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서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어떻게 이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과연 교회가 존립할 수 있을지 아니면 어떻게 존립해야 될지를 고민하게 된다. 한국교회 초기에는 여러가지 기적과 신비한 능력을 나타내며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고 희망을 주었던 교회였는데 이제는 위로와 희망보다는 불쾌감과 절망감을 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가 공적인 삶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고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저자의 논리와 주장은 신학이 무엇을 의미하고 신학이라고 하는 것 또한 일상적이고 공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한다. 자신의 경험-보수적인 교단에서 자라 개인구원과 내면적인 복음에만 갇혔던 저자였는데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과 성경연구를 통해 사상과 지평을 넓힌 간증-은 독자에게 이해와 감동을 준다.
교회다움
필자는 생각하기를 현재 기독교가 갖추어야할 중요한 것은 ‘교회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에 남기는 서평이기에 독서를 근거로 말할 수 있는 교회다움은 ‘교회 밖에서의 거룩함’이다. 그동안 교회는 칭의를 강조해왔고 이 주제는 새관점학파와 논쟁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도식으로도 풀어졌다. 이것과 함께 성화 또한 중요한 주제로 가르쳐져 왔다.
이 두 주제는 동전의 양면으로서 분리될 수 없으며 바른 칭의는 바른 성화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의 성화는 내적인 혁신과 마음의 변화를 강조하는 좁은 거룩함으로 제한되었다. 하나님의 성화가 인간의 내면을 거듭나게 하는 혁명적인 사건이지만 성경은 마음의 변화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 잔존하는 죄와 싸우는 성화이지만 성경의 거룩함은 자기와의 싸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가 복음의 범위와 능력을 주관적으로만 접근하면 풍성한 의미를 놓치고 제한적으로 가르치게 된다. 또한 교회가 성장이라는 자기중심성만 추구하면 협력하고 연대해야 될 상대방을 적으로 여기게 된다. 실제 코로나를 겪으며 나타난 교회의 모습은 극단적이고 이기적이었으며 심지어 사회악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회의 생명과 질서와 타인의 존중을 상실한 공동체, 타인을 이기기 위한 집단처럼 보였다.
예수님이 꿈꾸는 기독교는 그런 집단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는 그런 공동체가 아닐 것이다. 창조론이나 동성애나 이슬람과 같이 민감한 주제에서도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고 정죄하고 차별하고 사탄으로 몰아가는 교회를 주님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입장을 성경을 따라 정리하되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며 더 좋은 길과 신학을 찾아가는 것이 복음의 정신이고 예수님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인 본성과 인간의 타락을 은혜와 복음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사회에서 혐오하는 공동체가 되어간다.
공공신학
공공신학이라는 것이 교회에 중요한 주제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더 연구되어 교회안에 깊이 자리잡아야 될 영역이라 생각한다. 교회는 구원의 은혜가 내면을 넘어 삶으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복음의 능력과 구원의 광대함을 가르쳐야한다. 자기의 성 안에 갇혀서 자신의 배만 채우고 행복을 누리지만 성 밖에 가난한 자들이 있다면 교회는 존재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고 사회에 무익한 집단이 될 것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구원을 위한 곳이고 복음의 능력으로 영혼에게 영생을 주는 곳이다. 그러나 이 능력은 인간의 내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금과 빛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역교회를 세우신 것은 지역을 구원하고 섬기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지역의 구성원들을 어떻게든 교회에 오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 지역을 더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 되게 하고 궁극적으로 정의로운 마을이 되게 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이전에는 지역교회가 어떻게 지역의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인가에 목적을 두었다면 이제는 교회의 목적이 달려져야한다. 어떻게 지역을 평등하고 정의롭고 살기 좋은 공간이 되게 할 것인가에 목적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공공신학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이 담긴 공동의 가치와 공동선과 공동체성을 띤 아젠다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신학이 아닐까. 자기의 배만 채우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의 배를 채워주는 교회말이다.
결론
교회다움을 전통적인 신학의 틀에서 십자가와 구원과 세례와 성찬 등으로 다양하게 말하며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신학은 이 시대의 문제와 아픔에 참여하고 함께 걸어야 하기에 이 시대를 분석하고 사람들의 신음도 들으며 모든 불의에서 구원하는 능력의 통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의 문제를 교회의 문제로 사람들의 고통을 교회의 고통으로 품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교회가 거대한 기업이 되어서 많은 사람을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밀알이 되길 원할 것이다.
성도는 내면의 거룩함을 이루어가지만 삶의 거룩함도 이루어 가야한다. 교회는 세상을 비추는 등불인데 교회의 내부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따뜻한 빛을 비추어야한다. 성도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학과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겨야한다. 성도의 믿음과 신앙은 교회에 많이 오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모두의 평안과 행복을 이루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공공신학이란 무엇인지? 필자도 아직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고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이다. 그러나 이 작은 책에 나오는 저자의 간증과 주장은 공공신학의 넓고 중요한 문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의 신앙의 목적과 관심을 전환할 수 있고 더 나은 성도가 되는 길로 인도한다. 본성상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신학도 충분히 이기적으로 할 수 있고 교회도 이기적으로 섬길 수 있기에 공공신학의 필요성이 요청된다. 더구나 시대가, 그리고 성경이 그것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