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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

계산된 부흥주의와 성령의 강권적인 부어주심

북뉴스 | 2005.06.24 02:15
계산된 부흥주의와 성령의 강권적인 부어주심 부흥과 부흥주의/이안 머레이/부흥과개혁사/[권지성]

이안 머레이의 충격적인 부흥에 대한 증언들이 담겨 있는 <부흥과 부흥주의>가 부흥과 개혁사에서 새롭게 나왔다. 이안 머레이(1931~)는 로이드 존스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사역하기도 했으며, <The Banner of Truth Trust>를 세워 청교도 신학자들의 저서와 전기문의 발행으로 개혁 신학의 붐을 일으킨 신학자이다. 그는 이미 전작 <Pentecost, today>로 올바른 부흥관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의 관점에서 서술한 바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은 혼란을 겪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믿고 있던 부흥관과 18세기 부흥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부흥관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은혜와 부흥이라는 것이 상당한 부분에서 교묘히 계산되고 조작된 것이라는 저자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고 나면 씁쓸함과 함께 칼빈주의에 대적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의 거짓된 부흥주의를 폭로한다. 이안 머레이는 그 근원이 되는 18세기 후반의 감리교 알미니안주의와 19세기 초반의 찰스 피니의 소위 강단 초청과 그의 사상 배후에 깔려 있는 근원을 조사하여 이 후, 미국 교회의 복음주의의 흐름이 인간 중심 사상으로 바뀌었음을 역설한다. 바로 인간 편에서 믿기로 결정하고 행동을 보여주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알미니안주의가 교회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15분, 10분, 5분 내에 고백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식의 카운트를 하며 회중들을 선동하여 이에 동조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는 식의 이 당시 복음 전도 방식은 경악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은 부흥과 부흥주의의 차이점,  발생과 그 원인을  18세기 후반과 19세기 당시의 미국 복음주의의 생성 과정에서 찾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부흥의 변천 단계를 크게 3 단계로 나누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부흥이 유일한 부흥관인 시기이다. 부흥이란 하나님의 광대하신 영이 편만히 부어짐으로써, 교회에 믿는 무리가 더해지는 역사라는 견해를 따른 시기이다. 즉, 부흥은 소낙비와 같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 하나님의 강권적인 분출과 강림으로 묘사되어진다. 둘째로, 인간의 노력에 의해 부흥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흥주의의 등장이다. 1830년 이전의 분별없는 야외 집회와 일정기간 계속되는 신앙 부흥 집회에서 그들은 구도좌석에 즉각적으로 앉을 것을 요구하였고, 이것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여기었다. 셋째, 1958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부흥과 부흥주의를 구별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첫째,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어주심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하노버의 부흥을 주도한 새무엘 데이비스(1723~1761년)의 사역은 바로 참 부흥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으심과 역사하심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프린스턴 대학과 펜실베니아 서부 지역의 부흥, 1780년대 버지니아 부흥, 아키발더 알렉산더와 그레이엄에 의한 장로교의 부흥은 제 2차 영적 대각성 운동(1800~1825)과 함께 참 부흥의 특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어 준다. 특히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것은 이 시기의 경건한 하나님의 설교자들이었다. "나에게는 아주 적은, 정말 아주 적은 신앙이 있습니다. 나는 아마도 3~4개월에 한 번 정도 정말 내가 소원하는 만큼의 능력으로 설교한 것 같습니다. 은혜로우신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주 변덕부리는 나로서는 정말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입니다. 나는 기껏해야 그리스도 교회의 촛대에 연기 나는 심지이며 꺼져 가는 촛불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이 타락한 마음의 심지에 임할 때 그것은 떨리게 되고 새롭게 되고 감화되며 가끔씩 생명이 끝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변덕스럽고 작은 신앙만이 존재하며, 스스로를 “꺼져가는 촛불”에 비유한 사무엘 데이비서의 겸손한 고백은 교만한 나의 마음을 꾸짖는 듯하다. “참된 경건은 목사가 전하는 복음과 교훈에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실어준다. 거룩한 삶은 심장에 전달되며 심장을 사로잡는다.”라는 프린스턴 학장이었던 위더스푼의 말을 통하여 나는 거룩한 삶과 경건이 학문적인 지식에 앞서 가장 중요한 사역자들과 설교자들의 요건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깨닫게 되었다. 윌리엄 그레이엄의 사역은 또한 나에게 목석 같은 설교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면 놀랍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그는 분명 1789년 부흥을 경험하기 이전에도 능력 있는 목회자 였으나, 알렉산더의 증언과 같이 부흥의 시기에 그는 그 어떠한 당대의 설교자보다 더욱 강력한 설교자가 되었다. 