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신실한 하나님과 관계하는 백성의 제국에서의 삶
신실한 하나님과 관계하는 백성의 제국에서의 삶 신학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에 비해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신약성경에 비해 어려워서도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의 성취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구약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탁월한 구약성경의 해석자인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1933~)은 『예언자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통찰력 넘치는 성경해석을 통해 구약성경이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 가운데 놓여 있음을 기억하게 만든다. 더불어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는 『하나님, 이웃, 제국』을 통해 성경 본문(text)의 상황(context)은 '제국'의 맥락 가운데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제국'은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며, 약자의 부를 강자에게 몰아주고, 상품화 정책을 추구하며, 이러한 제도를 위해 언제든 모든 수위의 폭력을 즉시 집행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이러한 제국 한가운데서 '대항 텍스트'(countertext)로 존재함을 브루그만은 역설한다. 제국의 내러티브는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통제하지만, 대항 텍스트는 주류 텍스트를 전복하려 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감당한다. 여기서 저자는 언어유희를 통해 주류 텍스트를 전복(subversion)하는 하위 해석판(sub-version)이 대항 텍스트라고 표현한다.
구약성경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국 한가운데서 옛 이스라엘을 위한 '대항 텍스트'(countertext)가 되었다. 제국의 내러티브는 일상 속에 있는 상상력을 통제했지만 구약은 이에 맞서는 대안이 되었다. 이 대항 텍스트는 제국이 장악한 주류 텍스트를 전복(subversion) 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말해 '하위 해석판'(sub-version)이라고 볼 수 있다(19).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 해방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 하나님은 출애굽 내러티브, 광야 체류 내러티브, 시내산 언약 등을 통해 현실의 상황을 재해석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개입하신다. 우리는 제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저자는 호세아 2:2-23, 출애굽기 34:6-7, 예레미야 애가 3:20-22, 시편 85:10-13을 통해 정의와 은혜, 율법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장엄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신실함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이웃을 향해 나아감을 촉구한다. 더불어 이러한 관계성은 창조 세계의 회복과 관련되며, 모든 만물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정의는 모든 사람을 살리며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편만할 때 참된 정의가 드러난다. 저자는 이 장에서 '위로부터의 정의'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대조한다. '위로부터의 정의'는 '왕의 정의'로 축재를 일삼으며, 통제하는 정의다. 이는 서민들의 삶에는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제물 삼는다.
반면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하나님의 결단과 인간의 행함이 연대하는 자리이며, 성경은 그러한 이야기를 반복하여 우리에게 들려준다. 참된 정의는 고갈과 축재, 독점과 폭력과 대항하여 해방이 불러오는 풍요가 있다. 성경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만이 짧고 불행한 축재의 삶에 맞서는 대안임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한계를 초월하신다. '공통 신학'으로 대변되는 통제와 체제 정당화의 신학은 조건적인 면모를 곳곳에서 드러낸다. 만약 우리가 토라에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제재와 심판을 가하는 식이다. 하지만 구약의 하나님은 당대에 만연한 체제의 신념과 세계관을 뛰어넘는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신실하신 사랑을 보여주셨다.
율법에서 저자는 제국의 법과 야웨의 율법을 대조한다. 제국의 법은 절대적이다. 이 법은 고칠 수 없고 철회할 수 없다. 하지만 야웨의 토라는 고정되어있지 않다. 개방되어 있으며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위해 열려있다. 물론 하나님의 법 가운데에서도 고대 근동의 '공통 신학'적 요소가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율법은 그 긴장 가운데 궁극적으로 긍휼과 환대라는 회복적 정의와 함께 타자(이웃)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 들음으로 계속되는 제국주의(전체주의)의 유혹을 뿌리쳐야 할 것이다. 지속된 경청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어로 돌아선다. 그리하여 '이웃'을 향한 긍휼과 환대를 베푼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함없이 생동하시며 여전히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자세히 귀를 기울인다.
브루그만은 구약의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제국적 측면을 폭로하며, 그것과 반대되는 우리 삶의 가장 적실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이끌어낸다. 그의 성경 해석은 통찰력 있고, 필체는 생동감 넘치며, 적용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에서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세계관이 해석 과정에서 녹아들어있겠지만, 그는 끊임없이 성경 본문으로 돌아간다. 구약의 내러티브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면서도 꼼꼼하고 세세하게 본문의 의미를 분석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의 삶에 지금 현재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부차적이지만 책을 읽을 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편집과 번역의 질을 들 수 있다. 성서유니온의 책이야 믿고 읽을 수 있다. 편집의 질로 인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특별히 번역은 책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게 중요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번역의 질이 떨어지면 집중하여 읽기가 어렵다. 이 책의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 브루그만 특유의 문체와 느낌을 잘 살려낸 듯하다(며칠 전 읽었던 책은 매우 훌륭한 저자의 탁월한 내용이었는데, 읽는 내내 진도를 나가기 힘들 정도의 문체와 단어 선정이었다).
더불어 옮긴이의 적절한 해설은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 역주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해설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예를 들어, '감춰진 사본'이나 '빈곤과의 전쟁', '자신을 방어할 권리', '뉴 짐 크로우 법'에 대한 개념을 관심 있는 독자가 아니면 어떻게 알겠는가?)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설명한다.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