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서평
당신이 믿는 기독교는 심리학의 힘이 필요한가?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부흥과개혁사/[북뉴스]
옥성호 집사가 쓴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었다.
바로 어제 그와의 점심식사에서 만나서 받은 책을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읽었다. 평소 내적 치유와 심리학이라는 폐혜에 대해서 주변에 열변을 토해 오던 터라 나로서는 그렇게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 융, 그리고 뉴에이지 사상가들의 책들을 섭렵한 그에게서 신학자와 철학자를 능가하는 탁월한 현대 교회의 인식과 문제 의식, 그리고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저자는 본 저서를 통해서 심리학은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는 대표적인 자연주의 종교중의 하나이며, 기독교 진리는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부족하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문제와 궁금증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역설한다. 따라서, 심리학이라는 우상으로 기독교를 해석하고, 기독교 진리를 심리학의 전파에 묻어서 진리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은 무당의 굿하는 것, 혹은 이단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에게 이 책은 최근 4-5년 동안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준 책이었다. 그래서, 저자의 책에 더하여 이 글을 읽을 분들에게 몇 명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저자를 추가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현 고든 콘웰의 조직 신학 교수로 있는 데이빗 웰즈이다. 그는 현재 복음주의 교회에 신학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전통적으로 내려온 신앙적인 교리와 고백적인 요소와 그리고 합당한 자기 연단과 반응이 사라졌음을 통단하였다. 현재 그는 현 시대의 Context를 올바로 분석하고 올바른 신앙 교리를 제시하는 4부작 시리즈를 출간하였고, 부흥과 개혁사에서 시리즈를 출간 중이다. 두 번째의 인물로는 마이클 호튼으로써,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의 조직신학 교수로 있는 신학자이다. 화이트 홀스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중요한 신학적인 이슈들을 들고나와 미국 교회가운데 진리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들을 여러 패널들과 함께 나누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그의 여러 중요한 저서들이 현재 한국에 소개되어 있고, 그의 책들을 통해 현대 교회의 부패성과 이단성에 대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세번째의 인물은 이안 머레이라는 학자이다. 그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제자격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이안 머레이가 쓴 “부흥과 부흥주의”를 읽으면서, 내가 속한 복음주의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찰스 피니를 중심으로한 부흥주의의 심각한 폐혜속에 있음을 안 뒤,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이안 머레이의 약 200년 전에 있었던 미국 부흥 운동의 폐혜에 대한 인식은 오늘 내 속에 있는 잘못된 교리들의 폐혜를 밝히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게 해 주었다.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심리학은 과학인가, 종교인가”에서는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학설인 것처럼, 심리학 역시 과학이 아니며, 무속신앙과 같은 하나의 종교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2장 “기독교 심리학은 존재하는가”에서는 게리 콜린스와 제이 아담스를 통해서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나올 법한 미신적인 샤머니즘이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교회내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우리가 말하는 “상처”라는 것들도 결국은 인간의 원죄로 타락한 인간 본성의 죄악이지 상처로 보는 심리학의 견해에 강하게 반박한다. 제 3장 “왜 심리학은 반기독교적인가”에서는 심리학의 근원되는 사상가의 저술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철저히 무신론적이며, 비 성경적임을 드러냄으로써, 심리학의 반 기독교성을 폭로한다. 기독교 심리학은 종교를 하나의 질병의 대상으로 경멸한 프로이트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고, 귀신의 신내림, 강신술과 다름없는 융의 심리학은 성경의 내용을 신화 취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 4장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은 독자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 출판업계의 베스트 셀러에 오른 “긍정의 힘”을 쓴 오스틴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그의 "긍정의 힘", 뒷 부분에 적혀있는 추천의 글을 쓴 인물들을 본다면 더욱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바로, 한국의 내노라하는 목회자들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의 추천의 글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주위의 대학생들이 그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애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고, 성경은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의 독버섯과 같은 책이 우리 한국 기독교 출판계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스틴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이 도무지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긍정의 힘으로 요한복음 3장의 성령님에 의한 중생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니, “긍정”을 말하는 오스틴을 믿는 이단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두란노” 출판사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출판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의 건전한 사고를 가진 대학생들과 신학생들은 그의 책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본 장에서 말하는 세 개의 가면은 자기 사랑과 긍정적인 사고와 성공의 법칙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심리학적인 개념들이 한국 교회의 강단을 풍미하고 있으니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정 교회의 로버트 슐러의 대를 잇는 오스틴의 등장은 복음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제 5장 “성경은 참으로 충분한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잘못된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바로 잡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아쉬운 점은 필자가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나서 제시하는 대안들의 미흡함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오늘날 무시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종교들의 사상들과 무신론이 기독교의 진리인양 판을 치고 있다면, 이를 대항하기 위해 우리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성경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왜냐하면, 올바른 비판은 늘 대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자와 같이 기독교 사회 전반을 비판하겠다고 작정한 사람은 context뿐만 아니라, contents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물론, 5장에서 성경 말씀에 대한 불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말하지만, 기존의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도 “Back to the Basic”이라는 표어 하에 동일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면, 그가 말한 교리 교육의 중요성과 바른 Doctrine의 선포에 대해서 지적함으로써,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비과학적인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나, 성경적인 상담학을 연구하는 “Biblical Counselor”들이 여전히 있음을 간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 상담가들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있으며, 기독 심리 상담가들과 성경적 상담가들이 어떻게 다른 지를 밝혀주었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 신학교의 상담학은 모두 사라질 것 같은 걱정이 들어서 그렇다.