페이슨은 위대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설교자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나는 내 마음이 통회하기 전까지, 회개함으로 내 마음이 복종 되고 녹기 전까지, 마치 내 영혼이 지금 막 용서를 받은 것 같이 느끼지 전까지 그리고 내 마음이 부드러움과 연민으로 가득 차기 전까지는 죄인들에게 복음을 설교하기에 합당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페이슨의 이 말에 진심으로 동의하고 느낀다. 특별히 이 시기에는 어떤 특별한 부흥을 위한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임재하심에 의한 죄인의 각성과 중생과 회심의 급진적인 진행만이 존재하였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과 이 시기 사람들이 생각한 부흥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부흥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이지, 우리가 무엇인가를 노력하여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비상한 인식과 하나님의 은혜의 부으심이 부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시기였다. 둘째, 부흥은 인간에 의해서 다시 반복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부흥부의(1858~1958)가 지배한 시기이다. 이것은 켄터키의 부흥(1800년)으로 인하여 발현한 부흥주의의 영향이다. 켄터키의 야외 집회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야외 집회에 신령한 그 무엇이 있는 것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여기에다가 이른바 “강단 초청”에 의해 회심한 사람들의 수를 세기 시작하면서 인간 중심적인 회심론을 바탕으로 한 알미니안 주의가 미국 교회 내에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찰스 피니는 “당신이 부흥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단지 당신이 부흥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당시의 설교가들이 부흥을 원하지 않고 타락하였기 때문에 부흥이 오지 않은 것으로 구학파의 견해를 따르던 설교가들을 매도해 버렸다. 이것은 결국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우스가 주장한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교리를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인 주장이었던 것이다. 부흥주의는 계산적인 방법으로 부흥이 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람들이 애쓰고 힘쓰고 갖가지 전도 집회와 간증집회와 행사 프로그램과 인간의 활동과 의지로 다시 하나님을 동원할 수 있다라고 믿는 것이다. 부흥주의는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기만 하면, 방언하고 예언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능히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찰스 피니의 생각이 나에게 상당 부분이 녹아 있음을 알고 참으로 놀랍고 공포스러웠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그 뿌리에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의 뿌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흥주의의 시대 정신은 반지성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성경의 교리와 진리는 땅에 묻어버리라는 것이다. 지성만을 추구하고 경험을 멸시하는 시대 풍조도 잘못된 것이지만, 진리의 분별없는 경험은 광신주의로 흐를 것이다. 이러한 피니로 인한 부흥주의 광범위한 유포는 장로교와 침례교의 분열을 가져왔고, 잘못된 방법임에도 결과적인 사역의 성공으로 인하여 부흥주의는 미국 복음주의의 지배적인 사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결국 부흥주의의 목적은 단순히 영혼을 얻는 것이지만,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이 시기의 동북부 지역 지도자 5인의 삶과 사역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인위적인 방법에 의한 사람의 수적 증가가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할 수 있으면 죄인된 자신이 더욱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였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 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이 거기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르짖음 속에도, 지진이나 불 가운데서도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지 않는다면 그 어떤 효과적인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소리는 단지 사람을 향해 말씀하시는 소리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령 내부 깊숙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위의 글은 페이슨이 행한 설교에서 인용한 것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사람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뭔지 모를 마음의 짖누르는 듯한 부담감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이러한 부흥에 대한 역사적인 논쟁은 내 영혼 안에서 거짓되고 쓸데없는 에너지만을 낭비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논쟁으로 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랑으로 정결케 되는 것이다.”라는 한 설교자의 말은 내 안에 논쟁을 위한 끝없는 논쟁을 종식시키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지나치게 논쟁에 집착하기 보다는 올바른 하나님의 부어주심을 바라보기로 결심하였다. 