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신천지, 폐기될 것인가 회복될 것인가?
서론
대학교 때 우연히 읽었던 폴 마샬의 “천국만이 내 집은 아닙니다”라는 책은 천국만이 유일한 고향이고 소망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세상도 유일한 고향이고 소망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 이 책을 손에 넣었을 때 송인규 목사님의 “예배당 중심의 기독교를 탈피하라”는 제목처럼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고 아직까지 바른 관점과 균형잡힌 성경해석을 듣고 배우지 못한 나의 환경에서는 불온한 제목이였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읽으며 그리스도인은 이 땅을 남의 집이 아니라 내 집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의 저자와 평행선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저자 미들턴은 “그리스도인의 비전”이라는 책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세계관 운동을 하는 목사이다. 필자도 이번 독서를 하기 전까지 단순히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과 모든 삶과 학문 속에 주되심을 주장하는 카이퍼 전통의 세계관 운동을 하는 목사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구약을 전공한 뛰어난 성경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구조 아래 이 땅도 우리에게 친숙한 고향이라는 것을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며 주해하고 설명하며 설득한다.
구성과 내용
책의 내용은 총 12장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한 챕터를 읽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그룹으로 모여 읽고 스터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내용이였다. 1장에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고 그 하늘을 마지막 운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가 왜 그런 사고를 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플라톤의 이원론을 그 배경으로 설명해간다. 그래서 기독교 구원관의 문제가 어떻게 내세적으로 좁혀지고 손상되었는지 살핀다.
2장에서는 우리가 단순히 예배하기 위한 존재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넘어 왜 창조되었는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문화명령을 포함한 우리의 현재적 목적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창조에서 종말까지 지상의 피조물을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성경의 줄거리를 통해 보여준다. 4장부터 6장까지는 구약에 나타는 총체적인 구원을 설명하는데 4장에서는 출애굽 사건이 신구약에 있어서 전형적인 구원의 패턴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5장에서는 율법서와 지혜서 그리고 예언서를 통해 이땅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과 번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소개한다. 6장에서는 하나님의 세계안에 들어온 죄를 어떻게 심판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 그 의도를 보여준다.
7장부터 12장까지는 신약을 통해 하나님의 총체적인 구원과 회복을 설명하는데 7장에서는 부활의 의미를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그 내적 논리와 원리와 설명하는데 주력하며 8장은 인간 이외의 피조물을 포함하여 만물의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우주적 비전을 설명한다. 9장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우주가 멸망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10장은 성경적 종말론에서 하늘의 역할을 다룬다. 11장은 누가복음 4장에 선포된 복음을 가지고 복음의 총체적이고 현세적인 성격을 설명하고 12장은 그 나사렛의 복음을 가지고 우리가 깨어진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가를 적용한다.
저자의 주장
각 장의 내용을 보듯이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단순히 종말론을 다루지 않는다. 구원이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이유가 무엇이고 피조물을 향해 고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위해 이땅에 오셨는가, 그분께서 왜 부활하셨는가, 그 부활에 우리가 동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무슨 일어나는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등등 이 책은 단순히 종말론을 넘어서 구원론과 기독론, 교회론과도 연결되어지는 넓고 깊은 연구물이다.
그러나 책에서 핵심이 되는 주장은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폐기하는게 아니라 원래의 모습대로 반드시 회복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지금 이 땅이 소멸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가 넘치는 하나님의 생각을 반영하는 곳이 되고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피조물 또한 마지막 날에 파괴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대로 변화되고 구속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아모스의 말처럼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하수 같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으로만 가득한 것으로 실제 같다.
우리는 이 땅이 타락하고 더러워지고 창조질서가 파괴되어 더 이상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소망이 없어지는데, 책은 거듭 강조하기를 이 땅이 새롭게 변화되고 구속될 것이라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더 어두워지는 현실에 어디까지 죄로 물들어 관영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땅의 구속을 의심스러워 하는데, 그래서 천국을 더 소망하게 되는데, 책은 새하늘은 올라가는게 아니라 이 땅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반전을 던진다.
성경적 구원은 이땅을 버리고 우리가 하늘로 가는게 아니다. 주님의 재림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이땅을 파괴하고 부수며 임하는게 아니다. 주님의 나라는 이땅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과 의로 가득한 세상으로 변화되고 구속되는 것이다. 하늘은 우리가 거하게 될 거주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으로 가득한 존재영역이고 땅은 재림 때까지 거주영역이다. 하지만 새하늘과 새땅이 만날 때 그 땅은 존재와 거주가 합쳐진 창조의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책의 주장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28사단 전차대대를 전역하였는데 당시 복무시절 우리 부대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때 우리 부대는 약 2-3개월 전부터 대통령을 맞을 준비를 했는데 그때 나는 부대가 중생하는 것을 보았다. 소속된 전 부대원을 포함하여 막사와 도로와 모든 창고와 시설들이 처음 지었던 모습처럼 변화되고 유지 되었다. 모든 안전은 물론 근무태도며 일상과 관련된 것도 최상으로 유지하였다.
그리고 때가 되어 대통령은 마치 주님 재림하듯 헬기를 타고 연병장 한가운데에 착륙하였고 우리는 기쁨으로 그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 대통령이 왔다는게 당시 부대 지침이여서 늘 그렇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분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라는 것이였다. 이렇듯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이땅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타락하고 무너진 것에서 보수하고 세우며 의를 향해 살아가게 한다.
아쉬운 점
저자의 주해와 논증에 약점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무지했던 부분을 열어주어서 감동이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 정말 가난과 핍박과 땅에서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천국만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들이 분명히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 책을 들이대며 읽으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그들에게 하늘나라는 정말 유일한 고향이며 안식처이고 생을 버티고 견디며 살 수 있는 주님의 날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의가 가득한 곳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배운 종말론에서 사람이 죽은 후 아브라함의 품과 낙원과 같은 중간기 상태가 주림 재림 전까지 존재하는데 저자는 자신의 주해를 통해 중간기 개념을 무시하며 그 품과 낙원은 내세적인 운명이 아니라고 논증한다. 물론 저자의 주해를 반박할 실력이 되지 않아서 약한 점을 찾지는 못했으나 너무 지나치게 땅의 구속을 강조하는게 오히려 약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이런 내세를 의미하는 중간기 개념은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면이 분명히 있는데 이런 장점이 소멸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또한 저자는 내세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사회적 악에 대한 저항과 이땅의 구속적 변화를 위해 일하는데 소극적으로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 내세적 구원이 우리가 이땅에서 도망가고 무책임한 존재로 살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구원관과 복음에 대한 이해 부족이 그런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지 장차 우리가 거하게 될 하늘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땅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마무리하며
책을 읽으며 이 땅에서의 천국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으로 주님을 모신 사람이라면 천국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이 손상되고 훼손되어서 아파하는 곳이 너무나 많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땅에서의 번영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 상승적인 삶이 아니라 하향적인 삶을 향한다면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내가 거한 곳에서 조금이나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 때 하늘에는 영광이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중에 평화라고 한다. 샬롬은 단순히 하나님과 내적인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피조세계와 우주와 연결된 회복의 개념이다. 어떻게 땅은 무너져만 가는데 나만 하나님과 화평하다고 기쁘게 살 수 있겠는가? 샬롬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임할 때 이루어지겠지만 모순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날마다 하늘에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기쁨을 입었으니 이땅에서 평화를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