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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수 인문학> 뒤집어 읽기

이성호 | 2016.07.08 23:41
<예수 인문학> 뒤집어 읽기 예수 인문학/차정식/새물결플러스/이성호 편집위원

예열

 

<예수 인문학>은 표절논란의 중심이 된 지은이가 자신의 심정을 직간접으로 표현한 서문으로 인해 이미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책을 펴낸 곳 역시도 파란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처럼 이런 저런 이유들로 <예수인문학>은 그야말로 화제였다. 자칫 마케팅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그만큼 많았다.

 

서문이란 것이 대체로 작위적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도취적 용단(?)을 미화하는 내용 일색이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분노 모드의 온건한 작동으로 보인다. "언제나 냄비처럼 들끓는 내 분요한 조국의 한 후미진 곳에서...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서푼어치의 지적인 양심을 걸고..." 이런 문장도 불편을 가속했지만 마치 당신 스스로를 대가로 설정한 듯한, 쌍팔년도식 올드한 문장과 오만함이 더 거슬렸고 한편으론 촌스러웠다. "나는 지적 식민지로서...그저 서구학자들이 해온 방식을 기계적으로 모방하고 그것을 절대 불변의 기준인냥 맹종하는 학문적 풍토를 안타까워하며 거기에 조그만 균열을 내고자 자유분방하게 내 사색의 결을 따라가고 싶었다...나는 어설픈 흉내 내기로서의 공부가 한없이 역겨웠고...잡다한 각주를 다는 식의 학문이 불쌍했다." 이쯤 되면 동서양의 그것들을 통달한 초인의 질타성 발언 같은, 21세기 한국 지성계를 겨냥하는 이분의 요즘 내면이 여실히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서문은 이렇게 종결된다. "훠이 물렀거라! 예수의 본심과 무관한 잡것들아!" 어림짐작으로도 당사자로 지목되는 분들은 좀 불쾌하지 않을까.

 

<예수 인문학>은 제목과는 달리 산문형식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이다. 서평으로 남기기도 그런, 읽기도 쓰기도 쉬운 책이다. 애초에 출판사와 이걸 약속했고 출판사는 이 책을 기대하여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출판을 감행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들이 가시지 않아 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저런 연유로 <예수 인문학>을 삐딱하게 읽기로 한다.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저자가 주장하는 사라진 전통이라 통분해 마지않는 예수의 모습이란 넓은 의미의 인문적 공부를 폭넓게 체득한 공부와 해석을 중시한 구도자적 현자로서의 예수전승이라 한다. 문장도 분석도 관점도 진부한 지적이다. <하나님 나라의 향연>의 동일한 저자로 믿기 어려울 만큼 옥시덴탈리즘적인 발상과 통찰이다. 이전에도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려는 경향이 보였는데 결국 이런 결과를 스스로 야기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서글펐다. 이만큼 불을 지폈으니 이제 삐딱하게 본문으로 들어가자.

 

융해열

 

<예수인문학>은 총 50장에 이르는 소주제들을 간략하게 엮었다. 마태복음 중심의 적용은 34장에서 그치지만 복음서 읽기는 선별적으로 계속된다. 요상한 한자조합인 교학상장(敎學相長)과 점입가경을 붙인 1장만은 예외이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敎學相長과 마찬가지로 공부법을 물어오는 학생으로부터 조성된 생각을 덤덤히 써 내려간 글이다. 이 틈새는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와 '' 역시 어리석은 길에서 혼미하게 헤맸다는 독백이다. 2장은 예수의 소년시절을 통해서 듣는 마음, 심지어 침묵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태도를 노래한다. 3장에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다.’는 마태복음의 모티프에서 비롯된 눈의 중요성이란 보는 기능이라기보다 시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가 숭상하는 것이 빛이 아니라 어둠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지독한 회의와 눈빛 훈련”).

