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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길르앗의 유향은 유효한가?

크리스찬북뉴스 | 2016.05.30 11:06
길르앗의 유향은 유효한가? 길리아드/매릴린 로빈슨/마로니에 북스/문양호 편집위원

 아직 목회의 길을 들어서기 전 청년 때의 일이었다.

 

청년부에서 영적회복에 관계된 교재를 담당목사님이 택해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교재의 핵심구절 중 하나가 예레미야 8:2246:11의 길르앗의 유향이었다. 교재의 저자는 당시의 길르앗의 유향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였는데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과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들이 길르앗의 유향을 통해 치유 받듯 우리도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한다는 논조였다.

 

그런데 당시 대학부를 돕느라 청년부의 조장모임에만 참관하던 나는 그 교재를 보면서 한 가지 찜찜함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치유 받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고 예레미야에서 이야기하는 길르앗의 유향이 치료제라는 것도 동의하지만 문제는 예레미야의 논조는 환자가 그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길르앗의 유향이 있음에도 나오지 않고 치료받지 않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심각한 타락과 죄의 상태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음으로 그들은 치료받을 수 없는 절망적 상태를 예레미야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소망이 아니라 절망을 나타내기에 교재에서 긍정적 이미지로 본 구절을 해석하고 중심구절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나는 본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이나 소그룹에서는 그러한 교재를 사용해도 별반 문제없지만 몇 백 명 되는 청년부에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까하는 찜찜함이었다. 교재로는 은혜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해석상의 문제가 있을 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적용인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조장모임 때 조를 인도하는 엘더에게 질문했다가 간접적으로 조장모임과 청년부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그 문제를 다루시며 야단치신 아픈 추억이 내겐 있다.

 

매릴린 로빈슨이 쓴 길리아드는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 있는 길리아드라는 지방을 이야기하지만 은유적으로 예레미야서의 길르앗을 이야기한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이 소설에 대한 짧은 언급을 하는 것을 통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고, 2013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더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목사인 주인공은 아내 사후 홀로 오랫동안 지내다가 늙은 나이에 우연히 젊은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 후 어린 아들을 얻게 되는데, 소설은 목사가 이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글들을 모아놓은 형식을 띄었다. 주인공은 그 소설 속에서 대대로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그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면서 목회자로서의 삶을 잔잔히 그려낸다. 책 중반이 넘어서기까지 중심적인 이야기를 그려내지 않는 듯해서 독자를 좀 당황시키는 듯하지만 이후 소설은 그때까지 조금씩 조각조각 던져놓았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꿰어 잇는다. 목사였지만 남북전쟁 때 참전해 부상을 입기도 한 할아버지와 전통적이기에 무신론자가 된 아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 배경을 그려 나간다. 특히 친구의 아들은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일종의 돌아온 탕자로서 이야기에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존이 회개하는 아들로서 왔는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길리아드로 왔는지를 의문스럽게 이야기를 펼쳐간다.

 

책의 후반으로 달려가면서 그전까지는 그저 주변이야기에 지나지 않던 존의 이야기는 소설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 존의 이야기는 길르앗의 유향 앞에서 서있는 한 남자의 고민이다. 문제는 그 길르앗의 향유가 존에게 치료제가 되느냐의 문제이다.

 

앞서 청년 때 나의 생각은 지금도 그리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길르앗의 유향은 병든 자에게는 희망이 됨은 맞았다. 단지 이스라엘은 그 치료제인 유향 앞으로 나아오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절망이다. 지금도 이런 모습을 본다.

 

내 주변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소망이고 구원임을 알면서도 그분께 나아오지 않는 이들을 본다. ‘그래, 그래야지하면서도 그들은 주저한다. 그들은 상황 때문에 환경 때문에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두려움을 가지기도 한다. 마치 환자가 자기 상처에 대한 수치심으로 의사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의사의 진단으로 불치병이라고 사형선고라도 내려 질 것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는 그 길르앗의 유향 근처에 맴도는 두 명의 사람, 에드워드와 존이 등장한다.

 

한 명은 화자인 목사의 형인 에드워드는 목회자 가정 속에서 자라나 누구보다 성경에 대해 잘 알지만 무신론의 길을 들어선다. 그의 아버지를 만나러 왔을 때 예의상의 식사기도마저도 거부하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탈바꿈한다. 그는 길르앗의 유향을 알면서도 오지 않는 이다.