진리에 대한 투철하고 직접적인 논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한 삶과 성령의 충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제 일의 근본을 들었으므로 더욱 겸손하게 엎드려서 성경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영의 부으심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멸망 당할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던 주님처럼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나의 철광석 같은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놀랍게 확장되어지는 것을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저자의 바탕에 깔려 있는 청교도적인 사상은 우리가 믿기 위해 선택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인정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현대 복음 증거 방식에는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필자는 선교 단체 출신으로 “사영리”와 같은 전도의 방식을 굳게 믿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성경적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전도하면서 한 번도 인간이 자신의 죄인 됨을 뼈저리게 깨닫지 않으면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고, 하나님의 빛의 비추심에 의한 중생과 거듭남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주라 부를 수 없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견고히 믿고 있다. 다만, 부흥이 지나간 자리에 형식적인 부흥주의만 남은 것처럼,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 전도의 방법만 성행하는 현재의 행태는 부끄러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부흥주의의 발현과 폐해에 대해 동의하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저자는 평신도 사역자들의 등장이 마치 새로운 학문의 조류와 부흥주의로 인해서 야기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평신도 사역자들의 두드러진 출현은 선교와 전도를 향한 하나님의 영의 부으심과 부흥으로 인하여 나타난 현상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전 세계에 수많은 평신도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은 바로 부흥의 소산물들이며, 그들은 목회자의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들의 영향력의 약화에 부흥주의의 폐단이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자만, 평신도 사역자 시대의 도래를 이러한 폐단의 하나로 여겨서는 안된다. 저자는 참 훌륭한 부흥 신학자이며, 전기 작가임에 분명하다. 저자가 신학적인 논증에 초점을 맞추어서 조금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바라기는 학문적인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대립 구조나 구학파와 신학파의 대립으로 몰고 가지 말고 칼빈주의의 바탕에서 알미니안주의 속에 있는 칼빈주의를 해석하려는 입장을 취했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찰스 피니, D.L. 무디, 빌리 그래함 모두 부흥의 시대에 쓰임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평가는 전체 삶을 놓고 평가되어야지 부흥주의라는 부분 하나만을 놓고 칼질하려 해서는 안된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방대한 미국 교회 역사 속에 일어난 부흥을 다루는 이 책은 부흥주의의 근원을 살펴, 오늘날의 상황을 진단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통찰력 있는 중요한 저서이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오염된 교리와 잘못된 부흥관에 수긍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제 부흥의 이야기를 듣고 분별이 끝난 성도라면, 하나님의 손에 의한 하늘을 가르며 임하실 성령의 부으심을 간절히 구하자. 우리가 오게 할 수 없고, 만들 수 없고 조작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부흥이기에 이것을 달라고 이 땅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시기 때문이다. 저자 이안 머리(Iain H. Murray)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전기 작가이자 부흥신학자로서 로이드 존스, 존 머리, 찰스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여러 영적 거인들에 대한 전기를 썼으며, [성경적 부흥관 바로 세우기], [청교도 종말관]등의 청교도와 부흥에 관련된 여러 저서들을 집필했다. 1931년 영국 랭커셔에서 출생해 더람 대학교에서 수학한 이안 머리는 청교도와 부흥신학에 해박하나 지식을 가진 장래성 있는 인재로 주목받아 로이드 존스에게 발탁되어 1956~1959년까지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로이드 존스를 도와 사역하기도 했고, 이후 런던과 시드니에서 10여 년 목회를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안 머리는 1957년, 잭 쿠럼과 함께 '진리의 깃발사'를 공동 설립하여, 지금까지 대표로 있으면서 개혁 및 청교도 전문서적 출판을 통해 20세기 후반 개혁신학, 청교도 신학, 부흥신학의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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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뿌리는 교회 희망을 뿌리는 교회
그래도 교회가 희망이다
박은조/생명의 말씀사/문양호