 

단순성의 복합적 차원’(4)에 따르면, “너희가 어린아이들과 같지 아니하면마가복음 1014절을 심각하게 숙고했다는 저자는 마침내 어린이다움’(childness)의 온전한 말뜻을 깨우쳤음을 선언한다. 우리는 예수의 영성을 닮아 그렇게 천진성과 단순성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갈 존재임을 밝힌다. 단순하지만 복잡하다는 이유로 어린아이의 가난으로 회기하는 무의 상태,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전복에 근거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어린이다움으로의 전환이 아무리 지적인 섬세함을 무시하지 않는 단순함을 표방하지만 당시 사회의 가장 약하고 무가치한 존재의 표상으로서 어린아이같이에서 깨우친 다른 무엇이 이전 해석들과 다를 바 없어 밋밋하다.

 

지독한 회의와 눈빛훈련(3), 단순성의 복잡한 차원(4)에서도 보듯 제목을 그리 기호화하는 이유가 뭘까? 심오한 무엇으로 봐달라는 건지, 단지 그 같은 꾸밈의 일상을 이룬 건지 모를 일이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려는 여전한 경향과 이 과신은 뭘까?

 

삭개오의 후일담”(5)에 이르면 저자의 난독증(?)이 재발되는 듯하다. 진골 신학자의 속살이 여간 껄끄럽지 않다. ‘삭개오를 향한 예수의 구원 선포가 성급하지 않았을까로 발생한 그의 의문은 삭개오를 향한 예수의 너무 이른 선포, 그가 열매를 맺는지를 보지 않는 신중치 못함, 삭개오의 선제적 미끼일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지은이는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예수는 냉철한 판단보다는 미완료의 희망을 거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예수식의 담백한 낙관주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예수는 삭개오뿐 아니라 인간을 외적 표피로 파악하시는 분이 아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왔을 때 이미 그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다가온 것을 간파하신 분이다. 저자는 왜 예수의 구원 선포를 낙관주의로 부각시킬까? 그리스도 예수를 인간 예수로 환원하는 자기 관점의 투영은 아닐는지. 식상하다.

 

온전함에 이르는 공부”(6)는 온전과 완전에 대한 지난 오해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온전해지려면 먼저 우리의 상용 어휘에 박혀있는 고정관념을 탈색시켜야 한다....이는 그 결과로 생기는 존재론적 균열을 미봉하면서...그 연상 작용 속에 온전함은 불온한 완벽주의에 저당 잡혀 버린다.” 간증이나 설교집을 제쳐두고 신학 책을 구입할 정도의 독자라면 익히 알만한 논지를 에둘러 표현하면 이런 묘사에 환호하는 독자가 여직 남아 있을까.


저자는 용서이야기를 두 장에 걸쳐 다뤘다. 우리 자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이므로 하찮은 생명에게까지 공손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자들의 질문과 주기도문으로 풀었다.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자세는 극진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용서를 구하는 자만이 아니라 반대인 자라도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라는 지점에서 관대와 긍휼의 예수의 심성은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바른 말이다. 그런데 자꾸 저자 자신을 변호하는 글로 보인다. 공손히 용서를 비는 모습은 차체에 두고라도 잡것들아가 환청처럼 들리는 통에 아무리 신묘막측한 변을 하더라도 수긍이 쉽지 않았다.

 

주기도문 묵상(914) 이후, 보신주의와 낙관주의에 실종된 구함주어짐에 대한 관점과 언어와 분수 공부”(17)와 같이 절제로서의 분수, 즉 각자 제 분수를 파악하라는 저자가 보내는 추파가 은근하다. 언어에 관한 예수의 근원적 요지라는 것인데 아니요의 사용(5:37) 용례가 깜냥껏 시시비비에 대한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와전된 것이라 한다. 그런 강박적 사태는 화끈하게 소신껏 발언함으로 일어나는 사안이다. 언제라도 자기확증적 언어는 하나님이라도 된 오만방자한 폐쇄적 도그마에 붙잡힌 신성모독의 언어로 나아가는 단계라는 것인데, 비굴한 언어와 동일하게 자기 확신의 언어 역시 자기 성찰을 생략한 맹세의 사생아다. 저자의 거듭되는 요점은 자기 분수를 알라였다.

 

<예수 인문학>인생 공부 예찬이라 할 수 있다. 연출된 경건이 그렇고(18) 신중한 처신이 그러하며(19) 상호주의가 그러하다(20). 열매 전성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개신교인들에게 바라는 당부(21-23) 역시 수직적인 어조인 것을 제외하면, 위장술로 양의 옷을 입은 자들의 행함 매너리즘을 바라보며 진정성의 선행을 권하는 무색무취의 교훈을 만날 수 있다.

