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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참 부흥을 분별하고 기도하라
균형 잡힌 부흥론/조나단 에드워즈/양낙흥/부흥과개혁사/[권지성]
조나단 에드워즈의 역작인 ‘Some thought concerning the Revival’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20세기의 언어로 쓴 ‘Revival’의 18세기 버전의 요약본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책을 통해 뉴잉글랜드의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임을 논증하고, 부흥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참된 신앙의 부흥은 감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임을 역설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광신주의자에게는 그들이 지닌 교만과 미신과 비판적 태도를 고칠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단순히 부흥을 논증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진정한 부흥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지게 해 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한국 교회는 모호한 미신적인 샤머니즘과 극단적인 체험주의의 결합으로 생겨난 무수한 이단들의 출현을 이미 겪었으며, 지금도 그 독버섯 같은 광신주의는 여전히 우리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거짓 영과 악령의 역사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 안에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인 분석에 의한 통찰력 역시 부족했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로이드 존스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교회는 죽은 정통과 형식화된 종교 생활로 인하여, 영적 생기를 잃어 버린지 오래이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 부흥의 소식에 대한 기대감과 갈망은 요원한 것이 되어 버렸다. 다만, 이벤트적인 종교 페스티발과 쇼만이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종교 소비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단순한 부흥에 대한 책이 아니라, 참된 신앙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우리의 마음 속에 분명히 아로새겨 줄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이라는 전작과 다소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서 지루하다는 느낌도 받았으나, 그것은 나의 독서의 태도가 바르지 못한 탓도 있었던 것도 같다. 우리 시대에 에드워즈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의 책을 읽는 사람은 마치, 무협지에서 평범한 사람이 엄청난 무공 고수에게 극강의 권법을 전수받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요즈음에 나오는 부흥에 대한 책 10권을 읽는 것보다 이 책을 읽는 다면 더 큰 도움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부족하지만, 이 책을 통해 느낀 점을 간략히 적어본다.
첫째, 부흥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흥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지 않고, 사용된 수단이나 방법으로 부흥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키실 때에는 심지어 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부흥의 방법 자체도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행하시기 위해 세상의 약한 것들과 어리석은 것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가 주로 사용하신 목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나이와 위상에 있어 어린 아이였고 어떤 사람은 동료 가운데서도 남들처럼 명성이 그리 높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P. 61)
게다가, 부흥을 판단하는 기준은 철저히 성경에서 기인하여야 하며, 부흥의 반대론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거룩한 영적이며 신적인 감정들이 부흥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며, 이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논증하고 있다. 또한, 인간 내부의 죄와 악한 영의 역사로 부흥의 시기에 광신주의와 미신과 무절제한 열심히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부흥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각 사회 계층에게 부흥을 위해 주는 권면이다. 에드워즈는 부흥을 반대하거나,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고,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부흥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지켜 나아가고 이를 증진시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공직자들과 목사와 평신도들에게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것과 같은 이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한다.
‘장군의 깃발이 휘날리고 나팔 소리가 들리고 있는데 한 사병이 자신을 따르기를 거부할 때 장군이 당연히 그 사병에게 크게 분개할 것이라면 왕의 명령에 불복하는 군대의 장교에 대해 왕은 얼마나 더 분개하겠습니까?’(P. 195)
‘그러므로 신앙의 부흥이 시작될 때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 굼뜨게 행동하며 퇴보적이며 무덤덤하게 보이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스럽겠습니까?’(P. 195)
셋째, 부흥을 증진시키기 위해 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교만과 직통계시에 대한 경계이다. 이것은 일부 광신주의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로써,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나 개인적인 영적인 체험을 볼 때에도 조그마한 은혜와 신앙 부흥에도 쉽게 교만이라는 올무에 걸려 사람들과 공동체를 비판하고 정죄하려는 태도를 보인적도 있었다.