 

반면에 목사의 친구인 보턴의 아들인 존은 다르다. 그의 아버지 보턴이 친구인 목사의 이름을 넣어 짓기까지 한 존이었고 그의 아버지도 목사였지만 어릴 적부터 비열한 행동을 반복했던 그는 결국 안 좋은 환경의 어린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아기는 결국 죽고만다-그의 부모와 누이에게 고통을 주고 만다. 말년에 아버지를 다시 찾아오지만 자신의 사정을 아버지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하고 아버지의 친구인 목사에게 자신의 사정을 고백한다. 그것은 흑인여자와의 결혼과 자녀였다-당시는 일부 주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금지되었던 시대다. 비록 노예매매법 철폐를 위해 목사의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부상까지 입었을 정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더구나 그의 부양가족을 책임질 수 없어서 아버지를 찾아왔지만 아버지에게 충격을 줄 수 없어 결국 다시 고향을 떠나는 존. 그는 길르앗의 유향이 자신에게 구원임을 알지만 그 구원으로 나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절망만은 아니다. 그의 고백 이전 목사와의 대화는 존의 중심에 있는 영적 갈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목사는 존의 비열했던 과거와 그에 대한 조심성으로 존의 영적 갈망에 거리를 두곤 한다. 비록 존은 떠나가지만 그에겐 길르앗의 유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지금은 떠나가지만 다시 돌아오고 싶은 갈망을 보인다.

 

지금 내 주변에도 그런 갈망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목말라 나아오다가도 문을 열어 주면 주저하고 다시 뒷걸음치는 이들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그들을 기다린다. 더 늦지 않기를...

 

길르앗의 유향이 그들에게 소망이 될지, 아니면 절망이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결국 그들의 선택과 결단일 뿐이다.

 

추신

 

기독교 관련 소설은 우리주변에 꽤 있다. 길르아드를 읽으면서 두서없지만 대충 기독교 관련소설을 간략히 생각나는 대로 훑어보며 분류해보고 싶다. 기독교 소설이라 하지 않고 기독교 관련 소설이라 함은 기독교의 중심에 서있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아주 반기독교적 소설도 있고 그저 소재와 흥미로만 다룬 것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독교 관련 소설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문렬의 사람의 아들은 비교종교학을 넘나들며 기독교 역사의 화두 같은 예정과 자유의지, 구원에 대한 문제를 건드린다. 일종의 구도자의 몸부림을 보여주고 초판본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다시 기독교로 귀의하긴 하지만 기독교적 관심이 있는 이가 던지는 기독교적 화두를 보여준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성격은 다르지만 김성동이 만다라로 불교의 진리탐구적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조성기의 라하트 하헤렙야훼의 밤연작시리즈처럼 자신의 신앙간증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낮과 밤을 그리는 소설도 있다.

 

김성일의 소설들은 감명을 주는 기독교 소설이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적 교파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조심히 읽을 필요도 있을 듯싶다.

 

오두막갈림길의 저자인 윌리엄 폴 영처럼 소설의 형식은 갖추었지만 인간의 영혼을 후벼 파며 메스를 들이대는 변증적 소설도 있다. 반드시 읽기를 바라는 강추의 소설이긴 하지만 단단히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있는 좋은 소설이다.

 

그에 반해 단순히 기독교를 소재로 사용하여 반 기독교적인 소설을 그려내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같은 소설도 있다. 그는 철저하게 대중적인 차원으로 접근할 뿐 문학성으로나 기독교적 진지성도 없는-반기독교적 진지성도 없는-싸구려 소설이다.

 

차라리 만화이긴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댄 브라운의 소설처럼 비기독교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댄브라운보다 훨씬 진지하고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면이 있다. 물론 이런 책은 조심성을 가지고 보아야 할 책이다. 그에 반해 모세를 다룬 리들리 스코트의 영화-소설은 아니지만-는 아슬아슬하면서도 기독교적 고민과 새로운 이해와 감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 반해 기독교면이 상당히 있고 성경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니코츠 카잔자키스의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 성 프란시스코이나 파울로 코엘류의 다섯번째 산-다섯번째 산은 파울로 코엘류의 다른 책과는 상당히 다르고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고 어떤 면에서 성경에 대한 해석과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는 면이 있다. 분류로 니코츠카잔자키스와 같은 계열에 넣었지만 이 책 자체보다는 코엘류의 다른 책들로 인해 이쪽에 편의상 구분한다-은 신앙의 영역을 지나치게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앞서 다루었던 메릴린 로빈슨의 길리아드는 순수문학의 흐름을 지키면서도 기독교 환경과 문화-특히 목회자의 삶에 대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중요한 주제에 대한 사색을 하게 해준다. 카톨릭 쪽에서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신부의 일기도 순수문학 쪽이면서 신부의 고민과 세계를 보여준다.