 

24장의 기동력과 결단력5장에서 밝혔듯이 인간 예수에 집착하는 지은이의 초점이 유랑 선교자들에게로 옮겨진 듯해 보인다. 부름을 받아 떠난 제자들인 길 위에 존재자들의 재해석을 통해 예수는 유랑 선교에 가장 중요한 자구책으로 숙식을 의탁할 후원자 확보를 꼽았다고 전한다. 10:11-14민첩한 기동력을 명시한 것이며, 신속한 기동력과 결단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구체적 방어기재로 제시한다. 그런데 위의 진술 어디에도 하나님만을 바라는 제자, 주의 예비하심을 믿고 떠나는 복음 전도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전제가 지워져 있다. 단지 인생 경험이다. 저자에게 반사된 성경이란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지혜를 지목하는 것은 아니겠지, 자기 당착에 빠진 제자들이 떠올랐다.


정치판은 물론이고 교회도 사람을 모아야 한다는 인력과 척력”(25),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전적인 의존과 비굴하고 체면구기는 무소유가 뒤엉킨 무소유의 참뜻”(26), 혈통가족에 대한 책임은 일차원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고차원적이라는 가족과 함께 가족을 넘어”(27), 뱀처럼 비둘기처럼(10:16)의 모순어법 속에 드러난 예수의 상황논리인 뱀과 비둘기의 아이러니”(28), 이처럼 알레고리 수준의 봉합을 넘어섰음을 공개하는 것과는 달리, 유대 무화과나무의 특성을 간과하여 예수를 기행과 폭언의 주체로 단언한 일탈과 폭력의 아이러니”(29), 천국의 비밀코드인 성장과 도약”(30),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는 종교적 상투어를 해부한 자율성의 원리”(31)에서 확인되는 것은 언어는 고결하고 풍성한데 새로운 제안은 없는 반복이 이 산문집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선, “종말론적 판단 유보”(32)는 심각했다. “세상을 하직하는 인생들을 향해 하나님이 꼭 행하신다는 게 심판이라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인생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종말론적 판단유보다.” 연역적 구성이 주는 논점과 쟁점도 그러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비견하는 자기 견해에 대한 확신이 거북했다. ‘성급한 결론에 매달리지 말 것하면 될 것을 굳이 종말론적 판단 유보라 하여 혼란을 가중시킬 필요가 있을까? 대단치 않은 것을 대단하듯이 들어줘야 하는 어느 고관대작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그 불편함. 가라지를 뽑지 말라하신 예수의 의도 역시(13:27-29), ‘성급함의 제지라기보다는 문맥 그대로 알곡의 보호가 더 적절치 않았을까.

 

저자가 일관되게 다루는 핵심 주제는 공부이다. 공부는 상상력이라는 동력을 제공받으나 상상력이 불가능의 벽을 뚫어내는 현장에서 종종 부대끼는 문제가 우발성이다. 그래도 우발성이 은총의 분깃으로 발현되는 앎의 영역에는 온기가 감돈다. 그러므로 밭에 감추인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농부가 얻는 기쁨은 일확천금이 아니라 진리를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었다(13:34). 이렇듯 인생도 공부도 발견의 기쁨과 함께 개화한다(“우발성의 은총”). 33장은 불시에 무릎을 세우게 하는 우아한 치환이었다.

 

정감법의 대화편에는 주 텍스트였던 마태복음이 제외되고 마가복음이 등장했다. 부자청년과의 대화는 이미 마태복음서에도 언급되는 것이었지만 굳이 마가복음을 올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선한 선생에 있었다. 마태는 이 기사를 옮기면서 '선한 일'로 바꾼 것이 분명했다. “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는 예수의 대답이 그 점을 증명한다. 나는 선함’(good)에 관한 특별한 관점을 기대했지만 저자는 예의 바른 청년을 부각할 심산이었을 뿐이다. 화제는 영생으로 가는 행함으로 옮겨졌다. 저자는 청년의 경우에서와 같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살피는 여유(?)가 공부의 진전을 가져온다는 것으로 이 본문을 차용했다. 부자였기 때문에 보다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가지 않았을까?

