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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1세기 성령 세례에 대한 가장 위대한 고전
성령세례/D.M.로이드 존스/기독교문서선교회/[권지성]
로이드 존스는 18세기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20세기의 사람이었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늘 예로 드는 모든 인물들은 18세기에 포진해 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 인물로써, 미국 교회사의 아버지이며, 최고의 신학자이자 부흥신학자였다. 또한, 베드로 이후의 최고의 부흥사였던 조지 휘트필드, 하웰 해리스, 다니엘 로우랜즈, 그리고 알미니안주의자였던, 존 웨슬리, 플레쳐 등이다. 그가 이렇게 18세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시기가 엄청난 영적 대부흥을 이끌었던 시기였으며, 신앙의 거인들이 유난히 많았던 기간이기 때문에, 그의 교회사에 대한 관심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로이드 존스의 명저 ‘부흥’과 함께 이 책 ‘성령세례’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지만,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성령세례가 개인적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의미한다면, 부흥의 개념은 집단적인 성령의 부으심을 의미한다. 필자가 처음으로 이 책을 접했던 것은 대학 시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겉 표지가 워낙 원색적인 빨간 색깔이고, 나 스스로도 빨간 색을 좋아하다 보니, 이 책에 자연히 손이 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성령세례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생소하고 이단적으로까지 느껴지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제 2의 성령의 세례라는 것이 마치 오순절의 신비주의적인 그 무엇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때가 로이드 존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기존의 성령 충만의 개념과 중생시의 성령의 내주와는 구별되는 제 3의 무엇을 설명하려는 듯하였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 충만, 성령의 기름 부으심,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의 성령 강림 바로 그것이었다. 3천명이 교회로 들어오는 역사, 고넬료 집에 임한 성령의 임재, 고난 받는 초대교회에 부어주신 천지를 진동하는 성령의 임재말이다. 한 세기를 뒤흔든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이 영웅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은 모두 이 성령의 세례에 의해 가능하였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는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상이 들어 있었다. 당시, 아무리 기도해도 부흥이 오지 않음 때문에 무기력함에 빠졌고, 그래서 낙망밖에 없었던 나에게 이 책은 성령의 세례와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특별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복음 증거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경험하며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임재임을 알게 되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의 회개와 믿음과 간구를 통해 영적인 회심의 역사 가운데, 주시는 것이지만, 특별한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여 있다. 이것이 성령 충만과 성령의 세례와의 차이점이다. 가장 단순히 설명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부어지되 충만히 부어져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가운데 나아가는 것이다.
칼빈주의적인 메소디스트는 로이드 존스의 신앙의 바른 표현이다. 메소디스트는 칼빈주의적인 메소디스트와 알미니안적인 메소디스트 2가지로 나뉜다.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파의 개념으로써의 메소디스트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옥스퍼드의 일단의 경건한 무리들을 향하여 메소디스트라 불렀고, 부흥의 주역이 된 휘트필드와 웨슬리 형제가 이 메소디스트들의 주역이었다. 후에, 조직의 대가 존 웨슬리는 교파를 형성하였으나, 휘트필드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 속에 감추고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드러낸 채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이런 그를 발굴해 낸 사람이 바로 로이드 존스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메소디즘과 칼빈주의의 2가지를 겸비한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오순절의 역사적인 사건은 20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믿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언제나 가능한 것임을 믿었다. 그리고 기도의 역사와 기도의 능력을 신뢰하였다.
C.C.C.의 설립자인 빌 브라잍은 어디를 가든 ‘성령 충만함의 비결을 발견하셨습니까?’라는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의 원인은 육체에 있다고 보았다. D.L. 무디와 R.A.토레이, 휘트필드, 웨슬리, 에드워즈, 리빙스턴등과 같은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성령의 불 같은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고 그리스도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현존하는 신앙의 거장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인물은 김준곤 목사님이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그에게는 열기가 있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비전의 역동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만 해도 울음을 참지 못한다. 성령의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가진 신자, 성령의 부은 바 된 신자이다. 이 땅에 이러한 설교자들과 하나님의 군사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이 부흥을 열망하면서 게으르고 약해빠진 나는 조용히 주님 앞에 나아가 성령님이 오시기를 기도하고 싶다.
