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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상 최고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했던 성도
체험과 부흥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양낙홍/부흥과개혁사/[권지성]
기독교의 위기는 무엇인가? 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한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과는 거리가 먼 희멀건 죽처럼 거짓된 신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량주의, 자본주의의 세속화는 이미 한국 교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직분의 구분은 있지만 참된 신자와 거짓 신자의 구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것에 관심이 없다. 오늘날 교회의 영광은 어느 교회에 몇 명이 모이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참 신자인지,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았나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성공과 미래에 도움이 되는 교회를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과 행복한 상상을 하면 당신은 성공할 것이다”라는 심리학과 처세술에 근간을 둔 서적이 판을 치는 요즈음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세기 최고의 설교가인 로이드 존스는 에드워즈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청교도들을 알프스에 비유하고, 루터와 칼빈을 히말라야 산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에게 Jonathan Edwards(1703~1758)는 대단히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졌다. 최초로 접한 그의 작품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었는데, 이 책은 심히 철학적인 논증에 논증을 거듭한 글로, 공대생인 나에게는 글을 읽고자 하는 의지조차 꺾게 만드는 책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는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체험한 산 신앙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에드워즈를 청교도 신학의 완성자나 부흥 신학자나 혹은 복음주의 최고의 신학자, 변증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지상에서 살다 간 모든 성도보다 더 그리스도를 깊이 경험한 참 성도요, 체험과 지성의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룬 거룩한 목회자라 부르고 싶다.
에드워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18세기 당시의 청교도 신앙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는 새로운 신학적인 사상이나 이론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당시 영국에서 뉴 잉글랜드로 이주해 온 청교도 선조들의 신앙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청교도 사상과 인물들, 그리고 토마스 쉐퍼드와 같은 이민 1세대 목회자들의 사상을 살펴는 것이 중요하다.
에드워즈의 생애가 크게 우리에게 주는 도전중의 하나는 그의 거룩한 삶을 향한 강렬한 추구일 것이다. 그는 일평생 동안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대해 점검하며, 죄와 치열하게 투쟁한 성도였다. 그의 일기와 70가지의 결심문은 지상 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그의 냉철한 자기 점검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구원이 확실한지, 또한 안전하지에 대한 검사를 청교도적인 전통에서 확인하려 하였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의 상태를 List-up해가며 내부의 죄와 싸우며, 또한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체험의 고백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의 신앙의 정수는 그의 중생과 회심에 대한 신앙고백에 있다. 에드워즈는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이라는 설교를 통해 자신의 구원관을 펼치게 된다. 그는 마태복음 16장 17절을 본문으로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에 의해서 만이 영적인 감각이 생기며, 그 때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중생에 있어서는 오직 성령에 의한 비추심이 있어야 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하고 확증할 수 있다는 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철저한 칼빈주의를 고수하였던 에드워즈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에드워즈가 운명론을 말한 것이 아니냐며 오해 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오해이다. 그는 우리 편에서 은혜의 수단인 기도와 선행을 부지런히 사용할 것을 말한다. 철저히 하나님 편에서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우리 편에서 부지런히 은혜의 수단을 사용할 때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주실 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에드워즈가 유명해 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가 사역하였던 코넷티컷 골짜기의 부흥일 것이다. <놀라운 회심 이야기>로 알려진 그의 저작에서 그는 몇 개월 만에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한 이야기를 예리한 지성으로 서술해 나아간다. 여기서 그는 회심한 성도들의 특징과 현상들을 시작부터 종결까지 진술하는데,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부흥관을 엿 볼 수 있다.
코넷티켓 골짜기의 부흥이 지나 간 5년 후, 1740년경에 열정적인 하나님의 사람 조지 휫필드에 의해서 시작된 1차 대각성은 미국 독립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라고 까지 평가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에드워즈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는 이 시기에 반부흥파들에 대하여서는 현재의 부흥이 하나님이 주신 부흥이며, 이 부흥에 대해서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중립파들에게는 부흥의 역사에 동참할 것을 역설한다. 또한, 열광주의자들을 향하여서는 그릇된 경험과 지나친 은사주의를 경계할 것을 말하면서 그 유명한 <성령의 역사와 구별되는 표지들>, <뉴잉글랜드의 현재 종교 부흥에 대한 소고>와 같은 글을 쓰게 된다.
1746년, 에드워즈는 <종교적 정서>라는 책을 출판하여, 참된 신앙은 거룩한 감정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부흥이 지나간 후, 믿음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신앙이며, 믿음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 그가 일 평생 추구한 것은 과연 참 신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자신의 영혼에 일어난 일 뿐 아니라,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신학자로서 그만큼 그리스도인이 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는 그의 교회 축출 사건을 낳기도 한다.