 

마지막 장, “죽음과 부대끼기에 다다랐을 때의 심정은 절박했다. 숙성된 무엇을 반드시 찾으리라.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읽고 들은 각주들의 나열만 보였다. 예수가 남긴 제3의 유산, 겟세마네 기도가 '생명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죽고 싶지 않은 인간의 생태적 욕망에서였을까?(p. 313) 저자가 바라보는 예수의 죽음과 기도의 부조화가 두드러진다. 예수는 어떤 고통을 호소했을까.



응고열

 

복음서를 모티프로 한 묵상글 <예수 인문학>은 일관된 흐름이 있다. 공부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며 얼마나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발적 물음과 자기의 대답을 깨알 같은 비범한 문장으로 채웠다. 구성을 보면 글이 먼저였고 복음서의 구절들이 덧입혀진 듯하나 상관없다. 저자도 괘념치 않고 자신이 원하는 요지로 해석했다. 그야말로 본문이 먼저인 경우는 아마도 37장부터 일 것이다. 곧 파탄에 이를 부실한 성공을 부여잡으면서도 주야장창 하나님을 불러대는 애물단지를 끌어안은 사람들을 바라본 계산하는 믿음, 포기하는 용기”(14:28)39돈에 대한 지혜등이다.

 

애초부터 <예수 인문학>은 내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고의로 삐딱하게 뒤집어 읽었으나 어찌 일개 목사가 대 교수의 글과 심정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냥 내 방식대로 글을 탈탈 털기도 하고, 부러 비비 꼬기도 하였다. <예수 인문학>은 읽음과 동시에 잊혀지는 책이다. 이 책처럼 예열에 뜸을 들인 적도 없었지만 읽기 무섭게 빠르게 식은 기억은 별로 없다. 무슨 변고냐 하면 여기에 있는 묵상들은 오랜 시간동안 점진적으로 분량이 채워진 것이 틀림없다. 저자는 단순하고 익숙한 내용을 다듬어 빛나는 문체로 바꾸는 작업에 열중했던 것 같다.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려는 강박이 아직 남아있는지 정말로 글을 잘 쓰려는지, 좋은 글을 쓰려면 수사의 기교나 변화무쌍한 용어의 발굴이 아니라 전하려는 알맹이가 새로워야 하겠는데 전자는 풍성한데 후자는 밋밋하다. “아하!” 무릎을 치거나 가슴이 벌렁거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떨리는 그런 기대는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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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하나님 초월적인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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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 토저/규장/강도헌


토저 목사님은 무디성경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세계적인 목회자이다. 오래 전부터 토저 목사님의 책을 접하였고, 작년 11월부터 지난 7월까지 필자가 섬기고 있는 수요예배 교재로 본서를 성도들과 함께 공부하였다. 본서를 교재로 택한 이유는 학술적 책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토저 목사님이 이성 중심적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체험적 신앙의 균형을 추구한 목회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저 목사님의 책 ‘하나님’을 주교재로 택하였다.   본서를 매주 수요일마다 공부하면서 느낀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서평의 제목처럼 토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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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열정과 예리한 지성의 산물, 하지만 절제된 열정과 예리한 지성의 산물, 하지만
톰 라이트의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톰 라이트/최현만/에클레시아북스/이종수 편집위원


E. P. 샌더스를 필두로 한 새 관점은 신학계의 뜨거운 감자이다. 게다가 톰 라이트는 현재 새 관점의 백기사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톰 라이트를 바라보는 복음주의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필자는 톰 라이트의 신학을 나름대로 이렇게 분석해보았다.   1. 새 관점, 과연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까?   우선 새 관점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E. P. 샌더스의 말을 들어보자.   “바울 당시 유대교는 행위로 말미암은 의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적인 종교라는 관점이 당연시되어 왔는데...
30여년 바울 연구 상황의 현주소 30여년 바울 연구 상황의 현주소
바울연구입문
데이비드 호렐/이승호/CLC/고경태 편집위원