로이드 존스는 18세기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20세기의 사람이었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늘 예로 드는 모든 인물들은 18세기에 포진해 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 인물로써, 미국 교회사의 아버지이며, 최고의 신학자이자 부흥신학자였다. 또한, 베드로 이후의 최고의 부흥사였던 조지 휘트필드, 하웰 해리스, 다니엘 로우랜즈, 그리고 알미니안주의자였던, 존 웨슬리, 플레쳐 등이다. 그가 이렇게 18세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시기가 엄청난 영적 대부흥을 이끌었던 시기였으며, 신앙의 거인들이 유난히 많았던 기간이기 때문에, 그의 교회사에 대한 관심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로이드 존스의 명저 ‘부흥’과 함께 이 책 ‘성령세례’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지만,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성령세례가 개인적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의미한다면, 부흥의 개념은 집단적인 성령의 부으심을 의미한다. 필자가 처음으로 이 책을 접했던 것은 대학 시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겉 표지가 워낙 원색적인 빨간 색깔이고, 나 스스로도 빨간 색을 좋아하다 보니, 이 책에 자연히 손이 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성령세례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생소하고 이단적으로까지 느껴지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제 2의 성령의 세례라는 것이 마치 오순절의 신비주의적인 그 무엇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때가 로이드 존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기존의 성령 충만의 개념과 중생시의 성령의 내주와는 구별되는 제 3의 무엇을 설명하려는 듯하였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 충만, 성령의 기름 부으심,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의 성령 강림 바로 그것이었다. 3천명이 교회로 들어오는 역사, 고넬료 집에 임한 성령의 임재, 고난 받는 초대교회에 부어주신 천지를 진동하는 성령의 임재말이다. 한 세기를 뒤흔든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이 영웅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은 모두 이 성령의 세례에 의해 가능하였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는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상이 들어 있었다. 당시, 아무리 기도해도 부흥이 오지 않음 때문에 무기력함에 빠졌고, 그래서 낙망밖에 없었던 나에게 이 책은 성령의 세례와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특별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복음 증거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경험하며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임재임을 알게 되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의 회개와 믿음과 간구를 통해 영적인 회심의 역사 가운데, 주시는 것이지만, 특별한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여 있다. 이것이 성령 충만과 성령의 세례와의 차이점이다. 가장 단순히 설명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부어지되 충만히 부어져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가운데 나아가는 것이다.
칼빈주의적인 메소디스트는 로이드 존스의 신앙의 바른 표현이다. 메소디스트는 칼빈주의적인 메소디스트와 알미니안적인 메소디스트 2가지로 나뉜다.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파의 개념으로써의 메소디스트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옥스퍼드의 일단의 경건한 무리들을 향하여 메소디스트라 불렀고, 부흥의 주역이 된 휘트필드와 웨슬리 형제가 이 메소디스트들의 주역이었다. 후에, 조직의 대가 존 웨슬리는 교파를 형성하였으나, 휘트필드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 속에 감추고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드러낸 채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이런 그를 발굴해 낸 사람이 바로 로이드 존스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메소디즘과 칼빈주의의 2가지를 겸비한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오순절의 역사적인 사건은 20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믿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언제나 가능한 것임을 믿었다. 그리고 기도의 역사와 기도의 능력을 신뢰하였다.
C.C.C.의 설립자인 빌 브라잍은 어디를 가든 ‘성령 충만함의 비결을 발견하셨습니까?’라는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의 원인은 육체에 있다고 보았다. D.L. 무디와 R.A.토레이, 휘트필드, 웨슬리, 에드워즈, 리빙스턴등과 같은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성령의 불 같은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고 그리스도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현존하는 신앙의 거장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인물은 김준곤 목사님이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그에게는 열기가 있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비전의 역동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만 해도 울음을 참지 못한다. 성령의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가진 신자, 성령의 부은 바 된 신자이다. 이 땅에 이러한 설교자들과 하나님의 군사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이 부흥을 열망하면서 게으르고 약해빠진 나는 조용히 주님 앞에 나아가 성령님이 오시기를 기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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