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미국 학자의 최근 저서
최근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일본 제국주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들을 모아 역사적으로 개괄하고 평가 정리한 책이 나왔다.
저자들은 국제관계학, 특별히, 아시아 관계 전문가들로서 오랫동안 이 분야를 연구하여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어떻게 2차 대전 당시 어떻게 아시아 여성들(심지어 일부 서구 여성들까지)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착취했는지에 대한 추적 보고서이다. 역사적으로 중립적 시각을 기반으로, 여성주의 및 인권유린의 관점에서 이 위안부 문제를 해석한다.
일제시대 위안부 동원의 역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로 남아 있다. 당사자들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하나 둘 유명을 달리하는 가운데 생생한 증언들을 쏟아냈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일본 제국주의 군부가 식민지 여성들에게 가한 성적 착취와 폭력에 대해서 제대로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
최근, 위안부를 창녀라고 언급하고 일제의 책임이라기보다 정당한 직업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한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교수는 미국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공식 직함은 '일본법 연구회 미쓰비시 교수'로서 일본 회사법과 법경제학이라고 한다.
그의 위안부 이해는 일본의 역사인식(특히 우익)과 맥이 닿아있고 심지어 한국 낙성대 연구소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 논의와 궤를 같이한다. 아직도 정의연과 날선각을 세우고 있는 본래 억압받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문제제기를 했던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의 책의 내용에도 위안부, 업자, 그리고 창녀 직업으로서의 위안부 이야기가 나온다.
위안부 이야기만 나오면, 한국인으로서 가지는 민족적 감정 때문에 기존에 가져온 선이해에 반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울컥하고 울분을 토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좀 더 정확히 짚고 넘어갈 것은 가고 역사적 책임과 사죄 및 미래 발전적 관계를 진정으로 바라는 상황에서는 양국 지식인들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3자인 미국에서 누군가 위안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과 분노는 일차적으로 한국의 역사학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의연(이전 정대협)이 위안부 역사 문제를 거의 독점해 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제까지 정부들은―좌파든 우파든―방향을 잡지 못하고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과의 협상에서 분노, 굴종, 파기, 대치의 극단적 선택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위안부 역사에 대한 한국 역사학회의 태만이 그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역사학회와 학자들이 제국주의 위안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정리해 놓았다면 최소한 정부의 위안부 대책에 중심은 잡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영어권의 학계에도 알려 일방적인 역사관에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었다(잘 알려진 바대로 영어권에서 일본과 일본역사에 대한 연구는 한국과 한국역사에 대한 연구보다 10배 이상 더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버드 법대 미츠비시 석좌 교수의 일본편을 드는 논문은 한국으로서는 결코 의문의 1패로만 보이지 않는다).
실상, 한국 내에서 발표되는 위안부 연구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다. 서현주가 쓴, "2006~2016년간 일본군'위안부' 연구의 성과와 전망" 라는 글에서 10년간 역사학자들이 쓴 위안부 관련 글은 15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 중에 6편만이 위안부 사실관계를 따지는 글이었고, 나머지는 서평과 사학사적 검토 등의 재확인뿐이었으니 부족의 반증이다. 반면, 인문학 관련 논문은 59편, 사회과학 관련 논문은 46편이었다. 위안부 논의가 여전히 인문학적 차원과 사회과학적 차원―즉 아직도 지적, 감상적 논의와 정치적 함의에 대한 논의―에 치중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역사학계에서 의미있는 역사적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나마 존재하는 학계의 기술에는 여전히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반론으로서 일본정부와 일본군의 책임을 확인하는 논의가 주도적이다. 정작, 위안부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나 입체적인 관점 등―일제시대 식민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자유와 책임의 범위와 한계―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본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제목이 "평화의 소녀상 정치학"이다. 미국 여러 주에 설치된 이 "공원 동상"(Park Statue)이 사실은 정치적인 프로파갠다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2. 한국인 주도―정의연이나 민간 위안부 단체―로 몰아붙이듯 세워진 동상이라는 점(다른 나라의 시민단체들은 이런 것을 감히 꿈도 못꾼다), 시종일관 일본제국주의의 문제만을 지적한다는 점(종합적인 역사적 관점은 배제하고 현재의 일본과 한국관계등을 배제한), 역사에 문외한인 미국인들에게 위안부가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노예화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는 점(결국 미국인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일본 혹은 남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문제) 등을 든다.
