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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수 그리스도의 눈부신 매력
우리 사이를 거닐던 사랑: 예수로부터 배우는 인간관계의 비결/폴 밀러/마영례/CUP/[송광택]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저자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분의 삶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는 어떤 분이셨는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예일대학의 역사학 명예 교수인 야로슬라브 펠리칸(Jaroslav Pelikan)은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나사렛 예수는 거의 20세기를 이어온 서양 문화 역사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되어 왔다.... 거의 모든 인종이 그분의 탄생을 기준으로 연대를 표시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걸고 저주하고 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이 모든 주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이 인격적으로 어떤 분인지 잘 모른다.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저자는 종종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물어 본다. “천국에 가면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 누구를 만나보고 싶습니까?” 수백 명중의 한 사람 정도가 예수님이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사람”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별로 익숙하지 않다.
저자는 예수님에 관해 그가 이미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제쳐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예수님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복음서를 읽으면서 경험한 것들을 저자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유대인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빛나는 모습에 내 마음이 끌린다.... 예수님은 미사여구를 늘여놓는 사람들도 다 묘사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엄청난 분이시다. 그들에게 아무리 뛰어난 기교가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누구라도 복음서를 읽게되면 그 속에서 실재로 예수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한마디, 한마디 속에 그분의 인격이 고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참 사람을 보고 그 경이로움을 느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저자는 아이슈타인이 경험했던 경이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평범한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셨다.
인도의 국가 지도자였으며 힌두교도였던 간디는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진지하게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기 좋아했다. 그러나 사랑보다 더 배우기 어려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을 되돌려주지 않는 배은 망덕한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거나 그들의 계책에 말려들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이 정상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의 삶을 정돈하는데 필요한 다림줄이 되신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하고 강력한 영웅을 찾고 싶어하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해주신다.
본서의 제1부는 "동정심을 나타내 보이는 사랑"이다.
저자에 의하면, 동정심은 예수님의 성품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감정이다. 분노나 두려움에 비해 동정심은 상당히 미묘하다. 동정심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동정심은 사람의 눈을 통해 전해진다고 말한다. 그 눈길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친절하며, 근심 어린 빛을 띄고 있다. 모든 일을 멈추고 상대방의 감정에 주목하며 귀를 기울인다.
예수님은 능력 있는 분이셨으며 또 친절하셨다. 보통 친절한 사람은 그리 강하지 못하고, 강한 사람은 또 그리 친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능력과 친절을 함께 보여주셨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공부하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신 횟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셨다는 기록이 모두 40번 가량 나온다. 그리고 종종 동정심을 갖기 전에 먼저 사람들을 바라보셨다는 사실이 특히 인상적이다(마 9:36; 막 10:21).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하는 동안 “소중히 여기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바라보고 동정심을 갖게 된다. 그 사람을 주시하면서 관심을 가진다. 그 사람을 좇아내지 않는다. 일, 성공, 투자, 자동차 등등 기분을 좋게 해주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는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사람들을, 심지어는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복음서는 말하고 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기다리면서 우리를 찾으시려고 먼 곳에 시선을 맞추고 둘러보고 계신다. 우리를 발견하면 위엄 있는 분이시지만 옷을 걷어 부치고 부끄러움도 잊은 채 우리를 향해 달려오신다. 죄책감과 실망의 짐을 지고 그분을 향해 터덜터덜 나아가는 우리를 향해 달리신다. 그리고 두 팔로 우리를 얼싸 안으시고 입을 맞추신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수세기에 걸쳐 동정심을 갖고 사람들을 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 그 우고를 알고"(출 3:7). 예수님의 눈은 하나님의 얼굴에 표정을 실어준다.
예수님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용서받아야 한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적격하다는 것을 알 때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의롭게 생각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기 어려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자신을 더 낫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필요를 더 많이 보면 볼수록 더 많을 도움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더 많이 도와주게 될 것이다.
제2부의 제목은 "진리를 말하는 사랑 "이다. 복음서를 읽는 동안 예수님은 저자를 놀라게 했다. 그 가차없는 정직함과 솔직함이 거의 무례하게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정심이 많은 분이 어떻게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동정심을 가지고 솔직하게 사람들을 대해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신다. 사람들을 솔직하게 대할 것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마 18:15). 이런 솔직함이 없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는 이상해진다.
예수님은 진리를 고수하셨을 뿐 아니라 진리를 위해 대담하게 자신의 명성에 가해질 위험을 무릅쓰셨다. 정의를 지키려는 예수님의 대담성과 헌신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비타협적이고 엄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솔직함은 급소를 찌르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옳은 것을 지키는 철저한 헌신과 그것을 표현하는 용기를 지니고 계셨다. 고대 히브리 선지자들처럼 예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종당하지 않으셨다. 권력에 굶주린 갈릴리 총독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셨다.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이라, “독사의 자식들”이라 부르셨다(눅 13:32, 마 23:27, 33).
