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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말씀으로 돌아오라!
설교와 설교자/마틴 로이드 존스/정근두/복있는 사람/[강도헌]
첫 설교를 시작한 이후 올 해가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설교에 대한 애착과 부담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우며, 설교세미나를 들으며, GBS, PBS, 귀납법적성경연구등 설교에 도움이 되는 공부들을 나름대로 거쳐 왔다. 그리고 아직도 짬짬히 설교와 관계된 책들을 읽곤 한다.
적지 않게 설교에 관계된 책을 탐독해 왔다. 그러던 중 본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글은 현재 로마서 강해 한권 에베소서 강해 한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성령세례 이렇게 네 권을 읽은 것이 고작이다. 신학을 시작할 무렵에 선배들의 소개로 읽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책장만 넘겼던 기억이 난다. 내가 너무 무지하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인내로 네 권을 읽은 후 그 다음엔 왠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본서를 구입하고 읽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내심 상당히 망설임과 고민 끝에 본서를 구입하였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구입하였던 책 중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곳곳에 꽤 많이 있는데, 본서를 읽게 된 것은 설교에 대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 감히 말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설교시간은 설레이고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사실 한국 교회 현실 속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넉넉한 마음으로 준비되지 못한 설교를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면서 한편으론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설교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은 내가 설교자로 부름 받았다는 소명의 증거로 확신한다.
본서를 읽으면서 한마디로 ‘시원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여기에 있구나, 내 생각이 틀린 생각이 아니구나!’ 라는 느낌 이었다. ‘마음속에 뭔가 일어나는 것이 있었는데 정리도 안되고 표현도 안되었던 내 마음을 어떻게 이토록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가?’ 희열 이상의 감동과 설교에 대한 용기와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은 못하고 혼자 고민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목회의 현장에서 설교의 자리가 점점 다른 프로그램들에 의해 밀려난다는 사실이었다. 그 대표적으로 찬양이다. 찬양 시간은 계속해서 길어지고 찬양의 중요성은 목회의 현실에서 말씀의 위치까지 넘어다보고 있다. 일찍이 지방교회나 빈야드 운동, 경배와 찬양 등에서 말씀은 찬양 중에 짬짬이 멘트 형식으로 대체되고 일부 찬양집회나 기도회에서는 설교 시간이 아예 없다.
이러한 현상은 주일 공 예배 시간에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설교 시간이 예배의 중심 시간에 위치하고 있지만 오후 예배나 찬양 예배에서는 설교시간을 줄이라는 공식적인 압박이 들어오고 있으며, 주일 오전예배도 설교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 회중들은 매우 불쾌해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는 주일 대예배 시간조차도 1시간에서 1시간20분 이내로 모든 시간을 마치는 것이 암묵적인 원칙이다.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설교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왜 이토록 설교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본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예언적인 강의에 해당된다. 설교가 약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살펴 볼 수 있겠으나 본서는 두 가지의 이유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일반적인 이유로서 다양한 정보 매체로 인해 설교가 상품화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명한 설교(훌륭한 설교라고 말하지 않았음에 유의하라)를 돈으로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교회 내부의 특정한 이유들을 들고 있다. 성경 말씀의 본뜻에 충실하기 보다는 강단 꾼들의 쇼맨십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하는 것, 예배 시간에 점점 더 오락적인 요소의 추가현상, 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찬양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보다는 자신들의 감정적인 욕구 만족을 위한 찬양들 - 여기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반주자들의 횡포’라고 표현한다.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반주자의 반주 기술에 사람들의 감정이 조작되고 끌려다닌다고 표현하고 있다. - 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는 교회 성장을 위해 말씀의 시간을 줄이고 찬양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교회 성장학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며, 현장의 목회자들은 교회성장을 위해 그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추세이다(찬양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피곤과 스트레스로 지쳐 있는 회중들은 자연스럽게 오락으로 마음을 돌린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찬양을 하면서 마음에 새 힘을 얻고, 위로를 얻으며,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 이 말에 대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대답은 이렇다. “의사가 환자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치료는 하지 않고 진통제만 준다면 그것은 의사로서 범죄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말씀과 설교에 대한 확신이 단호하다. 오직 말씀과 설교로만 진정한 회복과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찬양을 통해 감정적으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는 것은 진정한 치유가 아니며, 오늘날 찬양 중심의 성도들에게는 참된 영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견해에 대해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설교자에게로 눈길을 돌려보자.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설교문을 짜깁기 하거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만한 좋은 문구를 찾기 위해 이책 저책 뒤적이며, 다른 사람의 좋은 설교 내용을 카피해서 본문만 다르게 쓰는 트릭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경험한 것처럼, 내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설교를 떼우는 것이다.