왜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어야 하는가?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그의 체험적인 신앙이다. 그의 신학적인 토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그의 회심론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자신의 죄의 심각성과 애통함이 없는 회심에 대해서는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둘째, 그의 부흥관이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어주시는 부흥을 믿었다. 물론, 우리 편에서 이 부흥을 하나님이 주시도록 간절함으로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흥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 부흥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검사를 통하여 참된 부흥과 거짓 부흥에 대한 구분을 통하여 진정한 부흥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었다는 점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양낙홍 교수에 의해서 씌여진 이 책은 신실한 한국 교회의 신학자가 쏟은 노고와 땀이 배여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탄생 300주년 기념작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이 책은 앞으로 에드워즈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자, 길잡이가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저자 양낙흥
서울대영문과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 교수부 영어과 교관으로 복무한 후 고신대신대원 예일대학, 풀러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1993년부터 고신대 신대원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
저서
한국 기독교의 사회 윤리적 책임
한국 신학교육의 개혁
역서
기독교 강요
칼빈주의 역사와 성경
조나단 에드워즈의 놀라운 회심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기독교의 위기는 무엇인가? 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한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과는 거리가 먼 희멀건 죽처럼 거짓된 신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량주의, 자본주의의 세속화는 이미 한국 교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직분의 구분은 있지만 참된 신자와 거짓 신자의 구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것에 관심이 없다. 오늘날 교회의 영광은 어느 교회에 몇 명이 모이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참 신자인지,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았나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성공과 미래에 도움이 되는 교회를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과 행복한 상상을 하면 당신은 성공할 것이다”라는 심리학과 처세술에 근간을 둔 서적이 판을 치는 요즈음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세기 최고의 설교가인 로이드 존스는 에드워즈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청교도들을 알프스에 비유하고, 루터와 칼빈을 히말라야 산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에게 Jonathan Edwards(1703~1758)는 대단히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졌다. 최초로 접한 그의 작품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이었는데, 이 책은 심히 철학적인 논증에 논증을 거듭한 글로, 공대생인 나에게는 글을 읽고자 하는 의지조차 꺾게 만드는 책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는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체험한 산 신앙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에드워즈를 청교도 신학의 완성자나 부흥 신학자나 혹은 복음주의 최고의 신학자, 변증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지상에서 살다 간 모든 성도보다 더 그리스도를 깊이 경험한 참 성도요, 체험과 지성의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룬 거룩한 목회자라 부르고 싶다.
에드워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18세기 당시의 청교도 신앙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는 새로운 신학적인 사상이나 이론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당시 영국에서 뉴 잉글랜드로 이주해 온 청교도 선조들의 신앙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청교도 사상과 인물들, 그리고 토마스 쉐퍼드와 같은 이민 1세대 목회자들의 사상을 살펴는 것이 중요하다.
에드워즈의 생애가 크게 우리에게 주는 도전중의 하나는 그의 거룩한 삶을 향한 강렬한 추구일 것이다. 그는 일평생 동안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대해 점검하며, 죄와 치열하게 투쟁한 성도였다. 그의 일기와 70가지의 결심문은 지상 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그의 냉철한 자기 점검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구원이 확실한지, 또한 안전하지에 대한 검사를 청교도적인 전통에서 확인하려 하였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의 상태를 List-up해가며 내부의 죄와 싸우며, 또한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체험의 고백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의 신앙의 정수는 그의 중생과 회심에 대한 신앙고백에 있다. 에드워즈는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이라는 설교를 통해 자신의 구원관을 펼치게 된다. 그는 마태복음 16장 17절을 본문으로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에 의해서 만이 영적인 감각이 생기며, 그 때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중생에 있어서는 오직 성령에 의한 비추심이 있어야 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하고 확증할 수 있다는 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철저한 칼빈주의를 고수하였던 에드워즈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에드워즈가 운명론을 말한 것이 아니냐며 오해 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오해이다. 그는 우리 편에서 은혜의 수단인 기도와 선행을 부지런히 사용할 것을 말한다. 철저히 하나님 편에서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우리 편에서 부지런히 은혜의 수단을 사용할 때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주실 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에드워즈가 유명해 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가 사역하였던 코넷티컷 골짜기의 부흥일 것이다. <놀라운 회심 이야기>로 알려진 그의 저작에서 그는 몇 개월 만에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한 이야기를 예리한 지성으로 서술해 나아간다. 여기서 그는 회심한 성도들의 특징과 현상들을 시작부터 종결까지 진술하는데,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부흥관을 엿 볼 수 있다.
코넷티켓 골짜기의 부흥이 지나 간 5년 후, 1740년경에 열정적인 하나님의 사람 조지 휫필드에 의해서 시작된 1차 대각성은 미국 독립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라고 까지 평가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에드워즈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는 이 시기에 반부흥파들에 대하여서는 현재의 부흥이 하나님이 주신 부흥이며, 이 부흥에 대해서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중립파들에게는 부흥의 역사에 동참할 것을 역설한다. 또한, 열광주의자들을 향하여서는 그릇된 경험과 지나친 은사주의를 경계할 것을 말하면서 그 유명한 <성령의 역사와 구별되는 표지들>, <뉴잉글랜드의 현재 종교 부흥에 대한 소고>와 같은 글을 쓰게 된다.
1746년, 에드워즈는 <종교적 정서>라는 책을 출판하여, 참된 신앙은 거룩한 감정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부흥이 지나간 후, 믿음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신앙이며, 믿음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 그가 일 평생 추구한 것은 과연 참 신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자신의 영혼에 일어난 일 뿐 아니라,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신학자로서 그만큼 그리스도인이 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는 그의 교회 축출 사건을 낳기도 한다.
왜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어야 하는가?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그의 체험적인 신앙이다. 그의 신학적인 토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그의 회심론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자신의 죄의 심각성과 애통함이 없는 회심에 대해서는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둘째, 그의 부흥관이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어주시는 부흥을 믿었다. 물론, 우리 편에서 이 부흥을 하나님이 주시도록 간절함으로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흥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 부흥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검사를 통하여 참된 부흥과 거짓 부흥에 대한 구분을 통하여 진정한 부흥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었다는 점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양낙홍 교수에 의해서 씌여진 이 책은 신실한 한국 교회의 신학자가 쏟은 노고와 땀이 배여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탄생 300주년 기념작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이 책은 앞으로 에드워즈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자, 길잡이가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저자 양낙흥
서울대영문과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 교수부 영어과 교관으로 복무한 후 고신대신대원 예일대학, 풀러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1993년부터 고신대 신대원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
저서
한국 기독교의 사회 윤리적 책임
한국 신학교육의 개혁
역서
기독교 강요
칼빈주의 역사와 성경
조나단 에드워즈의 놀라운 회심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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