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역사의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구원의 복음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에 ‘기억의 정치학’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공식기억과 민중의 대중기억이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역사를 다시 쓰는 기법이다. 이 방법으로 역사를 보게 되면 그동안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았던 해석과 방법들 이면에 있는 새로운 현장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와 지평을 넓혀준다. 뿐만 아니라 승리주의적이고 결과론적으로 받아들어졌던 역사를 균형감 있고 정확하게 보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처음부터 완성된 과거는 없다. 이미 다 결정되어져 화석화된 것처럼 보이는 과거와 사건들이지만 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한 단면일 뿐이지 그게 사물의 전부는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의 주인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존재와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들은 다양하게 예수님의 탄생과 삶과 사역들을 조명하며 해석했다.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전통을 따라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삶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예수님을 그 호칭에 해당하는 이미지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세밀히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묵시사상에서 말하고 유대인이 간절히 원하는 그런 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니었다.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목적은 그런 후대에 정의되어진 그런 직분과 칭호로 다 밝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런 후대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한 말씀과 사역을 보면 주님의 존재와 목적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아이기를 철저히 거부하며 죽음의 길로 향한다. 예수님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게 목적이 아니엇고 그의 모든 선포와 활동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에 집중되어져 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포기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시는 분이시다.
이 책은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배경 속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들과 말씀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특정한 칭호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것보다 의와 평강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셨다는 것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어떻게 임재하고 실현되며 이루어지고 있는지 다루고 있다. 기존에 묵시사상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심판과 권세가 있는 왕의 모습을 철저히 부수고 죽음으로서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속성과 종교성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일그러진 욕망과 자화상도 계속해서 무너뜨리고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 하나님 나라의 침투와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를 엎드리게 한다. 그분은 실로 죽음을 통해 이 땅에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나라 자체이시다.
본서는 총 5부 18장으로 이루어졌는데 1부 “예수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중간기 시대의 역사와 예수님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상황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중간 시대의 역사는 복잡해서 이해하는 게 어려운데 저자는 이 부분을 잘 요약하며 설명해준다. 2부 “메시아 예수의 오심과 그의 인격”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담지자로서 메시아 예수님의 오심과 되어감 속에 있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인격이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그의 메시야 되심이 어떤 것인지 전방위적으로 소개된다.
3부 “사회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주님의 나라가 죽어서가는 천당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침투하여 타락한 것을 고치고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확장되어지는 나라로 소개된다. 또한 그 나라가 한 개인의 구원의 확신으로 종합되고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물질 세계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만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다루어진다. 아울러 가난과 소외와 차별과 억압과 착취가 해소되어져 참 평화가 모두에게 역사되어지는 나라를 소망하게 된다.
4부 “종교와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간이 종교의 형식들을 위해 존재하는 일그러진 종교와 법들을 뒤집으셔서 종교와 율법과 규칙들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나라를 그려내고 있다. 예수님은 타락한 성전과 변질된 제사와 오용되는 율법을 철폐화 시키고 인간의 행복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질서를 다시 세우신다. 하나님의 참 뜻이 반영되어지는 그런 종교와 법을 세우셔서 당신의 나라를 펼치신다.
5부 “십자가와 부활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십자가의 형벌이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한 종교적 죽음이지만 또한 당시 상황 속에서 부당하게 당하게 되는 예수님의 정치적 죽음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죽음은 개인의 회복과 사회와 정치적 질서의 변화를 이루고 이 땅에 모든 폭력을 종식시킨다.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무능력해 보이는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역설적인 승리이고 새로운 나라의 시작의 확증과 보증이다.
필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는 본서를 통해 세 가지의 특징을 말하고 싶어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상의 혁명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질서 속에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 부각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본서를 통해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보면 어머니 같은 한없이 자애로운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독재와 정복자 같은 폭군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고 생명까지 헌신하는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고 사회적 구조 자체가 타락해서 부당하게 착취와 억압당하는 자들에게 눈물로 기도해주고 마음을 풀어주시는 것은 하나님 어머니께서 깊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율법으로 불의하다 정죄당하고 멸시와 조롱받는 자들과 거리의 거지들과 낙오된 양 한 마리까지 하나님 어머니께서 다 품어낼 수 있다. 이렇듯 본서는 여성신학적 관점을 넘어 상실된 인간성과 인간과 피조세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예수를 통한 하나님 어머니를 충분히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포괄적인 역사를 강조한다. 실제 예수님이 불의한 정치와 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 이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셨고 그 위에 항상 주님의 영이 머무셨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은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예언되었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성령님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펼쳐짐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책에서는 이 예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이 현실세계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이고 영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영은 물론 물질의 역사와 현실까지도 고치고 새롭게 하시는 분으로 드러난다. 억압받는 자들과 고통 받는 자들, 죄에 묶인 자들과 불의에 짓눌린 자들에게 그들의 운명을 전환시키며 자유와 위로를 주는 새 창조의 영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 하나님의 성령님은 한 개인을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개인적인 영이 아니라 모든 사회와 창조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거룩한 영으로 일하신다.
세 번째는 기존 제도를 무너뜨리는 예수님을 통해 율법(구약)이 환하게 밝혀진다. 전통적으로 율법은 죄를 알려주고 죄의 기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한다고 가르쳐져 왔다. 그리고 실제 유대교는 율법의 근본 목적을 왜곡하고 잘못된 율법주의에 빠져서 사람의 양심과 자유를 파괴해왔다. 그리하여 율법의 참 뜻인 정의와 자비를 행하지 않아도 세부조항만 지키면 된다고 하여 사람을 정죄하고 차별하여 그 선한 뜻을 변질시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왜곡된 율법을 상대화시켜서 율법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와 평화 속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데 있다고 가르쳐주신다.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지키는 자와 못 지키는 자를 구분하여 정죄하고 분리된 종교집단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나라를 세우는데 있다. 그래서 율법은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죄의 고발 기능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모든 피조물의 평화로운 삶의 기준이 되고 신령하고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끝으로 필자는 이 귀한 책을 읽으며 기존의 나의 복음과 신학을 새롭게 하고 더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기존에 조직신학적으로 규정되어진 예수님의 모습을 넘어 철저히 역사적이고 사회적 존재인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더 메시아적이고 은혜가 되었다. 또한 부활의 빛 아래서 예수님을 보는 게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드러나는 복음서의 예수님이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죽음으로 향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종교가 개인의 종교를 넘어 세계의 평화를 위한 종교가 될 수 있는 위치까지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재차 강조하지만 막연하고 단순하게 하나님 나라는 왕적인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곳이라 하지 않고, 예수님의 삶과 구체적인 사건들과 말씀으로부터 그분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소개하고 있다. 또한 개인의 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며 그 나라의 완성을 향해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그리하여 본서를 통해 예수님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어떤 분이셨고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필자는 한 신학자의 완성된 열매를 담고 있는 이 책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일독하기를 간절히 권하고 싶다.
저자 김균진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목회소명을 받았고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M. A.), 독일의 튀빙겐 대학교에서 몰트만 교수의 지도로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받았다. 1977년부터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