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삶의 모든 국면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세우는 성경적 비전
저자는 먼저 현대문화가 들려주는 ‘진보’에 대한 신화를 지적한다. 이 진보 신화는 현대문화, 특별히 서구문화에 내재하는 ‘종교’라고 말한다. “이 진보라는 신화는 교과서에 은밀히 녹아 있고, 광고 속에 묘사되고 있으며, 도심의 고층 빌딩에 우뚝 솟아 있으며, 대학 강단에서 전파되며, 정당의 공약으로 선전되고 있으며, 드라마와 뉴스에 의해 친절하게 연출되고 있다.”(19쪽) 이 진보라는 신화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우리의 직장생활은 과학지상주의, 기술지상주의, 경제지상주의라는 세 가지 신을 섬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지고의 경제적 선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좋으면서 가장 빠른 기술들을 활용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목표와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결정하고자 최고의 전문 기술자들과 전문 컨설턴트들의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
기독교 사상가 오스 기니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문화적 위기가 다가오는데 교회는 경계를 강화하기보다는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지금 사실상 혼수상태에 빠져 있고 문화의 덫에 걸려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분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우상숭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한 분별은 우상들을 찾아내어 그들이 인간생명을 사악하게 왜곡하는 것을 폭로한다. 나아가, 영적, 문화적 진단에 관여하려면 영적, 문화적 건강함 혹은 온전함이 어떤 모습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깊이 알아야 한다. 즉 우리의 문화적 삶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 치유의 규범과 방향을 속속들이 그리고 깊이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유 방식을 제대로 처방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우리의 진단은 ‘성경적 비전’에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열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제자도를 실천하려는 자신의 분투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 즉 타인의 고통과 우리 문화의 고통을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억압당할 때 울부짖는 사람, 거짓말, 특히 우리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을 폭로하는 사람이 되기를 촉구한다. 그러한 울부짖음은 우리의 울부짖음을 듣는 사람, 언약 백성의 울부짖음에 대해 반응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힘이 있다.”(59쪽)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낙관주의자가 아닌 까닭은 그들이 개인적·문화적·역사적 소망의 궁극적 원천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비관주의자도 아닌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애정과 언약에 기초한 순종을 방해하는 우상숭배가 우리 삶에서, 우리 문화에서,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문화 추종자가 아닌 문화 형성자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이 말은, 아모스의 말을 빌리자면,우리가 “정의를 물같이,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암 5:24)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 말은, 사도 요한의 표현대로는 “우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해야”(요일 5:21)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복음 안에 비범하면서도 급진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바탕을 둔 이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그 비전을 그는 이렇게 제시한다.
“우리는 일터에서 침실에 이르기까지, 회의실에서 교실에 이르기까지, 극장에서 식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국면에서 하나님의 샬롬, 하나님의 구속적 임재를 체험할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영역들이 있는데, 장차 완전한 형태로 다가올 창조적으로 회복시키는 나라를 미리 맛보기 위해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치유하시는 임재와 더불어 투쟁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삶의 모든 공간에서다.”(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