몇년전에 『목회와 신학』에서 분당에 샘물교회를 개척한 것에 대해 박은조 목사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미 분당에 교회가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내가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이런 비슷한 내용으로 답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분당에 교회가 많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분당에 대다수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 즉 아직도 전도할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적지않은 교회가 몇년안에 문을 닫고 마는 경우들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건강하고 생명력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다. 공감한다. 그...
우리 안의 적 다루기 우리 안의 적 다루기
내 안에 적이 있는 이유
론 커펜터/평단/김정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적'은 방해물이거나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적은 필요하지 않은 어떤 대상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 보다는 친구가 많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렇다보니 적이란 피해가는 것이 능사가 되었습니다. 과연 적에 관한 한 그와 같은 태도가 현명하거나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 책이 나왔습니다.   저자 론 카펜터는 가난한 교인들에게 내 집을 갖게 해주는 사업에 참여했다가 하루아침에 촉망받던 젊은 목사에서 사기꾼으로 둔갑했던 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
20세기 복음주자들의 참된 스승 20세기 복음주자들의 참된 스승
제자도
존 스토트/김명희/IVP/권지성


좋은 영적 친구이자 동반자를 만나는 것은 신앙의 여정에서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러한 영적 멘토를 찾을 때,  늘 우리 주위의 내가 접촉하는 인간관계 내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학교 혹은 직장 선배, 교회의 사역자, 혹은 부모님, 혹은 연예인들이 주된 멘토링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멘토를 삼고 만나, 도움을 얻는 대상이 늘 내 주위의 사람들뿐이라면, 그 사람의 발전과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현대성과 세속주의는 영적 난장이들을 양산해 왔기에 우리는 참으로 거대한 영적인 선생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만족할 만한 보고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만족할 만한 보고서
가장 길었던 한 주
닉 페이지/오주영/포이에마/김정현


고난 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관련된 책을 한 권 정도는 읽어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두툼한 두께 때문에 건질 것이 없지는 않겠다 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선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의 방대함에 놀랐고, 다양한 자료들을 깊이 있게 비교 분석해 놓은 내용에 놀랐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평신도 저널리스트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목회자라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은 자료들을 찾...
종교개혁의 정신 종교개혁의 정신
종교 개혁의 유산
칼 R. 트루만/조영천/개혁주의신학사/김재윤


이 책의 저자인 칼 트루만 교수는 실력 있는 영향력 있는 교수이다. 종교 개혁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이 이 책에 잘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은 2000년 7월에 웨일스 복음주의신학교에서 열린 ‘말씀과 성령 컨퍼런스’에서 강연된 내용들이다.   이 책에는 오늘날의 교회가 성공주의 및 승리주의에만 도취된 나머지 종교개혁가들이 했던 만큼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민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한탄이 표현되어 있다.   또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려줄 뿐 하나님의 이야기를 선포하는 데에는...
설교자들을 돕는 중요한 책 설교자들을 돕는 중요한 책
레토릭 설교
존 캐릭/조호진/솔로몬/김재윤


이 책은 설교에 있어서 적용이라는 부분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잘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설교에 있어서 중요한 수사법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 효과적인 설교를 하기 원하는 모든 설교자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저자는 호소가 없는 설교의 위험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떤 설교자들의 설교는 내용 그 자체로는 탁월하나 회중을 향한 호소가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설교는 바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조지 휫필드가 자신의 설교를 출판하자고 하자, 종이 위에 천둥과 번개를 담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은 설...
이런 레시피 보셨나요? 밥풀떼기 김정식 목사가 회심 후 빚은 이런 레시피 보셨나요? 밥풀떼기 김정식 목사가 회심 후 빚은
사람이 별미입니다
김정식/샘솟는기쁨/김정완


잡탕찌개며 비지찌개 등속에 얽힌 사연   음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아마도 얼굴 모양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사랑방에 어지럽게 흩어진 이미지들을 하나 빠짐없이 쓸어 담으면 손 크게 ‘맛’과 ‘온정’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한때 가족이나 친구들과 먹었던 맛깔스러운 음식에 대한 기억이 해마에 탄탄히 자리 잡았다면 ‘맛’에 대한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를 테구요. 질문자의 의도를 알고 조금 앞서 나간 분이라면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나눠먹었던 한...
한국 합창사의 뿌리 이동훈 이야기 한국 합창사의 뿌리 이동훈 이야기
네가 주를 사랑하나
김병숙/홍림출판사/송광택


