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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 제가 먼저 그 갱신의 대상이 되게 하소서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옥한흠/국제제자훈련원/[조영민]
신대원 입시에 두 번 떨어져 세 번째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며 작은 교회에서 유초등부와 청년부 두 부서를 2년째 교육전도사로 섬기고 있다. 작은 교회의 여러 필요를 느끼며, 그 필요들을 채우기 위해 나름의 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있다.
사역은 내게 기쁨이고 감격이다. 나의 아버지도 목사님이다. 아버지는 참 좋은 목사님이다. 아버지는 깨끗한 목회자셨고, 성도를 진짜 많이 사랑하는 마음을 주는 목사였다. 아버지는 20년이 넘도록 목회했지만 아직도 50여명 정도 나오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이다.
나는 그 교회에서 자랐다. 하지만 나는 그 교회에서 참 행복했다. 아니 내가 아는 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참 행복했었다. 난 아버지가 좋았고, 아버지의 사역이 좋았다. 그 아버지의 뒷모습에 반해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에게는 ‘님’이라는 호칭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어릴 적 내가 만난 목사님들은 참 좋은 분들이셨다. 지금의 언어로 그분들을 표현한다면 ‘고고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릴 것 같다. 가난한 목사님들은 주변에 많았다. 하지만 그 목사님들은 참 멋있었다. 가난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으셨고, 마을의 어른들도 목사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귀빈석에 경찰서장님 옆에 목사님석이 마련되었었다. 사람들은 목사님을 사랑했다. 목사님도 사람들을 사랑했다. 내가 어릴 적 만난 목사님들은 참 좋은 분들이셨다. 긴 장의자를 뛰어넘으며 놀았던 그 교회는 무언지 알 수 없는 경건함이 베여 나왔고, 나는 그곳에서 항상 무엇인가 밖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엇을 경험했었다. (지금 생각하며 그 ‘무엇’이 하나님의 임재였을 것 같다) 목사님이란, 또 교회란, 그렇게 좋은거라고 ‘보고 느끼며’ 자랐다.
청년이 되고, 세상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고, 목회자의 세계에 더 근접했을 때, 내가 만난 것은 내가 이전에 알았던 것들이 정말 일부였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구토’가 일어나는 목회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교회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온통 그런 이야기 속에 파묻혀, 가끔 듣는 어찌보면 당연해야할 목회자와 교회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의외의 이야기처럼 들려지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학처럼 고고한 인품의 목사님들의 이야기, 어릴 적 들었던 진리로 인해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 이야기는 이미 까마득한 이 전세대의 이야기가 되어있는 불쌍한 우리네 목회자와 교회의 현실 앞에 서게 되었다. ‘껍데기 목회자’, ‘껍데기 교회’, 그리스도께서 그 피를 주고 사신 그의 신부 교회가 ‘창녀’처럼 되었다는 비참한 소식들을 매일 들으며 많이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신부의 타락에 앞장선 교회의 지도자, 특별히 성직자들의 부정과 부패 때문에, 타락 때문에 또 울었다. 많이 울었는데도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얼마 전, 같은 신학대학원을 준비했던 선배들과 후배들이 다 모일 기회가 있어 모였다. 이미 신학대학원에 들어간 이와 그곳을 졸업한 선배들, 그리고 나처럼 대학원을 준비하는 이들이 모였다.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또 울었다. 다음 세대 한국교회의 대안이라고 여겼던 그 반가운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네 대화 속에는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교회의 부서의 숫자와 그들의 받는 봉급, 장학금의 수혜, 유학 보내 줄 수 있는 여건, 설교 원고가 모여 있는 사이트, 인기 있는 프로그램 소스 .....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다. 눈물도 없었다. 진지함도 없었고, 소명도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 순간 한국교회의 미래가 지금과 다를 것이라는 ‘소망’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서러워 울었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이미 낙심한 마음이었기에 이 책의 제목에 손이 끌리었다. 나는 낙심했다. 전 세대의 목회자와 교회 때문이었지만, 또 우리 세대의 이제 겨우 목회자의 자리에 서고 있는 이들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 낙심의 상황 속에서 부르짖는 한 ‘정직한, 그리고 마음이 뜨거운 목사님’을 만났다. 이 책에 있는 수 년동안 있었던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영성수련회’에서 선포된 목사님의 메시지를 읽으며 함께 맘 아파하고, 함께 울고, 함께 소망하고, 함께 기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단 한편의 메시지도 그냥 맘 놓고 쉽게 읽혀지지 않았고, 단 한편의 글 앞에서 그냥 그렇게 지나치지 못했다. 모두가 나를 향한 메시지였고, 우리-적어도 이 땅에서 성직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를 향한 메시지였다.
