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진부할지 모르지만 정답일 수 있다
진부할지 모르지만 정답일수 있다
아마도 이 글을 쓰는 즈음에는 개봉했을 ‘반도’와 ‘부산행’ 감독인 연상호는 좀비영화로 주목받았지만 ‘부산행’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 또 다른 좀비영화 ‘서울역’이란 애니메이션을 감독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인 ‘돼지의 왕’과 ‘사이비’에서 이미 그의 실력을 보여주었던 연상호 감독은 ‘반도’와 ‘부산행’같은 대중적 접근보다는 삶과 인간성의 저열한 바닥을 ‘서울역’에서도 그려내었다(연상호는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에서도 더 극한 인간적 바닥을 담아내곤 한다). 아마도 애니메이션으로 ‘부산행’을 만들었다면 부산에서 터널을 통과하던 두 주인공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혹시라도 ‘부산행’을 재미있게 본 분이 그 기대로 ‘서울역’을 보는 분은 없길 바란다).
최근 연상호는 웹툰으로 ‘지옥’이란 작품을 ‘송곳’과 ‘습지생태보고서’의 작가인 최규석과 연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연상호의 ‘사이비’처럼 종교적 문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영적 존재를 통해 죽음에 대한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괴물들에 갈갈이 찢겨지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그들이 죄로 인해 심판받고 죽는 것이라며 신흥종교와 폭력집단이 사회를 장악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런 신흥종교의 주장과는 달리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아기조차 죽음에 대한 고지를 받는 일이 벌어지면서 과연 이 일은 왜 일어나는지 또 그러한 내용을 감추려는 일들이 벌어진다. 아직 연재중인 웹툰이라 어떻게 결론 날지는 알 수 없지만 연상호와 최규석이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그리 단순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할 듯 싶다.
블록버스터나 대중영화에서 악과 선은 쉽게 구분되곤 한다. 특히나 악인은 그에 상응하는 인과응보를 치르곤 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꼭 선하게 산다고 해서 지금의 삶에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고 말할수 없다. 선하게 살아도 교통사고는 일어날 수 있고 이런 코로나 팬더믹 속에서 코로나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은 왜 벌어질까? 또 이런 코로나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 나름의 노력은 기울여야 하겠지만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 확진자를 안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작은 실수로 갭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코로나에 노출될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걸리지 않은 이들보다 더 잘 못한 것이 많아서라고 말해야 할까? 무증상이긴 하지만 확진자인 어떤 사람이 남들보다 건강하여 자신은 걸린 지도 모르고 주변을 돌아다녀 감염시킨다면 그 사람이 재수가 좋아서 남들보다 잘 살아서 문제없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까? 코로나로 사망에 이른다면 코로나 초기 일부 목회자나 성도가 주장한 것처럼 우상숭배가 만연한 나라이거나 특정 이단이기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는 것은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것일 게다. 마치 욥에게 친구들이 같이 고통에 동참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을(욥기의 성경장수로 따진다면) 욥에게 마땅한 징벌을 받는다고 공격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런 실수들을 자주 해오곤 했다. 세월호 때, 메르스 때도 그랬다. 내 자신 메르스 때 그 확산이 S병원에서 크게 일어날 때 우연찮게 그곳에 갔었고 현재 내 주위에도 코로나로 고통을 받는 분이 계심에도 내가 메르스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내 도덕적 우위를 증거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팬데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장과 시대를 무시하지 않는 신학자는 여기에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어떤 때는 미숙하고 약간 모자라도 말이다. 물론 그것이 섣불리 강단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며 자신이 선지자인양 착각하는 것과는 구분해야겠지만....
이번에 나온 톰 라이트의 ‘하나님과 팬더믹: 코로나와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톰 라이트, 비아토르)은 이런 고민을 담는다. 부제에서 ’코로나와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이란 표현을 담았듯이 이것은 결론이 아니라 성찰이다.
존 스토트가 깊은 성경적 묵상과 명찰을 담은 책을 그의 서재에서 무수히 담아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많은 사회적 문제에 성경적 신학적 고찰을 내어놓았던 것처럼 톰 라이트도 그의 탁월하고 논쟁적 연구에 더해 이렇게 사회적 이슈를 성찰한 책도 내어놓는다. 코로나로 인한 문제는 사람들의 생사를 흔들어 놓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과 기반마저 휩쓰는 마치 쓰나미같은 아노미를 일으켰다. 내 옆에 있는 이의 존재만으로도 두려움을 가지거나 지금 이렇게 우리 삶을 흔드는 코로나는 왜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하는 고민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내 주변에 아는 이가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생사를 오고 가지 않더라도 이로 인해 직장과 학교 등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 속에서 이러한 고민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하고 왜 침묵하시는가 하는 질문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속에서 톰 라이트는 얇은 책자 속에서 그 고민을 담아낸다. 마치 교통사고가 나서 온 몸에 뼈가 부러지고 상처가 터진 환자를 어디에서부터 손대야 할지를 고민하는 환자처럼 어떻게 이 상황을 바라봐야 할지를, 또 신학자로서 성경은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지를 고민한다. 세상이 말하는 여러 가지 주장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성경을 통해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어떤 이들은 너무 배부르고 진부한 접근 아니냐 하겠지만...). 그래서 이런 일이 왜 우리에게 임하는지, 또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이 문제를 접근하시는지를 보게 한다.
특히 저자는 구약, 복음서, 신약성경으로 세 구분하며 성경적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복음서의 제목을 ‘예수님과 복음서’로 잡음으로써 예수님이 이러한 문제를 특히 나사로의 죽음 문제를 통해 인간의 고통 속에서 눈물 흘리신 사건을 통해 우리의 접근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신약성경이란 세 번째 성경적 접근을 통해 성경적 고찰을 완성해 간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나가야 할 자세와 희생을 말한다.
이 책은 짧지만 유익하다. 이 책 자체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온전한 답을 제시하거나 포스트 코로나를 전망하게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지금 이 상황을 대처하고 또 내 옆에 있는 이들과 이 사회를 도울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원론적인 이야기고 진부한 답변이라고 말하는 비평가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사를 풀려면 드라이버가 필요하듯 정직한 접근이 필요한 시대인 것은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