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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교육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전혜성/랜덤하우스/[강도헌]
자녀 교육에 관심 없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부모로서 해야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관심은 많았지만, 아빠된 나 자신에게는 아무른 관심이 없었다. 그냥 최선을 다해 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책임감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전까지 자녀 교육의 방식은 ‘양육’이 아니라 좀 심한 표현이라 생각되지만 ‘사육’에 가까웠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인격과 개성은 무시한채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접근 해 왔다.
이런 미숙한 아빠에게 자신의 소중한 세 자녀를 맡기신 하나님은 그래도 자녀 욕심이 꽤 많은 필자에게 수요 기도회를 인도하라는 책임을 주셨고,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자녀를 위해 기도해 왔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자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라는 문제를 던져 주셨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제로 5회에 걸쳐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자료를 구하던 중 본서를 만나게 되었다.
본서의 저자 전혜성 박사님은 이력부터 화려하다. 어떤 사람은 이력만 화려한 사람이 있지만, 본서의 저자는 그 이력 이상의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이력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이력은 책을 통해 참고하시길 바란다.
“크고자 하거든 먼저 남을 섬겨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목적의식적인 바람에서는 어니었지만, 어느덧 이순이 넘는 나이가 되어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니 나의 한평생은 바로 이 말과 맥이 닿아 있음을 알게되었다. 어려서부터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가로 평가된다.’ … 이 자리에서 나는 자녀교육의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자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가?’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단지 학교 성적이 우수한 수재로만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끝없이 왜 공부를 해야하는가?, 자신이 하는 공부로 이 사회에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가를 묻고 생각하게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타인과 세상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한 사회에 구한되지 않고 인류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세계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바랐다.”
본서의 저자는 위와 같은 자신이 했던 고민으로 프롤로그를 열었다.
한국 부모들의 자녀 교육열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바람직하고 좋은 현상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식욕심은 내 아이들이 남의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게 키우려는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의 발로에서 시작됨을 보게된다. 돈을 잘 벌고, 성공하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며,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 없이 남의 아이와 비교하며 키우는 것이다. 그로인해 그 아이가 정작 잘 할 수 있는 것에는 관심 없이 모든 분야에서 남의 아이보다 더 잘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무계획적, 무차별적으로 경쟁의 선상에 올려놓는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몇몇 사장님들의 이야기가 귀에 쟁쟁하다. ‘요즘 똑똑한 아이들은 많아요. 그런데 쓸만한 아이들은 없어요’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된다. 새삼스럽지만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만 잘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 부모에 대한 공경, 어른들에 대한 예절은 전혀 모른다. 그리고 권위적인 사람을 싫어한다고 표현하면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한다.
누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키울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부모는 드물다. 이것이 본서 저자의 안타까움이다. 부모의 역할, 부모의 책임, 아이들의 필요, 아이들의 특징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부모들, 오직 점수 따는 공부벌레, 돈 많이 버는 ‘머니머신’에 신들려 있다.
미국식 교육에 물들어 있는 교육사대주의에 빠져 있는 오늘날 한국의 부모들을 향하여 본서의 저자는 ‘한국식 교육의 가치와 저력’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와 기능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덕승재(덕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다)’의 교육가치를 직접 실천함으로써 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차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자녀 교육은 사이언스가 아니라 아트이다.’ 그러기에 부분의 기능적인 요소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아이의 전인생의 관점에서 내 자녀의 인생이 한 폭의 작품으로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의 주제에 따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하모니를 이루어 한 폭의 걸작이 되는 것처럼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잘 그려갈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말하고 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지 마라, 절대 자녀를 위해 희생하지 마라. 자녀를 섬기되 희생은 하지 마라. 그리고 당당한 한 사람의 삶을 진실하게 보여주어라. 부모의 삶의 조각과 자녀의 삶의 조각들을 아름답게 맞추어가라. 그리고 함께 한 폭의 모자이크 작품을 남겨라. 자녀교육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자녀 교육에 관심 없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부모로서 해야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관심은 많았지만, 아빠된 나 자신에게는 아무른 관심이 없었다. 그냥 최선을 다해 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책임감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전까지 자녀 교육의 방식은 ‘양육’이 아니라 좀 심한 표현이라 생각되지만 ‘사육’에 가까웠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인격과 개성은 무시한채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접근 해 왔다.
