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도시는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준다. 그래서 시골이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화려한 꿈을 찾아서 도시로 몰려든다. 지금도 도시에 대한 환상은 여전하다. 이곳에 오면 성공할 것 같고 특별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도시라는 우상 또한 도시가 시민들에게 성공을 보장해주고 인생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친다. 이곳만큼 세련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곳은 없다. 모든 과학과 산업과 기술과 지성이 모여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른 교육과 복지가 편성되어서 삶이 윤택해지고 편리해진다. 이곳은 지상낙원이라 불릴 만큼 모든 것이 갖추어졌고 원하는 것을 다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도시의 실상은 어떠한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지만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어 움직인다. 사람들의 기본권과 생존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 같다. 신도시가 계속 개발은 되지만 도시의 영성은 고갈되는 것 같다.
이 책은 현대도시의 한계를 정확히 지적하고 새로운 도시로의 비전과 대안을 제시한다. 도시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서부터 사회과학과 인문학과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도시를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도시를 장악하는 정사와 권세가 사라지고 진정한 샬롬이 이루어지기까지 교회가 해야 할 역할도 요청한다. 필자는 이 한 권을 쓰기 위해 다양한 책과 논문을 섭렵한 저자의 노력과 수고가 대단해 보였다.
도시병
대표적인 도시의 문화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다. 도시는 자본의 통제를 받으며 움직인다. 사람들은 이 자본을 소비함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인한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비인간화와 비인격적인 사건들이 발생한다. 도시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자본이 넉넉한 사람이고 도시민의 모든 목표는 부유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 소유와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곳이 도시이다.
땅과 주택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한다. 그러나 공간도 가진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지 없는 자에게는 몸과 마음을 둘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 원하지만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일 뿐 없는 자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공적 공간 또한 모두에게 유익과 편리를 주기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이러한 도시의 삶은 인간을 메마르게 하고 고립되게 만든다. 사람은 관계적인 동물인데 자본이 목적이 된 인간에게 상대방은 협력과 배려의 대상이기보다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다. 사람은 영적인 피조물이라 영적인 쉼과 위로와 충전이 필요한데 숨 막히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안식을 누릴 수 없다. 속성으로 움직이는 곳에서 숙성되기는커녕 속성의 도구로 전락한 것 같다.
교회도 도시병
이러한 도시에 교회는 존재한다. 도시마다 수많은 편의점이 있어서 그 지역의 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의 삶의 리듬까지 재편성한다. 편의점이 사람들의 일상을 움직인다. 똑같은 지역에 비슷한 수의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지역 주민이 환영하고 칭찬하는 곳이 되어야한다. 지역의 유익과 공공선을 위해 협력하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와 가치는 편의점보다 미비하다. 영적인 구원선으로서의 고유한 역할까지 못하는 것 같다.
도시에서 눈물로 밥을 말아 먹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갈 곳이 교회가 되어야한다. 화려한 도시를 찾아 꿈꾸며 왔지만 패배와 절망을 안은 사람들이 소망을 기대하며 가야하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한다. 인생을 방황하는 이들이 방황을 접고 바른 방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기적의 장소이다. 온갖 상처와 찢어진 마음을 가진 자들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고 인생을 사랑하기로 다짐할 수 있는 곳이 은혜의 장소이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어떠한가? 도시 속에 존재하면서 세속교회가 된 듯하다. 세상의 논리와 방법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가르친다. 인생의 성공비법과 처세술을 성경으로 기가 막히게 전하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여 인생을 회개하는 것보다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예배와 기도의 모습은 욕망의 도가니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교회가 도시화를 막기보다 도시화된 교회를 본다.
도시는 타자를 위한 곳이다
솔직히 필자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도시’라는 것에 대한 저자의 넓고 깊은 연구를 나의 설익은 창조물로 대변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집중하며 밑줄 그어 나온 나의 결론을 말하라면 ‘도시는 타자를 위한 곳이다’라는 정의다. 인간은 도시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기를 바라고 심지어 하나님마저 자신을 위한 인생의 디딤돌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수만을 존재하지 않듯 도시 또한 부와 권력을 지닌 소수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에덴동산이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었지만 아담이 주인(하나님)이 되고자 했을 때 모든 관계가 파괴되고 동산에서 쫓겨나 자신의 힘으로 고달픈 삶을 산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사는 삶은 피를 흘리는 전쟁의 연속이고 경쟁과 복수의 악순환이다. 이러한 도시 속에 인간은 모두 자기가 주인이 되고자 하여 자기의 행복과 보호를 위해 자신의 성을 쌓고 벽을 세운다. 자기에게 피해와 손해가 오면 언제든 공격한다. 자기가 주인이라는 의식 자체가 모든 관계를 적대화하고 파괴한다.
이런 도시의식은 환대와 포용과는 거리가 멀고 타자를 적대시한다. 도시에는 예언적인 기능이 있어서 그래도 어느 공간은 신성하고 거룩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영적이고 관계적으로 살게 해야 하는데 과연 어느 장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가 도시는 나를 위한 곳이라고 주관화하며 사는데 도시는 타자를 위한 곳이라고 객관화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시민을 인간답고 존귀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너무 절실하다.
결론: 사랑은 방향을 바꾼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사랑의 힘은 내 마음과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성이 강하여 자기사랑을 목표로 한다. 인간의 사랑의 방향은 자기를 향하여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랑의 방향을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전환시키고 자기를 제일 마지막에 두는 것이다. 도시는 이미 기계화 과학화 되어서 첨단을 달리고 사람들은 인기와 명예와 부를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니 여기에 목매여 살고 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은 행복하지 않고 서로에게 가시가 되어 아프기만 하다. 도시는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 같지만 도시의 노예로 만든다. 더 치열하게 살고 더 노력하고 더 분투해야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채찍질 하지만 결국은 피만 흘러 괴물노예가 된다. 이러한 도시의 한복판에 교회는 존재한다. 교회는 도시민들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떤 소망을 주어야 하는가?
모두가 주인이 되기 위해서 자기사랑으로 가득한 자들에게 교회는 예언자가 되어야한다. 아프고 상한 자들에게는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어야 하고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는 회복의 장소가 되어야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교회는 잘못된 주인의식을 깨부수고 인간이 피조물임을 알게 해주는 곳이 되어 사랑의 방향을 바꾸는 곳이 되어야한다. 도시는 나를 위한 곳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곳, 우리의 사랑은 그들을 향해야 된다는 것을 도시 속에 교회는 외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