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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영적 전쟁의 실천적 적용서
내 마음은 치열한 전쟁터/조이스 마이어/박이경/베다니출판사/[김정완]
'자기 마음과의 내적 싸움에서 승리하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저자의 고통스런 체험이 고스란히 묻어난 수작이다.
표지 뒷면 약력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여러 남자로부터 성폭행과 심한 학대를 당하다 18세에 무단 가출해서 결혼했다. 5년 후에 이혼하고, 믿음이 좋은 남자와 재혼하여 지금까지 33년 동안 쌓인 상처를 위로 받고 치유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치유하고 회복하는 치유사역자가 되었다.’는 소개글을 읽고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년 전 우리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살인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0대에 당한 성폭행으로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은 40대의 여인이 당시 성폭행범을 찾아 살해한 사건이었다. 그것 말고도 최보은 사건이라든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과 유사한 사건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것은 철저한 자기파괴적 양상과 조건반사적 대응이라는 처방이다. 뜻하지 않은 경험이 당사자에게 수렁과 같은 좌절감을 준 탓이었으리라. 저자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해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되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경우 자기학대로 나타나든지, 아니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형태를 보인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상대가 사라지면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위에 든 40대 여인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짐승을 죽였다고 한 여인의 얼굴에서 고통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는 걸까? 문제의 해결이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원치 않은 고통이 엄습한 이유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할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다.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질문은 생물학적 생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목적론적 물음에 이르게 해주는 시발점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목적에서 떠난 데서 비롯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바로 잡아줄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저자는 예수님을 통해 어긋난 진로를 수정할 수 있었다. 인생의 목표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유사한 좌절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치유의 은혜를 증거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실제적이다. 저자의 쉽지 않은 체험이 성경과 조화를 이루어 독자의 심령에 깊이 공명한다. 정상적인 독자라면 형태는 달라도 끊임없이 속삭이는 사단의 음성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살 길이 열린다는 절박함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자는 사단이야말로 지극히 명민한 자임을 연신 고발하고 있다.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를 치밀하게 분석한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각 사람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다룰 장단기 계획을 빈틈없이 수립하고 시행함으로써 쓰러지고 나서도 언제 쓰러졌는지 모를 정도로 크리스천의 신앙에 좀이 쓸게 만든다는 것이다. 적을 모르고 나 또한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백전 백패할 수밖에 없다. 사단은 속이는 자다. 이 점을 명확히 해야 사단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다.
저자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말씀을 의지해 사단을 물리쳤듯이 지면 곳곳에 말씀을 기록해 놓았다. 이런 방식의 기술은 무척 효과적으로 보인다. 독자의 시선을 단박에 휘어잡으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시종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말씀과 적용’이라는 장치를 통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말씀 외에 어떤 것으로도 사단과 대적할 수 없다는 저자의 체험적 신앙이 밑받침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저자 조이스 마이어 (Joyce Meyer)
미국의 기독교 서적 베스트셀러 작가. 1993년부터 미국 전역에 방송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말씀으로 사는 삶(Life in the Word)'의 진행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은책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삶> <슬픔 대신 화관을> 등이 있다.
'자기 마음과의 내적 싸움에서 승리하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저자의 고통스런 체험이 고스란히 묻어난 수작이다.
표지 뒷면 약력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여러 남자로부터 성폭행과 심한 학대를 당하다 18세에 무단 가출해서 결혼했다. 5년 후에 이혼하고, 믿음이 좋은 남자와 재혼하여 지금까지 33년 동안 쌓인 상처를 위로 받고 치유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치유하고 회복하는 치유사역자가 되었다.’는 소개글을 읽고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년 전 우리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살인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0대에 당한 성폭행으로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은 40대의 여인이 당시 성폭행범을 찾아 살해한 사건이었다. 그것 말고도 최보은 사건이라든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과 유사한 사건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것은 철저한 자기파괴적 양상과 조건반사적 대응이라는 처방이다. 뜻하지 않은 경험이 당사자에게 수렁과 같은 좌절감을 준 탓이었으리라. 저자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해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되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경우 자기학대로 나타나든지, 아니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형태를 보인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상대가 사라지면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위에 든 40대 여인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짐승을 죽였다고 한 여인의 얼굴에서 고통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는 걸까? 문제의 해결이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원치 않은 고통이 엄습한 이유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할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다.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질문은 생물학적 생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목적론적 물음에 이르게 해주는 시발점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목적에서 떠난 데서 비롯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바로 잡아줄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저자는 예수님을 통해 어긋난 진로를 수정할 수 있었다. 인생의 목표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유사한 좌절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치유의 은혜를 증거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실제적이다. 저자의 쉽지 않은 체험이 성경과 조화를 이루어 독자의 심령에 깊이 공명한다. 정상적인 독자라면 형태는 달라도 끊임없이 속삭이는 사단의 음성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살 길이 열린다는 절박함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자는 사단이야말로 지극히 명민한 자임을 연신 고발하고 있다.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를 치밀하게 분석한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각 사람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다룰 장단기 계획을 빈틈없이 수립하고 시행함으로써 쓰러지고 나서도 언제 쓰러졌는지 모를 정도로 크리스천의 신앙에 좀이 쓸게 만든다는 것이다. 적을 모르고 나 또한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백전 백패할 수밖에 없다. 사단은 속이는 자다. 이 점을 명확히 해야 사단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다.
저자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말씀을 의지해 사단을 물리쳤듯이 지면 곳곳에 말씀을 기록해 놓았다. 이런 방식의 기술은 무척 효과적으로 보인다. 독자의 시선을 단박에 휘어잡으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시종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말씀과 적용’이라는 장치를 통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말씀 외에 어떤 것으로도 사단과 대적할 수 없다는 저자의 체험적 신앙이 밑받침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저자 조이스 마이어 (Joyce Meyer)
미국의 기독교 서적 베스트셀러 작가. 1993년부터 미국 전역에 방송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말씀으로 사는 삶(Life in the Word)'의 진행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은책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삶> <슬픔 대신 화관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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