예수님이 사람들과 맺은 모든 관계 속에는 진실함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솔직하지 못한 관계는 투명하지 못하고 의미를 찾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진리를 대면하게 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잘못된 길로 가면서 어지러운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에게 우리가 동정심만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진리를 말해주지 않고 비열한 아내를 이해해주려고만 하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다. 동정심이라는 선물에는 진리라는 선물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3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랑"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동정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제4부 "믿음으로 강해지는 사랑"이다. C. S. 루이스는 사랑의 속성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안전한 투자는 없다. 사랑하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라. 그러면 마음이 슬픔에 짓눌리고 깨지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마음을 그대로 지키려면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동물에게도 주어서는 안 된다. 취미 생활과 약간의 화려함으로 잘 싸서 모든 얽힘을 피하고 이기심이라는 상자나 관속에 넣어 안전하게 잠가두어야 한다. 그러나 안전하고 어둡고 공기가 없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관속에서 마음은 변하게 될 것이다.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깨질 수 없고, 무감각하고, 구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변할 것이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는 곳은 하늘 외에 아무 데도 없다. 사랑이 교란된 곳이 바로 지옥이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저자에 의하면 믿음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사랑하기는 어렵다. 저자에 의하면, 사랑하는 것은 고통받는 것이다. 사랑을 통과하는 길은 슬픔을 통과하는 길이다.
예수님은 우리 자녀들 뿐 아니라 두들겨 맞고, 길에 누워있는 사람,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당신의 필요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셨다.
사랑의 주님은 우리 가운데 다니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할 수 있으시다. 예수님은 거듭해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안에서 네 가장 깊은 필요가 채워질 것이다. 네게는 죄 사함과 사랑과 희망과 소속감과 목적이 있어야 한다. 네가 항상 찾아온 그것이 바로 나다.”
장애우 단체인 [조니와 친구들]의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에 의하면 “예수님을 보는 것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포올 밀러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부신 매력을 포착하고 사랑의 화신이신 그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폴 밀러
폴 밀러(Paul Miller)는 SEEJESUS.NET의 총무로 소그룹안에서 갖자 자신에 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대화식 성경 공 부 교재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기초가 된 [인간이신 예수님, 사랑에 대한 연구](The person of Jesus, A Study of Love)란 제목으로 된 귀납법적 성경 연구 교재의 저자이다. 그 교재처럼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 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또 친구와 이웃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인도할 사람들을 훈련하는 세미나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내 질(Jill)과의 사이에 여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두 명의 사위와 네 마리의 염소와 세 마리의 양과 두 마리의 개와 얼마 전 에 질이 돌보게 된 집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으며 필라델피아 근교에 살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저자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분의 삶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는 어떤 분이셨는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예일대학의 역사학 명예 교수인 야로슬라브 펠리칸(Jaroslav Pelikan)은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나사렛 예수는 거의 20세기를 이어온 서양 문화 역사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되어 왔다.... 거의 모든 인종이 그분의 탄생을 기준으로 연대를 표시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걸고 저주하고 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이 모든 주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이 인격적으로 어떤 분인지 잘 모른다.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저자는 종종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물어 본다. “천국에 가면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 누구를 만나보고 싶습니까?” 수백 명중의 한 사람 정도가 예수님이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사람”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별로 익숙하지 않다.
저자는 예수님에 관해 그가 이미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제쳐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예수님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복음서를 읽으면서 경험한 것들을 저자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유대인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빛나는 모습에 내 마음이 끌린다.... 예수님은 미사여구를 늘여놓는 사람들도 다 묘사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엄청난 분이시다. 그들에게 아무리 뛰어난 기교가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누구라도 복음서를 읽게되면 그 속에서 실재로 예수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한마디, 한마디 속에 그분의 인격이 고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참 사람을 보고 그 경이로움을 느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저자는 아이슈타인이 경험했던 경이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평범한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셨다.
인도의 국가 지도자였으며 힌두교도였던 간디는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진지하게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기 좋아했다. 그러나 사랑보다 더 배우기 어려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을 되돌려주지 않는 배은 망덕한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거나 그들의 계책에 말려들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이 정상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의 삶을 정돈하는데 필요한 다림줄이 되신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하고 강력한 영웅을 찾고 싶어하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해주신다.
본서의 제1부는 "동정심을 나타내 보이는 사랑"이다.
저자에 의하면, 동정심은 예수님의 성품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감정이다. 분노나 두려움에 비해 동정심은 상당히 미묘하다. 동정심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동정심은 사람의 눈을 통해 전해진다고 말한다. 그 눈길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친절하며, 근심 어린 빛을 띄고 있다. 모든 일을 멈추고 상대방의 감정에 주목하며 귀를 기울인다.