저자의 생각에 여러 논쟁적인 부분에 대부분 필자 역시 동감하는 부분이다. 온갖 잡동사니 사상으로 오염된 기독교의 핵심진리 속에서 바른 기독교 사상을 붙드는 것은 종교 개혁자들이 우리들에게 부탁한 것임에 분명하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의 글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 주어서 시원하고 후련한 마음을 느끼면서, “내 주위에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그러나, 확실히 그의 마케팅과 엔터테인컨트와 관련된 2권의 책은 1권의 책보다 훨씬 더 한국 교회에 일대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1권에서 그렇게 했듯이 다음 시리즈에서 “하나님”처럼 신성시 여겨졌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누군가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할 때, 아무리 사실을 중심으로 한다 하더라도 교회와 교인들의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수술칼을 들고 수술대 위에서 대 수술을 해야만 한다. 권력화된 대형교회들과 기성 교회들의 비난이 예상되기에 저자와 출판사의 용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나에게 심리학은 필요치 않다. 영원히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무한한 영광스러운 구원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인데, 그리고 이 땅을 사는 동안에 성령님께서 나의 영혼을 붙드시고, 천국까지 인도하시며, 도우시는데 심리학이 왜 필요한가 의문이 든다.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서, “당신이 믿는 기독교는 심리학의 힘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지도 모른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자. 구원과 구속을 이루어 가시는 위대하시고 놀라우시고 아름다우신 삼위 하나님만이 복음이고, 그것으로 차고 넘친다. 기독교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일독을 권한다.
글 권지성 크리스찬북뉴스 기자
저자 옥성호
크리스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아주 얼릴때부너 교회를 다녔으나 20대 후반 어느 시점에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 자체를 끊었다. 그러나 가정적 환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교회 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며, 겉으로는 기독교인으로 행세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6년 2월 로이드 존스 목사의 <교리 강좌 시리즈>를 읽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옥성호 집사가 쓴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었다.
바로 어제 그와의 점심식사에서 만나서 받은 책을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읽었다. 평소 내적 치유와 심리학이라는 폐혜에 대해서 주변에 열변을 토해 오던 터라 나로서는 그렇게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 융, 그리고 뉴에이지 사상가들의 책들을 섭렵한 그에게서 신학자와 철학자를 능가하는 탁월한 현대 교회의 인식과 문제 의식, 그리고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저자는 본 저서를 통해서 심리학은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는 대표적인 자연주의 종교중의 하나이며, 기독교 진리는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부족하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문제와 궁금증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역설한다. 따라서, 심리학이라는 우상으로 기독교를 해석하고, 기독교 진리를 심리학의 전파에 묻어서 진리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은 무당의 굿하는 것, 혹은 이단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에게 이 책은 최근 4-5년 동안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준 책이었다. 그래서, 저자의 책에 더하여 이 글을 읽을 분들에게 몇 명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저자를 추가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현 고든 콘웰의 조직 신학 교수로 있는 데이빗 웰즈이다. 그는 현재 복음주의 교회에 신학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전통적으로 내려온 신앙적인 교리와 고백적인 요소와 그리고 합당한 자기 연단과 반응이 사라졌음을 통단하였다. 현재 그는 현 시대의 Context를 올바로 분석하고 올바른 신앙 교리를 제시하는 4부작 시리즈를 출간하였고, 부흥과 개혁사에서 시리즈를 출간 중이다. 두 번째의 인물로는 마이클 호튼으로써,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의 조직신학 교수로 있는 신학자이다. 화이트 홀스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중요한 신학적인 이슈들을 들고나와 미국 교회가운데 진리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들을 여러 패널들과 함께 나누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그의 여러 중요한 저서들이 현재 한국에 소개되어 있고, 그의 책들을 통해 현대 교회의 부패성과 이단성에 대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세번째의 인물은 이안 머레이라는 학자이다. 그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제자격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이안 머레이가 쓴 “부흥과 부흥주의”를 읽으면서, 내가 속한 복음주의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찰스 피니를 중심으로한 부흥주의의 심각한 폐혜속에 있음을 안 뒤,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이안 머레이의 약 200년 전에 있었던 미국 부흥 운동의 폐혜에 대한 인식은 오늘 내 속에 있는 잘못된 교리들의 폐혜를 밝히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게 해 주었다.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심리학은 과학인가, 종교인가”에서는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학설인 것처럼, 심리학 역시 과학이 아니며, 무속신앙과 같은 하나의 종교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2장 “기독교 심리학은 존재하는가”에서는 게리 콜린스와 제이 아담스를 통해서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나올 법한 미신적인 샤머니즘이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교회내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우리가 말하는 “상처”라는 것들도 결국은 인간의 원죄로 타락한 인간 본성의 죄악이지 상처로 보는 심리학의 견해에 강하게 반박한다. 제 3장 “왜 심리학은 반기독교적인가”에서는 심리학의 근원되는 사상가의 저술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철저히 무신론적이며, 비 성경적임을 드러냄으로써, 심리학의 반 기독교성을 폭로한다. 