이제 정리를 하겠다. 설교자라면 본서는 필독서이다. 한 번 읽고 끝낼 책도 아니다. 얼마전에 정신과 의사 이성훈 박사님의 <<복음과 내적치유>>라는 책을 읽었다. 그분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귀신들림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 내면적인 상처에 근본적인 치유 능력은 복음에 있다. 다른 방법과 기법들 혹은 약물은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치료를 돕는 것들에 불과하다.’
본서를 통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설교자들이여 각성하라! 진정한 목회를 원하는가? 진정한 교회성장을 원하는가?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가?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는가? 말씀으로 돌아오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라! 말씀만이 영혼의 양식이요. 말씀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오늘도 역사하신다. 말씀으로 치유하셨고, 말씀으로 영혼을 살리셨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말씀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말씀이 하나님의 임재이다. 설교자들이여 그 말씀 선포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말씀으로 돌아오라!
저자 마틴 로이드 존스 (Martyn Lloyd-Jones)
1899년 영국 남 웨일즈에서 태어나 외과 의사로서 실무에 종사하다가 1927년 의학계를 떠나 남 웨일즈 웰쉬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 후 1938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목사로 부임해 은퇴하기까지 30년 간을 목회하면서 많은 강해 설교를 했으며, 1981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첫 설교를 시작한 이후 올 해가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설교에 대한 애착과 부담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우며, 설교세미나를 들으며, GBS, PBS, 귀납법적성경연구등 설교에 도움이 되는 공부들을 나름대로 거쳐 왔다. 그리고 아직도 짬짬히 설교와 관계된 책들을 읽곤 한다.
적지 않게 설교에 관계된 책을 탐독해 왔다. 그러던 중 본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글은 현재 로마서 강해 한권 에베소서 강해 한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성령세례 이렇게 네 권을 읽은 것이 고작이다. 신학을 시작할 무렵에 선배들의 소개로 읽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책장만 넘겼던 기억이 난다. 내가 너무 무지하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인내로 네 권을 읽은 후 그 다음엔 왠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본서를 구입하고 읽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내심 상당히 망설임과 고민 끝에 본서를 구입하였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구입하였던 책 중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곳곳에 꽤 많이 있는데, 본서를 읽게 된 것은 설교에 대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 감히 말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설교시간은 설레이고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사실 한국 교회 현실 속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넉넉한 마음으로 준비되지 못한 설교를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면서 한편으론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설교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은 내가 설교자로 부름 받았다는 소명의 증거로 확신한다.
본서를 읽으면서 한마디로 ‘시원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여기에 있구나, 내 생각이 틀린 생각이 아니구나!’ 라는 느낌 이었다. ‘마음속에 뭔가 일어나는 것이 있었는데 정리도 안되고 표현도 안되었던 내 마음을 어떻게 이토록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가?’ 희열 이상의 감동과 설교에 대한 용기와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은 못하고 혼자 고민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목회의 현장에서 설교의 자리가 점점 다른 프로그램들에 의해 밀려난다는 사실이었다. 그 대표적으로 찬양이다. 찬양 시간은 계속해서 길어지고 찬양의 중요성은 목회의 현실에서 말씀의 위치까지 넘어다보고 있다. 일찍이 지방교회나 빈야드 운동, 경배와 찬양 등에서 말씀은 찬양 중에 짬짬이 멘트 형식으로 대체되고 일부 찬양집회나 기도회에서는 설교 시간이 아예 없다.
