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고난이란 무엇인가
고난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하나님은 악을 통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미학적 신정론과 하나님은 환란을 통해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한다는 교육적 신정론이 있다. 그리고 그 고난에 대한 책임이 죄를 지은 인간에게 있다는 주장과 하나님에게는 피조물이 항변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논리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전통적인 신정론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오래된 방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충분한 설명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신정론이라는 말은 약 삼백년 전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고안해 낸 용어로 하나님의 정당성에 대한 변호이다.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여 무죄한 사람들이 죽고 악인들이 득세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변호가 필요하다. 아우슈비츠와 킬링필드 그리고 1980년 광주와 세월호와 같은 사건들도 하나님의 설명이 필요하다. 하나님께는 이런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에 대한 변호가 필요하고 그것을 담당하고 나선 것이 신정론이다.
어디 하나님의 변호가 필요한 영역이 이뿐이겠는가?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이나 아직도 우리로 하여금 소름끼치게 하는 수많은 비극들과 전쟁들은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항변하게 만든다. 더구나 내전이나 테러가 일어나는 지역에서 겁에 질린 어린아이, 죽어가는 생명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하나님은 저들을 보호하시지 않고 무엇하시나 하는 내 안에 탄식이 절로 생기게 된다. 또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과 억울함 앞에 우리는 수많은 질문과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고난을 인생 최대의 질문으로 삼는다. 사람마다 일생을 걸고 씨름해야 되는 질문이 있는데 저자에게는 그 주제가 고난이다.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다. 그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신비를 가지고 하나님께 승부를 걸다니.... 인생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하기 힘든 과제를 하나님께 던지고 있다. 마치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듯 저자는 그렇게 하나님과 힘을 겨누고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고 의심하고 항변하듯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다 바쳐서 항의하고 눈물을 쏟고 답을 듣고 싶어한다.
책은 하박국을 가지고 저자가 자신의 삶을 녹여서 고난을 하소연하며 하나님께 질문하고 답을 구한다. 이미 8년 전에 초판이 나왔지만 다시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며 거의 전면 수정하여 나왔다. 다시 쓰는 것은 다시 사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전의 흉터를 보면 악몽이 떠오르지만 이번엔 좀 더 높은 위치에서 인생과 고난을 해석해가고 있다. 또한 욥과 예레미야와 요나와 함께 고난의 의미를 해결해가고 씨에스 루이스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와 스캇펙과 해롤드 쿠쉬너 등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하며 자신의 신정론을 세워가고 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이 되었고 1부 “그대, 고난에 직면하거든”에서는 기독교는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생각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하는 종교이니 생각의 무능력에서 벗어나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고난 앞에 하나님께 질문하고 항의하고 직면하여 포용하라고 한다. 2장 “하나님, 침묵하시다”에서는 모든 고통에 대한 침묵과 모순과 갈등을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침묵하신 게 아니라 모든 고난의 현장에 눈물로 함께하고 계셨으며 오히려 우리가 어디 있었고 왜 침묵했는지 묻고 있다.
3부 “하박국, 하나님께 따지다”에서는 선한 사람에게 고난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한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귀한 진리를 드러내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저자가 새로운 전환점과 새로운 시각을 얻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난에 대한 논리적인 해답과 속 시원한 해결은 아니지만 고난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고난 자체가 축복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큰 그림과 맥락 속에서 고난을 이해하고 고난이 선이 되도록 창조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배운다. 고난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보게 된다. 수많은 악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도 죄를 의로도 역사하시고 악을 선으로도 바꾸시고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저자가 눈을 뜨고 하나님의 계획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4부 “하박국, 원수들과 더불어”에서 저자는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사는게 믿음이고 인내라고 한다. 이 인내는 신실함이며 이 과정가운데 자신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게 된다고 한다. 또한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지켜갈 것을 권한다. 5부 하박국, 하나님께 기도하다“에서는 기도는 기적이상의 능력이 있고 기도하는 자체가 희망이고 소망이며 기도가 나를 변화시키는 작은 씨앗이라고 한다.
“고통을 노래하다” 이것만큼 역설이 어디 있을까? 기쁨과 감사와 평화 가운데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고난 속에서 부르고 있다. 오히려 고난이라는 강이 흐르면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강이 되어서 고난을 건너라고 한다. 그렇다. 저자는 고난을 피하고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일체화 시킨다.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고난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믿음이 있다. 지난 15년의 고난의 흔적이 더 큰 강에도 뛰어드는 사람이 되게 하였다.
저자는 선지자 하박국이다. 묻고 따지고 응답받고 노래한다. 지금의 현실을 규정된 법칙처럼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어차피 고난 없는 인생이 없다면 그 불가피한 고난을 하나님께 질문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의 세계관으로 이해한다. 물이 바다를 덮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때까지 그 진리의 바다에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셨고 인간의 악 때문에 생긴 고난이지만 하나님 덕분에 이겼노라 송축한다.
매 주일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능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신과 우상처럼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전능일까? 지금까지 필자가 보았던 신정론에 관한 책과 저자의 책 그리고 나의 사역의 현장에서 고백하는 전능은 고난과 인생을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끌고 갈 때 해결된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십자가에서 풀어지는 것처럼 하박국에서 먼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고백도 십자가에서 풀어진다.
전통적으로 전능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고 현대인들의 욕망이 반영된 아이콘의 형태이고 인격이 결여된 전능이다. 그러나 진정한 전능은 예수님처럼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고 자기를 제한하고 비우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전능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 온전히 계시된 것처럼 그 전능은 인간이 가장 낮은 곳에도 함께하는 것이고 요나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는 자리까지도 함께하시는 전능이다.
또한 전능이라 하여 인격적 자유를 억압하고 권력을 휘두르는게 아니라 이 하나님의 전능은 자신의 본성과 성품과 질서에 따라 일하시는데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자궁에서 품듯이 그 고난에도 함께하는 것이다. 인생의 절망과 고난 앞에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고 돌보는 책임적인 힘이다. 비논리적이고 초자연적으로 고난을 제거하는게 아니라 아버지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책을 쓰며 현대의 문제점까지 포함시킨다. 세월호와 위안부와 같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으로 인해 희생당한 자들을 떠올리며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며 고통으로 드러난 부조리와 모순을 덮으면 안 된다고 한다. 더 노골적으로 세월호는 하나님이 죽인게 아니라 나라와 정책과 이 시대의 병든 가치관이 아이를 죽인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이런 폭력을 막역한 신의 이름으로 덮어버리는게 아니라 우리가 같이 아파하되 연대하고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야한다고 한다.
끝으로 기독교신앙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운명이라 체념하는 나약한 사유가 아니다. 오히려 하박국처럼 저자처럼 질문하고 수용하고 새로워지고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모순된 것은 고치고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부조리하고 어처구니없는 고난을 용인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나약한 사유가 아니다.
또한 신앙은 우리를 더욱 책임 있는 존재가 되게 하니 인간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진리를 이루게 한다. 비록 악이 창궐할지라도 그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니 성전에 계신 그분을 믿고 신뢰하며 타인의 아픔까지 참여하는 것이다. 성경의 뜻과 땅의 현실은 언제나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그 끝없는 변주가운데 가짜 소망을 버리고 참 소망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을 노래하는 역설이다. 이 변주와 역설을 보기 원하는 자들에게 저자를 대표하는 책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