내 안에서 뜨거운 화두로 멍울져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가득히 들어 있었다. 터부시 되었던 목회자의 치부와 교회의 치부가 목회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냉랭한 시선을 가감 없는 드러내 주었다. 강단 위에서 선포되는 것과 그 강단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들이 선포했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것을 또다시 온몸으로 선포하는 목회자들의 실상을 드러냈다. 세속 권력과 똑같은 모습으로 교회 내에 있는 요직(?)을 차지하기 위한 교회 지도자들의 암투에 대해서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 모든 ‘사실’들 앞에서 우는 목사님을 만났다. 함께 울고 있는 또 다른 많은 목사님들을 봤다.
감추는게 대수가 아니라며 또 감춘다고 치유되는게 아니라며, 드러내고 드러낸 그것을 바라보며 울 때만이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는 목사님의 말에 공감했다. 그 사실을 머리로 알게 된게 아니라 그 사실을 드러내는 목사님의 슬픔 음성 앞에서 ‘느꼈다’고 해야 옳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그러나 단지 울음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 그분이 그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사역으로 증명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며 많은 분들이 함께 울었다는 것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며 미소도 지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이 실망과 희망이 교차되었다.
나는 아직 안수를 받지 않았다. 아니 안수는커녕 아직 신학대학원에 입학도 못했다. 나에게는 ‘정식’ 성직자 자격증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성도 앞에서 설교하고 있다. 그들의 초등학교 학생이지만 나는 그 아이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또 그 초등학생들의 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그 영광스런 하나님의 어린 영혼들이 이 부족한 나, 자격증 없는 무허가 목회지망생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자라간다. ‘성직’이 신학교에서 또는 교단의 규정에 의해 나온다며 누군가 내게 와 “넌 무허가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를 향해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세우셨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허락하셨다”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서 나는 나를 ‘성직자’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서서 내 ‘성직’을 확인한다.
어느 날엔가 내 사역에 대해 평가받을 날이 왔을 때, 어릴 적 내가 봤던 그 겸손하고 청렴하고 학처럼 고고했던 목사님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항상 나에게 동경이었듯, 내 아이가 내 등에서 목자의 등을 볼 수 있기를 소원한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의 성도들의 내 얼굴을 대하고는 이유 없는 미소가 얼굴에 피어나면 좋겠다. 맛 있는거 먹다 문득 생각나는 목사였음 좋겠다. 슬픈 일 있을 때, 함께 있고 싶은 사람, 1번이었음 좋겠다. 또 훗날 내가 속한 교회가 하나님의 평가를 받는다면 이런 평가를 받는 교회이길 원하게 되었다. 그 교회가 ‘행복한 교회’라는 소문이 들리는 교회였음 좋겠다. 그 안에서 쉼을 얻고, 진리를 배웠다고 말하는 이들의 흥분된 목소리를 들었음 좋겠다. 지금은 작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그 교회에 계속 있고 싶다고 여기는 교회였음 좋겠다. 그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보내고 싶은 교회였음 좋겠다. 교회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음 좋겠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처음에는 낙심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이후부터 차츰차츰 내 안에서 소망이 되살아났다.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때문에, 또 내게 ‘소명을 주신 이’께서 다시금 나로 힘을 얻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 저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갱신하는데 쓰여지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 아직 제 팔이 짧아 그곳까지 미칠 수 없다면, 오늘 제가 있는 이곳에 그 미래의 갱신의 결과가 될 만한 작은 갱신을 얻을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저를 채찍질하심으로, 저를 하나님의 정으로 다듬으심으로 이 무너져가는 세대의 한국의 교회 위에 정말로 바르게 사용될 ‘다듬어진 돌’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람 데오’ (Coram Deo)의 마음으로 저 스스로를 준비시켜 주십시오. 