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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의 대각성 운동을 꿈꾸며
부흥사상가 조나단 에드워즈/채천석/한국강해설교학교/[김광훈]
1. 찰스 피니와 조나단 에드워즈
어느 때 부터인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커져가면서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본인도 다양한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에드워즈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에 에드워즈의 신학적 경향을 소개한 이상현 교수의 책과콘라드 체리의 책을 산적이 있다. 최근에도 에드워즈와 관련된 책은 계속해서 나오는 것 같다. 본 책도 미국의 유명한 부흥가이자 위대한 신학자로 알려진 에드워즈를 다룬 책이다.
대학생이던 시절이던 90년대 초반에 두란노의 "그말씀"에서 찰스 피니에 대한 특집을 다룬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역할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인간이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얻어서 많은 위로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의 인간의 자유를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은 필자의 성향도 바뀐 것 같다. 찰스 피니의 자서전을 통해 이해되기로는 그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하게 인정하는 또 다른 의미의 칼빈주의자로 자신을 평가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이 부분을 얼마나 수긍할지 모르지만 그의 예를 들면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다. 본인의 기억이 맞다면 예를 들어 사람이 병이 나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 병이 고쳤다고 해보자. 이 경우 하나님께서 병을 낫게 해 주셨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의사가 병을 낫게 했다고 할 수도 있다. 세번째로는 자신이 병원을 찾아갔으므로 자신이 병을 낫게 했다고 할 수도 있다. 피니는 이 모든 경우가 사실은 동일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본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모든 경우가 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것이다. 피니가 자신이 병원에 가서 병이 나았다고 말할 경우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하에서보면 그가 또 다른 의미의 칼빈주의자라고 말해도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말이 선포되어지면서 타인은 그의 말의 속 뜻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흥에 대한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들은 다분히 인간적인 움직임의 강조가 들어 있기에 그의 사후에 안 좋은 영향들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이해한 훌륭한 부흥사였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극단적 칼빈주의가 위험했기에 피니의 적극적인 신앙이 또 다른 점에서 의미있었던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극단에서 극단으로 나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점에서 찰스 피니의 부흥관과 에드워즈의 부흥관을 비교하면서 에드워즈의 부흥관이 좀더 균형있음을 주장하며 이 점은 찰스 피니의 부흥관에 대해서 불편해 했던 본인에게는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2. 왜 부흥을 기대하며 다시 에드워즈를 기억해야만 하는가?
이 책은 한국 교회의 현실을 평가하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과거의 한국의 부흥운동이 큰 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이었고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윤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고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결핍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점이나 거의 회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점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국내의 기독교는 복음을 선포할 때 개인의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함께 선포하기 보다는 언제나 개인영혼을 중심으로 한 인간 중심의 복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반으로 하나님 중심의 복음을 선포한다면 개인 영혼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의 회복을 선포하겠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또 다른 인본주의적인 복음이 선포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은 이 복음이 인간의 영혼만을 궁극적인 열매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은 사라진다. 하나님은 단지 구원을 던져주고 어디론가 사라지며 오로지 인간만이 구원이라는 것을 누리는 주인공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이에 반해 다시 반대편 극단으로 가는 것도 여간 위험한 복음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관은 매우 의미있는 입장이다. 에드워즈의 입장은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개인 영혼의 구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책임과 신학적인 깊이를 가진 입장이기에 이 땅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책을 통해 밝힌다. 저자의 말처럼 창된 부흥은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흥을 위한 인간의 순종이 있어야만 한다. 또한 모든 만물을 회복하기 위해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있었던 것처럼 개인 영혼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 또한 함께 선포되어져야만 한다. 저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어린 시절과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에 그의 성장과정과 그의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독자들은 그 가운데 에드워즈의 사상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 책을 읽은 다음
최근의 에드워즈에 대한 책이 그에 대한 찬사 일변도라는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판없는 찬사는 곧 그에 대한 왜곡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무시되어왔던 한 신학자이자 부흥사가 언제부터인가 완벽한 인물로 평가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각성 운동의 핵심에 있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서 얻게 되는 것들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국내와 같은 신학적 지식의 부재와 개교회 내에서의 반 지성적인 분위기, 영성을 말하지만 개인주의에 얽매인 왜곡된 영성이 퍼져있는 현실 속에서 부흥을 이끌었던 한 칼빈주의자의 외침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실질적인 것이다. 이 책은 에드워즈의 깊이 있는 신학 사상을 모두 전해주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부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에드워즈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한 책이다. 또한 너무 신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관심 속에서 구체적으로 부흥에 대해서 꿈꾸는 이들이 나타나기를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미국의 대부흥을 이끌었던 것처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지성과 영성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제자도의 삶을 실천하고, 다시 한번 거룩한 부흥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을 쓴 이의 마음을 잘 이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합2:14 )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저자 채천석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국제신학원(Th.M.), 총신대학교(M.Div., Th.M., Ph.D.Cand.)에서 공부했다. 새성경사전(NBD, CLC)을 책임편집했으며, 현재 Word Biblical Commentary 한글판 책임편집자, 크리스챤뉴스위크 신문사 편집위원, 개혁신학연구원과 평양신학교의 교회사 교수, 크리스찬북뉴스 발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원자료 중심의 교회사」 시리즈(심창섭 교수 공동)를 편찬했고, WBC 주석(「마태복음」 외 다수)과 존 맥스웰의 책(「성공여행」 외 다수)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하였다.