예수님은 능력 있는 분이셨으며 또 친절하셨다. 보통 친절한 사람은 그리 강하지 못하고, 강한 사람은 또 그리 친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능력과 친절을 함께 보여주셨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공부하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신 횟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셨다는 기록이 모두 40번 가량 나온다. 그리고 종종 동정심을 갖기 전에 먼저 사람들을 바라보셨다는 사실이 특히 인상적이다(마 9:36; 막 10:21).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하는 동안 “소중히 여기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바라보고 동정심을 갖게 된다. 그 사람을 주시하면서 관심을 가진다. 그 사람을 좇아내지 않는다. 일, 성공, 투자, 자동차 등등 기분을 좋게 해주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는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사람들을, 심지어는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복음서는 말하고 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기다리면서 우리를 찾으시려고 먼 곳에 시선을 맞추고 둘러보고 계신다. 우리를 발견하면 위엄 있는 분이시지만 옷을 걷어 부치고 부끄러움도 잊은 채 우리를 향해 달려오신다. 죄책감과 실망의 짐을 지고 그분을 향해 터덜터덜 나아가는 우리를 향해 달리신다. 그리고 두 팔로 우리를 얼싸 안으시고 입을 맞추신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수세기에 걸쳐 동정심을 갖고 사람들을 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 그 우고를 알고"(출 3:7). 예수님의 눈은 하나님의 얼굴에 표정을 실어준다.
예수님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용서받아야 한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적격하다는 것을 알 때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의롭게 생각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기 어려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자신을 더 낫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필요를 더 많이 보면 볼수록 더 많을 도움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더 많이 도와주게 될 것이다.
제2부의 제목은 "진리를 말하는 사랑 "이다. 복음서를 읽는 동안 예수님은 저자를 놀라게 했다. 그 가차없는 정직함과 솔직함이 거의 무례하게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정심이 많은 분이 어떻게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동정심을 가지고 솔직하게 사람들을 대해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신다. 사람들을 솔직하게 대할 것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마 18:15). 이런 솔직함이 없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는 이상해진다.
예수님은 진리를 고수하셨을 뿐 아니라 진리를 위해 대담하게 자신의 명성에 가해질 위험을 무릅쓰셨다. 정의를 지키려는 예수님의 대담성과 헌신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비타협적이고 엄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솔직함은 급소를 찌르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옳은 것을 지키는 철저한 헌신과 그것을 표현하는 용기를 지니고 계셨다. 고대 히브리 선지자들처럼 예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종당하지 않으셨다. 권력에 굶주린 갈릴리 총독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셨다.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이라, “독사의 자식들”이라 부르셨다(눅 13:32, 마 23:27, 33).
예수님이 사람들과 맺은 모든 관계 속에는 진실함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솔직하지 못한 관계는 투명하지 못하고 의미를 찾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진리를 대면하게 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잘못된 길로 가면서 어지러운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에게 우리가 동정심만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진리를 말해주지 않고 비열한 아내를 이해해주려고만 하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다. 동정심이라는 선물에는 진리라는 선물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3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랑"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동정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제4부 "믿음으로 강해지는 사랑"이다. C. S. 루이스는 사랑의 속성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안전한 투자는 없다. 사랑하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라. 그러면 마음이 슬픔에 짓눌리고 깨지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마음을 그대로 지키려면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동물에게도 주어서는 안 된다. 취미 생활과 약간의 화려함으로 잘 싸서 모든 얽힘을 피하고 이기심이라는 상자나 관속에 넣어 안전하게 잠가두어야 한다. 그러나 안전하고 어둡고 공기가 없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관속에서 마음은 변하게 될 것이다.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깨질 수 없고, 무감각하고, 구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변할 것이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는 곳은 하늘 외에 아무 데도 없다. 사랑이 교란된 곳이 바로 지옥이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저자에 의하면 믿음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사랑하기는 어렵다. 저자에 의하면, 사랑하는 것은 고통받는 것이다. 사랑을 통과하는 길은 슬픔을 통과하는 길이다.
예수님은 우리 자녀들 뿐 아니라 두들겨 맞고, 길에 누워있는 사람,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당신의 필요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셨다.
사랑의 주님은 우리 가운데 다니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할 수 있으시다. 예수님은 거듭해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안에서 네 가장 깊은 필요가 채워질 것이다. 네게는 죄 사함과 사랑과 희망과 소속감과 목적이 있어야 한다. 네가 항상 찾아온 그것이 바로 나다.”
장애우 단체인 [조니와 친구들]의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에 의하면 “예수님을 보는 것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포올 밀러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부신 매력을 포착하고 사랑의 화신이신 그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폴 밀러
폴 밀러(Paul Miller)는 SEEJESUS.NET의 총무로 소그룹안에서 갖자 자신에 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대화식 성경 공 부 교재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기초가 된 [인간이신 예수님, 사랑에 대한 연구](The person of Jesus, A Study of Love)란 제목으로 된 귀납법적 성경 연구 교재의 저자이다. 그 교재처럼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 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또 친구와 이웃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인도할 사람들을 훈련하는 세미나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내 질(Jill)과의 사이에 여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두 명의 사위와 네 마리의 염소와 세 마리의 양과 두 마리의 개와 얼마 전 에 질이 돌보게 된 집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으며 필라델피아 근교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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