데이비드 호렐은 영국 캠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엑시터(Exeter) 대학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연구입문]은 호렐의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Paul 3th(2015년)을 번역한 것이다. 1판은 2000년, 2판 2006년 그리고 3판은 2015년에 출판되었다. 꾸준하게 읽히고 있는 책으로, 3판을 CLC와 이승호 교수가 출판해서 소개했다. [바울연구입문]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 신학을 위한 기본 교과서”라고 정의하고 싶다.   최근 30여년에 걸쳐 펼쳐진 바울...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데이비드 플랫
카운터컬처/최종훈/두란노/방영민 편집위원


세상의 문화와 세속적인 가치관이 이 사회와 인간을 주도하고 있다. 물질주의, 상대주의, 탈권위주의, 자유주의, 성공주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 등이 이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는 정신이다. 이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썩어져 없어지는 것들이고 피차 서로 멸망하는 지름길로 인도한다. 어느 것 하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거나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는 보편적인 정신이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기함몰적이며 자아를 숭배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런 정신과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복음은 무엇인가? 언제부턴가 복음도 성공과 부귀와 영...
하나님께로 가는 거침없는 믿음의 길 하나님께로 가는 거침없는 믿음의 길
신뢰
브레넌 매닝/윤종석/복있는사람/채천석 편집위원


브레넌 매닝은 가톨릭 가정에 태어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가 되었으나 예수님을 깊이 체험한 후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수도원을 나와 가톨릭과 개신교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폭넓은 강연과 학술로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가이다. 하지만 북미에 그의 책이 소개될 당시에 국내 어느 출판사도 이 작가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의 책이 소개된 것은 거의 근래의 일이다. 그가 북미에서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에 그의 책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것은 국내의 작가 편중 현상이 한몫을 했다.   그런 ...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불신지옥이라는 용어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불신지옥이라는 용어
불신지옥을 넘어서
서성광/홍성사/박예찬


한국 기독교의 주요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은 지하철에서, 주일 날 설교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의 생각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에 가는가? 만약 그렇다면 평생을 선하게 살았지만 영접하지 않고 죽은 사람도, 세월호와 같이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 역시 안 믿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이런 교리 속에서는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기 미심쩍어지고 불편해지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예수 천국, 불신 ...
고인이 된 그의 신앙과 삶을 떠올리며 고인이 된 그의 신앙과 삶을 떠올리며
대천덕신부의 하나님나라
대천덕/CUP/방영민 편집위원


 대천덕 신부님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을 덮으며 내가 처음 들었던 생각은 불가능이라는 것이다. 독자로서 그렇게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이미 이 나라와 사회가 자본주의에 깊이 뿌리박힌 것을 넘어 그 이념에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치에 있어서 사람보다 위에 있고 종교보다 강한 이 맘몬이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이미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가 수립되어 시행되려고 했으나 지주들과 재벌들의 뇌물을 먹은 주요...
책을 덮고 사람공부 좀 합시다 책을 덮고 사람공부 좀 합시다
공부의 시대: 정혜신의 사람공부
정혜신/창비/문양호 편집위원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목회 신학에 대해 강의를 듣다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무리인 내용들이 있다.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와 변수들을 고려한다면 너무 뜬구름 잡는 듯한 내용일 때가 있다. 당시 나 자신도 전도사로서의 목회경험은 그리 길지 않았기는 했지만 평신도로서 후배들을 양육하고 상담하던 시간이 십년을 넘어섰고 이미 목회에 대한 소명과는 상관없이 제자훈련과 양육, 목회자들의 현장목회에 대한 책을 적잖이 읽었던 상황이기에 몇몇 교수님들의 교수내용은 지나치게 이론 중심이고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느낌...
역사의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구원의 복음 역사의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구원의 복음
예수와 하나님나라
김균진/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에 ‘기억의 정치학’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공식기억과 민중의 대중기억이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역사를 다시 쓰는 기법이다. 이 방법으로 역사를 보게 되면 그동안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았던 해석과 방법들 이면에 있는 새로운 현장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와 지평을 넓혀준다. 뿐만 아니라 승리주의적이고 결과론적으로 받아들어졌던 역사를 균형감 있고 정확하게 보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처음부터 완성된 과거는 없다. 이미 다 결정되어져 화석화된 것처럼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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