한국교회 음악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이동훈(1922~1974).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테너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가슴마다 파도친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등의 찬송가 작곡가이다.  한 음악전문지는 이동훈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우리 교회음악사에 신화와 같은 음악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아마 한국의 음악이 존재하고 있는 한 영원히 남아서 어떻게든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동훈 선생이 그분이다.”(<기독음악...
기쁨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다 기쁨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다
누가 내 기쁨을 훔쳐갔을까?
산드라 스틴/서진희/베드로서원/김정완


성경 말씀에 따르면 기쁨은 본원적으로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기쁨은 그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쉽게 양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자주 기쁨의 자리에 두려움, 걱정, 좌절 등 부정적인 태도들을 가볍게 허용한다. 그 결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좌절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온당한 걸까?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신 존재로 창조했다.(창세기 1:31) 창조 목적대로라면 우린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늘 기뻐하며 만족스럽게 살게...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겨쌈을 당하여도
비난에 대처하는 10가지 방법
블레인 앨런/김태곤/말씀사/김정완


어느 때고 한 번 또는 여러 번 비난에 직면해야 할 때가 있다. 비난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어느 때 나도 그렇게 비난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연스럽게 비난하는 자들의 수를 확대해간다. 머지않아 공동체는 비난받는 자와 비난하는 자로 양분된다. 중간 지대는 없다. 따라서 중재역할을 하는 사람 또한 없다. 한 번 형성된 양자 구도는 비난받는 자가 사라진 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비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은 비난받아야할 자를 재생산하고 다시 그를 향해 비난하는 말을 쏟아낸다. 왜 멈추지 않는 걸까? 그것은 곧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이성을...
영적 여정으로서의 교육 영적 여정으로서의 교육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파커 팔머/이종태/IVP/송광택


이 책의 부제는 무척 인상적이다. “영적 여정으로서의 교육”(Education Aa a Spiritual Journy). 책 앞 표지에 실린 한 줄의 리뷰도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교육에 있어서 일대 사건과 같은 책이다”(뉴욕 타임즈). 뒷표지에는 저자의 교육관이 한마디로 압축되어 있다: 가르침은 진리가 실천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과 존 웨스터호프 3세(John H. Westerhoff III)도 이 책을 추천하는 말을 남겼다. “현대적인 접근 방법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는 비평...
기도가 전부 응답된 사람 기도가 전부 응답된 사람
기도가 전부 응답된 사람
조지 뮬러/배응준/규장/이종수


100퍼센트 응답되는 마법 기도 같은 것은 없다!          조지 뮬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 가운데 기도생활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영적 거인이다. 기독교 역사 상 조지 뮬러만큼 기도의 삶에 관한 분명한 족적을 남긴 영적 거성은 없는 듯 하다. 조지 뮬러는 “5만번 이상 기도가 응답된 사람”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모두 들어주신 사람”, 또는 “기도가 전부 응답된 사람”이란 강력한 기도 콘텐츠를 가지고 ...
묵상으로 만나는 토머스 머튼의 영성 묵상으로 만나는 토머스 머튼의 영성
묵상의 능력
토머스 머튼/윤종석/두란노/[이종수]


토머스 머튼(1915-1968)은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신부이다. 머튼은 현대 영성가로 알려진 헨리 나우웬과 필립 얀시가 토머스 머튼의 삶과 사상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머튼이 수도했던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가톨릭교회 수도회의 한 분파이며, 관상수도회(觀想修道會)로서 정식명칭은 개혁 시토수도회 또는 엄률(嚴律)시토 수도회이다. 이 수도회는 17세기에 프랑스 노르망디의 라 트라프에서 창설되었고, 그 지명을 따라 트라피스트 수도회라고 통칭되었다. 수도회의 수도사들은 관상과 속죄의 생활을 하면서 기도와 노동을 통하여 하나님과...
명품 인생을 위한 특별한 인생 테스트 명품 인생을 위한 특별한 인생 테스트
꿈을 좇을 때 만나게 되는 하나님의 시험
로버트 모리스/정문욱/예수전도단/[이종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장차 위대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계획하신 후, 주어진 영향력을 가지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도록 예정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진정 명품 인생이 된다. 마치 요셉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셨을 때, 그가 그처럼 혹독한 시험을 만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정을 향한 여정 내내 요셉은 믿음을 잃지 않았고, 마침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며 꿈을 온전히 성취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요셉은 우리의 본보기이다. 이제 우리 또한...
‘완전한 진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완전한 진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완전한 진리
낸시 피어시/홍병룡/복있는 사람/[조영민]


