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거룩한 하나님 앞에 죄된 인간이 어떻게 설 수 있을까?
“죄악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까?”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원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이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의롭게 될 수는 없었다. 구약성경은 제사 제도를 통해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을 날마다 보여 주었다.
죄 없는 짐승을 잡아 안수함으로 내 죄가 짐승에게 전가가 되고, 내 죄가 전가된 짐승을 내가 죽임이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죄가 피 없이는 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제사 제도도 결국에는 의롭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타락하고 만다. 제사를 지내는 성전에서 장사를 하고, 환전을 함으로 종교기득권층의 권력과 세력은 더욱 막강해졌고, 그로 인한 인간의 절망은 더욱 심해져갔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의가 우리 앞에 오게 되었다. 반복되는 제사 제도로 의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를 중심으로 떠난 제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기록했다. 바울이 남쪽 갈라디아 지방에서 성공적인 전도여행을 마치자 구약의 유전을 중요시 여기는 유대주의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구약의 의식, 할례를 준행해야 한다고 고집을 했다.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더욱 호소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복음에서 일부율법적인 요구 사항을 제거해 버렸다고 주장을 했다. 이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후반부부터 2장 중반부까지 자신의 사도권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입증을 한다. 사도권이 무시되면 말씀의 권위가 무너지고 개종자들이 율법의 멍에를 지게 되므로 바울로서는 이를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 개인의 일정을 갈라디아 1-2장에서 자세히 기록을 한다.
바울이 받은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다(갈 1:11-12).
아라비아에서 3년을 지내고 예루살렘에 가서 14일을 머물면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만났다(갈 1:17-19).
그 후 고향 다소가 속한 길리기아와 수리아에 이르렀다(갈 1:21-24).
14년째에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갈 2:1).
바울은 자신이 전파한 복음이 의심을 받자 예수님께 직접 계시받은 복음을 사도들에게 계시한다(2:2). 베드로와 야고보는 이를 듣고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보냄 받았음을 인정하고 친교의 악수를 나누었다(2:8-9). 바울은 게바가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식사를 하다가 율법주의자들이 오자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책망을 했다. 이는 당시 바울의 지도권이 베드로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베드로를 책망했기 때문에 그의 복음이 어떠한가를 드러내려는 의도였다(2:11-14). 그러면서 바울은 신앙의 핵심인 믿음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바울은 3-4장에서 아브라함과 종의 비유, 아브라함의 자녀의 비유 등을 들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성경에 의거해 입증을 한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이르러선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부분을 제시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열거한다.
갈라디아서의 저자 김선용은 바울 새관점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가진 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새관점에 입장에서 이신칭의 교리와 믿음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다. 이신칭의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칭의에 대한 부분인데, 그 부분도 바울은 샌더스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갈라디아서를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매우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적인 부분과 역사적인 부분이 조화를 이루었고, 특히 갈라디아서를 장별로 설명을 해 놓았다. 또한 각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역사적인 배경과 전체적인 본문의 흐름 속에서 주석을 했기 때문에 갈라디아서의 전체와 부분을 저자의 의도대로 잘 정리해 놓았다. 특히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배경에서 이 편지를 기록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편지 안에 담겨져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읽어야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도록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성경을 옆에 두고 책과 함께 읽어 나갈 때,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갈라디아서의 선입관을 벗어버리고, 갈라디아 신자들과 함께 듣고 있다는 생각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겨갈 때, 성경에서 주는 익숙함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부록으로 바울의 새관점에 대한 짤막한 해석과 갈라디아서를 단계별로 공부할 수 있도록 소개한 여러 권의 책은 이 책의 풍성함에 풍요로움을 더한 부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