기독교 심리학은 종교를 하나의 질병의 대상으로 경멸한 프로이트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고, 귀신의 신내림, 강신술과 다름없는 융의 심리학은 성경의 내용을 신화 취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 4장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은 독자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 출판업계의 베스트 셀러에 오른 “긍정의 힘”을 쓴 오스틴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그의 "긍정의 힘", 뒷 부분에 적혀있는 추천의 글을 쓴 인물들을 본다면 더욱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바로, 한국의 내노라하는 목회자들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의 추천의 글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주위의 대학생들이 그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애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고, 성경은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의 독버섯과 같은 책이 우리 한국 기독교 출판계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스틴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이 도무지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긍정의 힘으로 요한복음 3장의 성령님에 의한 중생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니, “긍정”을 말하는 오스틴을 믿는 이단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두란노” 출판사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출판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의 건전한 사고를 가진 대학생들과 신학생들은 그의 책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본 장에서 말하는 세 개의 가면은 자기 사랑과 긍정적인 사고와 성공의 법칙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심리학적인 개념들이 한국 교회의 강단을 풍미하고 있으니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정 교회의 로버트 슐러의 대를 잇는 오스틴의 등장은 복음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제 5장 “성경은 참으로 충분한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잘못된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바로 잡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아쉬운 점은 필자가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나서 제시하는 대안들의 미흡함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오늘날 무시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종교들의 사상들과 무신론이 기독교의 진리인양 판을 치고 있다면, 이를 대항하기 위해 우리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성경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왜냐하면, 올바른 비판은 늘 대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자와 같이 기독교 사회 전반을 비판하겠다고 작정한 사람은 context뿐만 아니라, contents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물론, 5장에서 성경 말씀에 대한 불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말하지만, 기존의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도 “Back to the Basic”이라는 표어 하에 동일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면, 그가 말한 교리 교육의 중요성과 바른 Doctrine의 선포에 대해서 지적함으로써,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비과학적인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나, 성경적인 상담학을 연구하는 “Biblical Counselor”들이 여전히 있음을 간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 상담가들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있으며, 기독 심리 상담가들과 성경적 상담가들이 어떻게 다른 지를 밝혀주었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 신학교의 상담학은 모두 사라질 것 같은 걱정이 들어서 그렇다.
저자의 생각에 여러 논쟁적인 부분에 대부분 필자 역시 동감하는 부분이다. 온갖 잡동사니 사상으로 오염된 기독교의 핵심진리 속에서 바른 기독교 사상을 붙드는 것은 종교 개혁자들이 우리들에게 부탁한 것임에 분명하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의 글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 주어서 시원하고 후련한 마음을 느끼면서, “내 주위에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그러나, 확실히 그의 마케팅과 엔터테인컨트와 관련된 2권의 책은 1권의 책보다 훨씬 더 한국 교회에 일대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1권에서 그렇게 했듯이 다음 시리즈에서 “하나님”처럼 신성시 여겨졌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누군가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할 때, 아무리 사실을 중심으로 한다 하더라도 교회와 교인들의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수술칼을 들고 수술대 위에서 대 수술을 해야만 한다. 권력화된 대형교회들과 기성 교회들의 비난이 예상되기에 저자와 출판사의 용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나에게 심리학은 필요치 않다. 영원히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무한한 영광스러운 구원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인데, 그리고 이 땅을 사는 동안에 성령님께서 나의 영혼을 붙드시고, 천국까지 인도하시며, 도우시는데 심리학이 왜 필요한가 의문이 든다.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서, “당신이 믿는 기독교는 심리학의 힘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지도 모른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자. 구원과 구속을 이루어 가시는 위대하시고 놀라우시고 아름다우신 삼위 하나님만이 복음이고, 그것으로 차고 넘친다. 기독교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일독을 권한다.
글 권지성 크리스찬북뉴스 기자
저자 옥성호
크리스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아주 얼릴때부너 교회를 다녔으나 20대 후반 어느 시점에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 자체를 끊었다. 그러나 가정적 환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교회 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며, 겉으로는 기독교인으로 행세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6년 2월 로이드 존스 목사의 <교리 강좌 시리즈>를 읽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 8960920088_1.jpg (0B) (0)
2,660개(90/133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