‘모든 교만 중에 영적 교만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가장 가증스럽습니다. 교만은 마귀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교만은 빛과 영광의 천국에서 마귀가 범한 죄와 가장 흡사합니다.’(P.280)
에드워즈는 우리에게 이러한 영적인 교만을 경계하고, 베드로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신 예수님처럼 겸손과 온유함으로 나아갈 것을 말한다. 이 점은 참으로 나에게 유익한 점이었다. 영적인 충만함과 부흥은 바로 겸손의 길이라는 것이다.
넷째, 직통계시는 잘못된 신학이라는 것이다. 참된 성령의 인도하심은 어떠한 성경 본문이 갑자기 자신에게 떠오른 다든지, 환상이나 특별 체험으로 자신만 독자적으로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부흥의 시기에 사단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참된 성령의 인도하심은 성경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분별하여 그 뜻을 행하는 것이 진정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될 것이다.
‘충동들과 인상들을 따르는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단지 하나님 말씀의 지도를 따르며 성경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상이 생긴 것은 그들의 마음에 떠오른 성경 본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P. 315)
다섯째, 부흥을 갈망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을 최선으로 사용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드워즈는 특별히 기도와 금식의 중요성을 대단히 높이 두고 있다. 부흥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지만, 기도와 금식과 같은 은혜의 수단이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한다.
‘만일 비상한 기도나 금식과 기도 없이는 귀신들린 어떤 사람에게서도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마7:21), 기도 없이 이 나라와 세계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더욱 기대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P. 456)
우리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그룹으로 지역별로 모여 선교와 전도를 위한 기도가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주한 여러 가지 바쁜 일상 속에서 다시금 부흥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할 것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부흥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부흥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이러한 부흥을 위해, 교회와 지역사회와 나라와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이 얼마나 왕성하게 전파되는 것을 위해 기도했느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부흥에 대한 잘못된 관점들과 비관적, 중립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부흥을 다시금 사모하면서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저자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미국의 사상가, 철학자, 신학자. 메사추세츠 노샘프턴에서 목회 활동을 했으나, 그곳 주민들에 의해 사역지에서 쫓겨나야만 했고, 프리스톤 신학교의 총장직을 맡은 지 불과 두 달만에 열병으로 삶을 마감하는 비운의 생을 살았다. 55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신학적 업적은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역작인 ‘Some thought concerning the Revival’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20세기의 언어로 쓴 ‘Revival’의 18세기 버전의 요약본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책을 통해 뉴잉글랜드의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임을 논증하고, 부흥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참된 신앙의 부흥은 감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임을 역설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광신주의자에게는 그들이 지닌 교만과 미신과 비판적 태도를 고칠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단순히 부흥을 논증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진정한 부흥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지게 해 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한국 교회는 모호한 미신적인 샤머니즘과 극단적인 체험주의의 결합으로 생겨난 무수한 이단들의 출현을 이미 겪었으며, 지금도 그 독버섯 같은 광신주의는 여전히 우리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거짓 영과 악령의 역사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 안에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인 분석에 의한 통찰력 역시 부족했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로이드 존스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교회는 죽은 정통과 형식화된 종교 생활로 인하여, 영적 생기를 잃어 버린지 오래이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 부흥의 소식에 대한 기대감과 갈망은 요원한 것이 되어 버렸다. 다만, 이벤트적인 종교 페스티발과 쇼만이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종교 소비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단순한 부흥에 대한 책이 아니라, 참된 신앙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우리의 마음 속에 분명히 아로새겨 줄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이라는 전작과 다소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서 지루하다는 느낌도 받았으나, 그것은 나의 독서의 태도가 바르지 못한 탓도 있었던 것도 같다. 우리 시대에 에드워즈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의 책을 읽는 사람은 마치, 무협지에서 평범한 사람이 엄청난 무공 고수에게 극강의 권법을 전수받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요즈음에 나오는 부흥에 대한 책 10권을 읽는 것보다 이 책을 읽는 다면 더 큰 도움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
부족하지만, 이 책을 통해 느낀 점을 간략히 적어본다.
