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4인방의 토대가 없었다면 기윤실이나 기독교 공정선거 감시단, 기독교남북나눔운동과 같은 활동과 각 직장인 선교 등의 토대가 형성되었을까 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문제는 이 토대 위에서 우리가 새롭게 더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그들의 과오만을 지적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 사랑의 교회 사태나 대형교회의 문제는 저자가 지적하듯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대형교회의 이슈에 대해 좀 더 세밀한 부분 하나를 지적하고자 한다. 저자는 홍정길 목사님을 다른 4인방 목사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성을 두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비판을 가한다. 한 예로서 홍정길 목사님이 모 방송매체에서 자신의 목회는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저자의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그 문제는 홍정길 목사님의 반성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의 문제를 선배 목회자로서 책임을 감수하고 자신의 죄로 짊어지는 회개로 보아야 한다.


저자는 홍정길 목사님에 대해 분립을 여러 차례 시도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좋은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이찬수 목사님에 대해서는 그의 시도가 참신하고 우호적이다. 그러나 저자의 비판은 이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못한 듯싶다(미리 전제할 것은 필자의 저자에 대한 비판이 홍정길 목사님이나 이찬수 목사님에 대한 비판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두 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고 있고 설교나 목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있다. 단지 저자의 이 두 분에 대한 비판과 태도에 대한 아쉬움임을 미리 전언하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홍정길 목사님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비판은 복음주의 4인방을 비판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교회 규모가 작은 홍정길 목사님을 도매급으로 비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남서울 교회와 남서울 은혜교회에 대한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보았을 때, 홍 목사님을 제외한 나머지 세 교회의 교회 규모는 결코 비슷하지가 않다. 작게는 몇 배, 크게는 10배 전후 정도의 차이가 난다. 물론 수천 명도 대형교회이긴 하지만 몇 만 명의 교회들과 동일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더구나 참신하다고 예로 든 분당우리 교회가 10.10.10 운동을 전개하면서 장기적으로 교회를 10개 정도로 분립한다고 했을 때, 10개로 교회를 분립해도 그 규모가 남서울 은혜교회 규모보다 조금 작은 규모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분립을 해도 저자가 대형교회로 치부하는 남서울 은혜교회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홍정길 목사님은 남서울 교회와 남서울 은혜교회를 담임하면서 교회건물을 짓지 않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남서울 교회가 교회건물을 신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 고등학교 강당을 빌리려는 노력을 수년간 해오다가 막판에 재벌이 그 학교를 인수하는 문제로 밀알학교를 짓게 되었고, 그 마저도 교회소유가 아니라 단지 수십 년간 학교를 빌려 교회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건물만이 아니라 분립에 있어서도 남서울 교회 초창기 때 당시 모 부교역자가 적지 않은 성도를 데리고 교회를 개척할 때도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감수하여 수백 명이 나가는 것을 인정했고, 남서울 교회와 남서울 은혜교회에서 부교역자들이 평균 수십 명의 교인을 데리고 개척할 때 교인들이 좇아나갈 것을 장려하고 지원했던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그렇게 개척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홍정길 목사님의 본을 따라 대형교회로 나아가는 것을 피하고 작은 교회를 지향했고 심지어 일부 교회는 교회분립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목사들은 교회가 너무 커져가는 모습이 있자 후임을 정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 목사들도 있다.


그리고 그중 여러 교회들과 목회자는 지금 한국교계에서 건강한 목회를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에도 관여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저자가 말하듯 일상의 영성을 실천하고자 힘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홍정길 목사님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일부 받아들일 점은 있지만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비쳐진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심도 있게 파고드는 저자가 이 문제만큼은 적절하지 못함은 유감이다.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은 긍정적으로 부각하면서 객관적으로 다루었어야 했다.