 1997년 5월, 필자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본인의 신상기록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었었다. 하지만 실재로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그 날에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 날 이전에 수많은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납득할만한 대답을 들려주는 기독교인을 만나지 못했다. 물론 답변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언어는 나를 설득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대학 2년 선교단체의 불신자 수련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물론 지적인 부분에서의 만남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말할 때, ...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토마스 목사전傳
유해석/생명의말씀사/[이종수]


초대 교회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인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 이 조선 땅에도 순교자로서 피를 흘린 믿음의 선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교회가 번성하고 제 2의 기독교 국가라는 영예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을 안고 최초로 조선 내륙에까지 복음을 전하러 들어왔다가 죽음을 당한 기독교 선교사, 그는 바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
가정과 사역 사이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사는 비결 가정과 사역 사이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사는 비결
신실한 크리스천은 모두 신실한 남편인가
도린 무어/김명숙/미션월드/[이종수]


여기 18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 세 사람이 있다. 존 웨슬리,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또한 후세에 길이 남을 풍부한 기독교 유산을 남겼다. 그리고 또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저자가 우리에게 몹시도 궁금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결혼 생활이 과연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우리의 결혼 생활은 어떠한가?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온 생명을 다 바치고 또 그를 위해 쓰임 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
빌리 그레이엄에게서 배우는 21가지 리더십 에센스 빌리 그레이엄에게서 배우는 21가지 리더십 에센스
빌리 그레이엄의 리더십 비밀
헤럴드 마이라, 마셜 셀리/김소연,선우아정/생명의 말씀사/[이종수]


우리는 종종 빌리 그레이엄이 환히 웃는 얼굴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온화한 얼굴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 탁월한 경영자, 최고의 CEO로서 찬란한 리더십!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것은 대형 경기장에서 대규모 군중을 앞에 두고 설교하는 모습이나, 국가재난 사태 때 국민을 인도하거나, 또는 대통령 취임식 날 설교를 하는 모습 등 대부분 리더십을 갖춘 리더의 모습 보다는 국민적 목회자의 겸허한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빌리 그레이엄이 지난 오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력한 CE...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가 쓴 조나단 에드워즈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가 쓴 조나단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 삶과 신앙
이안 머레이/윤상문,전광규/이레서원/[권지성]


만약 단 한 권의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전기문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히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통하여,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기문이 소개되었으나, 이 책의 저자가 이안 머레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이 책을 가지고 싶을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전기 작가답게 책의 모든 것에서 그의 20년간의 심혈을 기울인 성실함과 노력이 구석구석에 배여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말은 1867년 7월 21일에 쓰여진 것이다.) 그는 20세기의 마틴 로이드존스, 아더 핑크, 존 머레이, 1...
세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기술 ‘덕’ 세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기술 ‘덕’
덕의 기술
벤자민 프랭클린/정혜정/21세기북스/[이종수]


우리 동네는 요즘 ‘싸움의 기술’과 ‘작업의 기술’을 배우느라 한창이다. 남자들은 싸움의 고수를 선생으로 모시고 열심히 싸움의 기술(the art of fighting)을 연마하고 있다. 지난 세월 그저 맞고만 사는 것이 일이었기 때문에, 이젠 더 이상 맞고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들어서일까? 또 여자들은 작업계의 고수를 모시고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면 작업의 정석(the art of seduction)을 익혀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참으로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인생의 몸짓들이다. 하지만 여기 세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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