 

조금 더 기독교 울타리를 벗어나고 대중적이긴 하지만,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성채도 신앙의 중심적 마음을 건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매릴린 로빈슨

 

1947년 미국 아이다호주 샌드포인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브라운여자대학의 전신인 펨브로크대학과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1980년에 발표한 데뷔작 하우스키핑(Housekeeping)으로 퓰리처상 소설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펜/헤밍웨이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005년에 도리스 레싱의 황금노트북, 이언 매큐언의 속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등과 나란히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로 꼽혔다. 이후 20여 년 만인 2004년에 두 번째 소설 길리아드(Gilead)를 발표해 200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과 2005년 퓰리처상 수상의 잇단 영예를 안았으며, 2008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Home)으로 제14회 오렌지문학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거머쥐었다. 데뷔 이래 근 30년간 단 세 편의 소설을 발표한 과작(寡作)의 작가이지만 작품 발표 때마다 독보적인 작가 정신과 기예로 호평과 사랑을 받는 가운데, 인문학 연구를 병행하여 논픽션 저술로 모국(Mother Country)』 『아담의 조국(The Death of Adam)』 『정신의 부재(Absense of Mind)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1년 현재 아이오와작가협회에서 미래의 작가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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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설교하는 사람이 되면, 자동으로 설교를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설교를 못하는 이유는 설교할 만한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설교를 매 주 몇 편씩 하는 자리에 서게 되니, ‘설교가 무엇인지’,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인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커진다. 하면 할수록 내가 하고 있는 설교의 행위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위험한 것 같다. 굳어진 나의 잘못된 습관들을 전혀 문제라고 여기...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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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기독교 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에게 기독교 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성서유니온/송광택 편집고문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스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의 구성 요소들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의 각 요소들을 받아들이려면 그것이 속한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이런 큰 그림을 보게하는 데 이바지한 분들이 있다. 그들은 20세기의 위대한 평신도 신학자 세 명인데, G.K. 체스터턴, C.S, 루이스, 도로시 세이어스(Dorothy L. Sayers)가 그들이다.   이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놀랍도록 잘 포착했고, 그것을 힘이 넘치는 글, 기억에 남을 이야기, 생생한 비유를 통해 일상생활과 잘 연결시켜 ...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의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의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환영과 거절사이에서
스탠리 그렌츠/새물결플러스/박예찬


얼마 전 서울에서 퀴어축제가 열렸다. 얼마 전 미국의 한 게이 바에서는 총기 난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동성애가 큰 이슈거리가 되고 그에 따라 오늘 날 많은 교회들의 영적 전쟁 대상은 동성애로 삼고 있는 듯하다. 강단에서는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서는 안 된다”는 등의 말이 수시로 언급되고, 기도 시간에는 동성애라는 사단의 전략을 무너뜨려 달라는 기도제목에 회중들이 아멘으로 긍정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이런 동성애 정죄를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기적의 고전 독서법
김병완/북씽크/송광택 편집고문


“우선 제 일급의 책을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읽을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말이다.   소로는 “우리가 이왕 글자를 배운 이상 문학에서의 최고의 작품을 읽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고전이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세월의 마모에서 초연한 고전은 그것 자체로써 벌써 무게와 기품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이론보다 사상의 힘으로 버티어온 지혜의 책들이다.   고전은 인류의 가장 고귀한...
기쁨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다 기쁨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다
누가 내 기쁨을 훔쳐갔을까?
산드라 스틴/서진희/베드로서원/김정완 편집위원


성경 말씀에 따르면 기쁨은 본원적으로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기쁨은 그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쉽게 양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자주 기쁨의 자리에 두려움, 걱정, 좌절 등 부정적인 태도들을 가볍게 허용한다. 그 결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좌절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온당한 걸까?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신 존재로 창조했다.(창세기 1:31) 창조 목적대로라면 우린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늘 기뻐하며 만족스럽게 살게 되...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박영돈/IVP/문양호 편집위원