이런 미숙한 아빠에게 자신의 소중한 세 자녀를 맡기신 하나님은 그래도 자녀 욕심이 꽤 많은 필자에게 수요 기도회를 인도하라는 책임을 주셨고,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자녀를 위해 기도해 왔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자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라는 문제를 던져 주셨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제로 5회에 걸쳐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자료를 구하던 중 본서를 만나게 되었다.
본서의 저자 전혜성 박사님은 이력부터 화려하다. 어떤 사람은 이력만 화려한 사람이 있지만, 본서의 저자는 그 이력 이상의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이력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이력은 책을 통해 참고하시길 바란다.
“크고자 하거든 먼저 남을 섬겨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목적의식적인 바람에서는 어니었지만, 어느덧 이순이 넘는 나이가 되어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니 나의 한평생은 바로 이 말과 맥이 닿아 있음을 알게되었다. 어려서부터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가로 평가된다.’ … 이 자리에서 나는 자녀교육의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자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가?’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단지 학교 성적이 우수한 수재로만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끝없이 왜 공부를 해야하는가?, 자신이 하는 공부로 이 사회에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가를 묻고 생각하게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타인과 세상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한 사회에 구한되지 않고 인류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세계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바랐다.”
본서의 저자는 위와 같은 자신이 했던 고민으로 프롤로그를 열었다.
한국 부모들의 자녀 교육열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바람직하고 좋은 현상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식욕심은 내 아이들이 남의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게 키우려는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의 발로에서 시작됨을 보게된다. 돈을 잘 벌고, 성공하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며,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 없이 남의 아이와 비교하며 키우는 것이다. 그로인해 그 아이가 정작 잘 할 수 있는 것에는 관심 없이 모든 분야에서 남의 아이보다 더 잘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무계획적, 무차별적으로 경쟁의 선상에 올려놓는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몇몇 사장님들의 이야기가 귀에 쟁쟁하다. ‘요즘 똑똑한 아이들은 많아요. 그런데 쓸만한 아이들은 없어요’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된다. 새삼스럽지만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만 잘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 부모에 대한 공경, 어른들에 대한 예절은 전혀 모른다. 그리고 권위적인 사람을 싫어한다고 표현하면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한다.
누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키울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부모는 드물다. 이것이 본서 저자의 안타까움이다. 부모의 역할, 부모의 책임, 아이들의 필요, 아이들의 특징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부모들, 오직 점수 따는 공부벌레, 돈 많이 버는 ‘머니머신’에 신들려 있다.
미국식 교육에 물들어 있는 교육사대주의에 빠져 있는 오늘날 한국의 부모들을 향하여 본서의 저자는 ‘한국식 교육의 가치와 저력’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와 기능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덕승재(덕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다)’의 교육가치를 직접 실천함으로써 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차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자녀 교육은 사이언스가 아니라 아트이다.’ 그러기에 부분의 기능적인 요소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아이의 전인생의 관점에서 내 자녀의 인생이 한 폭의 작품으로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의 주제에 따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하모니를 이루어 한 폭의 걸작이 되는 것처럼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잘 그려갈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말하고 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지 마라, 절대 자녀를 위해 희생하지 마라. 자녀를 섬기되 희생은 하지 마라. 그리고 당당한 한 사람의 삶을 진실하게 보여주어라. 부모의 삶의 조각과 자녀의 삶의 조각들을 아름답게 맞추어가라. 그리고 함께 한 폭의 모자이크 작품을 남겨라. 자녀교육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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