저로 갱신의 첫 대상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자 옥한흠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으로 불리는 그는 1978년,"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이래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하고 미래 지향적이며, 헌신적인 열정을 가진 평신도 지도자들을 꾸준히 배출해 내고 있다. 사랑의교회는 현재 우리 나라 복음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손꼽히는 한 교회이다. 스스로 말하듯이 그는 제자훈련 사역을 통해 평신도들의 고민과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하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1984년에 출간된 [평신도를 깨운다]는 그런 제자훈련 사역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간 선교 단체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었던 제자훈련을 교회의 현실에 접목시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으며, 이를 통해 한국 교회에 제자훈련 열풍을 일으킨 제자훈련 30년사의 산 증인이다. 또한 사랑의교회는 제자훈련이 실제에 적용되어 열매를 맺어 가는 새로운 목회 모델을 보여 줌으로써 제자훈련의 대명사로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17권의 설교집과 성경 공부 교재인 다락방 시리즈를 집필하였다. 그는 경남 거제 태생으로 성균관 대학교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의 칼빈 신학교(Th. M.)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동(同) 신학교에서 평신도 지도자 훈련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D. Min.)를 취득하였다. 현재 "사랑의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1986년에 개설된 지도자 훈련원의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를 통해 수많은 한국 교회 목회자는 물론 일본 교회와 교포 교회 목회자들을 섬기면서 세계 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목회자의 리더십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자훈련의 이론과 실제를 다
룬 "평신도를 깨운다" 외에 "고통에는 뜻이 있다"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다" "나의 고통, 누구의 탓인가?" 그밖에 로마서 강해를 비롯한 10여권의 설교집을 펴냈다. 현재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로 있으면서 교회갱신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신대원 입시에 두 번 떨어져 세 번째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며 작은 교회에서 유초등부와 청년부 두 부서를 2년째 교육전도사로 섬기고 있다. 작은 교회의 여러 필요를 느끼며, 그 필요들을 채우기 위해 나름의 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있다.
사역은 내게 기쁨이고 감격이다. 나의 아버지도 목사님이다. 아버지는 참 좋은 목사님이다. 아버지는 깨끗한 목회자셨고, 성도를 진짜 많이 사랑하는 마음을 주는 목사였다. 아버지는 20년이 넘도록 목회했지만 아직도 50여명 정도 나오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이다.
나는 그 교회에서 자랐다. 하지만 나는 그 교회에서 참 행복했다. 아니 내가 아는 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참 행복했었다. 난 아버지가 좋았고, 아버지의 사역이 좋았다. 그 아버지의 뒷모습에 반해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에게는 ‘님’이라는 호칭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어릴 적 내가 만난 목사님들은 참 좋은 분들이셨다. 지금의 언어로 그분들을 표현한다면 ‘고고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릴 것 같다. 가난한 목사님들은 주변에 많았다. 하지만 그 목사님들은 참 멋있었다. 가난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으셨고, 마을의 어른들도 목사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귀빈석에 경찰서장님 옆에 목사님석이 마련되었었다. 사람들은 목사님을 사랑했다. 목사님도 사람들을 사랑했다. 내가 어릴 적 만난 목사님들은 참 좋은 분들이셨다. 긴 장의자를 뛰어넘으며 놀았던 그 교회는 무언지 알 수 없는 경건함이 베여 나왔고, 나는 그곳에서 항상 무엇인가 밖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엇을 경험했었다. (지금 생각하며 그 ‘무엇’이 하나님의 임재였을 것 같다) 목사님이란, 또 교회란, 그렇게 좋은거라고 ‘보고 느끼며’ 자랐다.