첫째, 부흥에 대한 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흥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지 않고, 사용된 수단이나 방법으로 부흥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키실 때에는 심지어 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부흥의 방법 자체도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행하시기 위해 세상의 약한 것들과 어리석은 것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가 주로 사용하신 목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나이와 위상에 있어 어린 아이였고 어떤 사람은 동료 가운데서도 남들처럼 명성이 그리 높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P. 61)
게다가, 부흥을 판단하는 기준은 철저히 성경에서 기인하여야 하며, 부흥의 반대론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거룩한 영적이며 신적인 감정들이 부흥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며, 이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논증하고 있다. 또한, 인간 내부의 죄와 악한 영의 역사로 부흥의 시기에 광신주의와 미신과 무절제한 열심히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부흥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각 사회 계층에게 부흥을 위해 주는 권면이다. 에드워즈는 부흥을 반대하거나,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고,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부흥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지켜 나아가고 이를 증진시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공직자들과 목사와 평신도들에게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것과 같은 이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한다.
‘장군의 깃발이 휘날리고 나팔 소리가 들리고 있는데 한 사병이 자신을 따르기를 거부할 때 장군이 당연히 그 사병에게 크게 분개할 것이라면 왕의 명령에 불복하는 군대의 장교에 대해 왕은 얼마나 더 분개하겠습니까?’(P. 195)
‘그러므로 신앙의 부흥이 시작될 때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 굼뜨게 행동하며 퇴보적이며 무덤덤하게 보이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스럽겠습니까?’(P. 195)
셋째, 부흥을 증진시키기 위해 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교만과 직통계시에 대한 경계이다. 이것은 일부 광신주의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로써,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나 개인적인 영적인 체험을 볼 때에도 조그마한 은혜와 신앙 부흥에도 쉽게 교만이라는 올무에 걸려 사람들과 공동체를 비판하고 정죄하려는 태도를 보인적도 있었다.
‘모든 교만 중에 영적 교만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가장 가증스럽습니다. 교만은 마귀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교만은 빛과 영광의 천국에서 마귀가 범한 죄와 가장 흡사합니다.’(P.280)
에드워즈는 우리에게 이러한 영적인 교만을 경계하고, 베드로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신 예수님처럼 겸손과 온유함으로 나아갈 것을 말한다. 이 점은 참으로 나에게 유익한 점이었다. 영적인 충만함과 부흥은 바로 겸손의 길이라는 것이다.
넷째, 직통계시는 잘못된 신학이라는 것이다. 참된 성령의 인도하심은 어떠한 성경 본문이 갑자기 자신에게 떠오른 다든지, 환상이나 특별 체험으로 자신만 독자적으로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부흥의 시기에 사단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참된 성령의 인도하심은 성경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분별하여 그 뜻을 행하는 것이 진정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될 것이다.
‘충동들과 인상들을 따르는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단지 하나님 말씀의 지도를 따르며 성경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상이 생긴 것은 그들의 마음에 떠오른 성경 본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P. 315)
다섯째, 부흥을 갈망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을 최선으로 사용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드워즈는 특별히 기도와 금식의 중요성을 대단히 높이 두고 있다. 부흥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지만, 기도와 금식과 같은 은혜의 수단이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한다.
‘만일 비상한 기도나 금식과 기도 없이는 귀신들린 어떤 사람에게서도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마7:21), 기도 없이 이 나라와 세계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더욱 기대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P. 456)
우리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그룹으로 지역별로 모여 선교와 전도를 위한 기도가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주한 여러 가지 바쁜 일상 속에서 다시금 부흥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할 것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부흥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부흥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이러한 부흥을 위해, 교회와 지역사회와 나라와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이 얼마나 왕성하게 전파되는 것을 위해 기도했느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부흥에 대한 잘못된 관점들과 비관적, 중립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부흥을 다시금 사모하면서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저자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미국의 사상가, 철학자, 신학자. 메사추세츠 노샘프턴에서 목회 활동을 했으나, 그곳 주민들에 의해 사역지에서 쫓겨나야만 했고, 프리스톤 신학교의 총장직을 맡은 지 불과 두 달만에 열병으로 삶을 마감하는 비운의 생을 살았다. 55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신학적 업적은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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