다른 사인방 중의 하나로서 하용조 목사님의 온누리 교회는 타교회 대학청년부를 지원하기 위해 본 교회의 대학청년부원을 일 년 이상 파송하여 수십 명 또는 백 명이 넘는 인원을 사역자와 더불어 어려운 교회에 보내는 일을 제도적으로 지원했고 그 교회에 정착하도록 돕는 일을 행하기도 했다. 그러한 방법론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그러한 방법의 발전된 형태가 분당우리 교회의 10.10.10 운동에서 있었던 분당의 미자립 또는 연약한 교회에 성도를 일 년간 파송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일에 은연중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또 중고등 학교의 강당을 빌림으로써 교회건축에 대한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을 피하는 문제도 주님의 교회, 남서울 은혜교회, 세대로 교회 등의 영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이찬수 목사님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진실함을 안다. 그분의 겸손과 정직을 안다. 그보다는 저자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존세대의 목회를 벗어나고자 힘썼던 그들의 분투를 너무 폄하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있으며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고와 시험지가 있기에 지금의 차세대 목회자들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이 싹틀 수 있는 토대가 된 사실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홍정길 목사님의 지금의 결과는 대형교회를 피하고자 했던 나름의 노력이 맺은 결과들이고, 이찬수 목사님은 앞에 분들을 토대로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결과들이다. 두 분 다 한국교회에 귀중한 분들이다- 다른 사인방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이다. 선배의 공과를 돌아볼 때 그 뒤를 잇는 분들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발전적일 수 있다.


홍정길 목사님이 자신의 목회를 패배라 말한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내 자신도 그렇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지적하기엔 내가 얼마나 불량 목사인줄 안다. 비판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고름과 염증 투성이에 악취가 나는 한국교회를 우리 자신이 끌어안고 보듬을 때 진정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책은 귀하다. 한국교회를 돌아보는 값지고 귀한 진단이다. 그리고 저자의 책에 대해 불편한 이야기를 한 것은 내 무지와 오독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비판이 저자의 책의 값어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세우는 것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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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 소개   저자 임영수는 1941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연세대 연합신학원을 수료한 후 스위스 융 연구소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폴 투르니에 박사와는 융 연구소에 있을 당시 직접 만나 깊은 교유(交遊)를 나누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락교회, 주님의 교회에서 목회하였으며 지금은 개신교 영성공동체인 모새골을 섬기고 있다. 2003년 1월에 ‘모새골’(‘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의 줄임말) 사역을 시작하였다.임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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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인문학> 뒤집어 읽기 <예수 인문학> 뒤집어 읽기
예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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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열   <예수 인문학>은 표절논란의 중심이 된 지은이가 자신의 심정을 직간접으로 표현한 서문으로 인해 이미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책을 펴낸 곳 역시도 파란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처럼 이런 저런 이유들로 <예수인문학>은 그야말로 화제였다. 자칫 마케팅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그만큼 많았다.   서문이란 것이 대체로 작위적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도취적 용단(?)을 미화하는 내용 일색이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분노 모드의 온건한 작동으로 보인다...
사회적 저항과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교회를 꿈꾸며 사회적 저항과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교회를 꿈꾸며
한국기독교 흑역사
강성호/짓다/방영민 편집위원


성경에 보면 모든 권세는 하늘로부터 주어진다는 말씀이 있다. 그러면 독재정권과 악한 정부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기에 우리는 피해를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무조건 그 체제에 순종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은 숨겨진 뜻과 드러난 뜻이 있는데 이런 경우 우리는 정부와 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열매들과 삶을 보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불의한 세력에 동조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기득권을 확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삶의 모든 국면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세우는 성경적 비전 삶의 모든 국면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세우는 성경적 비전
세상을 뒤집는 기독교
브라이언 왈쉬/새물결플러스/송광택 편집고문


