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열정의 회복
열정의 회복
내가 알기로 한국교회는 1980년대 말부터 성경공부의 붐이 일어났고, 1990년대 초에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소개되면서 ‘제자’라는 단어는 한국교회의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당시 나도 다양한 성공공부 방법론들과 제자훈련의 기법들을 익히면서 희망찬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30대에 부목사가 되어 다양한 성경공부를 비롯하여 제자훈련반을 맡아서 인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10여 년 전에 개척한 작은 교회를 목회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들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중에 있다. 지금 내가 ‘제자훈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한국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기존의 제자훈련의 개념은 ‘영혼’의 관점이 아니라 ‘목회’적 관점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제자훈련’과 ‘그리스도인의 됨’의 의미를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대부터 약 15년 정도를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에 열정적으로 헌신하였다. 그러나 개척을 하면서 정말 ‘한 영혼’, ‘한 영혼’(일꾼은커녕 가족 외에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어쩌다 한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여도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예배당을 나가는 현상들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몇 년을 버티니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소위 귀신들렸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을 만나면서 목회적 관점(교회의 조직과 교리 중심)의 제자훈련의 방식과 그 영혼의 성장에 집중하고 그 영혼을 돌보는 ‘그리스도인의 됨(그 영혼의 상황과 그 사람이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의 방식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의 갈등을 거쳐 교회 성장보다는 한 영혼의 회복(전인격적 회복)과 성장을 먼저 살피는 ‘그리스도인 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어제 모 성도로부터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하소연을 들었다(이 성도는 그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 함께 일하는 다른 팀의 작업반장이 모 대형교회의 안수집사인데, 남의 공을 가로채고 중간에서 돈을 떼먹는 등의 일 뿐만 아니라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라면서 그 사람을 보면 자신도 교회에 다니기 싫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그 안수집사님이 다니는 교회는 제자훈련과 사역훈련까지 마쳐야 직분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소문이 나 있는 교회이다. 나는 그 성도가 받은 상처를 위로해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사역과 제자도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아무리 잘 알고 잘 믿고 있으며, 주일성수를 철저히 지키며, 십일조를 빠지지 않고 드리며,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마쳤다고 할지라도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목회적 관점의 제자훈련과 함께 그 영혼의 인격과 삶의 가치관을 다루는 그리스도인의 됨에 대한 고민과 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본서는 그리스도인의 ‘전도와 봉사’에 관한 앤드류 머리의 짧은 에세이 30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단순하고 쉬운 필체는 앤드류 머리의 특징으로서 편안히 읽혀지는데, 그럼에도 대부흥 전도 시대를 살았던 저자의 복음 전도에 대한 뜨거움은 옛 향수를 넘어 도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내용을 볼 때 ‘제자도’(제자도는 매우 중요하고도 복잡한 신학적 분야에 속한다)에 대한 내용보다는 ‘사역(전도와 봉사)’에 치중되어 있어서 원서의 “Working for God”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하였던 목회적 관점을 중심으로 쓰여진 전도와 봉사에 관한 에세이이다. 그럼에도 간간히 그리스도인 됨의 본질적 의미에서 사역의 중요성과 필연성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정체성이 담겨 있기도 하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았다(소명)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주의(notice)
이미 한국교회는 세속화의 길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기중심성’은 강단에서조차 보편화 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 예로 종종 교회의 사역조차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자기중심에서 성경이 해석되어짐)에서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데(그 대표적인 예가 교회성장주의이다. 교회성장주의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개 교회 성장에만 몰두함으로 실제로는 불신전도나 사회적 책임에 별 관심이 없는 자기교회 성장을 복음전파로 치환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 구원에 있어서도 구원에 대한 특권에만 관심이 있지, 구원받음으로 주어진 책임에는 관심이 없다), 즉 본서에 나오는 전도와 봉사를 예로 든다면 자기 교회만을 위한 전도, 자기 교회만을 위한 봉사가 이미 만연해 있다(하나님 나라에 속한 교회가 아니라 자기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즉, 세상에서 기업 간의 빈부 격차보다 교회간의 빈부 격차가 더 심한 시대가 되어 버렸고, 더욱이 교단은 상납비만 챙길 뿐 미자립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은 전무한 현실이며, 대형교회들은 성도들의 수평이동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그래서 그들은 설교와 목회시스템을 상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본다. 만약 그렇다면 이들은 주님의 사역이 아니라 자기의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서와 같은 책들이 많이 읽혀지기 전에 먼저 바르게 읽혀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전도와 봉사에 대한 중요성과 그것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있을 수 없으나, 그것의 적용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우선이 될 수도 있고 그와는 다르게 자기중심의 탐욕을 감추는 거짓된 명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역을 감당(영혼에 대한 식어버린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저자의 뜨거운 열정과 불을 우리에게 전이시키고 있다. 본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보았다. 우선 드는 생각은 ‘새벽기도’나 매일 묵상의 시간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매일 한 꼭지씩<3-5분> 읽고 묵상). 나는 본서를 통해 한국교회에 다시 영혼 구원(교회 성장이 아님)에 대한 열정이 회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