청년이 되고, 세상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고, 목회자의 세계에 더 근접했을 때, 내가 만난 것은 내가 이전에 알았던 것들이 정말 일부였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구토’가 일어나는 목회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교회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온통 그런 이야기 속에 파묻혀, 가끔 듣는 어찌보면 당연해야할 목회자와 교회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의외의 이야기처럼 들려지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학처럼 고고한 인품의 목사님들의 이야기, 어릴 적 들었던 진리로 인해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 이야기는 이미 까마득한 이 전세대의 이야기가 되어있는 불쌍한 우리네 목회자와 교회의 현실 앞에 서게 되었다. ‘껍데기 목회자’, ‘껍데기 교회’, 그리스도께서 그 피를 주고 사신 그의 신부 교회가 ‘창녀’처럼 되었다는 비참한 소식들을 매일 들으며 많이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신부의 타락에 앞장선 교회의 지도자, 특별히 성직자들의 부정과 부패 때문에, 타락 때문에 또 울었다. 많이 울었는데도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얼마 전, 같은 신학대학원을 준비했던 선배들과 후배들이 다 모일 기회가 있어 모였다. 이미 신학대학원에 들어간 이와 그곳을 졸업한 선배들, 그리고 나처럼 대학원을 준비하는 이들이 모였다.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또 울었다. 다음 세대 한국교회의 대안이라고 여겼던 그 반가운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네 대화 속에는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교회의 부서의 숫자와 그들의 받는 봉급, 장학금의 수혜, 유학 보내 줄 수 있는 여건, 설교 원고가 모여 있는 사이트, 인기 있는 프로그램 소스 .....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다. 눈물도 없었다. 진지함도 없었고, 소명도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 순간 한국교회의 미래가 지금과 다를 것이라는 ‘소망’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서러워 울었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이미 낙심한 마음이었기에 이 책의 제목에 손이 끌리었다. 나는 낙심했다. 전 세대의 목회자와 교회 때문이었지만, 또 우리 세대의 이제 겨우 목회자의 자리에 서고 있는 이들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 낙심의 상황 속에서 부르짖는 한 ‘정직한, 그리고 마음이 뜨거운 목사님’을 만났다. 이 책에 있는 수 년동안 있었던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영성수련회’에서 선포된 목사님의 메시지를 읽으며 함께 맘 아파하고, 함께 울고, 함께 소망하고, 함께 기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단 한편의 메시지도 그냥 맘 놓고 쉽게 읽혀지지 않았고, 단 한편의 글 앞에서 그냥 그렇게 지나치지 못했다. 모두가 나를 향한 메시지였고, 우리-적어도 이 땅에서 성직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를 향한 메시지였다.
내 안에서 뜨거운 화두로 멍울져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가득히 들어 있었다. 터부시 되었던 목회자의 치부와 교회의 치부가 목회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냉랭한 시선을 가감 없는 드러내 주었다. 강단 위에서 선포되는 것과 그 강단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들이 선포했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것을 또다시 온몸으로 선포하는 목회자들의 실상을 드러냈다. 세속 권력과 똑같은 모습으로 교회 내에 있는 요직(?)을 차지하기 위한 교회 지도자들의 암투에 대해서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 모든 ‘사실’들 앞에서 우는 목사님을 만났다. 함께 울고 있는 또 다른 많은 목사님들을 봤다.
감추는게 대수가 아니라며 또 감춘다고 치유되는게 아니라며, 드러내고 드러낸 그것을 바라보며 울 때만이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는 목사님의 말에 공감했다. 그 사실을 머리로 알게 된게 아니라 그 사실을 드러내는 목사님의 슬픔 음성 앞에서 ‘느꼈다’고 해야 옳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그러나 단지 울음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 그분이 그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사역으로 증명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며 많은 분들이 함께 울었다는 것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며 미소도 지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이 실망과 희망이 교차되었다.