저자는 먼저 현대문화가 들려주는 ‘진보’에 대한 신화를 지적한다. 이 진보 신화는 현대문화, 특별히 서구문화에 내재하는 ‘종교’라고 말한다. “이 진보라는 신화는 교과서에 은밀히 녹아 있고, 광고 속에 묘사되고 있으며, 도심의 고층 빌딩에 우뚝 솟아 있으며, 대학 강단에서 전파되며, 정당의 공약으로 선전되고 있으며, 드라마와 뉴스에 의해 친절하게 연출되고 있다.”(19쪽) 이 진보라는 신화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우리의 직장생활은 과학지상주의, 기술지상주의, 경제지상주의라는 세 가지 신을 섬긴다. 그리고 가능한 한 ...
환영보다는 거절을 양쪽에서 받을 가능성이 높은 책 환영보다는 거절을 양쪽에서 받을 가능성이 높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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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권의 책   한국적 상황에서는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며 토론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영역들이 있다. 아무리 합리적인 의견을 내어도 상대의 의견을 한쪽으로 규정하고 그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향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가장 핫한 것이 바로 이 동성애의 문제일 것이다.   최근에는 퀴어 퍼레이드로 인해 토론을 넘어 물리적인 대결의 현상마저 나타났고 양쪽은 서로를 용서 받지 못할 최악의 죄인, 또는 호모포비아로 규정하고 혐오하는 모습들이 벌어졌었다,      예전에 존 스토...
서평을 쓰기 싫은 책, 서평을 쓸 수 없는 책 서평을 쓰기 싫은 책, 서평을 쓸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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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싫은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이 서평을 쓰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평을 쓰기에는 내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이 글은 서평은 아니다. 그보다는 굳이 이 글의 성격을 이야기한다면 나의 변명문이라고 해야 할까? 그 주변적 이야기라고나 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 있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순수하게 재미 자체를-재미이건 기분전환이건―위해서이거나, 아니면 지식습득을 위해서이거나―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주요 영역이건 지엽적 영역이건 간에 내겐 이런 지...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창비/문양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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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리다 길을 잃은 설교자들에게 열심히 달리다 길을 잃은 설교자들에게
설교학-복음 중심적 설교의 설계와 전달
줄리어스 킴/부흥과개혁사/조영민 편집위원


매주 설교하는 사람이 되면, 자동으로 설교를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설교를 못하는 이유는 설교할 만한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설교를 매 주 몇 편씩 하는 자리에 서게 되니, ‘설교가 무엇인지’,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인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커진다. 하면 할수록 내가 하고 있는 설교의 행위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위험한 것 같다. 굳어진 나의 잘못된 습관들을 전혀 문제라고 여기...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
전사자숭배
조지 L. 모스/오윤성/문학동네/방영민 편집위원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여 적에게 큰 피해와 함께 공포를 불러일으킨 특공대가 있으니 가미가제(신풍神風) 특공대이다. 그 이름답게 그 옛날 신풍이 불어서 일본을 보호해 주었듯이 일본을 보호하고 지키는 인간무기가 되어라는 신적인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이 전쟁 막바지에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비열한 방법이고 실제 이것으로 꽃다운 나이에 젊은 청년들이 적함을 향해 폭탄으로 날아갔다.   가미가제는 성지황순(誠至皇殉)이라 하여 천황이 원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바쳐 이루리라는 마음으...
당신에게 기독교 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에게 기독교 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성서유니온/송광택 편집고문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의 구성 요소들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의 각 요소들을 받아들이려면 그것이 속한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이런 큰 그림을 보게하는 데 이바지한 분들이 있다. 그들은 20세기의 위대한 평신도 신학자 세 명인데, G.K. 체스터턴, C.S, 루이스, 도로시 세이어스(Dorothy L. Sayers)가 그들이다.   이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놀랍도록 잘 포착했고, 그것을 힘이 넘치는 글, 기억에 남을 이야기, 생생한 비유를 통해 일상생활과 잘 연결시켜 ...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의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의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환영과 거절사이에서
스탠리 그렌츠/새물결플러스/박예찬


얼마 전 서울에서 퀴어축제가 열렸다. 얼마 전 미국의 한 게이 바에서는 총기 난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동성애가 큰 이슈거리가 되고 그에 따라 오늘 날 많은 교회들의 영적 전쟁 대상은 동성애로 삼고 있는 듯하다. 강단에서는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서는 안 된다”는 등의 말이 수시로 언급되고, 기도 시간에는 동성애라는 사단의 전략을 무너뜨려 달라는 기도제목에 회중들이 아멘으로 긍정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이런 동성애 정죄를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북씽크/송광택 편집고문