이러한 현상은 주일 공 예배 시간에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설교 시간이 예배의 중심 시간에 위치하고 있지만 오후 예배나 찬양 예배에서는 설교시간을 줄이라는 공식적인 압박이 들어오고 있으며, 주일 오전예배도 설교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 회중들은 매우 불쾌해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는 주일 대예배 시간조차도 1시간에서 1시간20분 이내로 모든 시간을 마치는 것이 암묵적인 원칙이다.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설교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왜 이토록 설교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본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예언적인 강의에 해당된다. 설교가 약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살펴 볼 수 있겠으나 본서는 두 가지의 이유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일반적인 이유로서 다양한 정보 매체로 인해 설교가 상품화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명한 설교(훌륭한 설교라고 말하지 않았음에 유의하라)를 돈으로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교회 내부의 특정한 이유들을 들고 있다. 성경 말씀의 본뜻에 충실하기 보다는 강단 꾼들의 쇼맨십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하는 것, 예배 시간에 점점 더 오락적인 요소의 추가현상, 여기에 대표적인 것이 찬양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보다는 자신들의 감정적인 욕구 만족을 위한 찬양들 - 여기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반주자들의 횡포’라고 표현한다.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반주자의 반주 기술에 사람들의 감정이 조작되고 끌려다닌다고 표현하고 있다. - 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는 교회 성장을 위해 말씀의 시간을 줄이고 찬양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교회 성장학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며, 현장의 목회자들은 교회성장을 위해 그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추세이다(찬양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피곤과 스트레스로 지쳐 있는 회중들은 자연스럽게 오락으로 마음을 돌린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찬양을 하면서 마음에 새 힘을 얻고, 위로를 얻으며,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 이 말에 대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대답은 이렇다. “의사가 환자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치료는 하지 않고 진통제만 준다면 그것은 의사로서 범죄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말씀과 설교에 대한 확신이 단호하다. 오직 말씀과 설교로만 진정한 회복과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찬양을 통해 감정적으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는 것은 진정한 치유가 아니며, 오늘날 찬양 중심의 성도들에게는 참된 영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견해에 대해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설교자에게로 눈길을 돌려보자.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설교문을 짜깁기 하거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만한 좋은 문구를 찾기 위해 이책 저책 뒤적이며, 다른 사람의 좋은 설교 내용을 카피해서 본문만 다르게 쓰는 트릭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경험한 것처럼, 내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설교를 떼우는 것이다.
이제 정리를 하겠다. 설교자라면 본서는 필독서이다. 한 번 읽고 끝낼 책도 아니다. 얼마전에 정신과 의사 이성훈 박사님의 <<복음과 내적치유>>라는 책을 읽었다. 그분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귀신들림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 내면적인 상처에 근본적인 치유 능력은 복음에 있다. 다른 방법과 기법들 혹은 약물은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치료를 돕는 것들에 불과하다.’
본서를 통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설교자들이여 각성하라! 진정한 목회를 원하는가? 진정한 교회성장을 원하는가?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가?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는가? 말씀으로 돌아오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라! 말씀만이 영혼의 양식이요. 말씀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오늘도 역사하신다. 말씀으로 치유하셨고, 말씀으로 영혼을 살리셨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말씀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말씀이 하나님의 임재이다. 설교자들이여 그 말씀 선포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말씀으로 돌아오라!
저자 마틴 로이드 존스 (Martyn Lloyd-Jones)
1899년 영국 남 웨일즈에서 태어나 외과 의사로서 실무에 종사하다가 1927년 의학계를 떠나 남 웨일즈 웰쉬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 후 1938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목사로 부임해 은퇴하기까지 30년 간을 목회하면서 많은 강해 설교를 했으며, 1981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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