나는 아직 안수를 받지 않았다. 아니 안수는커녕 아직 신학대학원에 입학도 못했다. 나에게는 ‘정식’ 성직자 자격증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성도 앞에서 설교하고 있다. 그들의 초등학교 학생이지만 나는 그 아이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또 그 초등학생들의 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그 영광스런 하나님의 어린 영혼들이 이 부족한 나, 자격증 없는 무허가 목회지망생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자라간다. ‘성직’이 신학교에서 또는 교단의 규정에 의해 나온다며 누군가 내게 와 “넌 무허가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를 향해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세우셨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허락하셨다”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서 나는 나를 ‘성직자’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서서 내 ‘성직’을 확인한다.
어느 날엔가 내 사역에 대해 평가받을 날이 왔을 때, 어릴 적 내가 봤던 그 겸손하고 청렴하고 학처럼 고고했던 목사님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항상 나에게 동경이었듯, 내 아이가 내 등에서 목자의 등을 볼 수 있기를 소원한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의 성도들의 내 얼굴을 대하고는 이유 없는 미소가 얼굴에 피어나면 좋겠다. 맛 있는거 먹다 문득 생각나는 목사였음 좋겠다. 슬픈 일 있을 때, 함께 있고 싶은 사람, 1번이었음 좋겠다. 또 훗날 내가 속한 교회가 하나님의 평가를 받는다면 이런 평가를 받는 교회이길 원하게 되었다. 그 교회가 ‘행복한 교회’라는 소문이 들리는 교회였음 좋겠다. 그 안에서 쉼을 얻고, 진리를 배웠다고 말하는 이들의 흥분된 목소리를 들었음 좋겠다. 지금은 작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그 교회에 계속 있고 싶다고 여기는 교회였음 좋겠다. 그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보내고 싶은 교회였음 좋겠다. 교회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음 좋겠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처음에는 낙심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이후부터 차츰차츰 내 안에서 소망이 되살아났다.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때문에, 또 내게 ‘소명을 주신 이’께서 다시금 나로 힘을 얻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 저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갱신하는데 쓰여지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 아직 제 팔이 짧아 그곳까지 미칠 수 없다면, 오늘 제가 있는 이곳에 그 미래의 갱신의 결과가 될 만한 작은 갱신을 얻을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저를 채찍질하심으로, 저를 하나님의 정으로 다듬으심으로 이 무너져가는 세대의 한국의 교회 위에 정말로 바르게 사용될 ‘다듬어진 돌’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람 데오’ (Coram Deo)의 마음으로 저 스스로를 준비시켜 주십시오. 저로 갱신의 첫 대상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자 옥한흠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으로 불리는 그는 1978년,"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이래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하고 미래 지향적이며, 헌신적인 열정을 가진 평신도 지도자들을 꾸준히 배출해 내고 있다. 사랑의교회는 현재 우리 나라 복음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손꼽히는 한 교회이다. 스스로 말하듯이 그는 제자훈련 사역을 통해 평신도들의 고민과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하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1984년에 출간된 [평신도를 깨운다]는 그런 제자훈련 사역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간 선교 단체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었던 제자훈련을 교회의 현실에 접목시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으며, 이를 통해 한국 교회에 제자훈련 열풍을 일으킨 제자훈련 30년사의 산 증인이다. 또한 사랑의교회는 제자훈련이 실제에 적용되어 열매를 맺어 가는 새로운 목회 모델을 보여 줌으로써 제자훈련의 대명사로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17권의 설교집과 성경 공부 교재인 다락방 시리즈를 집필하였다. 그는 경남 거제 태생으로 성균관 대학교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의 칼빈 신학교(Th. M.)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동(同) 신학교에서 평신도 지도자 훈련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D. Min.)를 취득하였다. 현재 "사랑의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1986년에 개설된 지도자 훈련원의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를 통해 수많은 한국 교회 목회자는 물론 일본 교회와 교포 교회 목회자들을 섬기면서 세계 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목회자의 리더십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자훈련의 이론과 실제를 다
룬 "평신도를 깨운다" 외에 "고통에는 뜻이 있다"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다" "나의 고통, 누구의 탓인가?" 그밖에 로마서 강해를 비롯한 10여권의 설교집을 펴냈다. 현재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로 있으면서 교회갱신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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