“네가 말 돌리고 내가 말 돌리면 서로 딴 이야기가 되잖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대학교 때 친한 친구랑 서로 말하기가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말 돌리다가 친구가 답답해서 한 이야기였다.그런 것 같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아프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대화가 된다. 서로 안다는 이름하에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사가 “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갑상선 암이든, 위암이든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하고,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할 때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
내 영혼의 등불이 되는 신앙의 초석 내 영혼의 등불이 되는 신앙의 초석
칼빈의 기독교 강요 신학
데이비드 홀/나용화/개혁주의신학사/김재윤 명예편집위원


한국  개혁주의신학사(P&R)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무게감 있는 신학 저서들은 탁월한 가치를 지니는 귀한 책들이다. 교회사에서 가장 탁월한 신학자이자 설교자로 손꼽히는 존 칼빈이 기독교 강요 초판을 저술한 것은 그의 나이 26세였다.   서구 개혁 교회는 보편적으로 30대 초반에 담임 목회를 시작한다. 칼빈은 병약한 사람이었으나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에 전 생애를 드렸다. 칼빈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실상 칼빈은 인간미를 갖춘 따뜻한 사람이었다.   칼빈은 기독교가 이상한 ...
동성애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모색의 길을 나서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모색의 길을 나서다
환영과 거절사이에서
스텐리 그렌츠/김대중/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퀴어축제가 서울역 광장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더 크게 더 과감하게 열렸다. 그들이 하는 성행위 묘사와 춤과 퍼포먼스를 보면 속이 불편할 정도로 문란하고 노골적이고 퇴폐적이다. 민주주의와 다원화된 사회에서 자신들의 소리와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할 수 있다고 얼마든지 인정이 되나 꼭 그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야 하는지 묻고 싶고 오히려 그런 인권을 가장한 음란한 방법이 그들에게 손해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이에 질세라 일부 기독교단체에서는 축제 반대편에서 전시도 아닌...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이민아/이후/김정완 편집위원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며 대상물에 대한 여하한 해석에 반대한 수전 손택의 다분히 논쟁적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2004년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뒤로 그의 책을 다시 잡기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다. 타인의 고통마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화의 파괴적 양상과 기형적 몰골을 예리하게 비판한 그 책은 어처구니없게도 문장의 호응관계와 의미를 거듭...
다시 교회를 소망하며 다시 교회를 소망하며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박영돈/IVP/조영민 편집위원


저자의 전 작품과 조각글들을 여러 번 접한 적이 있었다. 깊이 있는 사유와 미려한 문장, 그리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의 선명한 표현이 좋았다. 그러던 중에 저자가 수년 전에 쓴 이 책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저자는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그 문제점과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들을 이 책을 통해 전한다. 내용에 공감이 갔고, 저자의 독특한 위치가 이 책의 내용에 생명력을 주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단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특히 성령론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특이한 것은 그가 교수인 동시...
정신질환에 당황하지 않으시려면 정신질환에 당황하지 않으시려면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박한선, 최정원/에이도스/문양호 편집위원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삶에 떡이 불필요하거나 떡을 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목사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먹는 떡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목사가 성도들의 떡, 곧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씀을 제대로 삶에 적용시켜 전할 수가 없다. 이것은 목회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nbs...
성경 세계로 들어가는 고고학이라는 문을 열며 성경 세계로 들어가는 고고학이라는 문을 열며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임미영/CLC/조영민 편집위원


어릴 적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를 보며 고고학에 대한 꿈을 꿨었다. 그리고 유사한 영화와 이야기를 읽으며 역사 속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의 실재함의 증거물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성경 속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지만 동시에 ‘정말 이런 이야기들의 근거가 있을까? 이것이 정말 역사 속에 일어난 일들이라면 그것에 대한 증거들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 후 만나게 된 성서 고고학과 관련된 글들을 접하면서 그러한 고민들에 대한 답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한 문화와 배경에 대한 지...
예배의 중심은 다름 아닌 설교다 예배의 중심은 다름 아닌 설교다
개혁주의 예배학
데릭 토마스 외/P&R/김재윤 명예편집위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예배의 중심은 다름 아닌 설교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예배를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듣지 못할 때 영혼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 된다.   그래서 설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퍼킨스는 참된 설교자가 욥기 말씀을 근거로 천 명 중의 한 명을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다고 말했다. 퍼킨스가 회심하기 전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달랠 때 퍼킨스에게 보낸다고 말할 정도로 퍼킨스가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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