“우선 제 일급의 책을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읽을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말이다.   소로는 “우리가 이왕 글자를 배운 이상 문학에서의 최고의 작품을 읽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고전이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세월의 마모에서 초연한 고전은 그것 자체로써 벌써 무게와 기품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이론보다 사상의 힘으로 버티어온 지혜의 책들이다.   고전은 인류의 가장 고귀한...
기쁨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다 기쁨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다
누가 내 기쁨을 훔쳐갔을까?
산드라 스틴/서진희/베드로서원/김정완 편집위원


성경 말씀에 따르면 기쁨은 본원적으로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기쁨은 그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쉽게 양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자주 기쁨의 자리에 두려움, 걱정, 좌절 등 부정적인 태도들을 가볍게 허용한다. 그 결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좌절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온당한 걸까?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신 존재로 창조했다.(창세기 1:31) 창조 목적대로라면 우린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늘 기뻐하며 만족스럽게 살게 되...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박영돈/IVP/문양호 편집위원


“네가 말 돌리고 내가 말 돌리면 서로 딴 이야기가 되잖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대학교 때 친한 친구랑 서로 말하기가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말 돌리다가 친구가 답답해서 한 이야기였다.그런 것 같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아프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대화가 된다. 서로 안다는 이름하에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사가 “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갑상선 암이든, 위암이든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하고,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할 때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
내 영혼의 등불이 되는 신앙의 초석 내 영혼의 등불이 되는 신앙의 초석
칼빈의 기독교 강요 신학
데이비드 홀/나용화/개혁주의신학사/김재윤 명예편집위원


한국  개혁주의신학사(P&R)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무게감 있는 신학 저서들은 탁월한 가치를 지니는 귀한 책들이다. 교회사에서 가장 탁월한 신학자이자 설교자로 손꼽히는 존 칼빈이 기독교 강요 초판을 저술한 것은 그의 나이 26세였다.   서구 개혁 교회는 보편적으로 30대 초반에 담임 목회를 시작한다. 칼빈은 병약한 사람이었으나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에 전 생애를 드렸다. 칼빈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실상 칼빈은 인간미를 갖춘 따뜻한 사람이었다.   칼빈은 기독교가 이상한 ...
동성애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모색의 길을 나서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모색의 길을 나서다
환영과 거절사이에서
스텐리 그렌츠/김대중/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퀴어축제가 서울역 광장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더 크게 더 과감하게 열렸다. 그들이 하는 성행위 묘사와 춤과 퍼포먼스를 보면 속이 불편할 정도로 문란하고 노골적이고 퇴폐적이다. 민주주의와 다원화된 사회에서 자신들의 소리와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할 수 있다고 얼마든지 인정이 되나 꼭 그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야 하는지 묻고 싶고 오히려 그런 인권을 가장한 음란한 방법이 그들에게 손해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이에 질세라 일부 기독교단체에서는 축제 반대편에서 전시도 아닌...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이민아/이후/김정완 편집위원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며 대상물에 대한 여하한 해석에 반대한 수전 손택의 다분히 논쟁적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2004년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뒤로 그의 책을 다시 잡기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다. 타인의 고통마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화의 파괴적 양상과 기형적 몰골을 예리하게 비판한 그 책은 어처구니없게도 문장의 호응관계와 의미를 거듭...
다시 교회를 소망하며 다시 교회를 소망하며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박영돈/IVP/조영민 편집위원


저자의 전 작품과 조각글들을 여러 번 접한 적이 있었다. 깊이 있는 사유와 미려한 문장, 그리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의 선명한 표현이 좋았다. 그러던 중에 저자가 수년 전에 쓴 이 책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저자는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그 문제점과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들을 이 책을 통해 전한다. 내용에 공감이 갔고, 저자의 독특한 위치가 이 책의 내용에 생명력을 주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단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특히 성령론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특이한 것은 그가 교수인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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