1. 찰스 피니와 조나단 에드워즈
어느 때 부터인가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커져가면서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본인도 다양한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에드워즈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에 에드워즈의 신학적 경향을 소개한 이상현 교수의 책과콘라드 체리의 책을 산적이 있다. 최근에도 에드워즈와 관련된 책은 계속해서 나오는 것 같다. 본 책도 미국의 유명한 부흥가이자 위대한 신학자로 알려진 에드워즈를 다룬 책이다.
대학생이던 시절이던 90년대 초반에 두란노의 "그말씀"에서 찰스 피니에 대한 특집을 다룬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역할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인간이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얻어서 많은 위로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의 인간의 자유를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은 필자의 성향도 바뀐 것 같다. 찰스 피니의 자서전을 통해 이해되기로는 그도 하나님의 주권을 강하게 인정하는 또 다른 의미의 칼빈주의자로 자신을 평가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이 부분을 얼마나 수긍할지 모르지만 그의 예를 들면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다. 본인의 기억이 맞다면 예를 들어 사람이 병이 나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 병이 고쳤다고 해보자. 이 경우 하나님께서 병을 낫게 해 주셨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의사가 병을 낫게 했다고 할 수도 있다. 세번째로는 자신이 병원을 찾아갔으므로 자신이 병을 낫게 했다고 할 수도 있다. 피니는 이 모든 경우가 사실은 동일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본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모든 경우가 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것이다. 피니가 자신이 병원에 가서 병이 나았다고 말할 경우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하에서보면 그가 또 다른 의미의 칼빈주의자라고 말해도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말이 선포되어지면서 타인은 그의 말의 속 뜻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흥에 대한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들은 다분히 인간적인 움직임의 강조가 들어 있기에 그의 사후에 안 좋은 영향들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이해한 훌륭한 부흥사였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극단적 칼빈주의가 위험했기에 피니의 적극적인 신앙이 또 다른 점에서 의미있었던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극단에서 극단으로 나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점에서 찰스 피니의 부흥관과 에드워즈의 부흥관을 비교하면서 에드워즈의 부흥관이 좀더 균형있음을 주장하며 이 점은 찰스 피니의 부흥관에 대해서 불편해 했던 본인에게는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2. 왜 부흥을 기대하며 다시 에드워즈를 기억해야만 하는가?
이 책은 한국 교회의 현실을 평가하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과거의 한국의 부흥운동이 큰 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이었고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윤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고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결핍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점이나 거의 회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점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국내의 기독교는 복음을 선포할 때 개인의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함께 선포하기 보다는 언제나 개인영혼을 중심으로 한 인간 중심의 복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반으로 하나님 중심의 복음을 선포한다면 개인 영혼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의 회복을 선포하겠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또 다른 인본주의적인 복음이 선포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은 이 복음이 인간의 영혼만을 궁극적인 열매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은 사라진다. 하나님은 단지 구원을 던져주고 어디론가 사라지며 오로지 인간만이 구원이라는 것을 누리는 주인공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이에 반해 다시 반대편 극단으로 가는 것도 여간 위험한 복음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관은 매우 의미있는 입장이다. 에드워즈의 입장은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개인 영혼의 구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책임과 신학적인 깊이를 가진 입장이기에 이 땅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책을 통해 밝힌다. 저자의 말처럼 창된 부흥은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흥을 위한 인간의 순종이 있어야만 한다. 또한 모든 만물을 회복하기 위해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있었던 것처럼 개인 영혼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 또한 함께 선포되어져야만 한다. 저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어린 시절과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에 그의 성장과정과 그의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독자들은 그 가운데 에드워즈의 사상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 책을 읽은 다음
최근의 에드워즈에 대한 책이 그에 대한 찬사 일변도라는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판없는 찬사는 곧 그에 대한 왜곡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무시되어왔던 한 신학자이자 부흥사가 언제부터인가 완벽한 인물로 평가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각성 운동의 핵심에 있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서 얻게 되는 것들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국내와 같은 신학적 지식의 부재와 개교회 내에서의 반 지성적인 분위기, 영성을 말하지만 개인주의에 얽매인 왜곡된 영성이 퍼져있는 현실 속에서 부흥을 이끌었던 한 칼빈주의자의 외침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실질적인 것이다. 이 책은 에드워즈의 깊이 있는 신학 사상을 모두 전해주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부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에드워즈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한 책이다. 또한 너무 신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관심 속에서 구체적으로 부흥에 대해서 꿈꾸는 이들이 나타나기를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미국의 대부흥을 이끌었던 것처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지성과 영성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제자도의 삶을 실천하고, 다시 한번 거룩한 부흥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을 쓴 이의 마음을 잘 이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합2:14 )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저자 채천석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국제신학원(Th.M.), 총신대학교(M.Div., Th.M., Ph.D.Cand.)에서 공부했다. 새성경사전(NBD, CLC)을 책임편집했으며, 현재 Word Biblical Commentary 한글판 책임편집자, 크리스챤뉴스위크 신문사 편집위원, 개혁신학연구원과 평양신학교의 교회사 교수, 크리스찬북뉴스 발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원자료 중심의 교회사」 시리즈(심창섭 교수 공동)를 편찬했고, WBC 주석(「마태복음」 외 다수)과 존 맥스웰의 책(「성공여행」 외 다수)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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