3. 한국의 위안부 논쟁을 다루는 9장에서 저자들은 한국의 위안부 논의의 "불협화음"(inconsistencies)을 지적한다. 역사수정주의적 우파들은 위안부 동원에 대한 일본정부의 강제는 없었다는 역사적 증거 부족을 주장하고, 위안부들의 일관되지 않은 증언들을 문제 삼고 있는데, 좌파들은 이것을 친일파적 자기합리화라고만 몰아부치는 통에 이 부분에 대한 한국 내부의 일관된 역사 해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이 오히려 위안부들의 역사적 상황―한국인 업자들의 주도적 책임, 위안부 여성들의 매춘굴에서의 좀 더 광범위한 역할, 제국주의에 협조함―을 좀 더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열 수도 있었겠다 한다.
4. 저자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세안 각국의 이해와 대응에 있어서 한국과 대만의 특별함을 언급한다. 그것은 이 두 나라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적극적 협조 때문이다. 다른 아세안 국가 중 특히 필리핀의 경우, 매우 극렬한 게릴라 투쟁이 일본군을 향해 계속되고 있었고, 필리핀 위안부들은 일본군에 의해 점령군 남자들에 의한 강간과 폭력이 자행된 대상들이었던 것이 여러 사료들을 통해 증명되는데 반해 한국과 대만의 위안부들은―그 모집과 위안부 활동에 있어서―일본제국의 일부처럼 협조하고 협력했다는 정황이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경제 사회적 상황으로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위안부에 종사하게 된 이들이 상당했고, 그들의 생활은 다른 이들에 비해 안정되었으며, 일본 군인들과의 결혼이 가능했으며, 심지어, 많은 위안소가 한국인 업자들에 의해 운영되었다는 점 등이 한국과 한국의 위안부들이 과연 희생자이기만 했는가 하는 역사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5. 저자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위안부 운영은 분명 국가가 주도하고 책임져야 할 역사적 문제라고 밝힌다. 다만, 이것은, 일본제국주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일본의 위안소가 이어진 미군들을 위한 위안소로 계속 전용되었던 역사적 사례들과 한국의 소위 양공주 역사 사례들로 이어진 점을 들어 일본제국주의의 문제로만 국한할 것이 아닌 여성주의 인권의 관점에서 더 발전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결국, 평화의 소녀상이 가지는 정치적 편향성에는 비판적 시각을 고수하면서도, 그것을 막자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정치사회학적 함의를 이해하고 접근하자고 한다.
이 정도가 위안부에 대한 미국의 이해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국의 위안부 이해가 "불협화음" 에 "정치적"이라는 평가는 조국 한국의 역사학회의 성실하고 과감한 연구와 역사정립의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내 바람은 다음과 같다.
1. 위안부에 대한 동족 내부자(소위 업자들, 그리고 조선인 관리들)의 책임 정리가 시급하다 하겠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유대인 나치 협력자들의 역할이 드러나며 이스라엘이 충격에 휩싸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대로 드러내고 정리하는 것이 참된 진보를 위한 초석이다.
2. 한국인 위안부의 역할에 대한 재고도 좀 더 요구된다 하겠다. 위안부들은 분명 역사의 피해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에 대한―개인적 의식, 사회적 의식, 그리고 국가적 의식―의 차이에 대한 재고와 다른 나라의 위안부들과 사뭇 달랐던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이해도 재고되어야 하겠다.
아직까지 한국 지성인들의 위안부 논의는 매우 정치적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정치적 성향과 다른 쪽의 이야기는 덮어놓고 경계하고 논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위안부 역사는 결코 정립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좀 더 많은 연구와 논의들이 "과감하게" "있는 그대로" "편파적이지 않게" 진행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